창원읍성 여제단 지번 확인 읍성(邑城)

창원 여제단을 찾았다고 한 것이 지난 2017년 9월 20일 경이었습니다. 그때에는 1954년 항공지도를 통해서 찾았습니다. 현재는 남해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입니다. 항공지도를 통해서 찾았지만 지번에 관해서 조금은 의문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1914년에 조사한 지적도에서 창원시 소답동 871번지에 있는 지목이 垈地의 垈임을 확인하였습니다. 871번지 주위에 논이나 답 또는 묘지이지만 871번지만 대지를 나타내는 垈라 확실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창원읍지에 여단은 북 1리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거리에 대지항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소답동 871번지가 유일함으로 맞습니다. 항공지도를 통해서 찾은 여제단을 확인사살까지 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네이버에 있는 향토문화전자대전에 있는 창원읍성 여제단을 찾아보면
개설 : 여제는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이나 역질을 퍼뜨리는 귀신인 여귀(厲鬼)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의 각 군현에 여단을 두어 역병을 예방했다. 이 여단은 동쪽의 성황단, 서쪽의 사직단과 함께 관아에서 필수적으로 세우는 제단이었다. 여제는 1908년 국가 차원에서 폐지되면서 철저하게 부정되고 파괴된 대표적인 민간신앙의 하나로, 조선시대 역병관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위치 :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의 여단은 창원도호부에서 서쪽으로 1리에 있다.”고 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32권 경상도 창원도호부 사묘 조에는, “여단이 부의 북쪽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여단은 창원도호부가 합포성에 있을 때의 여단이다. 임진왜란 후 창원도호부 관아를 옮길 때 여단도 같이 옮겼을 것이다.

형태 : 여제단의 일반적인 형태는 네모진 형태의 돌단과 담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창원의 여제단은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없다.

의례 : 여제단에서는 일반적인 의례로 매년 봄·여름·가을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역병이 도는 해는 수시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

이렇게 적혀져 있지만 여단은 북 1리에 있다고 기록되어져 있으며 돌단과 담으로 이루어진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아래에 나오는 지적도는 전부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에서 가져왔음을 알려드립니다. 이 지적도는 1914년 지적도로 1905년 마산선인 철로가 놓여졌기에 지적도에는 철도가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 창원시 소답동 871번지를 찾아보았습니다. 빨강색으로 표시된 것입니다.
▼ 지번 항목을 보니 소답동 871번지는 대지로 나와있습니다. 바로 아래편에는 철도가 개설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954년 항공지도에서 찾은 여제단으로 거의 100% 일치한다고 봐야할 것이며 이 부분에 관하여는 의창동에 사시는 80세 이상의 어르신께 여쭈어 보았더니 집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 철도 바로 위에 자리하고 있는 여단
▼ 1954년 항공사진과 지금의 지도를 표시한 것입니다.
▼ 여제단인 소답동 871번지는 남해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지번은 분리되어 현재는 소답동 871-1, 소답동 871-2, 871-3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크기도 크지가 않습니다. 즉 고속도로에 70% 이상이 사라졌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진주시의 경우 여제단 복원을 위한 여제단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공청회도 개최하였습니다. 창원에서도 이런 부분을 준비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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