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좌수영성 복원한다. 성곽 관련 뉴스



여수시는 진남관을 중심으로 한 전라좌수영성을 복원한다고 합니다. 2011년까지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하고 2015년까지 복원을 한다고 합니다. 다만 비용이 많아서 어떤 방식으로 복원을 할지는 잘 모르겠군요. 전면 복원에는 2,600억원이 들고 일부 복원에는 1천 380억원이 든다고 합니다.

일부복원의 경우 남.서.동문루 복원 및 해자와 성벽 일부, 덕지와 군자정을 복원하는 것이고 2안의 경우 동헌, 중영, 군기청 등 복원정비와 서문~남문~동문의 연계성을 고려 보행전용 역사문화거리 조성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3안의 경우는 전라좌수영성 본래의 모습으로 전면 복원.정비 즉 성곽의 체성 및 문지복원 뿐만 아닌 성곽내 의 좌수영 관아건문 및 기타관련 시설의 전면적인 복원이라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힘이 들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 나온 가격처럼 엄청많은 예산이 소요가 되어서 여수시 예산으로는 힘이 들 것으로 보이고 전남도청과 국가의 예산지원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통영의 경우 통제영복원을 위해 596억원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며 진주의 경우 진주대첩광장 조성을 위해 국책사업으로 800억원이 투입이 된다고 하네요. 강진의 전라병영성 복원을 위해 노력을 하는 것에 비해 전라좌수영 복원은 늦은 감은 있습니다. 그래도 부산이나 마산의 경우 경상우병영성과 경상 좌수영, 거제의 경상우수영 복원의 경우 아직 계획이 없는 것에 비하면 나은 편에 속합니다. 울산의 경우 경상좌병영성 복원을 위해 어떤 계획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아래 고지도는 전라좌수영성의 모습이고 지도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있는 1872년 지방지도 중 순천부지도 중 전라좌수영과 고돌산진 그리고 방답진의 모습입니다. 다만 방답진위에 있는 장성의 경우 어떤 성곽인지 잘모르겠네요. 아시는 분은 글 남겨주세요. (곡화목장 분계성이라고 하네요)
전라좌수영성의 성곽추정도입니다. 3대문이 있으며 3대문의 경우 동,서,남문입니다.
복원될 전라좌수영성의 CG모습으로 이미지출처 Z=x=y님 블로그 
http://blog.naver.com/h9361428?Redirect=Log&logNo=30045479166 



덧글

  • 유진우 2009/08/11 21:41 # 삭제

    진남관이 남문에 너무 가깝게 위치해 있네요.
    남문이나 서문이 돌파당할 경우 이 일대의 방어전에서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남문~동문 성곽이 너무 광범위하게 치우쳐져 있는 것 등 수성전에서는 그다지 유리한 요소를 배제한 것 같네요
    아무튼 복원될 모습을 기대해봐야죠

    일제에 의해 철거된 이후 영영 제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 같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 같습니다.
  • 팬저 2009/08/12 00:23 #

    지금의 여수 모습은 예전의 여수모습과 조금 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바다를 매립한 것으로 보이고 지금의 진남관은 그대로이지만 바다는 더 가까이 있었을것으로 보입니다. 남문의 경우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우리나라 전역에 있는 진성의 경우 바다와 인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수군의 경우 공성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싸우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또 이러한 점을 보강하기 위해 봉수를 설치 했겠죠.

    전라좌수영의 경우 진성으로서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좌수영성 앞에 여수 오동도가 있고 그 앞에 돌산도가 있어서 지금과 같은 방파제를 설치하지 않는 그시대에는 항구로서의 피항할 수 있는 곳이 진성을 만드는 곳에 좋은 곳이죠. 또 남해에서 오동도로 거쳐 전라좌수영으로 오는 뱃길과 전라좌수영에서 돌산도를 거쳐 고흥으로 가는 뱃길이 두개가 있어 좌수영지로서 충분한 시설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말씀하신 부분은 수군의 인원수에 비해 큰편에 속한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잔라좌수영성의 모양인데 진성의 경우 보통 원형으로 된 성곽으로 되어있으나 전라좌수영의 경우 원형에 가까운 삼각형의 모양이라는 것이 특징으로 보입니다.

    복원의 경우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뭐라고 싶게 답을 내리기는 힘이 듭니다. 또 투입되는 예산이 여수시에서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고 원래는 2009년까지 복원을 한다고 했는데 행정편의주의적인 복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발굴조사도 하지 않고 복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너무 성급하게 일을 추진한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는데 2015년까지 복원한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 에로거북이 2009/09/22 20:36 #

    여수에서 일할 때 제 발길이 많이 닿았던 곳이군요 ^^
    남문이 실제로 저렇게 이층누각(..) 까지 되었을까요.
  • 팬저 2009/09/22 22:47 #

    보통 읍성이나 진성, 영성,보성,산성의 경우 그 진이나 읍의 규모에 맞게 성의 크기를 정하고 관아를 정하는 것처럼 전라좌수영의 남문의 경우 좌수영의 주출입문인 것도 있고 전라좌수영의 상징이라는 것을 봐서는 충분히 2층 규모의 누각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갑니다.
  • 에로거북이 2009/09/22 23:33 #

    네에..
    2층 규모래도 저렇게 남대문 규모의 이층일까 하고
    좀 의아심이 들었습니다. ^^;
  • 팬저 2009/09/23 00:52 #

    평양의 대동문이나 함읍읍성의 남문의 경우 2층 누각으로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전라좌수영이라면 충분히 클 것으로 보입니다.
  • 에로거북이 2009/09/23 07:51 #

    네 잘 알겠습니다.
    좋은 상식 감사합니다.
  • 팬저 2009/09/23 10:22 #

    좋은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
  • 김경진 2009/11/06 04:28 # 삭제

    진남관은 전라좌수영의 동헌이 아닌 객사이며, 부안읍성의 객사도 남문 바로 안쪽에 아주 가깝게 위치합니다.

    오동도 입구에 전시된 전라좌수영 고지도에는 전라좌수영이 뒷편 종고산의 거의 꼭대기까지 성곽으로 표시돼 있습니다. 뒤에 학교 건물 다 잡아먹고도 모자라 아예 산으로 올라간다는 이야깁니다. 성 내부 기와집은 수십 채이고요. 제대로 복원하려면 예산 감당 못할겁니다.

    방답진 위에 장성은 목장분계선으로 표시돼 있고, 성문은 어목문이라고 돼 있으니 문자 그대로 해석하시면 되겠네요. 예. 말 목장입니다. 절이도 목장성(정식 명칭임. 섬 남북을 일직선으로 가른 형태의 장벽) 일부 유적과 남해군 남쪽에 목장 경계를 두른 성곽 유적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구경 잘했습니다.
  • 팬저 2009/11/06 10:24 #

    방답진위의 장성이 목장이었다는 부분을 알려주어서 감사합니다. 지금의 영도인 절영도에도 목장이 있었다고 하던데 이제 의문이 풀리어서 감사합니다. 남해군에도 목장의 흔적이 있었다는 부분은 처음든는 이야기이지만 알려주어서 감사합니다.

    혹! 밀리터리 소설가이신 김경진님이신가요? 아니면 개그맨 김경진씨인가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그리고 많이 가르쳐주시기 바라면 좋은 하루보내세요.
  • 명훈 2009/12/21 08:39 # 삭제

    여수공업고등학교 좌측에 성곽의 잔재들이 예전에는 남아 있었습니다. 현재는 모르겠네요. .벌써 십수년전이라
    그 앞 길이 아마 성곽의 흔적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교적 여수 좌수영 씨지는 잘 처리된 듯 합니다.


    그런데 고지도가 저거 방답진 좌수영 서로 위치가 다른것일텐데 연결이 되어 있네요....

    돌산지역의 목장은 돌산읍 둔전리에 목장이 있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 팬저 2010/03/05 18:11 #

    좋은 정보 가르쳐 주어서 감사합니다.
  • 희철 2012/06/01 15:01 # 삭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최근에 여수에 관한 공부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우연히 왔네요.
    여수 좌수영성에 관한 CG나 위성지도에 그리신 위치는 거의 맞는 걸로 보이네요.
    1915년 일본이 토지조사사업을 하면서 만든 지적원도에 보면 동정지역에는 그 때까지 성곽이 남아있었고, 동문의 형태도 거의 유사하게 보입니다.
    다만, 서정 지역에는 성곽이 도로로 바뀐 흔적만 나타나더군요. 서정이 먼저 시가화가 되었다는 증거로 보입니다.

    김경진 님께서 전라좌수영의 고지도에 좌수영이 종고산 거의 꼭대기까지 성곽으로 표시되었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고지도를 볼 때 사실 오늘날 지도를 보는 것처럼 그대로 믿으면 안됩니다.
    약간 회화적으로 그린 것도 문제고, 당시 관행을 보면, 지도를 그린 사람이 직접 내려와서 그렸다기 보다는 당시 문헌과 지방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추정해서 그린 것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고지도의 내용을 그대로 믿으면 안되고, 성곽 내에 어떤 시설이 있다고 한다면, 대충 그런 시설이 있다는 의미이지, 그 자리에 정확하게 그 시설이 위치했다고 믿기도 어렵습니다.
    참고하셨으면 하네요 ...
  • 팬저 2012/06/01 15:56 #

    잘보았다고 하니 고맙습니다. ^^ 말씀하신 지적원도를 저도 보았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panzerkorea@paran.com 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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