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성벽 축성방식이 왜성과 같은 기울기로 되어 보인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고성의 소을비포성에서 본 기울기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1910년 경 부산진성의 모습입니다.
▼ 성벽의 기울기가 우리나라의 성곽과 달리 기울여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 복원된 고성소을비포진성의 모습입니다.
▼ 복원된 북문지의 성벽의 모습으로 계단식으로 된 성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 부산진성 성곽축성에 관련된 글 보기
▼ 그런데 동아문화재연구원에서 고성 소을비포진성의 발굴현장의 사진을 보니까 위 고성 소을비포진성의 성곽 축성방식과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지금 복원된 소을비포진성의 성곽 기울기와 발굴당시의 사진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성 소을비포진성의 성곽 기울기는 조선초기때 축성한 성곽의 방식과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위 부산진성의 성곽 기울기에 관련되어 의문이 남게 됩니다. 아직 그부분에 관련되어서 자료가 없어서 단정하기는 힘이 듭니다.
▼ 울산 후기 서생포진성의 모습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축성한 서생포왜성의 모습으로 임진왜란이 끝나고 그 자리에 서생포진성으로 활용을 하였습니다. 부산진성과 달리 서생포진성의 경우 왜성을 그대로 사용한 케이스입니다.
▼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얼마사용하지 않았던 것에 비행 서생포진성의 경우 300여년 이상 사용하였습니다.
▼ 현재에 남아있는 서생포왜성의 모습으로 현재 남아있는 곳은 서생포왜성의 일부이고 서생포진성에서 사용한 동헌과 객사의 경우 지도에 표시한 지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성의 성곽추정도를 가지고 서생포지역에 대비시킨 것으로 정확한 것은 아니고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남문과 북문의 경우 조금은 틀릴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따라서 서생포왜성의 성곽 자체를 그대로 사용하고 객사와 동헌 등 각종 관아건물만 서생포왜성자리에 건립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서생포왜성에 사용된 성곽의 축성방식은 왜성의 방법과 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성곽의 기울기는 왜성의 방식입니다. 서생포진성의 방식은 왜성의 기울기와 같다면 부산진성의 성곽의 기울기는 어떤 방식이었을까요? 부산진성4편에서 부산진성의 성곽 기울기는 왜성의 방식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을 하였습니다.
부산진성의 경우 성곽의 기울기 부분은 축성부분을 연구하는데 상당부분 중요한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경우 왜성과 같이 성곽 기울기를 선택하였다면 성곽 연구에 있어서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전편에서는 고성 소을비포진성에서 계단식 쌓기 방식으로 해서 성곽의 기울기가 부산진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기울여졌다라고 이야기 하였지만 발굴 당시의 사진으로 봐서는 현재 복원된 고성 소을비포진성과 다릅니다. 또 왜성을 그대로 사용한 서생포진성이 있으며 부산진성의 경우 마찬가지로 자성대왜성을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부산진성의 경우 성곽의 기울기 부분은 축성부분을 연구하는데 상당부분 중요한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경우 왜성과 같이 성곽 기울기를 선택하였다면 성곽 연구에 있어서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전편에서는 고성 소을비포진성에서 계단식 쌓기 방식으로 해서 성곽의 기울기가 부산진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기울여졌다라고 이야기 하였지만 발굴 당시의 사진으로 봐서는 현재 복원된 고성 소을비포진성과 다릅니다. 또 왜성을 그대로 사용한 서생포진성이 있으며 부산진성의 경우 마찬가지로 자성대왜성을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덧글
산노마루는 마을이 되면서 파괴가 심한 것 같습니다.
정상부의 혼마루( 本城 )가 그나마 잘 남아있는 것 같네요
혼마루에 가까워지면서 구획도 복잡해지고 방어정면이 축소되는 전형적인 일본 평산성의 특징을 잘보여주는 것이 서생포 왜성입니다.
실록을 보면 임진왜란 직후인 1600년 선조의 주도로 함경도 지역의 성곽을 왜성식으로 개축하라는 명령이 하달된 사례가 있습니다. 실물 성곽을 봐도 당시 개축된 함북 경성성 성벽이 이른바 요고형 내지 규형이며, 같은 1600년대에 개축된 남한산성의 경우에도 일부 지구 성벽(특히 일부 치성 성벽)에 요고형 내지 규형이 나타납니다.
우리 학계에서는 적극적으로 이런 측면을 부각시키지 않고 있지만 太田秀春 같은 일본 학자들은 17세기(1600년대) 전반에 조선이 일본식 성곽(왜성)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부산진성 성벽의 경우 사진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단경사나 복경사류의 성벽이라기보다는 요고형 내지 규형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네요. 말씀처럼 한번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