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경성읍성 읍성(邑城)



이미지출처 한민족 전투 문화 원형 컨텐츠
얼마전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성벽기울기를 이야기하였는데 그와 비슷한 성벽의 기울기가 있는지에 관하여 인터넷으로 보다가 성벽기울기가 비슷한 것이 있어서 읍성답사후 올려야 하는 것이 정석이나 북한을 가볼 수가 없는 관계로 읍성 카테고리에 글을 올려봅니다. 경성군은 함경북도 경성군에 있으며...
경성읍성은 1107년에 축조된 토성인데 1437년에 토성의 일부 구간을 석성으로 고쳤고, 지금의 경성읍성은 1616년부터 1622년까지 6년 6개월에 걸쳐 요고형 성벽으로 쌓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때 성문들과 포루, 성가퀴, 해자와 못, 우물 같은 것이 갖추어졌다고 합니다. 경성읍성의 사방에 각각 하나씩의 성문을 냈는데 지금은 남문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남문은 성벽 사이에 홍예문을 내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세웠습니다. 문루는 정면 5간(13.15m), 측면 4간(8.05m)의 익공집이다. 두공은 1층에서 3익공, 2층에서 4익공으로 하고 겹처마 합각 지붕을 올렸으며, 모루 단청을 입혔습니다.

▼ 아래 사진을 보면 넓은 평야지대에 경성읍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 구글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경성읍성이 있는 곳은 함경북도로 상당히 산이 많은 곳이나 경성군이 있는 부분은 상당히 넓은 평야지대가 있습니다. 그곳에 경성읍성을 만들었는데 바다와 상당부분 인접하고 있습니다. 경성읍성의 성곽추정도를 볼 수가 없지만 사진상을 보면 조선시대 평지읍성의 전형인 사각형에 가까운 읍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경성읍성은 북으로는 청진, 남으로는 길주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상 요충지로서 큰길이 동문과 서문을 통하게 된 방위상 유리한 자연지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려 1107년(예종 2)에 처음 쌓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1434년(세종 16)에 김종서가 절도사로 와서 이 성을 중심으로 국방을 더욱 튼튼히 하였고, 1616(광해군 8)~1672년(현종 13)간에 이미 있었던 성을 확장하여 읍성을 고쳐쌓았다. 이 고쳐쌓은 성은 돌로 쌓은 평지성으로 둘레가 2천여m에 남북으로 좁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성벽은 장구 모양으로서, 그 높이는 약10m에 달하고 아랫부분은 한 변이 1.5m 되는 대리석으로 쌓았다고 전한다. 성벽 위에는 낮게 쌓은 담을 돌렸는데, 옛 문헌에 의하면 510개의 성가퀴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북벽에 일부만 남아 있다. 성 안에는 8개의 포루를 설치하였고, 12개의 작은 못과 54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성 밖에는 5~6m 깊이의 참호를 파서 성의 방어를 강화하였다. 성문은 동쪽에 용성문, 서쪽에 호위문, 남쪽에 수성문, 북쪽에 현무문 등 4개의 문루를 세웠는데, 현재는 남문루인 수성문만이 남아 있다."

한민족 전투 문화 원형 컨텐츠에서 발췌

▼ 1930년대에 찍은 경성읍성의 남문입니다. 아래에 나오는 현재의 경성읍성의 남문과 비교하면 성곽의 높이가 조금 높아보입니다. 사진 각도때문에 그런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1층 누각 앞이 현재의 경성읍성 남문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현재의 경성읍성의 남문으로 성문은 홍예식으로 되어있으며 문루의 경우 2층 누각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성읍성 좌우 성벽의 경우 부산진성의 서문과 같이 요철식으로 나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사진상 옹성이 보이지 않는데 부산진성 서문에도 옹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만들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옹성을 대신하기 위한 방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남문의 넓이와 같이 좁게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경성읍성 남문을 옆에서 본 사진으로 이 사진을 보면 성벽의 기울기가 90도에 가까운 직선이 아니고 요고형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상태의 성벽 기울기라면 부산진성에 세운 석주의 기울기도 기울어지는 것이 당연할 것으로 보입니다.
▼ 경성읍성 남문 문루의 모습인데 뒤에서 사진을 찍었네요. 자세히 보시면 성벽의 안은 내탁으로 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경성읍성의 성벽기울기를 알 수 있는 사진으로 오목하게 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고형은 포격에 강하다고 합니다. 위에서 경성읍성은 1616년부터 1622년까지 6년 6개월에 걸쳐 요고형 성벽으로 쌓았는데 이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쌓은 것입니다. 이는 임진왜란을 통해 한국의 성곽부분이 수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영향을 끼쳤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경성읍성의 치성부분으로 요고형으로 된 성곽의 모습이 잘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곽의 축성방법은 아래쪽에 큰돌을 쌓고 상부로 가면서 작은 돌을 쌓은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경성읍성의 여장의 모습인데 우리들이 보아온 여장의 모습과 조금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성읍성의 모습을 보니 조선후기 축성한 부산진성의 성벽 기울기에 관하여 상당부분 의문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부산진성도 임진왜란이 끝나고 대대척인 축성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쌓은 성벽의 기울기는 경성읍성과 같이 요고형으로 쌓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부산진성의 서문과 경성읍성의 남문은 상당부분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부산진성 1편
부산진성 2편
부산진성 3편
부산진성 4편
부산진성 5편
부산진성 6편

부산진성과 경성읍성의 성벽기울기 비교를 해봅니다. 비교는 포토샵에서 했기때문에 정확하지 않습니다. 실측을 하지 않았고 현재 실측을 할 수 없기때문입니다.(부산진성의 경우 성벽이 허물어졌고 경성읍성을 갈 수 없기떄문에...) 따라서 포토샵으로 하다보니 상당부분 오차가 발생함을 미리 밝혀둡니다. 또 부산진성의 사진이 너무 작아서 정확하게 알 수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부산진성의 경우 A에서 C까지의 성벽기울기는 대략 71도정도 됩니다.(5번 정도 측정했지만 A와 C지점을 어디에 찍느냐 따라서 상당부분 틀려집니다. 평균값으로 했던 것을 밝혀둡니다.) 경성읍성의 경우 61도정도입니다. 성벽의 기울기가 10도 정도 차이가 납니다. A에서 B까지의 각도는 부산진성의 경우 대략 77도 경성읍성은 72도입니다. 여기까지는 5도정도 차이가 납니다. B에서 C까지의 각도차이는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경성읍성은 55도인데 비해 부산진성의 경우 70도 무려 15도 이상의 각도 차이가 납니다.

부산진성의 경우 큰 사진이 있다면 비교하기 좋은데 너무 작은 사진이라 비교자체가 무의미합니다만 부산진성의 성벽 기울기를 알아 내는데 어느정도 참고자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부산진성을 찍은 사진의 각도와 경성읍성의 사진각도가 틀려 각도의 오차는 상당히 있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 한 것 처럼 부산진성의 경우 경성읍성과 같이 요고형의 성벽축조단면일 것으로 보입니다. 
▼ 또 부산진성의 서문과 경성읍성남문을 비교한 사진으로 부산진성의 서문은 1층 누각인데 비해 경성읍성의 경우 2층 누각입니다. 또 부산진성과 경성읍성 성문의 경우 크기는 비슷하게 보이나 성문에서 성벽까지의 거리는 부산진성이 조금 더 거리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성벽이 성문보다 조금더 돌출 된 것은 똑 같습니다. 또 부산진성 서문과 경성읍성 남문의 경우 옹성이 보이지 않는 것도 똑같습니다.
▼ 참고로 옹성의 평면형태와 성문의 평면형식 성벽의 축조단면도를 올려봅니다.





덧글

  • 유진우 2009/08/20 20:55 # 삭제

    경성성은 일제시대 많이 철거되었고 1910년대 이후 대대적인 일제의 읍성 철거로 살아남은 성은 열에 하나 꼴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http://img.blog.yahoo.co.kr/ybi/1/0b/0e/pershing11111/folder/1203274/img_1203274_810152_0?1091189467.jpg
    이건 1919년 네셔널 지오그래픽팀이 촬영한 무산성의 남문인데 거의 퇴락하기 직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 팬저 2009/08/21 09:40 #

    1919년까지 남문의 누각이 남아있었다는 것만 봐도 다행이고 나라잃은 정부가 저기까지 신경쓰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네요.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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