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성 9번째 이야기로 현재 부산진시장과 자성대 주위로 조선시대 부산진성의 성곽을 따라가보기도 했습니다. 남아있는 부분은 없을 것으로 보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하며 조선후기 부산진성이 있는 곳은 1년만에 찾아보았습니다. 아래 그림지도에 있는 것은 1912년 지적원도에 나온것을 현재의 지도에 대비한 것이며 A~J까지는 사진을 찍었던 위치중 특별하게 생각한 것만 표시한 것입니다. (그림지도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현재 복원되어있는 영가대입니다. 조선시대때의 영가대보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편입니다. 위 그림지도를 보면 영가대 옆으로 성곽이 지나갔을 것으로 보이는데 영가대를 복원하면서 문화재 발굴조사를 하여 성곽에 관한 내용들을 규명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는 부산진지성 최초의 발굴조사라고 하는데 그럼 영가대복원을 하면서 발굴조사를 하지 않고 복원을 하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영가대의 경우 위 지적원도를 기준으로 보면 체성이 지나가는 부분인데 왜? 발굴조사를 하지 않고 복원을 한 것일까요?
▼ 영가대에서 성남초등학교 방면으로 바라본 곳으로 위 지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J지점이 됩니다.
▼ 영가대와 조선통신사에 관련된 안내문이 있어 조선통신사에 관한 내용들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 영가대에서 현재 복원된 동문방향으로 가면 부산시 동구청이 조선통신사 기념관 건립예정 부지 조성을 위한 발굴 의뢰한 현장이 나옵니다. 현재 이곳의 발굴조사는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부산진성의 성곽 하단 부분으로 많은 부분이 사라져 버려서 제 같은 아마추어는 잘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면 바깥쪽으로 큰돌을 쌓고 내부에 잔돌을 쌓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줌 아웃을 해서 보면 성곽이 지나는 방향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복원된 동측성곽 바로 옆인데 동측성곽을 기준으로 동측성곽이 지나간다면 현재 보이는 도로방향으로 성곽의 체성이 지나가야 하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그렇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 조성된 동측성곽의 경우는 조사를 하지않는 상태에서 임의로 축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동측성곽이 끝나는 지점에서 90도로 각을 이루면서 성곽의 체성이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 그림지도에 필자가 표시한 지적원도를 클릭하여 보시면 크게 이미지가 나오는데 비슷하게 방향이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3~5미터 정도 차이가 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제가 포토샵에서 지적원도를 조금 줄이면서 발생한 것이지만 성곽의 방향이나 흐름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
▼ 현재 발굴조사지점과 발굴된 부산진성의 체성부분을 아래 지도에 표시한 것으로 위 사진에 나온 동측성곽부분은 B지점이고 아래에 나올 사진은 A지점이 됩니다. 위 사진에 나오는 B지점의 경우 지적원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W자 모양의 요철로 된 성곽부분인데 이는 조선진성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는 왜성에서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A지점에서 발굴조사된 부산진성의 체성부분으로 보시면 성곽의 체성이 제가 1편부터 주장한 왜성의 장점을 이용한 성곽이었다는 부분을 맞는 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성곽의 기울기가 90도에 가까운 부분이 아니고 70도 정도 성곽이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날 우리문화재연구원의 권순강팀장을 만나기로 했었는데 창원에 약속이 있어서 가는 관계로 직접 현장을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성곽의 기울기 부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성곽의 기울기를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왜성의 장점을 이용한 성곽이었다는 부분에 관해서에 관하여 수정을 한다면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경우 임진왜란때 축성한 자성대왜성을 그대로 활용하고 성문, 건물등은 새롭게 축성하거나 지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조선후기 부산진성(부산진지성)의 동문지로 추정이 되는 곳으로 현재 복원된 동문과 50여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상정옆 골목이 동문지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 동측성곽이 이어졌다면 동문지에서 보이는 건물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이고 위 지적원도에 표시된 B지점으로 B지점의 경우 보이는 건물처럼 각이져서 성곽의 체성이 연결되었다. 이는 왜성의 곡륜과 같아 보입니다.
▼ 아래 지적원도를 현재지도에 대비시킨것을 보면 동문에서 북문으로 연결하는 각이 진 부분이 위 사진과 아래사진에 나올 현재의 건물입니다. 지적원도를 보면 각이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꺽어져 있습니다. 조선진성이나 읍성 또는 산성을 보면 각이 진 저런부분에 각루를 세우는 것이 대부분인데 지적원도를 보면 각루나 치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선성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될 것 같은 각루와 치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위 지적원도를 기준으로 봐서 성곽은 아래 사진에 나올 건물을 뚤고 지나갑니다.
▼ 위 사진에 나올 건물을 지나서 성곽은 이방향에서 부산은행본점으로 연결이 됩니다.
▼ 동측성곽과 북측성곽은 가보았는데 골목으로 연결이 되어있어서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고 아래사진은 위 지적도를 기준으로 봐서 D지점으로 좌측에 보이는 건물에서 나온 성곽이 부산은행본점으로 연결이 됩니다. 서울의 경우 도성부분이 지나간 곳에는 파란색으로 성곽이 지나갔다는 표시를 하는데 이런부분을 도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부산진시장 육교에서 찍은 사진으로 방향은 동측방향입니다. 사진을 보면 KT건물 앞 건물측으로 동측성곽이 지나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 부산진시장 육교에서 찍은 사진으로 방향은 서측방향입니다. 지적원도 기준으로 본다면 성곽의 체성은 보이는 횡단보도 아래측으로 성곽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위 지적원도 기준으로 보면 E지점이 되겠습니다.
▼ 보이는 신호등을 지나 보이는 골목으로 성곽의 체성이 지나갔을 것으로 보이고 뒷편에 부산은행본점이 보입니다.
▼ 부산진시장 뒷 골목으로 진시장건물또는 골목이 체성이 지나갔을 것인데 그 실체를 알 수 있을려면 많은 세월이 지나야 갈 것입니다.
▼ 조선후기 가장 많이 다녔던 부산진성의 서문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이 되는 곳으로 사진상 우측에 있는 건물이 서문지 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 보이는 4층 건물이 서문지 였을 것 같은데 쉽게 단정을 짓지는 못하겠습니다.
▼ 부산진시장에서 좌천동방향으로 가는 곳에 있는 육교로 좁은 골목이 그래도 사람들의 왕래가 제법 있었는데 예전 부산진성의 서문의 화려함에 비하면 초라하다고 봐야겠습니다. 서문의 경우 아래 빨간색건물 옆 건물이 서문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 지적원도 지도 기준으로 보면 G지점이 되겠습니다.
▼ 육교에서 영가대방향을 찍은 사진으로 철길이 굽어지는 부분의 좌측이 영가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이 됩니다.
▼ 다시 육교를 내려와서 성남초등학교 방향으로 가다가 만난 지점으로 골목이 3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인데 여기에 남문의 흔적이 남아있는 남문홈패션이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보이는 건물에서 우측으로 가면 (지적원도 기준) 영가대가 나오는 곳입니다. 아래측 사진을 기준으로 본다면 조선시대 당시 이곳은 거의 바다였다고 봐야겠죠. 위 지적원도 기준으로 보면 H지점입니다.
▼ 성남초등학교의 모습입니다. 1편에서 이야기한 현재 부산진지성에 있는 "서문 성곽우주석의 경우 원래는 부산진성 서문의 자리였던 성남초등학교 교정에 있었는데 1975년 부산시에서 정화사업을 벌여 서문인 금첩관을 복원함에 따라 이전하였다."라고 부산동구청 홈페이지 적혀있는데 이는 잘못 적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지명의 경우 왠만하면 읍성이나 진성, 산성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의 방향에 지명을 사용하는데 창원의 남산의 경우 창원읍성의 남문을 기준으로 했고 남해에 있는 성남초등학교의 경우 곡포보성의 남문지로 추정을 한 곳입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서문이라고 주장하는 곳이 성남초등학교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 성남초등학교에서 자성대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진남대의 모습이 보입니다.
▼ 남문지로 추정되는 지점을 찾아보았는데 성남초등학교 뒷편으로 찾아가어야 되는데 방향을 잘못 찾았갔던 것 같습니다. 위 지적원도 기준으로 보면 I지점입니다.
이후 남문지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메모리에 저장이 안되었더군요. 남문지뿐만 아니라 남측성곽 등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이상하게 메모리에 저장이 되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남문지로 추정되는 곳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이번에 우리문화재연구원의 권순강팀장을 만났다면 부산진성에 관련된 내용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위에서 이야기한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경우 치성과 포루, 각루 등이 없는 것에 관하여 다음편에 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우리문화재연구원의 권순강팀장을 만났다면 부산진성에 관련된 내용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위에서 이야기한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경우 치성과 포루, 각루 등이 없는 것에 관하여 다음편에 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p.s 팬저님도 추석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마추어인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성곽분야인데 여러가지로 부족한 저에게 좋은 말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번동아제의 해박한 지식에 언제나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 ^^
추석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