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왜성_04(와성마을_03 난공불락城과 같은 웅천왜성) 왜성(倭城)



3편에 이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참다래밭을 나와 J지역으로 내려와서 다시 I 지역으로 내려왔습니다.
▼ 고추밭위에 조그마한 성벽의 흔적이 보입니다.
▼ 작은 돌들이지만 한군데 뭉쳐져 있는데 확실하지 않지만 왜성에 사용한 돌 같더군요.
▼ 일단 크기와 함께 규칙적으로 흩어져 있는 돌들을 보니 왜성에 사용한 돌이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 이곳을 지나서 가보려고 했지만 그물로 담을 만들어 놓아서 가보지 못했습니다.
▼ 다시 도로로 나와 왜성의 이시가키( いしがき[石垣])가 보입니다. 조그마한 전봇대 뒤에 있습니다. 
▼ 조금 걸어가서 D지점으로 올라가기전에 만난 왜성의 흔적들입니다.잘 안보이지죠.
▼ 축대와 같아 보이지만 왜성에 사용한 이시가키( いしがき[石垣]) 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다시 조금 위로 올라왔습니다. D지점 아래부분입니다.
▼ 왜성에 사용한 돌들이 성벽의 기울기인 70도 정도에 가깝게 파묻혀 있었습니다.
▼ 각이 보이시나요.
▼ 옆에 있는 돌 또한 각을 이루고 있더군요. 아마 이부분은 붕괴되고 하부에 있는 돌들만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 옆에 있는 돌 또한 마찬가지인데 저 보이는 돌을 지나서 보면 또 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 제법 큰 규모의 돌들도 나뒹굴고 있더군요.
▼ 고추밭위에 있는 돌들로 이부분은 이시가키( いしがき[石垣])의 내측 부분 같더군요. 위 사진에 나오는 돌들로 부터 1~1.5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 이제 다시 도로로 내려 갑니다.
▼ 어느 정도 큰 규모의 돌이 있었는데 이부분에 관해서는 웅천왜성에 사용한 돌인지 아닌지 잘모르겠더군요.
▼ 웅천왜성과 같은 방식의 성곽진이 있을까 싶어서 일본 웹사이트를 검색해보니까 비슷하게 되어 있는 곳이 있더군요. 실제로 웅천왜성의 방식과 같은 방식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빗츄마츠야마성(備中松山城)으로 제눈에는 비슷하게 보이더군요.
▼ 오테몬 터(大手門跡)
▼ 또 다른 성은 아즈치성(安土城)으로
▼ 산밑에 웅천왜성과 비슷한 방식으로 축성이 되어져 있더군요.
▼ 사진은 작지만 웅천왜성에서 사용한 방법과 비슷한 성곽진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또 다른 성은 이와무라성(岩村城)으로
▼ 웅천왜성의 경우 성곽진들이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면 이와 같은 방법으로 축성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이와무라성(岩村城)의 조감도
이와무라성, 빗츄마츠야마성(備中松山城), 야마토다카토리성은 일본의 난공불락성 중에 3대 난공불락성이라고 하더군요. 이제 다시 와성마을 입구로 갑니다.
▼ 아래 사진에 보이는 남산식당 옆 골목을 지나서 산으로 올라가면
▼ 왜성에 사용한 돌들이 보이는데요. 이사진을 보고 이게 무슨 왜성의 성벽이냐고 이야기 하실 분 계실것 같은데요. 그 결과는 5편에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공동우물터에서 본 돌들로 왜성에 사용한 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래 사진에 나오는 가정집과 3미터정도 떨어진 곳이라 왜성에 사용한 돌이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 위 우물터 바로 옆에 있는 가정집으로 상당히 긴 이시가키( いしがき[石垣])가 보입니다.그림지도의 C지점입니다. 
▼ 각도를 틀어서 사진을 찍었는데요. 일부 부분은 벌써 붕괴가 되고 있더군요.
▼ 공동우물터에서 조금 올라가자마자 본 왜성에 사용된 돌들이 있더군요.
▼ 이제 확실히 큰 규모의 돌들이 있습니다. 하부의 돌들이 서있는 곳에서 각도를 측정해보면 왜성에서 사용한 방법과 같은 각도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불사 담으로 이부분은 제가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왜성의 돌인지 아닌지요. 아무튼 여기까지만 올라갔는데요. 보이는 길을 따라 다음에 다시 올라가서 나머지 이시가키( いしがき[石垣]) 도 찾아봐야겠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웅천왜성의 경우 천수각과 혼마루 등 이었는데요. 그부분은 산 정상에 있습니다. 하지만 2편부터 보여주는 곳은 바다와 바로 인접한 곳으로 계단식 다랭이밭과 같이 이시가키( いしがき[石垣]) 를 만들어 놓아 조선군이 진입을 하는데 상당히 힘들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산정상까지 적어도 20개 이상의 이시가키( いしがき[石垣]) 를 만들어 놓은 것은 조선군과 조선수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웅포해전의 경우 조선수군이 웅포만을 들어올때 일본군들이 산에서 조총으로 발사를 했다라고 했을때 산정상에서 바다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그게 맞겠어라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이번에 직접가보니 바다와 인접한 이시가키( いしがき[石垣]) 에서 조총을 발사한다면 충분히 조선수군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겠더군요. 다음편에서는 일본인들이 조사하면서 빠진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에 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덧글

  • 유진우 2009/10/19 08:06 # 삭제

    웅천왜성에 대한 조사가 시급할 것 같습니다.
    다만 성곽진이 사유화되어있는 것이 안타깝네요
    저처럼 성곽진이 남아있는 왜성이 과연 얼마나 될 지 모르지만 잘만 보존처리한다면 좋을 것 같네요

    아무튼 저도 울산왜성과 서생포 왜성을 순시해야 하는데 시간이 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 팬저 2009/10/19 10:26 #

    일단은 진해시에서 지표조사라도 먼저해야 되는 것이 순서인 것 같습니다. 지표조사가 나오고 나서 부지를 매입하던지 발굴조사를 해야하는데 진해에는 워낙 많은 문화재가 있어서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 한라온 2021/03/11 11:04 #

    전국시대 때 곡륜의 수가 팍 늘어났다던데 웅천왜성에서 그 전형이 보이는군요...저기도 예상 외로 대규모네요.
    비슷한 예로 들어주신 것 말고도 다카토리(高取) 성이 있더군요. 여기는 폐성된 지 오래라 왜성과 비슷하게 이시가키만 남아 있다는 게 흠이지만...
    혼마루-니노마루-산노마루로 이어지는 본성의 북측과 서측에 각각 구곽(口郭)이 있고 제 눈에는 그 부분의 모양새가 저 웅천왜성의 것과 비슷해 보였습니다.
    다카토리성보다 더 웅천왜성의 형태에 가까운 곳은 오사카 구메다에 있는 가이부키산성(貝吹山城)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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