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죽도왜성 왜성(倭城)



죽도왜성은 부산시 강서구 죽림동 가락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일명 가락성 또는 죽도성이라고 합니다. 죽도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기 때문에 나온 이름인데 지금도 산전체가 대나무로 뒤덮혀 있습니다.또 조선시대 기준에 김해부에 성을 쌓았기때문에 김해왜성이라고 하고 김해죽도왜성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죽도왜성이 있는 위치는 낙동강 서쪽 지류 오른쪽 강변에 인접해 있어 선박을 정박시킬 수 있으며 나즈막한 야산(해발 35m의 낮은 구릉지)위에 세운 산성형식의 왜성입니다. 낙동강을 끼고 쌓은 5개의 왜성(죽도,구포,양산,마사,호포왜성)중 가장 바다와 가까이 있는 왜성입니다.

▼ 죽도왜성은 낙동강의 지류인 서낙동강을 끼고 있습니다.
▼ 가락동에서 덕포방향을 바라본 모습
▼ 죽도왜성이 있는 곳을 향하고 뒤돌아본 서낙동강의 모습으로 김해시의 모습과 섬인 중사도가 보입니다.
▼ 죽도왜성을 찾기위해서는 가락초등학교 사거리에서 보현사를 향해 걸어올라가면 됩니다. 보이는 보현사입구의 모습으로 보현사 옆에 있는 오솔길을 따라올라가야 죽도왜성이 있는 곳을 볼 수 있습니다.
▼ 보현사에서 조금 올라가자 왜성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 풀이 많이 우거져 있어서 왜성의 흔적인지 아닌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 옆으로 돌아가자 왜성의 형식을 알 수 있는 성곽의 기울기가 확실히 여기가 죽도왜성임을 알려줍니다.
▼ 성곽의 돌들은 대략 40센치 정도 되어 보이는 돌들이 축성되어있었는데 기존에 보던 왜성에 있던 돌보다 작아 보였습니다.
▼ 성곽의 축성방식은 잔돌끼움 방식으로 보였습니다.
▼ 옆으로 쭉이어져 있었는데 사진과 같이 풀이 너무 많이 우거져 있어서 알 수가 없더군요.
▼ 아래를 내려오자 군데 군데 무너져 내린 곳에 돌들이 있었습니다.
▼ 아래 사진은 제가 찍은 것은 아니고 인터넷에서 퍼온 것으로 죽도왜성의 성곽을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위 사진에서 제가 찍었던 곳인데 제가 갔을때 너무나 많은 풀때문에 자세히 알 수가 없었던 장소에서 찍었던 곳입니다. 이렇게 보니 죽도왜성의 성곽 부분을 알 수 있죠.
▼ 왜성의 성곽위로 올라오자 뜻하지 않는 진지가 보이더군요. 예비군의 훈련용으로 사용하는 것 같은데 죽도왜성의 성곽 바로위에 있어서 성곽의 수명을 재촉하지 않는지 걱정이 앞섭니다.
▼ 김해죽도왜성 안내문
▼ 혼마루 (本丸(ほんまる))로 보이는 곳으로 위 사진에 등장하는 죽도왜성 성곽위에 있었습니다. 보다시피 많은 묘지들이 있더군요. 제가 가본 왜성들에도 묘지가 많이 있더군요.
▼ 더이상 죽도왜성의 성곽의 흔적은 보이지 않더군요. 주위에 길이 있어서 내려가보았습니다.
▼ 한참을 돌아 다니다가 본 것으로 이것이 죽도왜성의 성곽부분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 옆으로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죽도라는 명칭을 상징하는 느낌을 주고 있으며 위 사진을 다른 방향에서 본 것입니다.
▼ 죽도초등학교방향에서 죽도왜성이 있는 곳을 바라본 것으로 아주 작은 야산에 죽도왜성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죽도왜성을 조사하였는데 죽도왜성 발굴조사서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죽도왜성의 경우 임진왜란 당시 선조실록 28년(1595년) 2월 10일(癸丑)에 부분적 으로 나타나고 있어 참고된다고 합니다. 강화회담 당시 명나라 진유격의 접반사로 동승한 이시발은 김해 죽도왜성에서 잠시 머물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본진이 있었던 웅천왜성까지 동승하면서 본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죽도 진영의 넓이는 평양(성) 정도 인데, 3면이 강에 임해 있으며, 본성으로 둘러쌓고 토성으로 거듭 쌓은 다음 안에 는 석성을 쌓았는데, 높고 웅장한 누각은 현란할 정도로 화려하다. 그리고 크고 작 은 토자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한 조각 빈 땅도 없는 것 같았다고 하였으며, 규 모는 만여 명의 군사를 수용할 만 한데, 왜성 아래는 크고 작은 선박들은 줄지어 매어 있었으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라는 내용을 통하여 당시 3면 이 강과 접하고 있었으며, 외곽은 주로 토루와 목책으로 구성되었고, 성 내부에는 석축시설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이시발의 기록으로 살펴본다면 지금에 있는 김해죽도왜성과 조선시대 당시의 죽도왜성의 경우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지도는 현재의 김해죽도왜성이 있는 곳이고 (빨간색으로 된 죽도왜성의 평면도는 제가 추측한 것으로 정확하지 않습니다. 정확도 1%정도로 저곳에 왜성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 아래 그림지도는 조선시대 당시 죽도왜성을 추측한 것입니다. 이시발의 이야기로는 3면이 강과 접하고 있다는 것을 기준으로 했지만 아래 지도가 정확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죽도왜성의 경우 낙동강의 지류로 3면이 강과 접함으로 조선육군의 접근을 막고자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조성된 왜성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웅천왜성, 안골왜성, 자성대왜성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3면을 바다나 강으로 육군의 접근을 막고 나머지 1면만 육지로 접근을 허락하여 적은 인원으로 조선육군의 접근을 막기위한 것이고 또 수로나 해로를 통해 일본군의 수송 및 전선의 이동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파란원으로 된 부분은 왜군들의 전선들이 정박을 했다고 하는 선착장으로 위치에 관하여는 정확하지 않으며 남측에 선착장이 있었다는 것을 기준으로 표시하였습니다.
▼ 죽도왜성의 경우 임진왜란 때 왜장인 니베시마가 쌓은 것으로 김해 북쪽지역에 내려 오는 병력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어의 요충지인 마사,호포왜성과 함께 김해부에 있었던 왜성입니다. 또 낙동강 지류를 이용하여 배로 다른 성들과 긴밀한 연락을 도모할 수 있으며 낙동강에 있는 구포,양산왜성과 연락을 주고 받았을 것입니다. 또 왜성축성을 통해 우리나라 도공들을 많이 잡아가서 일본으로 송환하였다고 합니다. 신한균씨의 "신의그릇"이라는 소설에 죽도왜성이 등장을 합니다. 
김해 죽도왜성의 경우 행정구역으로는 부산시에 속하지만 김해왜성 또는 김해죽도왜성으로 많이 알려진 곳이지만 왜성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자료가 있으면 김해죽도왜성 관련되어서 정확하게 알겠는데 자료를 입수하지 못하였네요.



덧글

  • 유진우 2009/12/26 19:38 # 삭제

    보다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아무래도 왜성이라는 반감 덕분에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기후 탓인지 몇몇 사진의 초점이 많이 흐트러진 걸로 봐서는 역시 외장 스트로보가 필요하기는 한 것 같네요 -_-;;
    580 EXⅡ의 후속 기종이 나오기는 해야할텐데 말이죠 ^^
  • 팬저 2009/12/28 13:42 #

    김해시에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00억원을 들여서 "낙동강 뱃길 임진왜란 격전지"를 복원,정비한다고 하더군요. 마사왜성을 비롯해 죽도왜성, 신답왜성, 분산성, 성화야봉수대라고 합니다. 김해죽도왜성의 경우 행정구역은 부산인데 김해시에서 정비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사진기의 경우 사진기가 좋지 못합니다. 이해 바랍니다.
  • 리버사랑 2010/05/07 12:04 # 삭제

    고생하신 흔적이 보입니다
  • 팬저 2010/05/07 18:52 #

    죽도왜성의 경우 행정구역은 부산시이지만 경남 김해시에서 복구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잘될까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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