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읍성_01 읍성(邑城)



제주도에 있는 읍성중 제주읍성의 문화지도가 제작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제주읍성에 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 제주전통문화연구소에서 제작하여 배포하는 제주읍성 문화지도의 모습으로 제주읍성에 관련된 내용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 광여도에서 본 제주읍성의 지도로 3대문이 있으며 위가 남측으로 그려졌습니다. 성안에는 동헌과 함께 각종 관아건물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천인 산지천이 성안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원에 있는 화성과 같이 성안으로 남지천이 흘러 수문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여지도에서 본 제주읍성의 모습으로 위 광여도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서문 옆에 객사가 있으며 객사의 방향은 남북으로 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지승지도에서 본 제주읍성의 모습으로 지승지도에서는 각종 관아 건물의 이름을 적어 놓아 복원을 하는데 좋은 자료일 것 같습니다. 지승지도에서는 3대문을 그려 놓았는데 2층 누각형식이며 개거식의 방식임을 알 수 있고 성벽의 경우 여장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 탐라순력도 중 제주조점의 그림으로 제주읍성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산지천위에 홍예로 된 수문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림중 서문의 경우 익성으로 되어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아래 그림지도를 보면 서문에는 익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일제강점기를 거치기전에 익성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현재 제주시내에 있는 제주읍성은 현재 삼도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최근에 제주목 관아건물을 복원하였습니다. 아래 그림지도를 보면 남문의 경우 동문과 달리 옹성이 둥근형식이 아닌 사각형으로 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의 익성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서문의 경우 옹성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성문에서 톡 튀어나온 것이 보이는데 이는 위 탐라순력도에서 나온 서문과 같이 익성의 흔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남측 성벽의 경우 북,동,서측과 달리 남문과 남수교측의 성벽의 경우 성안측으로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적을 성측으로 더 끌어들여 공격하기 위한 방식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주읍성의 경우 동서방향으로 시장이 조정되어져 있는데 이는 남문보다는 동서축으로 된 도로의 발달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남문옆에 보면 산지천이 보이는데 산지천의 남측에 남수교가 있습니다. 남수교가 성문보다 더 취약하기때문에 옹성의 구조를 뛰기위해 성벽을 성안으로 내려오게 하는 방식을 취하여 적이 성벽 가까이 접근을 할 경우 양측에서 공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제주읍성 남문을 확대해 본 모습으로 다른 읍성의 옹성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측 성벽을 따라서 쭉 들어오다가 옹성을 통과하기가 쉽지않을 것 같습니다.

제주읍성의 경우 둘레 6,120척, 높이 13척으로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1566년(명종 21) 목사 곽 흘이 성안에 우물이 없어서 백성들의 식수난과 변란 때의 물난리를 대비하여 성을 산지내 밖으로 물려 쌓고, 동서에 각 1개 문, 남쪽에는 2개문을 내었다고 합니다.(아무래도 남문과 함께 남문옆에 있는 남수교에 수문을 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1599년(선조 32)에 목사 성윤문이 더 늘려 쌓고, 남문을 하나 없애는 동시에 문마다 초루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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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유진우 2009/12/29 13:07 # 삭제

    일제가 성곽을 철거해 제주항 매립 골재로 써버리는 통에 아쉽게도 80여m만 남아있죠.

    이게 좀 안타깝습니다.
  • 팬저 2009/12/29 15:43 #

    인터넷검색해보니까 조금 거리가 있던데 그것은 복원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썰렁이` 2009/12/29 15:26 # 삭제

    위 지도에는 잘 알 수 없지만 남문부근은 급경사지역입니다. 남문밖에서 보면 성벽 높이가 3m 남짓할 정도로 낮지만 오현단쪽 벽은 그 두 배 정도로 높지요. 특히나 남수각 부근은 경사가 더 급하고 남수교는 절벽위에 놓인 다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검색해 보니 사진이 있더군요 blog.daum.net/ddanji35/17046107 남쪽에서 찍은 사진인데 정면에 보이는 소나무와 성벽의 잔해가 남수각이 있던 자리입니다. 맞은편 남수교 북쪽에서 보면 경사때문에 훨씬 더 높아보입니다. 위에 지도들에서 괜히 그 부분만 산으로 그려진게 아니죠.

    을묘왜변때 제주성은 산지천 서쪽에만 성곽이 있었는데 왜적이 동쪽(남수각 맞은편)을 점령하고 내려다보며 제주성을 공격하니 방어가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성 안의 움직임을 훤히 들여다 보는 상황에 병력도 천여명이나 되어서 절대적인 열세였다고 하는데 당시 제주목사인 김수문이 70여 명을 뽑아 성문을 열고 돌격해 들어가 격파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후 제주목관아 내에 망경루라는 이름의 누각을 세워 지휘용으로 사용하고, 곽흘목사때 아예 남수각 동편으로 성곽을 확장하게 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남수각 일대는 거의 협곡수준인데 그 위에 홍예문을 만들고 성벽을 연장한 모습이 남아있지 않은게 제일 아쉽습니다.
  • 팬저 2009/12/29 15:42 #

    저는 제주읍성을 가보지 않았서 어떻게 글을 적을까 고민하였는데 좋은 내용을 알려주시니 이해하기 편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남문의 경우 급경사라면 제가 이야기한 동서로 길을 내어 시장을 만든 것으로 봐서 동서길이 큰길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것이 맞네요. 아무튼 자주오셔서 유용한 정보주시기 바랍니다.
  • 썰렁이 2009/12/29 17:51 # 삭제

    많이 아는것은 없지만 그래도 제주도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남수교는 몇 년 전에야 놓은 다리입니다. 그 전에는 다리가 없었습니다. 통행문제 때문에 남수교를 놓고 남문사거리까지 제주성지 남쪽 공터를 이용해 도로를 연결했습니다. 그 전에는 중앙로나 삼성혈까지 돌아가야해서 불편했었거든요. 둘 다 통행량이 적은 도로도 아니고. 남수교 지나다보면 높이가 높아 위에서 내려다보면 꽤 아찔하죠.

    관덕정 앞이 지금은 도로와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어 좁지만 예전에는 넓은 광장이었다고 합니다. 광복이후 시위때 2만명인가 3만명의 군중이 몰린적도 있다고 하니 꽤 넓었을 겁니다. 조선시대때 관덕정 앞에서 활쏘고 병사들 훈련시켰다더군요. 그리고 위 위성사진에서 에메랄드호텔부근이 남관아가 있던 자리입니다. 남관아는 제주판관이 공무를 보던 자리입니다. 제주목관아를 북관아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제주목관아는 일제시대 그 위에 관공서를 지어서 제주시청이나 경찰서가 이전하면서 다시 복원이라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남관아는 사유지에 죄다 빌딩들이라 복원이 힘들죠.

    그러고보니 서원이 있던 자리인 오현단은 성 안에 있는데 제주향교는 성밖에 있네요. 위 위성사진에는 안나와 있는데 서문사거리 서쪽으로 제주중학교와 담장하나 사이에 두고 붙어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언덕이군요.
  • 팬저 2009/12/29 18:44 #

    향교의 경우 보통 성문밖에 있었습니다. 일부 성문안에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드물고 보통 성문 바깥에 있었습니다. 관아의 경우 일제강점기때 학교,관공서,경찰서 등을 지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제주읍성의 경우도 각종관아 건물지에 관공서를 세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가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말씀드리기 힘들겠지만 제주읍성 성문의 경우 타 읍성과 다르게 형성이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네요. 익성이나 옹성의 경우만 보아도 확실히 다릅니다. 이는 외부세력의 침입을 막기위한 여러방편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 제주도민을위해서 2010/07/16 17:09 # 삭제

    제주읍성을 복원을 위하여!
  • 팬저 2010/07/16 19:06 #

    복원이 된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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