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포진성_02 진성(鎭城)



2008년 5월에 합포진성에 관한 글을 올리고 잊어버렸는데 마산도시탐방대에서 합포진성에 관한 내용이 있기에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예전 합포진성의 글과 마산탐방대의 글을 읽다가 예전에 올린 합포진성의 성곽추정이 조금은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동측성곽의 경우 100미터 정도 차이가 나서 다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 같았고 또 유장근교수님의 글 중 일부 오류가 아닌가 생각해서 댓글로 달려다가 내용이 많아서 발제글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유장근교수님의 블로그 참조해보시면 조선시대 4거리라는 코너가 나오는데 이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어서 포스팅 하게 됩니다. 유장근교수가 제시한 1907년의 지적도와 현재의 지도를 대비하여 마산시를 소개한 것입니다.  아래에 조선시대 사거리라고 적힌 부분이 있는데요. (그림지도의 경우 유장근교수님의 글에서 가져왔음으로 저작권은 유장근교수님)
▼ 위 그림지도에도 합포진성 성곽추정도라는 것이 나오는데 2008년에 올린 합포진성 성곽추정도에 다음지도를 대비하여 다시 수정하였습니다. 예전 구글지도는 조금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성곽을 추정하기가 어려웠는데 다음지도를 보니 확실히 알 수가 있더군요. 합포진성의 경우 현재 다 허물어져버려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습니다. 모두 추정을 하여 하다보니 제가 적는 글 또한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정확한 것은 항상 발굴조사.. 돈의 압박이..)
▼ 먼저 진성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진보성(營鎭堡城)각도의 절도사나 절제사, 혹은 첨절제사가 주재하는 영진(營鎭)이나 그 아래에 소속된 보(堡)에 축성하는 성을 가르키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경상좌수영,경상우수영,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경상우병영, 경상좌병영, 전라병영 등에서 사용하는 영은 절도사나 절제사가 근무하는 곳으로 각도의 수군이나 육군의 우두머리가 있는 곳이고 그곳에 있는 성곽을 영성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진성의 경우 첨절제사가 근무하는 성곽을 진성리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합포진성의 경우 첨절제사가 근무하던 곳이었다고 봐야겠습니다. 남해안에 있는 진성의 경우 성곽의 모양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조선후기 부산진성을 제외한 나머지 거제가배량진성, 거제옥포진성, 고성소을비포진성, 거제구조라진성, 거제지세포진성,거제영등포진성을 보면 전체적으로 원형에 가까운 성곽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에 제시한 합포진성의 경우도 원형에 가까운 진성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합포진성1편을 보면 이해하기가 좋을 것입니다. 합포진성1편 보기
▼ 그러면 합포진성을 추정하는 부분은 박희윤씨의 "개항이전 마산시 도시형성 및 변화과정에 관한 고찰"의 논문에서 나오는 부분입니다. 아래 그림지도를 보면 학문당 뒷 골목부분과 모서리가 돌아가는 부분위의 골목의 크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파란색 원으로 표시)
▼ 유장근교수님이 제시한 조선시대 4거리라는 곳으로 구, 경남은행 본점 뒤 골목인데요. 나중에 다시 설명하기로 하고 지금은 성곽부분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파란색원이 있는 골목을 보면 골목이 직선이 아니고 조금 곡선으로 위쪽이 들어가는 형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렇게 골목이 위로 올라가는 형태는 부산에 있는 부산진성(일명 자성대)부분에서도 나타나는데 부산진성의 경우 바닷물이 올라오는 부분 때문에 성곽이 자연스럽게 저런 방식으로 축성을 했을 것입니다.  
▼ 1900년대 부산진성의 남문 강화도 사진으로 보시면 남문과 바다와 아주 가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다물이 가까이 들어왔을 경우를 생각해서 축성하였죠. 따라서 합포진성의 경우도 바다와 가까이 있었다면 이런 부분을 고려 할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위 1907년 지적도를 기준으로 보면 성곽이 위로 올라가는 축성방법은 맞지 않죠. 하지만 1907년도 지적도와 2007년 지적도를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합포진성이 축성한 고려말 기준으로 봤을때 600년이 지난 후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진성을 축성할때 가까운 곳에 전선을 두는 방식인데 1907년 지적도를 기준으로 보면 바다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 성곽방향이 위로 올라간 것에 관하여는 저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래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합포진성은 어떻했을까요? 합포진성의 경우 평지성이자만 북측이 조금 높은 곳입니다. 성문은 3개이고 원형으로 된 성곽이 둘러싸진 곳입니다. 동서문의 거리는 135미터
▼ 북측성곽에서 남문까지의 거리는 174미터내외로 상당히 작은 진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제 유장근교수님이 제시한 조선시대 4거리가 오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유장근교수님이 제시한 조선시대 4거리의 경우 남동측 성곽이 만나는 부분입니다. 성곽이 지나가는 곳이 사거리라는 부분은 선뜻 이해하기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골목의 경우 분명 4거리가 맞습니다. 현재의 골목의 기준으로 조선시대 4거리였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더 더욱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의 경우 성곽을 중심으로 가장 큰 길이 나는데 성곽(읍성,영성,진성)의 크기, 위치,모양, 통행량에 따라 길이 나는데 +사거리 T자형 3거리가 나는데 합포진성의 경우 T자형 3거리 였을 것입니다.  
▼ 박희윤씨의 "개항이전 마산시 도시형성 및 변화과정에 관한 고찰"의 논문에 있는 합포진성 성곽추정도로 마산창 바로 위에 있는 남문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입니다. 물론 동에서 서로 이어지는 길 보다는 작습니다만. 이를 근거로 보았을때 합포진성의 경우 T자형 3거리였을 가망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읍성,영성,진성의 경우 남문이 가장 중심인데 합포진성의 경우 동서축이 중심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이 부분은 밑에서 설명합니다.) 남문바로 앞에 조창이 있습니다. 행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주 중요함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곳이죠. 조창에서 바로 관아까지 연결하는 도로가 있는데 굳이 성곽으로 막혀있는 길이 조선시대 4거리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 또한 유장근교수님이 제시한 그 길은 성곽이 각이져서 남측에서 동측으로 연결하는 성곽이 지나가는 길입니다. 보통 성곽에서 그곳에는 치성과 같은 개념의 각루가 들어서는 곳입니다. (각루에서 어느정도 간격을 두어 해자를 두르는데 합포진성에 해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해자까지의 거리와 해자의 거리를 생각하면 성곽에서 최소한 10여미터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각루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현재는 알 수 없지만 각루가 있었다면 일반인들이 접근 할 수 가 없는 곳입니다. 각루가 없었다고 해도 해자가 있었다면 더 더욱 멀리있어야 됩니다. (아래 사진은 진해웅천읍성의 모습으로 남측성곽과 동측성곽이 만나는 부분에 돌출된 부분이 보이는데 이부분이 각루입니다.)
▼ 현재 웅천읍성은 발굴 조사중인데 동남측 각루부분입니다. 많이 돌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합포진성으로 형성이 된 지금의 창동은 언제 성곽이 무너졌는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1437년 합포진성이 제포진(현재 진해시 웅천)으로 옮겨가면서 폐성이 되었는데 그후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성곽이 무너지고 없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집들이 들어서고 골목이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었다면 유장근교수님이 이야기한 부분도 일정부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에 큰길이 20여미터 근처에 있는데 골목길이 사거리로서의 기능을 했을까? 하는데에는 의문이 있습니다.


▼ 이성린(李聖麟), ‘사로승구도’(사路勝區圖), 1748년경의 부산진성의 모습으로 부산진성의 경우 남문보다 서문이 주출입문이었습니다. 서문을 중심으로 장시가 형성된 것이 그림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위 1907년 지적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합포진성 또한 동서축으로 된 길이 중심이고 (남북으로 된 길 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바다와 인접한 남문보다 동서축이 다른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때문에 더 더욱 그렇습니다.) 고려시대때 회원현의 중심지인 회원현성이 서문과 가까이 있습니다. 따라서 서문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합포진성안에 워낙 작아서 시장을 만들 수는 없고) 서문주위에 장이 형성되었다고 일제시대와 해방을 거쳐서 지금의 부림시장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1907년 지적도에 나타난 마산지역으로 바닷가에 굴강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굴강에 관하여 3차탐방에 글이 올라와있는데 동굴강과 서굴강이 있으며 서굴강의 경우 조창전용 굴강이 아니었을까?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 아래 사진은 진해 안골포에 있는 굴강의 모습입니다. 안골포의 굴강의 경우 안골진성에 전선을 두고 수리를 하던 곳입니다. 진해말고도 여수에도 선소(굴강)가 있는데 전라좌수영의 전선을 수리할 수 있게 한 곳이죠.
▼ 1872년 지방지에 실린 안골진의 모습으로 안골진앞에 전선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또한 각종 관아의 모습도 실려져 있습니다.
▼ 고려시대때 몽고군과 고려군이 연합하여 일본을 침략을 하는데 그곳이 바로 마산입니다. 수많은 병사들을 숙영시키고 또 수많은 배를 만들고 정박을 시키려고 하면 굴강과 같은 것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고 이는 합포진성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졌을 가망성이 많습니다. 또한 조선초 세종1년(1419년) 대마도 정벌때 마산에서 출발한 조선군이 사용했던 곳도 바로 위 지도에 있는 동,서굴강일 가망성이 많습니다. 1만7000명의 병사로 이루어진 대마도 정발대가 배로 갔다면 적어도 100여척(판옥선 120명 기준으로) 이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100여척이 정박하려면 아무래도 큰 포구나 굴강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로 위에 있는 동서굴강의 경우 합포진성을 위해서 사용되었을 가망성이 많으며 합포진성이 폐성이 되면서 조창과 민간용의 굴강으로 전락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아래에 나올 지도들은 조선시대때 제작된 창원부지도들로 창원읍성에서 바닷가방향을 바라보면 지금의 어시장과 창동일대에 선소와 조창의 모습이 보입니다.
▼ 여지도에서 본 창원부의 모습으로 바닷가에 창과 선소의 모습이 보입니다. 다만 선소와 월영대가 상당히 가깝네요. 여지도에서 중요하게 나타난 것이 있는데 바로 향교입니다. 향교의 경우 창원읍성과 상당히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지금의 창원향교의 경우 창원읍성 바로 위에 있는데 반해 거리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조선초기 경상우병영성이 창원읍성의 기능을 함께하면서 향교를 세웠다가 지금 창원향교자리로 옮겨 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원향교 원래의 자리를 찾는 것도 흥미로울 것으로 보입니다.
▼ 지승지도에서 본 창원부의 모습입니다. 위 여지도의 필사본으로 추정되며 선소와 창의 모습이 보입니다. 창과 선소의 모습이 보이지만 합포진성에 관한 부분은 나타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오래전에 폐성이되어 그리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구 병영이라고 보이는 합포성지의 모습은 보이지만 합포진성, 회원현성, 이산성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봉화산 봉수대와 진동면에 있던 가을포봉수대의 모습은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만에 합포진성에 관한 글을 적습니다. 다만 필자가 적은 글 중 합포진성에 관한 글은 박희윤씨의 "개항이전 마산시 도시형성 및 변화과정에 관한 고찰"의 논문을 기준으로 작성하였기 때문에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박희윤씨의 글이 문제가 있느냐하는 것이 아니라 합포진성에 관한 정확한 발굴이나 지표조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것입니다. 다만 박희윤씨의 논문을 기준으로 합포진성이 맞다면 "유장근교수님이 주장한 문제의 장소는 조선시대 사거리가 아닐 가망성이 높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서도 이야기 했던 것 처럼 합포진성이 폐성이 있고나서 이루어진 건축물과 골목의 형성은 저로서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합포진성 이후에 조선시대 4거리였다라고 이야기하면 뭐라 딱히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합포진성의 이야기가 있고 합포진성 성곽추정도가 그림지도에 있어서 그것을 기준으로 조선시대 사거리가 아닐 가망성이 많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제가 올린 합포진성에 관하여 잃어보시고 틀린내용이나 지적하실 부분들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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