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포진성_03 진성(鎭城)



1907년 마산시 지적도의 상황으로 합포진성과 조창 그리고 항만에 관하여 알아 볼 수 있는 지적도입니다.
이 지적도를 기준으로 박희윤씨의 "개항이전 마산시 도시형성 및 변화과정에 관한 고찰"의 논문이 나오는데요.여기서 3개의 성문과 성곽 추정도가 나오고 서문의 경우 옹성의 흔적이 보이고 남문의 경우 바로 조창 옆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서축의 길에서 남측의 길이 올라오는 부분에 상당히 큰 규모의 대지가 보이는데 이를 근거로 박희윤씨는 관아건물지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위 두개의 지적도와 박희윤씨의 "개항이전 마산시 도시형성 및 변화과정에 관한 고찰"의 논문을 근거로 현재의 지도에 합포진성의 성곽추정도를 그리고 관아 건물추정을 한 것입니다. 남문에서 올라왔을 경우 객사를 좌측에 동헌을 우측에 두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동측을 동헌 좌측을 객사로 두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남문에서 관아지로 올라왔을때 좌동헌 우객사 또는 좌객사 우동헌형식인데 합포진성의 경우 좌객사 우동헌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근거는 동헌이라는 말에서 나오는 것처럼 동측을 나타냄으로 기본적인 형식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고 박희윤씨 논문에 "객사터로 추정할 수 있는 곳이 구. 시민극장자리 말고는 큰 규모의 대지가 없다."라는 말로 보아 그럴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지금 창동에 있는 농협건물이 동헌건물로 추정이 되고 객사의 경우 롯데리아 위 구. 시민극장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래 조감도는 웅천읍성 조감도로 웅천읍성의 경우 2009년까지 사업비 150억원을 들여서 복원을 한다고 하였는데 사정이 생겨서 복원시점이 늦쳐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행인것은 경상남도와 진해시에서 2010년에도 복원사업비가 반영이 되어 2010년에도 복원이 진행 될 것 같습니다.
웅천읍성의 경우 남문을 기준으로 보면 좌동헌 우객사입니다. 원래 동헌보다 객사가 더 높고 크고 화려하게 건축물을 꾸미는데 합포진성의 경우 북측이 남측보다 지대가 높은편입니다. 안길정씨의 저서 "관아를 통해서 본 조선시대 생활사"를 보면 동헌보다 더 높은 곳에 객사를 짓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동헌 뒤에 객사가 위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구.시민극장터가 경매에 올라왔다고 한다. 개인이나 단체가 구입을 한다면 아무래도 터를 허물고 건물을 증축할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이나 사기업의 땅이겠지만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서 합포진성에 관한 의문을 풀었으면 합니다.

합포진성을 관리하는 수문장이 수군첨절제사였는데 수군첨절세사의 경우 종3품입니다. 처음 듣는분을 위해 수군첨절세사의 계급이 어느정도 위치인지 조선시대 수군의 계급에 관하여 알아봅니다.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 종2품, 경상,전라,충청도 수군 총사령관
수군절도사(水軍節都使) : 정3품, 약칭은 수사(水使), 경기, 충청, 전라(좌,우), 경상(좌,우) 전라좌수사는 통제사가 겸직함, 통제사영이 통영에 있을때는 경상우수사 겸직
도호부사(都護府使) : 종3품, 약칭은 부사(府使), 행정과 군사를 겸임
우후(虞候) : 종3품, 절도사 직할의 장교
첨절제사(僉節制使) : 종3품, 약칭은 첨사(僉使), 주요 군사요충지에 진을 둠
만호(萬戶) : 종4품, 주요 항구 등에 둠
현령(縣令) : 종5품, 행정과 군사를 겸임
절제도위(節制都尉) : 종6품, 절도사 직할의 장교
현감(縣監) : 종6품, 행정과 군사를 겸임
권관(權管) : 종9품, 하급장교
별장(別將) : 종9품, 하급장교

첨절제사의 경우 만호보다 높은 직책으로 절도사 밑에 있는 종3품으로 합포진성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 중 하나인 객사부지로 추정이 되는 구.시민극장터를 일부라도 발굴조사가 있었으면 하고 상권의 경우 창동이 예전 창동보다 못하다는 부분을 찾을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한데 바로 합포진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합포진성을 이용하는 여러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로 승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지만 아직 창동이 합포진성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마산,창원,진해의 사람들이 얼마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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