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독산성은 한국성(城)이다. 산성(山城)



오산 독산성이 왜성이라는 블로그 내용을 보고 의아하기도 하여 조금 조사를 해보았는데 왜성이라는 부분이 아닌 것으로 생각이 들어 포스팅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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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오산독산성이 왜성이라는 내용을 꼭 읽어보시고 아래 포스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내륙에 있는 오산 독산성이 왜성이라면 한일양국 고고학적으로 대단한 발견이며 왜성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남해안 해안에 있는 왜성이 내륙 깊숙히 발견이 되었다면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 현재 남해안에 남아있는 왜성들을 보면 아래 그림지도와 같습니다. 왜성을 보면 울산에서 시작하여 순천까지 연결이 되어있는데 부산,김해,진해,거제에 집중적으로 배치가 되어있고 고성,사천,남해,순천을 가면서 1개씩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기준으로 보면 순천에 1개, 남해 1개,사천 1개, 고성1개, 거제 4개, 창원 1개, 웅천 6개, 김해 3개, 양산 2개, 동래 5개, 기장 2개, 울산 2개입니다. 현재의 지역으로 보면 부산 10개, 울산 2개, 양산 2개, 김해 2개, 진해 4개, 마산1개, 거제 4개, 고성 1개, 사천 1개, 남해 1개, 순천 1개입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봐서 부산,진해,거제,양산,김해에 있는 왜성이 현재 남아있는 왜성의 75%입니다. 부산을 중심으로 김해,진해,거제,울산에 집중적으로 왜성을 축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그럼 오산 독산성이 왜 왜성이 아닌가라는 부분에 관하여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입지론입니다. 독산성이 있는 오산은 조선시대 수원부에 있었는데 바닷길인 평택만에서 독산성까지 수로를 이용하였다면 60여 킬로미터가 나옵니다. 왜군들이 이순신함대가 있는 서해안을 이용하여 평택까지 오는 것도 힘이 들고 온다고 해도 너무나 많은 거리입니다. 왜? 필자가 수로를 이야기할까요? 이는 한반도에 축성된 왜성의 경우 수로를 이용하여 물자나 병력을 실어 날랐기 때문입니다. 위 왜성의 분포를 보면 모두 하나같이 해로나 수로를 끼고 조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낙동강을 낀 수로를 이용한 구포,호포,양산,마사,신답,죽림왜성이고 나머지 모두 바다를 끼고 축성하였습니다. 낙동강을 낀 구포,호포,양산,마사,신답,죽림왜성의 경우 낙동강의 넓은 뱃길을 이용하였는데 임진왜란 당시의 낙동강과 지금의 낙동강과 비교하면 안되겠지만 그래도 낙동강은 강입니다.  
▼ 구포왜성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모습입니다. 조선시대 낙동강은 지금의 낙동강보다 강폭이 더 넓을 것으로 보입니다.
▼ 죽림왜성(죽도왜성)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지류 모습으로 충분히 왜선들이 다닐 수 있었던 강의 폭입니다.
▼ 밀양 작원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모습으로 멀리 보이는 다리 부근을 지나면 마사왜성이 있습니다. 마사왜성의 경우 왜군이 축성한 왜성중에 가장 내륙 깊이있는 왜성입니다. 하지만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 처럼 넓은 낙동강을 이용하여 병력과 물자를 나를 수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독산성 옆에 있는 황구지천의 경우 폭이 좁아서 왜선들이 다니기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영 못다니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가 황구지천까지 가서 사진을 찍었던 것이 없어서 황구지천의 모습을 링크시켜 봅니다.
황구지천의 모습보기  
위 낙동강과 비교한다면 황구지천의 경우 왜선들이 물자나 병력을 이동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 두번째가 왜성이라면 왜성 특유의 성곽이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고지도중 광여도를 보면 수원부에 독산성이 있는데 아주 간단하게 독산성을 표현하였습니다.  
▼ 1872년 지방지 수원부에서 본 독산성으로 수원화성 밑에 둥글게 그려져 있는데 산성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있는 성곽은 1982년 새한문화건설연구소에서 지표조사를 하고 성벽을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독산성의 기록을 보겠습니다. 1831년에 편찬된 화성지에 기록된 독산성의 관청 건물을 보면 운주당,삼문,진남루,아전청,장교청,관창,사창,군기고,무고,서고,동고,보별군이 있었다고 합니다. 근무요원은 부장1명,유진장1명,궁전감관1명,각창고감관3명,별군관6명,성문장4명,초관5명,아전21명,통인10명,사령7명,관노7명,관비2명,순뢰7명,성문졸4명,산직5명이 있었고 수성군 2,226명, 납미군 1,941명이 있었으며 성내에 126호, 성외 인근에 127호 가 거주하였다고 하니 적지 않은 병사와 주민들이 살았네요.
▼ 다음 지도에서 본 독산성의 성곽 평면도입니다. 독산성의 경우 산을 낀 테뫼식 산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문의 위치는 틀릴 수 있습니다. 제가 갔다 오지 못해서입니다.) 
아래 그림은 우리나라의 진성과 산성 그리고 왜성의 평면도로 보시면 한눈에 우리나라의 성곽과 왜성의 성곽의 차이점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진성과 읍성의 경우 성문은 통행이 많은 곳에 성문을 조성하는 것에 비해 산성의 경우 통행량보다는 방어에 유리하기 위해 성문을 조성하는 것이 틀립니다. (진성중 남문의 경우 포구와 인접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보시면 진성의 경우 원형에 가까운 타원형이나 원형형태로 축성한 것에 비해 산성의 경우 산의 형태에 따라 성곽이 자연스럽게 축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원형이나 타원형이 아닌 불규칙한 형태로 조성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영변읍성의 경우도 산성입니다.) 그에 비해 왜성의 경우 각이지고 2중, 3중으로 성곽을 조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 조선에도 일본왜성의 장점을 이용하는 방식의 성곽을 축성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행되지는 않고 서생포왜성의 자리에 서생포진을 세워 왜성에 조선수군이 사용하였고 부산진성의 경우 자성대왜성에 왜성의 성곽을 두고 조선의 성문을 다는 방식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부산진성은 왜성의 방식을 이용한 성곽이었다 필자글 보기.

▼ 아래 그림에 독산성의 평면도를 포함시켜 보았는데요. 보시기에 왜성의 방식인지 조선성곽의 방식인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조선시대 축성한 부산의 금정산성의 사진으로 전형적인 한국의 산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연의 형태를 이용하여 성곽이 곡선을 이루어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왜성의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서생포왜성의 모습
▼ 세번째가 위치입니다. 첫번째 이야기한 수로이용의 방법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방어적 측면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독산성의 위치를 보시면 서측의 황구지천을 제외하고 나머지 3면이 모두 육지와 연결이 되어있고 산성의 위치로 봐서는 4면을 모두 방어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 웅천왜성의 방어를 보면 3면이 바다이고 웅천읍성에서 들어오는 육로만 있습니다. 그래서 육로측을 방어하기 위해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축성합니다. 이렇게 3면을 바다로 한 이유는 아무래도 방어를 고려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고 자신들은 해상으로 도주를 하기위해서 그렇게 축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순천왜성에서 왜군들이 완전히 철수를 할 때에도 이순신함대가 바다를 막아도 결국 바다를 통해 일본으로 넘어가게되는 것만 봐서도 그러한 이유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안골왜성의 방어 또한 웅천왜성의 방어와 비슷하게 3면의 바다를 끼고 있으며 북측의 육로만 비워두어 놓았습니다. 조선 육군이 공격을 한다면 북측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안됩니다. 안골왜성 또한 북측을 방어하기 위해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축성합니다.
그에 비해 독산성의 경우 방어하기가 너무 많고 내륙이라 왜군들이 지원하기가 곤란합니다. 방어도 힘이들고 왜군들이 지원도 곤란한 그곳에 왜성을 세운다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 네번째로는 본성을 방어하기 위한 지성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진해시에 있는 웅천왜성과 안골왜성인데 아주 가까이 있지만 왜성의 방식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안골왜성의 경우 안골왜성안에 본성과 지성이 있어서 방어를 할 경우 서로 도와 줄 수 있는 것에 비해 웅천왜성의 경우 웅천왜성이 본성이고 자마왜성과 명동왜성이 지성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아래 그림지도를 보면(일부러 남측을 위로 가게하고  북측을 아래로 하였습니다.) 왜성의 경우 서로 인근에 축성하여 한개의 왜성이 공격을 받을 경우 서로 지원할 수 있게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덕도의 경우 눌차왜성과 가덕왜성이 그렇고 죽도왜성의 경우 인근에 있는 신답왜성이 지성으로 사용하였고 거제에 있는 장문포,송진포,영등포왜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 안골왜성의 지성
▼ 안골왜성의 덴슈가쿠(천수각(天守閣))
▼ 안골왜성의 또 다른 지성
그에 비해 독산성이 왜성이라면 혼자 내륙 깊게 있게 됩니다. 만약 왜성이라면 이웃에 지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왜성이 또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니라면 안골왜성과 같이 지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성곽이 조성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섯번째로 왜성의 특징인 산노마루(삼환三丸),이노마루,혼마루,덴슈가쿠(천수각(天守閣)) 등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부분들이 남아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산시에서 2010년부터 발굴조사를 본격적으로 하니까 정확한 것은 발굴조사 후 알게되겠지만 그동안 몇번 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했는데 조사시 삼국시대때의 물건들이 발견이 되었다고 합니다.


▼ 고성혁님이 독산성이 왜성이라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가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입니다. 왜성에는 우리나라의 성곽에서 방어기능을 담당하는 옹성구조가 없기때문에 L자로 꺽히게 만들어 옹성의 역할과 비슷하면서 방어에 유리하게 만든 것을 말하는 것을 보고 왜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북문을 들어오자마자 ㄱ자로 꺽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부분이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인데 고성혁님이 주장하는 왜성의 근거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성문도 상당히 작고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라는 부분의 폭도 상당히 작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고성혁님)
▼ 고성혁님이 주장한 마스가타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가 현재 한국내에 남아있는 것은 없을까요? 현재 남해안 지역에 남아있는 왜성 대부분에 이런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가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안골왜성의 본성의 성문으로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부분입니다. 빛이 역광이라 그부분을 잘 찍지 못했습니다.
▼ 또 다른 하나가 안골왜성의 지성중 하나인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부분으로 ㄱ자로 꺽혀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웅천왜성의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부분으로 여기 또한 ㄴ자로 되어져 있습니다.
▼ 웅천왜성 정문을 지나고 산노마루의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입니다.
▼ 구포왜성의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중 하나입니다. 여기 또한 ㄴ자로 되어져 있습니다.
▼ 구포왜성의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로 올라오면 바로 혼마루입니다.
▼ 위 사진에서 조금 내려가서 찍은 사진으로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의 경우 ㄷ자로 되어져 있습니다.
▼ 서생포왜성에서 본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입니다. 올라오자 마자 우측으로 길을 꺽어야 합니다.
▼ 위 사진을 올라와서 찍은 사진입니다.
▼ 위 사진들을 더 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 서생포왜성의 성문이 있는 곳으로 여기에도 ㄱ자로 되어있는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가 있습니다.
▼ 사천 선진리왜성 또는 사천왜성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여기는 최근에 복원을 한 것입니다. 사천왜성 정문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이는 방향으로 가서 우측으로 꺽여 들어가야 합니다.
▼ 사천왜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아래 사진과 같이 돌아서 공격을 해야합니다.
▼ 돌아서 공격을 하면 성문과 함께 양측에서 적을 공격하는 구조입니다.
▼ 사천왜성(사천선진리왜성)의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를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이상과 같이 국내에 남아있는 왜성의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를 살펴보았는데요. 공통점이 있는데 성문이 넓고 성벽의 경우 왜성에서 볼 수 있는 성벽 기울기가 70도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독산성의 경우 성벽의 기울기가 90도에 가깝고 성문의 경우도 상당히 작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러면 왜성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산성이라면 이와 비슷한 경우는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공주 공산성의 모습입니다. 독산성은 백제시대때 축성한 것으로 공산성이 처음 축성한 시대와 비슷합니다. 성문의 경우 상당히 폭이 좁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누각이 없다면 위 공산성의 성문과 비슷하게 보입니다.(저는 원래 산을 타기 싫어서 산성을 가지 않아서 아래에 나올 사진들은 모두 산성을 전문적으로 현장답사 가시는 배용순님의 사진을 빌려왔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강원도 인제 한계산성의 성문으로 신라시대때 축성하였다고 합니다. 성벽의 높이를 제외하면 위 사진에 나오는 독산성과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경북 칠곡 가산산성의 서문의 모습으로 가산산성의 경우 조선시대때 축성한 산성입니다. 서문안을 보면 성문을 단 흔적이 보입니다. (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경북 칠곡 가산산성의  암문의 모습입니다. 성안에서 밖을 보고 찍은 사진으로 암문에서 들어오면 직선이 아닌 ㄴ자로 길이 꺽여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이제 독산성의 모습으로 모든 사진은 배용순님이 찍은 것입니다. 배용순님의 이야기로는 서암문이라고 하는데 동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의 누각을 세운 흔적이 보여서 동문이 아닌가 필자는 생각합니다.(하지만 가보지를 않아서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고 가보신분 들의 이야기로 하겠습니다.) 여기를 보면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가 보이지 않습니다. 성문을 벗어나면 산세가 가파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위 사진의 성문의 모습으로 폭이 상당히 작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독산성의 남문으로 남문의 경우 우리나라 성곽에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가 보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남문의 성문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사진(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남문의 폭을 보면 장정 두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독산성의 서문으로 서문의 경우 고성혁님이 이야기하는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가 보이지 않습니다. 왜성이었다면 한곳만 마스가타 (ますがた)가 있을리가 없는데 말이죠. (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독산성은 아니지만 하동읍성의 경우를 보면 우리나라 읍성에서도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와 비슷한 기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것은 하동읍성 남문지 발굴때의 모습입니다. 발굴조사의 경우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했는데요. 빨강색으로 된 것이 출입문의 추정도입니다. 보통 옹성을 지나고 성문을 지나면 직선상으로 들어가는 것에 비해 또 다른 체성이 있어서 꺽여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우리나라 읍성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보았지만 왜성의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의 방법과 비슷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경상문화재연구원에 있습니다.
▼ 고성혁님이 말하는 북문으로 여기의 경우 장정이 두명이 지나기도 힘이들고 말을 타고 지나가려면 상당히 힘이 들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읍성과 달리 산성의 경우 방어에 유리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성문이 작을 수 있습니다. 읍성의 경우 성문의 경우 왕래를 고려하여 평거식이나 홍예식이 많은 것에 비해 산성의 경우 평거식의 성문이 많은 이유도 사람의 왕래보다 방어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이곳에 성문을 단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문의 흔적이 바로 한국성(城)의 방식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성의 성문의 경우 성문이 두개나 하나인데 성문이 작아도 성문의 구조는 크게 되어있습니다. 성문의 폭의 경우도 아래 사진의 성문보다 더 큰 규모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인터넷에서 오사카성이나 히메지성의 성문을 검색해보면 독산성의 성문보다 상당히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사카성 성문보기 히메지성 성문 보기, 일본성의 성문방식 보기(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고성소을비포진성의 성문으로 홍예식의 방식을 제외하면 성문의 폭이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 히메지성의 모형으로 성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성문이 나오는데 히메지성과 같은 방법의 성문이 아니라 독산성 북문의 경우 하나만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에 있는 성문의 방식입니다.
▼ 독산성의 치성으로 고성혁님이 이 치성의 기울기를 보고 왜성의 흔적을 찾는데 제가 볼때 조금 무리인 것 같습니다. 치성의 경우 이와는 틀리지만 왜성과 같은 방법의 기울기가 있습니다.(사진출처 배용순님 블로그)
▼ 아래 사진의 경우 북한에 있는 경성읍성의 성곽기울기와 치성의 모습으로 위 독산성의 치성보다 더 왜성의 방법과 비슷하지만 조선성(城)입니다.
이상과 같이 상당한 스크롤을 발생시키면서 독산성이 왜성이 아니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서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 했던 것과 같이 독산성이 왜성이었다면 한일고고학계의 커다란 폭풍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왜성의 경우 남해안을 중심으로 축성하였다고 알고 있는데 중부지역 내륙에 들어섰다면 모든 것이 틀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위치조건이나 주위에 또 다른 왜성이 없는 점이나 왜성의 특징인 부분이 보이지 않아서 국내성이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만약에 조선시대 당시 왜성으로 축성을 하였다면 여러가지 실록에 남아있거나 고지도에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는 후세에 보적사에서 길을 만들었거나 일제시대때 세마대를 파괴하면서 암문주위만 그런 구조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위 그림지도의 경우 해동지도인데 웅천읍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아래측에 보면 왜성이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바로 웅천왜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것과 같이 독산성의 경우 문헌에 기록이 되어있거나 왜성의 특징들이 있어야 왜성으로 인정을 받을 것 같고요. 어느 한부분을 보고 왜성이라고 판단하기는 아닌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콘텐츠 진흥원에서 운영하는 한국의 산성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한국내 왜성의 특징 살펴보기
한국내 산성과 비교보기
또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한민족전투문화원형 홈페이지중 왜성의 성문의 방식을 봐도 현재 독산성의 성문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왜성의 성문 방식보기 

독산성의 모형도라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우리나라 산성의 형태가 있으며 사방에서 공격하는 왜군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방어적으로봐서 조금은 힘든 것이 독산성인데 권율장군의 기지로 벗어나는 부분은 잘 아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덧글

  • 사람사랑 2010/09/26 21:30 # 삭제

    임란당시 왜성이 만들어진 이유는
    연패하는 왜의 수군에게 토요토미가
    수군을 배를 타고 나가 싸우지 말고 조선수군이 공격하거나 이동할만한 곳을 골라 육지에서 공격할수있는 왜성을 쌓토록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원균이 당한것도 수군과 싸우다가 당한것 보다 왜성에서 공격당한게 더 많은 타격을 입없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현재 경상남도 해안지역에서 왜성을 만들었지 다른 내륙지역에서 왜성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 팬저 2010/09/27 16:26 #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 d토끼삼촌b 2011/03/14 16:42 # 삭제

    와~대단한 포스트입니다..평소에 팬저님 블로그 이래저래 들어오게 되었는데..

    왜성 포스트는 정말 잼있게 읽었습니다. 서생포 왜성은 일본인들이 많이 갑니다. 가서 뭐하는징~

    그리고 작원관지 몇가지 내용은 퍼가겠습니다..^^;;
  • 팬저 2011/03/14 20:59 #

    서생포왜성의 경우 현재 한일 양국을 합쳐서 16세기 성곽중 제일 잘 남아있기때문에 오고 있으며 울산시에서 서생포왜성에 관한 세일즈를 하는 이유도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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