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현 읍지에대한 아쉬움 읍성(邑城)



현재 진해현의 동헌은 경남 마산시 진동면사무소에 있다. 

문화재청이나 마산시시사를 보면 "조선 순조 32년(1832년) 진해 현감 이영모가 세운 관아 건물로 지방 업무를 보던 곳이다. 중심건물인 동헌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숙소였던 객사, 오른쪽에는 군령을 출납하는 사령청, 앞쪽에는 말을 사육하는 마방과 지방의 형사를 담당하는 형방소 등의 부속 건물이 같이 있다. 동헌은 앞면 7칸, 옆면 3칸의 ㅡ자형 건물이며, 객사는 앞면 11칸, 옆면 3칸의 건물이었으나, 1985년 불이나 객사는 건물 기단만이 남아있고, 동헌은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다. 다른 건물들은 현대식 건물로 변해서 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며, 세울 당시의 위치를 정확히 추측하기 어렵다. 조선 후기의 지어진 관아 건축 중에서도 그 부속건물의 대부분을 갖추고 있는 드문 예로써 건물의 배치나 건물 형식, 기능 등은 건축사 연구자료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적혀있는 것이 진해현에 관한 기록이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더이상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는 위에 소개된 것이 전부이다 보니 정보의 제한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 이런 향토사에 관하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조선시대부터 전해져오는 이야기를 후대에 알 수는 없는 것일까? 조선실록을 통하여 조선의 중앙정치를 알 수 있다면 지방정치와 행정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읍지이다. 목,부,군,현에 관한 기록은 읍지를 통하여 알 수 있다.

하지만 진해현 동헌의 경우만 봐도 동헌에 사용된 당호도 알 수가 없다.  고창읍성의 경우 평근당, 무장읍성은 취백당, 동래읍성 충신당으로 불리지는 것에 비해 진해현읍성의 동헌에는 이런 당호가 보이지 않고 덩그러니 동헌이라는 현판만 있다. 위 사진에 보면 동헌이라고 현판에 쓰여져 있지 당호인 내용은 없다. 동헌만 아니라 객사 또한 당호를 알 수가 없다. (다행인 것은 진해현객사가 1985년까지 남아있었는데 진해현객사 당호가 서기청이었다고 한다. 경남대학교 인문학부 사학교수이신 유장근교수님이 알려주시네요.진해현의 객사 이름은 우산관(牛山館)이고, 동헌의 이름은 화류헌(化流軒)이라고 우산(牛山)은 현 진동면의 옛이름입니다.)또 읍성 성문에 사용된 당호도 알 수가 없다. 읍지에는 인구수,지역,관아위치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향토사 자료이다.

이런 것을 적어 놓은 것이 알 수있는 것은 읍지인데 진해현읍지에 관하여 일반인이 접근하려고 하니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지자체에서는 돈을 들여서 향토사연구에 도움을 주고자 읍지발행을 한다. 경남에 있는 지자체들도 읍지발향을 하는데 진해의 경우 웅천읍지,창원은 창원읍지, 김해는 김해읍지, 함안은 칠원,함주읍지를 발행한다. 그런데 마산시 소속인 진해현읍지에 관하여는 알 수가 없다. 이런 부분을 담당하는 곳이 문화재과나 문화원에서 하는데 마산문화원에서는 발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의 진동면,진북면,진전면의 경우 창원군이었다가 도농통합으로 1995년에 마산시로 통합이되었다. 근 15년 동안 잊혀진 곳이 삼진(진동,진북,진전면)이 아닌가 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도농통합만 하고 향토사에 중요한 진해현읍지도 만들지 않았다고 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2010년 창원시,마산시,진해시가 통합이 되어 출발을 한다. 통합에 앞서 향토사에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읍지조차 발행하지 않으면서 뭔 통합인지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여 찾아보니 진해현읍지가 서울의 배재고등학교 도서관에 있었다. 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었는데 검색이 원할하지 않았다. 겨우 찾은 것이 진해현읍지에서 城池邑城周一千四百四十六尺曲城五井三南門曰鎭南樓東門曰仁明樓 이다. 진해현읍성의 남문이 진남문이고 동문이 인명루라는 사실이며(인명루에서 운룡루(雲龍樓)로 한 번 바꾼 것 같습니다. 운룡루는 1900년에 발행한 진해군읍지에 적혀 있습니다) 우물이 3개이다. 세종실록에는 우물이 2개라고 했는데...

조선시대때 진해현읍지의 경우 두번에 걸쳐서 발행을 했다고 하는데 1970년대 이후 발행을 했는지 않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산문화원에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발행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함안의 읍지를 보면 앞페이지에는 한문으로 뒷면에는 한글로 설명을 해놓을 정도이고 함주와 칠원을 두개로 다둘 정도이다. 그나마 구산면일대의 이야기는 칠원편을 참고할 수 있어서 다행이나 진동,진북,진전에 관한이야기는 알 수가 없다. 필자같은 아마추어들이 접근하기 좋게 진해현읍지를 PDF로 만들거나 만들었으면 한다. 진해현의 관한 향토사 자료가 살고있는 곳에서 볼 수가 없고 멀리떨어진 곳에 가서 만나는 곳도 유쾌하지만은 않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적혀 있는 경상도읍지 중 진해현읍지를 보면 
沿革高麗置鎭海縣顯宗九年屬晉州恭讓王二年置
監務 本朝 太宗十三年改縣監 宣祖三年四年
合于咸安光海主九年復置 仁祖五年合于昌原七
年又合于咸安十七年復置邑號八鎭牛山官員縣監兼金海鎭
管兵馬節制都尉一員
坊面東面終十西面終十五北面終十五○富山鄕西三
山水鷲山北五里牛山西十五里餘航山北十五里咸安界嶺路大峴北十
(松田十一)里咸安路栗田峴東十里漆原之龜山鎭界東山峙東北十里昌原界○海南三里
東城川出餘航山之東南流經縣東入于海巨次浦西二里出咸安巴山之南南流入于海
(堤堰一)所達浦西十里出餘航山之南南流與巨次浦合入于海道萬浦東十二里馬赤浦
西一里時落浦西十五里島嶼凡矣島南海有六小二島酒島大小二島鷰尾
島俱東海弓島東南海
城池邑城周一千四百四十六尺曲城五井三南門曰鎭南樓東門曰仁明樓
烽燧加乙浦東四里
倉庫邑倉 海倉西十里海邊
(待變亭西十里邑內九日 古縣七日 場基四日 倉浦二日 幷一朔三市)驛站常令驛(상령역)西五里
土産竹柚榴茶香蕈蜂蜜鰒蛤等魚物十五種
典故高麗恭愍王十三年倭賊三千餘寇鎭海慶尙道
都巡問使金績命帥兵急擊之賊不暇乘舡乃登縣之
北山斫木爲鹿角寨守之續命復進擊大敗之 辛禑二
年倭焚掠鎭海○本朝 宣祖二十五年倭陷鎭海
三十年倭陷鎭海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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