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왜성_03 왜성(倭城)



이번 마산(창원)왜성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세가지입니다. 첫째가 왜? 용마산에 마산(창원)왜성을 축성하였는가 하는 것이며 두번째가 용마산에 있는 마산왜성 주위로 바다가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가 천수각(덴슈카쿠 天守閣)의 위치입니다. 마산(창원)왜성 2편에서 조금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다시 한번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왜 용마산에 마산(창원)왜성을 축성했을까요? 왜장 다테[伊達政宗]가 용마산에 쌓기 시작하였으며, 1597년 12월 정유재란 때 왜장 나베시마[鍋島直茂]와 그의 아들이 완성하였다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마산(창원)왜성이 알려진 것입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위 그림지도에 나오는 왜성을 보면 하나같이 해로와 수로를 끼고 왜성을 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동래왜성의 경우 조금 틀립니다. 동래왜성의 경우 수로나 해로는 없습니다.

▼ 마산(창원)왜성은 임진왜란당시의 경상우병성과 직선거리로 3km 이고 창원읍성까지는 직선거리로 6km이나 도로를 따라간다면 8km정도입니다. 임란당시 축성한 왜성을 보면 인근에 조선수군의 진성이 있거나 조선군의 행정의 중심지인 읍성이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해 한반도에 축성한 왜성주위에 있는 조선의 읍성 및  진과 진성 도표

  왜성의 명칭

읍성

진성

동래왜성

동래읍성

 

부산왜성

 

부산진성

자성대왜성

 

부산진성

기장 죽성리왜성

기장읍성

두모포진성

서생포왜성

 

서생포진성

울산왜성

울산읍성, 경상좌병영성

 

신답왜성

김해읍성

 

웅천왜성

웅천읍성

제포진성

명동왜성

 

제포진성

자마왜성

웅천읍성

 

안골왜성

 

안골진성

고성왜성

고성읍성

 

영등왜성

 

영등포진성

장문포왜성

 

장문포진

남해왜성

남해읍성

 

마산왜성

경상우병영성

 

가덕왜성

 

가덕진성

눌차왜성

 

가덕진성

양산왜성

양산읍성

 

호포왜성

양산읍성

 

예전 토성터를 이용한 왜성

사천왜성

 

선진리토성

구포왜성

 

 


제가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만 일부 틀릴 수 있으니 오류에 대한 부분은 지적바랍니다.  왜성의 경우 한반도에 축성을 하면서 조선의 읍성이나 진성 가까운곳에 축성한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마산왜성의 경우 경상우병영성이라는 합포성지가 있는곳과 직선거리로 3km 정도 되는 곳에 축성하였는데 바다로 들어오는 조선수군을 경계하고자 축성하였지만 경상우병영성으로 공격하는 조선육군을 경계하기 위한 것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두번째로 마산왜성이 바다와 가까이 붙어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남해안에 있는 왜성의 경우 바다나 강과 인접한 곳에 왜성을 축성하였고 바다나 강의 경우 2곳이나 3곳이 바다나 강으로 둘러싸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마산왜성의 경우 바다와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 1920년~30년대에 제작된 마산지도로 마산왜성이 있는 곳 남측을 보면 포구가 보이는데 이곳이 오산진이라고 하더군요. 용마산과 바다가 붙어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를 근거로 보면 1920년 이전에는 남측이 바다와 가까이 있었다고 봐야겠습니다.(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1946년 마산지도에서 본 마산왜성의 모습으로 위 지도와 마산왜성의 모습은 차이가 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나 바다의 경우 많이 매립이 되어있네요.
▼ 오산진의 경우 나루터로 조선시대 창원과 웅천을 연결하는 곳입니다. 오산진의 경우 임진왜란 당시에는 현재의 용마고등학교 근처였다고 합니다. 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허정도님의 블로그에 있는데요. 링크시켜보겠습니다. 그후 마산만의 매립을 통해 위 지도에 나오는 지점으로 이동을 하고 현재에는 아래사진에 나오는 지점으로 이동을 하게됩니다. 보이는 조그마한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는곳이 오산진이 되겠네요.
오산진의 위치의 이동은 마산왜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가 되는데요. 이는 마산왜성의 주위로 바다가 있었느냐 아니냐 하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죽도왜성, 웅천왜성, 안골왜성, 서생포왜성, 사천(선진리)왜성, 장문포왜성등의 경우 3면이나 2면이 바다와 접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이는 적은 병력으로 육지에서 공격하는 조선군을 막기위한 고육책으로 보여지며 해로나 수로를 통해 물자와 병력을 이동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다와 강을 끼고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 마산만의 매립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면 허정도박사의 블로그링크  1945년 이전부터 계속해서 매립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용마산부근의 경우 위 1920~30년대의 지도와 비교하면 상당히 많이 매립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899년 마산항이 개항이 되면서 많은 부분들이 매립하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마산수출자유지역 매립하기전 항공사진으로 저멀리 창원이 보이고 마산만의 해안선이 보입니다. 용마산 부근의 경우 지금보다 바다와 상당히 가까운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합포초등학교의 경우 지금과 비교하면 운동장이 작아보입니다. 따라서 계속해서 매립하는 마산만의 경우를 보았을때 용마산부근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로 매립을 한 것으로 보이고 우산진의 경우 마산용마고등학교 근처가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  따라서 오산진의 변화는 마산왜성이 있는 용마산주위로 바닷물이 들어왔느냐 하는 것인데 오산진이 현재의 마산용마고등학교 인근이었다면 용마산주위로 정유재란 당시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증거일 것으로 보입니다. 오산진의 위치 이동을 산정하여 아래 그림지도에 대비하여 보았습니다. 현재의 마산지도에 정유재란 당시 해안을 그려 보았습니다. 이렇게 지도에 표시를 하니 마산왜성의 경우 북서측으로 공격하는 조선군의 육군만 방어를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도의 경우 제가 임의로 추정한 곳이며 해안선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참고용으로 생각하였으면 합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웅천왜성의 방어전략을 그림으로 표시한 곳으로 웅천왜성의 경우도 3면이 바다로 되어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안골왜성의 방어전략으로 안골왜성의 경우도 3면이 바다로 되어져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김해죽도왜성의 위치에 관한 지도로 현재 김해죽도왜성의 경우 남측하천의 경우 논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선착장이 남측에 사용했다는 자료를 기준으로 아래지도를 작성했으며 김해죽도왜성의 경우 또한 조선군 육군의 공격시 한부분만 막기위한 것으로 죽도왜성이 저곳에 축성했을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습니다.(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세번째가 천수각의 위치입니다. 아래에 있는 마산왜성의 평면도는 일본 아마추어 왜성연구가들이 마산왜성을 답사하고 나서 1961년 부산대 한일문화연구소에서 만든 "경남의 왜성지"에 그려진 것으로 답사의 경우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지만 80년 이후로 추정합니다. 마산왜성 평면도를 보면 천수각이 북서측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러다가 일본의 어느 웹사이트에서 구한 1920~30년대의 마산지도를 보니 천수각의 위치가 북서측이 아닌 남동측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지도가 작성한 년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1930년 이전이라고 볼 때 어느정도 마산왜성의 흔적이 남았을때 조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 위 두개의 지도를 토대로 마산왜성의 천수각을 표시한 곳으로 A지점이 일본 아마추어 왜성연구가들이 추정하는 천수각이며 B지점은 1920~30년대 지도에 나오는 천수각지점이 되겠습니다. 천수각이 중요한 이유는 두번째에 설명한 바닷물의 진입과 상관이 있습니다. 두번째에 추정한 해안선의 위치에 따라 천수각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천수각이 A지점이라면 조선군이 육지에서 공격하려는 곳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지점이 A지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B지점의 경우 A지점을 통과해야 만나는 지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1920년대 제작한 지도와 오산진의 위치 등을 고려해볼때 A지점 보다는 B지점이 천수각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아래 사진은 합포초등학교에서 마산왜성이 있는 용마산을 바라본 모습으로 천수각이 있었다면 산 정상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천수각의 경우 왜성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조성이 되며 성안과 밖을 두루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데 보통 2~5층 높이로 되어있는데 마산왜성의 천수각 또한 이와 비슷하게 축성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A지점 보다 B지점이 바다를 더 관찰하기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 웅천왜성 천수각터에서 바라본 남해안의 모습으로 천수각에서 바라보면 이 모습보다 더 높게 보이겠죠. 날씨가 좋지 못해서 잘안보이지만 거제도와 가덕도 안골까지 보입니다.  
▼ 천수각터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가까운 송도와 연도 그리고 거제도와 거가대교의 모습도 보입니다.
▼ 김해죽도왜성에서 천수각터로 가다가 내려다본 낙동강 지류의 모습입니다.
▼ 서생포왜성 고구치를 지나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서생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 서생포의 다른 방향으로 천수각보다 낮은 곳에서 보았는데도 바다의 모습이 다 들어옵니다.
▼ B지점에 천수각을 과정하고 가라쓰성의 천수각을 마산왜성터에 올려보았습니다. 이렇게 가상으로 왜성터를 올려 놓으니 천수각 가장 높은 곳에서 본다면 마산만에 진입하는 어선 및 전선들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육지(내서, 합성동)에서 공격하려는 조선군의 모습도 다 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라쓰성의 천수각을 사용한 것은 인터넷에서 구한 이미지로 어떤 성격부여는 없습니다. 저 정도 높이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의미이지 저런 모양이었다라는 것은 아님을 알려드리며 용마산에 천수각의 이미지를 올려 놓은 것은 마산왜성에 대한 천수각의 위치때문이지 다른 의도는 없으니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현재의 오산진에서 용마산에 있었던 마산왜성의 천수각의 모습으로 가상으로 꾸며본 것입니다. 저 정도의 천수각이었다면 여러방향을 바라보며 왜군과 조선군의 동정을 살펴 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산왜성의 3가지 측면을 이야기 해보았는데요. 첫째가 왜? 용마산에 마산(창원)왜성을 축성하였는가 하는 것이며 두번째가 용마산에 있는 마산왜성 주위로 바다가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가 천수각(덴슈카쿠 天守閣)의 위치에 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다만 어디까지이나 아직 고고학계나 역사학계에서 결론내린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려드리며 순전히 필자의 생각이고 추정임을 알려드립니다. 항상하는 이야기이지만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더 정확한 것은 알 것이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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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료료 2011/07/23 22:12 # 삭제

    팬저님의 글 항상 흥미롭게 잘 읽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경남지역의 역사와 문화란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발표 과제로 '이산성지'를 선택해서 답사를 갔었는데 산 전체를 해집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산 속에 돌무지 구덩이가 있는걸 보고 '뭘까. 예전에 뭔가 창고로 쓰였던게 아닐까' 하며 일일이 사진 찍어서 프레젠테이션 했었는데 교수님 曰 "이산성지는 토성으로 축조 되어서 지금은 그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궁금증을 가지고 열심히 조사한 점이 기특하다" 라고 평을 해주셨더랬죠ㅎ 용마산 항상 가는 곳인데 다음에 갈때는 좀 더 자세히 봐야겠네요^^
  • 팬저 2011/07/23 23:18 #

    갔다오시고 좋은 내용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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