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읍성지를 찾아서_04 읍성(邑城)



의령읍성은 평산성의 구조로 되어있고 직사각형으로 된 읍성인데 4대문이 있었습니다. 1912년 지적도에 현재의 지도를 대비하여 의령읍성을 그려보았습니다. 지적도를 작성할 당시 치성이 몇개가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 1872년 지방지에서 본 의령읍성으로 객사와 동헌이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동헌 앞에는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동헌과 동측성곽까지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 위 지도에서 동헌을 군청 옆이라고 지적한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최원석교수의 "지적원도를 활용한 읍성공간의 역사지리적 복원 - 경상도 읍성을 사례로" 라는 논문이 틀린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최원석교수가 지적한 동헌의 경우 의령군청 옆 주차장부지 근처인데 직접 현장을 방문해보니 의령군청 자리가 동헌의 자리일 것으로 추정이 되더군요. 객사의 경우 의령초등학교 체육관과 체육관위 교사일 것으로 보이더군요. 이 부분은 제가 좀 더 공부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네요.
▼ 위 고지도와 지적도를 바탕으로 추정한 의령읍성의 성곽과 도로입니다. 추정의 근거는 4대문인 성문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4개의 성문이 있었다면 +모양의 도로가 발달이 되었을 것이고 객사를 중심으로 도로가 났기때문입니다. 객사의 경우 고지도에 삼문이 있어서 현재 의령초등학교자리가 객사터로 생각이 들며 의령군청이 있는 곳에 동헌과 내아,책실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고지도에 있는 동헌 앞 외삼문과 내삼문을 표시하였습니다. 동문에서 서문으로 객사방향을 간다면 동헌으로 올라가기전에 외삼문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며 내삼문옆 도로는 현재 소방도로로 사용중인데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추정이 되지 않네요. 형옥의 경우 동헌에서 내려와 동측에 있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표시하였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 의령군청 사거리에서 군청방향으로 길을 올라갑니다. 군청의 경우 조금은 위로 올라가는데 조선시대 관아가 있었던 곳은 보통 풍수지리적 성격을 가지고 위측에 배치를 하였는데 군청자리에 동헌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했을 경우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 의령군청 밑에 있는 의령경찰서로 이곳에 조선시대에는 각종 아전들이 근무하는 관아지가 아닐까 생각을 가져봅니다. 1872년 지방지를 기준으로 본다면 창고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의령군청앞 도로로 보이는 방향으로 가면 의령초등학교가 나오는데 조선시대 당시에는 활발한 왕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횡단보도가 있었던 곳 위가 외삼문이 있었지 않았을까 추정을 가져봅니다.
▼ 좌측이 의령군교육청인데 보이는 나무는 의령읍성 내삼문앞에 있었던 나무였을 것 같습니다. 낙안읍성 낙민루 앞에 있는 고목과 같은 기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 의령군청 앞에서 의령교육청 뒷편의 소방도로로 조선시대 당시 이길이 존재하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추정을 한다면 조선시대에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의령군청의 모습으로 이곳에 의령읍성 행정의 중심지인 동헌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의령군청과 의령초등학교를 이어주는 담장인데 주차장과 함께 의령초등학교 운동장을 포함하여 의령읍성 관아지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의령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간판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읍성지가 있었던 곳을 가면 이제는 습관처럼 사진을 찍습니다. 읍성이 있었던 곳에 읍성을 허물면서 각종 관아에 학교를 세웠기 때문에 각 초등학교의 경우 개교가 100주년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입니다.
▼ 현재의 의령초등학교입니다. 올 2010년이 의령초등학교 개교가 100주년이라고 합니다. 의령초등학교의 경우 처음 개교를 할때에는 의령교육청자리에서 개교를 하다가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고 하는데 의령초등학교 역사편을 보니 관아 건물터를 이용했다고 하던데 정확히 잘모르겠네요.
▼ 의령군청 뒤산의 봉무산공원안내판입니다.
의령읍성내에 있었던 객사와 동헌의 당호를 알려고 했지만 아직 알지 못하네요. 의령현읍지를 구해서 알아봐야겠네요. 그리고 아직 의령읍성에 관한 지표조사등이 이루어 지지 않아서 정확한 자료가 없는 것이 안타깝네요.



덧글

  • 붉은호랑이 2010/03/06 14:13 # 삭제

    의령국민학교 70회 졸업생이입니다. 80년쯤에 공사를 위해서 땅을 파다가 화살촉같은 철재 무기류가 나온적이 있고 그것이 지방신문에 실렸습니다. 위치가 그림상에서 남문으로 표시된 인근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 팬저 2010/03/06 18:35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공사중이다가 발견이 되었다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을까 싶은데 어디에서 조사를 했을까요?
  • 붉은호랑이 2010/03/07 10:07 # 삭제

    80년은 제가 국민학교 4학년 이었습니다. 자세한 사정을 알수있거나 관심을 가질 나이는 이니었지요,

    공사중에 나왔다는것을 신문에서 봤고 현장에 구경을 갔습니다. 제가 살던곳이 읍사무소와 소방서 중간이라서 현장까지는 2분이면 충분합니다. 지하층 설치를 위한 구덩이를 다파버리고 볼만한것은 없었습니다.

    참고로 당시 집에 오던 신문은 경남일보 입니다.
  • 팬저 2010/03/07 12:42 #

    경남일보 신문에 이 내용이 나오겠네요.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붉은호랑이 2010/03/07 10:11 # 삭제

    봉무산 공원은 동네에서 왕띠라고 불렀습니다.
  • 팬저 2010/03/07 12:43 #

    아직 봉무산을 뒤에 있는 북문방향은 가보지 못했는데 한번 가보아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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