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읍성_04(삼가읍성지를 찾아서03 기양루를 중심으로) 읍성(邑城)



이제 삼가읍성의 객사가 있었던 삼가면사무소를 찾았습니다.(물론 2편에서도 가보았지요)

▼ 삼가면사무소로 사용하기전에 삼가초등학교로 사용하였는데요. 이때의 사진으로 삼가객사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이미지출처 : 삼가 인터넷 홈페이지 삼가 아초리의 라찬숙 선생 
▼ 현재의 삼가초등학교는 학교를 이전하여 양천강을 지나서 있습니다.


▼ 삼가초등학교의 모습으로 현재의 크기였다면 예전의 삼가객사의 크기로는 좁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 삼가초등학교내에 있는 체육관겸 기념관으로 상당히 큰 나무때문에 작게 보입니다. 체육관의 명칭은 봉성관으로 예전 삼가객사의 당호인 봉성관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삼가초등학교가 객사로 사용한 흔적이 이렇게 명칭으로 남아있습니다.
▼ 삼가객사의 경우 6.25전쟁때 화재로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 이곳은 삼가 버스정류장인데 바로 뒤에 흰건물이 삼가면사무소입니다. 따라서 이곳 삼가버스정류장의 경우 삼가객사의 일부 터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 버스정류장 길건너 있는 삼가치안센터로 바로 뒤측이 삼가우체국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삼가치안센터와 삼가우체국의 경우 각종 관아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아래 사진은 삼가교에서 길을 건너온 후의 모습으로 우측 건물 옆으로 동측성벽이 지나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 위 사진의 사거리로 보이는 농협하나로마트 뒷편으로 동측성곽이 지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이제 삼가읍성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축물인 기양루로 왔습니다.
▼ 기양루의 경우 삼가현 동헌의 출입문중 바깥에 있는 외삼문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였는데 합천군청 문화재담당분과 통화를 하니 그렇지 않다고 하던데 필자가 틀린 것일까요? 아니면 합천군 문화재과에서 말한 것이 틀렸을까요? 필자가 볼때 삼문이 있는 것을 봐서 그렇게 이야기하였고 합천군청에서 이야기한 것은 2층 누각에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와 2층 누각을 기준으로 이야기 한것 같은데 필자가 볼때 외삼문으로 동헌의 출입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 기양루옆에서 찍은 사진으로 뒷 부분이 동헌의 방향일 것으로 생각이 들고 기양루를 더 지나가면 내삼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 안내판에 적혀있는 것을 봐서는 필자가 이야기한 부분이 틀릴 것 같습니다. 그럼 기양루의 경우 2층 누각이라면 필자가 이야기한 외삼문은 아니죠.
▼ 1872년 지방지에서 본 삼가읍성의 모습으로 객사앞에 정금당이라는 누각이 보입니다. 기양루의 경우 동헌 앞에 있으며 동그라미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누각의 경우 촉석루,밀양루 등과 같이 경치가 좋은 곳에 만들며 보통 1개정도로 만드는데 삼가읍성의 경우 누각이라면 정금당과 함께 기양루가 포함되어 두개가 됩니다. 또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은 되지만 풍류를 즐기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죠. 고지도를 근거로 봐도 기양루의 경우 동헌의 출입문으로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기양루의 초석으로 초석의 경우 둥글면서 정교하게 만들어 놓았더군요. 
▼ 기양루 하단에 대나무(?)의자가 놓여있어서 더위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이겠더군요.
▼ 기양루의 현판이 보입니다.
▼ 기양루 사방에 예전 삼가읍성 성문에 사용한 현판들이 있었는데 기서문이라는 현판이 보였는데 서문에 사용한 현판으로 보입니다.
▼ 봉양문 현판으로 동문에 사용한 현판입니다. 북문과 남문에 사용한 현판은 보이지 않았고 북문의 경우 의두문이며 남문의 경우는 수정문이었다고 합니다.
▼ 기양루에 단청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으며 도깨비모양이 보이더군요.
▼ 대들보를 청룡과 황룡으로 받치고 있는 형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황룡의 모습
▼ 청룡의 모습이 보입니다.
▼ 청룡의 경우 모습이 정교하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제 2층 누각으로 올라갑니다. 저도 이부분에서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외삼문이었다면 분명히 2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이곳에 있으면 안되는데 여기에 있으면 출입하는데 힘이 들것인데 왜 사다리가 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 합천군청에서 이야기한 다른 용도의 누각이었다는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기양루의 바닥은 흔히 사용하는 우물마루형식으로 되어져 있었습니다.
▼ 각종 편액들이 기양루 2층 누각내부에 걸려져 있었습니다.
▼ 또 재미있는 조각품이 있었는데 개구리 같기도 하고 거북이 같기도 한 것이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우스운 모양을 자아낸다. 원숭이 두마리라고 하네요.
▼ 근민당(近民堂)이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미수 허목(眉수 許穆)선생이 전통 전서체에다 자신이 개발한 특유의 서법을 가미시킨 아주 아름다움을 풍기는 멋을 풍기고 있습니다. 전서체라 그런지 근민당으로 읽기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네요. 근민당(近民堂)이라 어디서 많이 듣었던 것 같지 않습니까? 삼가동헌의 당호로 사용된 것이 근민당으로 추측이 됩니다. 보통 동헌의 경우 헌(軒)자를 사용하거나 당(堂)자를 하기도 했는데 근민헌의 경우 "민가근불가하(民可近不可下)"곧 백성을  친근히 하되 하대하지 않는다는 목민(牧民)의 정신에서 취한 말입니다.근민당의 경우 조선시대 동헌의 당호로 사용한 것 중에 많이 사용하였는데 밀양,남원,김제,청주,제주 정의현에서 근민헌으로 사용하였고 근민당으로 사용한 동헌도 있습니다. 포항 장기현, 부평부의 경우 그런 경우입니다.  
▼ 기양루 천정의 모습으로 청룡이 기양루를 감싸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황룡의 경우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네요.
▼ 청룡의 경우 여의주를 물지않고 있으며 머리에 뿔이 있네요.
▼ 기양루 천정의 모습으로
▼ 가수헌이라는 현판이 보이는데 가수헌의 경우 삼가객사에 사용한 당호로 보입니다. 가수헌의 경우 삼가현의 옛이름으로 삼기현(三岐縣)과 가수현(嘉樹縣)을 병합하여 삼가현(三嘉縣)으로 하였는데 그중 가수현을 가수헌으로 사용하여 객사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객사의 경우 예전에 사용된 지명을 당호로 사용한 예가 많습니다. 진해현 객사의 당호의 경우 우산헌인데 우산의 경우 예전 지명입니다. 고창 객사의 경우도 고창의 예전 지명인 모양을 따서 사용합니다.  

이렇게 적어 놓았는데 삼가면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는 곳에 삼가객사가 있었는데 봉성관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면 가수헌이라는 당호는 예전 동헌의 당호인가?
▼ 황룡의 천정의 모습입니다.
▼ 천정과 바닥의 모습이 보이는데 2층 난간에 손잡이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외삼문보다는 누각으로 보입니다.
▼ 2층에 여러개의 편액들이 둘러져 있습니다.
▼ 난간에는 손잡이가 있고 못을 사용한 흔적들이 많이 있더군요.
▼ 기양루에서 남측을 바라본 모습
▼ 기양루에서 동측을 바라본 모습으로
▼ 기양루에서 서측을 바라본 모습
▼ 기양루에서 북측을 바라본 모습으로 보이는 창고 부근이 동헌이 있었던 자리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 기양루의 난간에 못을 사용하여 금이 많이 가있더군요.
▼ 기양루의 기둥의 모습
▼ 기양루를 옆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처음에는 기양루가 동헌의 외삼문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올라가서 보니 외삼문이라기 보다는 연회를 배푸는 누각으로 보이더군요. 다만 정금당이라는 누각이 있었는데 또 동헌앞에 누각이 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함양의 함화루의 경우 함양읍성의 남문을 옮겨와서 사용하면서 계단을 내어 누각으로 사용하는 사례를 봐서 외삼문에 2층 계단을 내고 누각형태로 사용한 것이 아닐까 라는 추측을 가져봅니다.
이부분은 아무래도 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를 해봐야 될 것 같고 아니면 삼가현읍지를 봐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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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저의 국방여행 : 나주읍성04(정수루_나주목의 외삼문) 2010-06-17 02:20:32 #

    ... 비슷한 누각을 보았습니다. ▼ 바로 합천 삼가면에 있는 삼가읍성 동헌터 앞에 있었던 기양루입니다. ▼ 기양루에서도 총량의 머리가 용머리였습니다. 삼가읍성의 기양루 바로가기▼ 나주읍성의 정수루와 삼가의 기양루를 비교할 수 있도록 사진편집을 해보았습니다. 일단 전체적인 모습이나 크기가 비슷합니다. 정수루나 기양루 ... more

덧글

  • 松下吹笙 2010/04/15 20:55 #

    기양루가 아문의 역활을 했다면, 문을 개폐시키는 장치 흔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올리신 사진으로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보통 기둥에 판장문을 계폐시키는 장치가 달렸던 흔적이 있을 겁니다. 또한 객사나 동헌에 휴식공간이나 연회공간으로써 누각이 부설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그러한 기능일 수도 있겠지요.
  • 팬저 2010/04/15 22:05 #

    기양루의 문의 개폐를 알 수 있는 문의 형태는 제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합천군에서 외삼문이 아니라고 하고 문화재에도 외삼문이 아니라고 하니 누각인 것 같습니다. 누각이었다면 위치가 왜 동헌 앞인가하는 부분입니다. 양천강을 끼고 누각을 세우면 될 것을 왜 동헌 앞일까 하는 부분이고 정금당이라는 누각으로 보이는 것이 있는데 또 다른 누각을 만들었을까 하는 부분이 아직 풀리지 않네요.
  • 삼가면 2010/10/02 20:20 # 삭제

    안녕하세요 삼가면에 살고있는 학생입니다 어쩌다가 보게되었는데 잘봤어요!! 제가 몰랐던 사실까지 알게된것 같네요 어렸을때 그냥 지나쳤던 길과 집들이 옛날엔 중요한터였다는걸 다시한번 알고 갑니다 읍성에 관한걸 보니까 진짜 정부에서 지원해줘서 발굴조사를 제대로 해줬으면 하네요 ㅠㅠ 삼가면에 대한 기초적인것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알려주시지만 이렇게까지 깊게는 안가르쳐주셔서 지금 이사실이 놀랍습니다 앞에서인가 사진을 보는데 금산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저희 아빠 말로는 지금 삼가면 삼가중학교뒤쪽에 위치한 백학산이라는 산이있는데 그산 정상으로 올라가기전에 성각 터가 아직 남아 있다고 합니다 성벽을 지을때 사용하던 돌들이 아직 산을둘러 있다고 하네요 저도 어렸을때 흐릿하게 본기억이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백학산도 한번 둘러봐주세요 백학산에남아있는 돌들이 삼가읍성에 비밀에 하나의 답에 도움이 되지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기초지식이 아직부족해서 봐도 잘모르겠네요ㅠ 제 배경지식에 도움이 많이되었던 글이었습니다 감사해요!! 이렇게 직접 여행을 다니시면서 알려고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어서빨리 삼가 자체에서도 우리 역사에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아직 삼가면에 머무르고 있는 주민들에게라도 예전에 삼가에 대해서 정확히알수있게 노력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이드네요 정말 도움이 많이되고 새로운 느낌을 준 설명이셨어요 이글을보고 든 생각은 백학산도 함께 둘러보셨다면 더쉽지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저도 다시한번 삼가면을 둘러봐야겠네요 새로운생각으로 ..
  • 팬저 2010/10/03 00:01 #

    이렇게 관심가져주시고 글 남겨주어서 감사드립니다. 삼가의 경우 조선시대 600여년을 현의 기능을 한 중요한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에서 면으로 강등이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곳이죠. 아무튼 이야기하신 삼가에 있는 백학산성의 경우 자세히는 모르지만 삼국시대때 축성한 산성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현재 삼가읍내에 남아있는 읍성과는 시대적으로 차이가 날 것으로 보입니다. ^^ 아직 저도 삼가읍성에 관한 내용이 완전히 정리가 되지 않아 시간이 나면 다시 가보려고 합니다. 그때 가서 실마리가 풀린다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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