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읍성지 2010년 4월25일 현재(유장근교수의 도시탐방대 탐방) 읍성(邑城)



지난 4월 25일 유장근교수의 도시탐방대가 창원1차 탐방으로 창원읍성지를 선택하여 탐방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필자의 경우 마산에서 진행된 도시탐방대에 참석을 하지 않다가 제 10차 도시탐방대에 참석을 하고 이번에 가게 되었으니 두번째입니다. 2007년 부터 창원읍성지를 돌아다니다 보니 흔적만 남아있는 창원읍성에 관하여 알고 있었던 조그마한 지식이 도움이 된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 원래 모이기로 한 행사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서문지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예전에 갔을때에는 구석 구석 살펴보는 것보다 안내문에 적혀있는 전체적인 내용만 살펴보다보니 이런 장식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였는데 이번에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원본인 창원객사 일주문(현재 창원불곡사 일주문으로 사용중)에 있었던 청룡,황룡,거북이,호랑이 모양과 같이 사용중이더군요. 
▼ 어찌 조금은 민망한 모습을 보여주는 호랑이
▼ 거북이 즉 현무의 모습이 보입니다.
▼ 현무와 황룡의 모습입니다.
▼ 익살스런 모습의 호랑이와 청룡의 모습이 보입니다. 예로 부터 우리 조상들은 동쪽은 생(生)하는 방위이고, 남쪽은 분열 성장(長)의 방위이고, 서쪽은 수렴[斂], 북쪽은 휴식[藏]을 취하는 방위라고 했습니다. 각 방위를 주재하는 신을 배속하였는데 잘 아는 동쪽에는 청룡(靑龍), 서쪽에 백호(白虎), 남쪽에 주작(朱雀), 북쪽에 현무(玄武)인데 창원읍성 객사 일주문의 경우 청룡,활룡,백호가 아닌 황호 그리고 현무입니다. 객사 일주문에 사용한 것은 어떤 방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왕의 명령으로 일한다는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
▼ 동문지인 향양루부근의 모습으로 예전에 민가가 있었던 곳에 남아있는 면석의 모습입니다.
▼ 빌라옆 거의 50센치 정도로 창원읍성 체성이 지나가는데 현재 복원을 위해 민가들은 매입을 했더군요.
▼ 3단 정도 남아있는 면석의 경우 조선초기 연해읍성에서 사용한 방식의 면석으로 보였습니다.
▼ 위태롭게 남아있는것 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담을 조성하면서 창원읍성이 체성을 무너트렸을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 출발시간이 되어 창원초등학교에 모여서 유장근 교수의 창원대도호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창원읍성중 2군데 발굴을 맡았던 우리문화재연구원의 권순강팀장의 창원읍성에 관하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 직접 차트도 만들어와서 설명을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필자가 전화를 하여 "창원읍성 탐방이 있는데 와서 설명을 해줄 수 있느냐?" 물어보았을때 "조금 시간은 낼 수 있다"라고 해서 "와서 말씀만 해주세요"라고 했는데 이렇게 많은 신경을 써줘서 감사합니다.
▼ 그것도 현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와서 귀한 시간내어주어 감사를 드립니다.
▼ 창원향교 주춧돌로 막돌을 사용하였는데 막돌의 규모가 조금 되더군요.
▼ 창원향교 풍화루 뒷모습입니다.
▼ 창원향교의 초석과 주춧돌로 향교의 누각의 경우 주춧돌이 조금 크고 높게 올리더군요. 아무래도 2층 누각이다보니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풍화루의 마루의 경우도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우물마루는 세로 방향에 짧은 널을 깔고 가로 방향에 긴 널을 깔아서 ‘井’ 자 모양으로 짠 마루를 가르킵니다.
▼ 화려한 단청과 함께 청룡의 모습이 보이고
▼ 황룡의 모습이 보입니다. 진짜로 황룡이 풍화루 사이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창원향교 앞 공적비
▼ 거북이의 모습이 잘 보이지가 않더군요. 입의 모습은 뚜렷한데 나머지는 잘 안보여서
▼ 그 다음으로 찾아간데가 창원읍성 밖에 있는 사미루입니다. 사미루를 보니 상량문에는 “세병인사월십오일(歲丙寅四月十五日)……”이라 적혀 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저번에 탐방을 할때에는 보이지 않다가 이번에 와서 보이니.... 사미루의 상량문을 근거로 1926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 도시탐방대가 탐방한 코스입니다.(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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