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골왜성_02(지성(支城)과 지성의 고구치 [虎口]까지 ) 왜성(倭城)



안골왜성의 경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수군기지로서 좌측의 웅천왜성 남측의 눌차왜성과 인접한 곳에 지어진 왜성입니다. 안골왜성의 경우 조선수군이 부산포로 진출하려면 만나는 곳이라 보니 왜군의 입장에서 방어적으로 중요한 곳입니다. 
▼ 안골왜성의 평면도로 H와 L지점이 안골왜성의 지성이고 K지점이 있는 곳이 안골왜성의 본성입니다.
▼ 아래 사진은 실비단안개(http://blog.daum.net/mylovemay)님이 주신 안골왜성의 평면도 사진으로 일본 코마자와대학 니시무라 카즈오(西村 和夫) 교수가 안골왜성을 방문하면서 들고온 안골왜성의 평면도 입니다.  위 그림의 평면도와 니시무라 카즈오(西村 和夫) 교수가 가져온 안골왜성의 평면도와 별차이가 없습니다. 사실 필자가 구한 평면도의 경우도 일본인들이 작성한 것을 진해·웅천향토문화연구회 "우리고장 문화유산" 책에 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슷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 웅천왜성의 경우 명동왜성과 자마왜성을 지성(支城)으로 사용하고 웅천왜성을 본성으로 사용하였는데 안골왜성의 경우 안골왜성안에 지성(支城)과 본성이 있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 안골왜성 오르는 길(마을에서 올라가는 길)을 보면 우측에 흙으로 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보입니다.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 우리말로 나성(羅城)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나성에 관한 것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안팎 2중으로 구성된 성곽에서 안쪽의 작은 성과 그 바깥의 도시까지 감싼 바깥쪽의 긴 성벽을 의미한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나성의 경우 중국 주나라 때부터 왕이 사는 도성을 안팎 2중의 성벽으로 만들고 내성외곽 혹은 성곽이라 불렀다고 하고 고구려와 백제에도 영향을 주어 고구려는 장안성 백제는 사비성에 나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고려시대때 개성 왕성주위로 쌓았고 몽고군의 침입시 강화도에도 쌓았다고 합니다. 안골왜성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 석성이 아니고 토성인데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라고 부르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네요. 또 안골왜성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 웅천왜성이나 서생포왜성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와 같이 많이 남아있지 않는 것도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위 평면도의 F지점에서 G지점으로 이동하다가 본 것입니다. 
▼ G지점에서 본 것으로 안골왜성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라 생각이 들더군요.
▼ H지점에서 본 안골왜성의 지성입니다. 얼마남지 않은 성곽부분 
▼ 이렇게 성곽의 돌들이 아무렇게 뒹굴고 있었습니다.
▼ 겨우 남아있는 이부분이 그래도 여기가 안골왜성의 왜성부분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 조금 더 지나면 그래도 성곽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 그러나 아래 사진에 보는 것 처럼 흙 속에 겨우 돌들이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무너져 버린 느낌을 주었습니다. 위 평면도를 보면 우측에 보이는 부분에도 왜성의 성곽이 자리잡은 곳으로 가끔 성곽에 사용된 돌들이 보였습니다.
▼ 이렇게요. 물론 다 남아있는 것은 아니고 일부만 남아있었는데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성인들 기준으로 3명이상 다니기에는 불편하게 보입니다.
▼ 지성의 출입문인 호구(고구치 [虎口] [こぐち])로 오자 그대도 남아있는 성곽의 돌들이 보입니다.
▼ 지성의 경우 남아있는 성곽부분이 3~4단 정도만 남아있어서 이것이 왜성인지 우리나라 성곽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 아래 사진을 보면 안골왜성 지성의 경우 흙으로 성곽을 쌓고 돌로 쌓은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 모서리부분으로 여기를 보니 왜성의 성곽 기울기가 나타납니다.
▼ 왜성 특유의 성곽 기울기가 보이지만 겨우 남아있구나 하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 세월의 흔적 속에 안골왜성의 지성부분은 잘 남아있지 않는 상태로 보였습니다.
▼ 고구치 [虎口] [こぐち]부분으로 위에서도 이야기 하였던 것 처럼 안골왜성의 지성부분은 바같부분은 석성이고 내부는 흙으로 채웠습니다.
▼ 고구치 [虎口] [こぐち]에서 안골왜성 본성 방면을 바라본 모습으로 풀들이 너무 많이 자라서 발목이 잠길정도였습니다.
▼ 안골왜성의 본성과 지성끼리는 서로 협력 방어하는 체제로 되어 있으며 지성의 경우 본성을 방어하며 협력하는 체제임을 알 수 있는 구조입니다. 지성의 출입문이 본성의 성문방향으로 되어 있습니다.
▼ 안골만을 바라보이는 곳에 있는 안골왜성의 지성이 경우 그대도 많이 남아있어서 왜성 특유의 성곽 기울기가 나타납니다.
▼ 고구치 [虎口] [こぐち]의 성곽을 보면 우리나라 성곽의 성문에 사용하는 육축과 같이 큰 돌로 모서리 부분을 축성하고 옆으로 가면서 작은 돌로 축성하는 방식을 택했더군요.
▼ 원래 이렇게 쌓았던 것인지 아니면 세월이 가면서 돌이 빠져 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쌓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측 근거는 왜성의 경우 우리나라의 성곽과 달리 단기간에 왜성을 축성했던 것이 많아서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왜성을 쌓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이렇게 무너져 내린 부분도 보이고 일부는 교란된 것도 보이더군요.
▼ 안골포만 측의 안골왜성 지성부분은 경사가 심하게 가파르게 되어져 있었습니다.
▼ 안골왜성 지성의 고구치 [虎口] [こぐち]의 경우 서너명의 장정들이 동시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있었습니다.
▼ 고구치 [虎口] [こぐち]의 좌측 성벽으로 상당히 큰돌과 작은 돌이 축성되어 있어 상당히 견고하게 보였습니다.
▼ 고구치 [虎口] [こぐち]의 우측성벽으로 좌측의 성벽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50센치 이상의 돌들이 하부를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 고구치 [虎口] [こぐち]부분으로 왜성의 특징인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가 나타납니다. ㄱ자로 꺽혀져 돌아감을 알 수 있습니다.
▼ 안골왜성의 지성의 평면도를 작성한 것입니다.
▼ 고구치 [虎口] [こぐち]에서 안골왜성 본성방향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안골왜성 본성으로 가는 곳을 보면 폭이 좁아지다가 지성으로 오면 폭이 상당히 넓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골왜성의 지성의 경우 안골왜성 본성을 보좌하는 수단임을 알 수 있는 사진으로 유사시 일본군의 병력들이 본성을 방어하기 위해 지성의 출입문을 통해 본성으로 가는데 지성의 출입문이 본성의 성문과 같은 방향으로 있으며 지성의 출입문이 본성을 향해 있습니다.
▼ 현재 남아있는 지성의 높이는 대략 80센치~90센치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 면석에 한문으로 적혀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름인지 아니면 어떤 것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더군요. 탁본이라도 떠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고구치 [虎口] [こぐち]에서 들어와서 본 것으로 여기는 하단부만 남아있더군요. 겨우 1~2단 정도의 면석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이것만 봐서는 왜성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 맞은편의 모습으로 여기 또한 남아있는 성과이 얼마없습니다. 바깥쪽의 경우 그래도 4~5단정도이지만 뒤쪽의 경우 겨우1~2단 정도의 성곽만 남아있습니다.
▼ 안골왜성의 본성이라면 여기를 혼마루[本丸 (ほんまる)]라 불러야겠지만 지성인 이곳도 혼마루[本丸 (ほんまる)]라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1개 소대 병력들이 주둔을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공간이 있었습니다.  
▼ 병력이 출입을 한다면 아래에 있는 그래픽처럼 출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왜성의 특징 중 하나인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를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 고구치 [虎口] 성벽에 있는 돌들로 자세히 보시면 우리나라 관광객이 와서 자기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골왜성뿐 아니라 서생포왜성,구포왜성,웅천왜성에서도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돌에 이름을 적어놓은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심지어 도구를 가져와서 돌에 이름을 세겨놓고 간 것을 보았습니다.  
▼ 고구치 [虎口]의 뒷측 성곽으로 이곳에 남아있는 왜성의 돌들로 봐서는  크기는 크지가 않았습니다.
▼ 위로 올라가서 본 것으로 ㄱ자형식으로 꺽여져 들어간 모습이 보입니다. 위에는 돌들 채워지지 않았고 흙으로 채워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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