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읍성_02(남문과 남측성곽) 읍성(邑城)



하동읍성을 찾아간다 하면서 가보지를 못하다가 이번에 시간을 내어서 하동읍성을 찾아가보았습니다. 하동읍성의 경우 현재 행정구역으로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데 하동IC에서 내려 하동읍으로 가다가 고전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면 됩니다.

하동읍성의 경우 경남에 있는 읍성중 유일하게 산성으로 되어있으며 백과사전에서 찾아본 하동읍성의 관한 기록은 "고현성(古縣城)이라고도 한다. 해발 100m의 양경산(陽慶山)에 있는 성으로, 1417년(조선 태종 17)에 외성은 토성(土城), 내성은 석성(石城)으로 축성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 1,000여 명이 침입하여 불을 지르고 약탈하는 바람에 다소 훼손되었다. 1704년(숙종 30) 하동현이 현재의 하동읍인 진답면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하동 지역의 행정중심지 역할을 했다.


현이 옮겨가면서 폐성된 이후 석성 부분이 훼손되었고 성곽돌은 다른 곳으로 옮겨져 다른 용도로 사용된 탓에 석성 부분은 흔적만 남아 있으나 토성은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길이는 약 1.4km, 높이 1.2m, 너비 1∼2m 정도 남아 있으며 성내 면적은 12만 3017㎡ 가량 된다."로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고현성이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여러곳에 고현이라는 지명이 남아있습니다. 하동읍성뿐만 아니라 남해,거제,마산 등에서도 고현이라는 지명을 사용중인데 신라시대나 고려시대 또는 조선시대때 사용한 현의 경우 현이 옮겨갔을 경우 고현이라는 지명을 많이 사용중입니다.

하동읍성의 내용을 보면"《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1417년에 축성했는데 둘레 1,019자[尺], 높이 13자로, 성 안에 우물 5개, 연못 1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성은 높으나 협소하여 전시(戰時)에 방비하기가 힘들다”고 적혀 있다. 성곽의 윤곽이 비교적 뚜렷하게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큰 성이다. 하동군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2004년 5월 31일 사적 제453호로 지정되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다음지도에서 살펴본 하동읍성으로 잘 알 수 있는 지도입니다. 
현재 하동읍성의 경우 3개의 성문과 해자 등이 발굴되었으며 양마장이 발견되어 화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2003년부터 오는 2015년까지 국비 161억 6000만원, 도비 24억 6300만원, 군비 45억 7700만원 등 모두 232억원을 투자해 부지매입, 발굴조사, 성곽·객사복원, 주변정비 등에 나선다고 했는데 필자가 직접가보니 아직 복원은 하지 않고 있더군요.

▼ 하동읍성 복원 조감도로 오각형으로 된 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동군 고전면을 찾아가보니 하동읍성에 관한 안내문이 도로변에 있어서 찾아가기가 어렵지는 않더군요.
▼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지나갔던 곳을 나타내는 표지석이 있었는데 하동을 거쳐서 곤양현>진주>산청>삼가현>등을 거치게 되는데 곤양과 삼가를 가보니 백의종군로 표시석이 있더군요.
▼ 주성마을 표시판에 부착된 하동읍성
▼ 주성마을회관으로 마을회관 옆길을 따라서 올라가시면 됩니다.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기때문에 차를 타고 가신분은 차로 이동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주성마을회관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읍성의 성곽이 보입니다.
▼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면 남측성곽이 보이는데 하단부 3~4단 정도만 남아있더군요.
▼ 도로변 우측에서 본 하동읍성 남측성곽으로 위 사진의 성곽의 돌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오래된 나무 밑에 있는 성곽을 보니 오래전에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던 모습이 상상이 되더군요.
▼ 남문의 옹성이 보입니다.
▼ 경남발전연구원에서 1,2차 발굴조사를 했고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최근에 발굴조사를 했는데 남문지의 경우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했습니다.
▼ 남문지 옹성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이곳의 하동읍성 또한 남문이 주 출입문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 하동읍성 남문의 경우 발굴조사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보면 특이하게 남문에서 들어와서 직선으로 동선이 이어지지 않고 남문에서 들어와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동선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동선의 경우 읍성에서는 처음보는 것이었습니다. 왜성의 경우 이런식의 방식이 있는데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라고 하는데 이런식으로 된 것이 왜 우리나라 읍성에서 있었을까요?
▼ 하동읍성 남문지의 모습중 주 출입로를 표시한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경상문화재연구원 
▼ 위 사진에서 출입로중 남문을 지나서 출입하는 곳의 모습입니다.
▼ 위에서 본 사진으로 계단으로 된 부분이 보이는 것을 봐서 이곳의 경우 주 출입문으로 사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혼자서 출입하기에는 괜찮아보이지만 두명 이상이라면 힘들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 옹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외부 성돌의 경우 2~3단 정도만 남아있고 안에는 잡석들이 보입니다.
▼ 옹성의 경우 조선초기 연해읍성에서 볼 수 있는 축성방식임을 알 수 있는데 기단석의 경우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나무로 고정해놓았습니다.
▼ 옹성안에서 본 남측성곽으로 성곽의 돌들이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옹성안에는 작은 돌로 채운 협축식으로 되어져 있었습니다.
▼ 남측성곽부분의 모습으로 잘남아있는 남측성곽입니다. 남측성곽만 보고와서 그런지 몰라도 현재 남아있는 하동읍성의 성곽중 고목밑의 성곽과 이곳이 그래도 잘 남아있는 곳입니다.
▼ 남측성곽에서 서측성곽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사진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남측성곽의 경우 겨우 1~2단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복원을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복원이라고 보다 새롭게 만든다는 개념으로 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 남측성곽 앞 부분의 해자의 모습으로 남측성곽에서 거리가 되며 저렇게 가파른 부분에 과연 해자에 물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 그나마 잘 남아있는 성곽을 보면 잔돌끼움으로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사진에 보시는 것과 같이 군데 군데 부셔진 성돌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고 하단부의 경우 조선초기 읍성에 사용된 큰 돌이 아니고 장방형으로 된 돌들이 있는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네요.
▼ 남문지에서 바라본 하동읍성 남측성곽으로 군데 군데 무너진 부분들이 보입니다.
▼ 반대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것으로 남측성곽이 동측성곽으로 이어지는 곳입니다.
▼ 남측성곽을 보면 내외부에는 큰돌로 쌓고 내부에는 작은 돌들로 채운 협축식의 성곽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위 사진의 남측성곽위에서 찍은 사진으로 아래측을 보았을때 일정부분 경사기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보이는 마을에는 아직 주민들이 살고있는데 앞으로 복원공사가 시작되면 이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이는 마을에 객사등이 복원될 것으로 보입니다.
▼ 남문지 옆에는 자연적인 도랑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있었다면 수구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남문지 옹성 앞에 있는 곳으로 저곳에 성곽에 사용된 돌들이 보이던데 저곳은 어떤 용도였는지 모르겠습니다.
▼ 남문 성벽에서 바라보니 일정한 간격을 둔 돌들이 보이는데 어떤 곳인지 알 수가 없더군요.
▼ 처음 왔던 것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 가정집의 담인데 하단부의 경우 성곽에 사용된 돌처럼 조금은 큰 돌이 보이더군요.
▼ 위 사진의 맞은편에 있는곳으로 하단부에 보이지 않지만 성곽부분이 보이는 것 같더군요.  
▼ 축대의 축성방식을 알 수 있는 사진으로 하동읍성의 성곽과는 상관이 없어보입니다.
▼ 시간이 없어서 남문지와 남측성곽만 보고 되돌아 왔습니다. 하동IC 근처에서 본 주교천의 모습입니다.

하동읍성의 경우 2015년까지 복원을 한다고 하는데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복원하기전에 시간이 나면 다시 가보아서 서측과 동측성곽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하얀등대 2010/06/05 18:27 # 삭제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평소 가고 싶던 곳이었습니다.
  • 팬저 2010/06/08 12:06 #

    저도 이번에 처음 가보았습니다. 하동읍성 지킴이인데도 말이죠.. ㅋㅋ 다음에 시간이 나면 다시 가보고 올리도록 할께요.
  • 부산촌놈 2010/06/05 23:24 #

    외성이 토성이라... 그러면 외적의 침입 시에 어떤 형태의 전술을 사용했는지 궁금하군요.
  • 팬저 2010/06/08 12:06 #

    외성이 토성은 아니고 외성은 없습니다. 하동읍성의 경우 석성입니다. 아무래도 남측 성곽의 해자부분을 보고 이야기 하신것 같네요.
  • 유진우 2010/06/07 15:39 # 삭제

    외성이라기 보다는 명국의 축성방식인 양마장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양마장은 유사시 성밖 주민들이 임시로 대피하는 곳으로 본성 앞에 축성한 일종의 대피소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남원성 전투 당시 양마장이 축성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일단 담장형태로 내성이 없던 조선의 평지읍성에서 양마장은 완전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완충지대 역할은 한 셈입니다.
  • 팬저 2010/06/08 12:07 #

    양마장의 경우 하동읍성에서 처음으로 발굴조사 되었습니다.
  • 2010/06/09 18:25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팬저 2010/06/10 09:31 #

    수원고읍성에 관하여는 듣기는 듣었습니다. 독산성의 포스팅을 하면서 독산성 앞에 있는 읍성 즉 수원고읍성에 관하여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수원고읍성에 관하여는 먼저 지표조사가 이루어지고나서 발굴조사후 복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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