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5_다시 찾은 고창읍성_01(진서루_서문) 읍성(邑城)



1872년 지방지에서 본 고창읍성의 모습으로 고창읍성의 경우 평산성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지도를 보면 고창읍성의 형태가 어느 고지도 보다 고창읍성의 성곽과 관아가 잘 나타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여장과 치성도 잘 표기되어 있어서 고창읍성의 복원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그려져 있어 고창읍성을 복원하는데 많은 참조가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근 2년여만에 고창읍성을 다시 찾았습니다. 고창읍성의 북문으로 다른 읍성의 경우 남문이 정문인 것에 비해 고창읍성의 경우 북문이 정문으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 2년만에 찾아서 그런지 공적비가 옮겨간 느낌을 받을 정도로 낯설었습니다.
▼ 북벽의 경우 여장과 미석등이 잘 보여주고 있고 여장안에 근총안과 원총안의 모습이 잘보입니다.
▼ 북측 옹성안의 모습으로 옹성안에도 근총안과 원총안이 있으며 물이 배출하는 누혈의 모습이 보입니다. 여느 읍성보다 높이가 낮게 보였는데(4미터 여장의 높이까지 하면 5미터 정도) 이정도의 높이라면 적이 접근하기가 쉬울 것으로 보입니다. 
▼ 저번에 방문했을때 서측 성벽과 서문인 진서루를 정비하고 있어서 가보지를 못했어 이번에는 서측방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간간히 흘러나오는 음악의 정체는 이런 가로등에 스피커를 달아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서비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 북서측 성곽을 가다 아래 북문을 향해 내려다 본 모습으로 북문의 경우 동서측의 높이보다 낮게 되어있어며 북서측의 성곽의 높이는 5미터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 북서측 성벽을 가다가 내려다 본 고창읍성의 모습
▼ 고창읍성의 경우 야간 관광객을 위한 조명을 비추어서 운치를 더합니다. 군데 군데 보이는 조명시설
▼ 성벽의 회각로의 모습으로 성벽이 있는 곳에는 조금 높고 다른 곳은 낮게 형성이 되어져 있습니다.
▼ 성벽 밖에는 조금 경사가 진 언덕이 보였습니다.
▼ 조금 가자 회각로의 폭이 좁아짐을 알 수 있습니다. 폭의 경우 성인남자 2명이 마주보며 오고 가기에는 상당히 불편하게 보였습니다.
▼ 진서루의 옹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 진서루의 옹성의 경우 출입구의 경우 좌측에서 들어오게 되어있으며 동문의 경우 우측에서 들어오는 것에 비해 정 반대로 형성이 되어져 있더군요. 이유가 뭘까요?
▼ 진서루에 도착하자 여장의 모습이 보입니다.
▼ 옹성안의 회각로의 경우 우측이 높고 좌측이 낮게 높낮이가 형성이 되어져 있었습니다.
▼ 위 사진에서는 알 수 없었지만 아래 사진을 보면 회각로의 높낮이가 상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 진서루 옆 옹성의 경우도 미장과 총안이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누혈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 옹성안의 경우 동문의 옹성과는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틀린 느낌을 받네요. 아무래도 상단의 돌이 작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 옹성에서 바라본 서측성곽의 모습으로 지나가는 분들의 모습에서 성곽의 높이를 측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옹성에서 바라본 진서루의 모습으로 고창읍성의 누각의 경우 특이한 것이 누각에 모두 판문이 달려 있어 실질적이고 전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의 경우 저 판문이 없다 보니 경치를 감상하는 누각의 느낌과는 다릅니다.
▼ 옹성안의 총안의 모습으로 총안이 너무 작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 정도라면 과연 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 서문 옹성에서 바라본 고창읍내의 모습입니다.
▼ 진서루에서 서측 치성을 바라본 모습으로 서문의 경우 치성과 달리 평지에 가까운 곳입니다.
▼ 판문에 사람이 있는데 저기에서 활을 쏜다면 상체만 노출 된 상태라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옹성안으로 들어온 적의 경우 옹성과 누각에서 쏟아지는 활이나 돌들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성문에 적의 화공공격에 대비해서 철엽을 두르는데 고창읍성 성문의 경우 이런 경우가 없더군요.
▼ 옹성안의 모습으로 보면 하단의 경우 그렇게 큰돌이 자리잡고는 있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복원을 하는 과정에서 놓친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성문 옆에 있는 돌들은 그나마 조금 큰돌이 자리잡고 있고 옹성의 축성방식은 잔돌끼움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성문 누각 초석의 경우 자연스러운 멋을 더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 서측담장 아래측에 수구의 모습이 보입니다.
▼ 옹성의 돌출된 부분과 체성의 모습에 담장이가 붙어 있어서 더 고풍스러운 모습을 더합니다.
▼ 옹성안의 총안의 모습과 누혈로 내려가는 배수구의 모습이 보입니다.
▼ 옹성안으로 들어오는 적의 경우 소위 말해서 독안에 든쥐가 될 것입니다. 옹성부분을 보면 조선초기 방식의 축성방식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최근에 복원을 하는 과정에서 저렇게 축성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조선초기 읍성의 경우 하단부의 돌들이 비터에 가까운 돌들을 배치하고 상단으로 가면서 작아지는 것에 비해 중기 이후는 거의 같은 크기의 돌들로 축성하였는데 고창읍성의 경우 중기방식으로 축성한 것 같았습니다.
▼ 옹성에서 진서루 안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보통 이 앞에 협문이 있는데 진서루에는 없더군요. 어느것이 정답인지 모르겠네요.
▼ 진서루 안에서 본 판문의 모습으로 두께의 경우 어느정도 되어 화살의 경우 철판을 달았다면 뚫기가 힘들어 보이고 조총의 경우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진서루에서 본 옹성안의 모습으로 옹성안에 겨우 20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찰 것 같습니다.
▼ 편액
▼ 진서루에서 본 옹성의 축성방식을 알 수 있는데 성돌의 경우 장방형의 돌들로 축성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방형의 돌들로 축성하였다면 장방형쌓기인데 군데 군데 잔돌을 끼웠는데 아... 이런 방식을 잔돌끼움 방식이라고 불러야 하나 장방형 쌓기라고 불러야 하나....
▼ 진서루의 뒷 모습으로 진서루 뒤에도 판문의 모습이 보입니다.
▼ 성문을 뒤에서 본 모습
▼ 진서루 뒷편의 모습으로 전투가 벌어진다면 성문 바로 뒤에가 가장 바쁘게 움직이겠죠.
▼ 초석의 경우 막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 군데 군데 무인 화재경보장치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 목조건물이다 보니 아무래도 화재에 취약하니 이런 무인 화재경보장치가 필수인 것 같습니다.
▼ 성벽을 오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런 계단이 필수이겠죠.
▼ 고창읍성의 경우 전면은 석축이고 후면은 흙으로 된 내탁방식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 흙으로 경사가 완만하게 조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고창읍성 내부의 물들을 밖으로 내어보내는 수구의 모습
고창읍성의 경우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읍성을 대표한다는 읍성이지만 복원을 하면서 여러군데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정도로 남아있는 읍성이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덧글

  • 부산촌놈 2010/06/20 22:32 #

    해미읍성, 낙안읍성 등등 뭐 남은 건 별로 없네요...

    씁쓸합니다.

    그나저나 북서측 성곽에서 찍으신 사진에 청기와를 얹은 건물이 보이네요.

    생김새가 민가 같진 않고 말입니다, ㅎㅎ.

  • 팬저 2010/06/20 23:13 #

    혜미읍성이던 낙안읍성이던 모두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부분 아니면 많은 부분이 복원을 했다고 봐야합니다. 청기와는 어디에 있죠....
  • 딴따라 2012/08/24 17:34 #

    4번째 사진에 제시하신 북벽 사진의 경우, 좌측과 우측부분에서 성돌을 쌓은 수준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네요. 좌측이 진짜고 우측은 무너진걸 현대에 새로 쌓은 거겠죠?
  • 팬저 2012/08/24 18:15 #

    보통 하단부는 예전부터 있었고 상단부는 근대에 축성하는 것인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상부의 경우 근대에 축성한 것이 맞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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