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_06(다시찾은 고창읍성_02 객사_모양지관) 읍성(邑城)



진서루에서 나와 동문으로 향하지 않고 객사가 있는 방향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사진상 보시면 남측성곽에서 서측성곽까지의 회각로는 상당히 가파르게 형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고창읍성의 경우 낙안읍성과 달리 읍성안에 민가들이 형성이 되어있지 않는 것이 특징이며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고창읍성안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나 있습니다.
▼ 군데 군데 청솔모가 뛰어나와 다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 고창읍성 객사인 모양지관에 가까이 왔습니다. 저번에 왔을때 객사를 보지 못했어 이번에 다시 찾아왔을때 객사건물 보려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고창읍성 객사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보이는 길로 들어와야 하는데 외삼문이 있었다면 길이 마주치는 부분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저길을 따라 올라오면 만나는 모양지관이 보이는데 계단을 넘으면 내삼문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고창읍성의 객사의 모습으로 월대의 모습과 좌우익헌의 모습이 보이며 전면 4칸 측면 4칸입니다. 고창객사의 경우 1991년에 복원한 건물입니다.
▼ 객사의 경우 보통 동헌보다 높고 제일크고 화려한 건물입니다. 건물의 방향은 주산을 등지고 남쪽을 향합니다. 또 독자적인 영역을 나타내기 위해 담장으로 구분되는데 고창읍성의 경우 복원을 하면서 안한 것인지는 몰라도 담장이 없습니다.  
▼ 고창객사 안내판
▼ 모양지관의 편액을 볼 수 있는데 옛부터 객사의 당호의 경우 그 고을의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고창을 모양 고을이라 불리었다고 하여 모양지관이며 나주의 경우 나주의 옛이름인 금성을 부쳐 금성관이라고 합니다. 객사의 당호가 고을의 명칭을 사용했다면 동헌의 경우 시정방침을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백성을 사랑하여 가까이 대한다는 뜻의 근민헌이나 고을을 평안하게 잘 다스린다는 뜻 평근당이 두루 사용되었으며 고창읍성 동헌의 경우 평근당이라는 당호를 사용합니다.
▼ 수령이 북쪽을 향하여 삭망례를 하고 있습니다.  옆에 아전이 서있네요. 객사안의 공간을 전청이라고 하며 이곳은 신성공간입니다.
▼ 전패가 왜 중앙에 있지 않고 좌측으로 치우쳐서 있는지 모르겠네요. 백과사전에 전패에 관하여 살펴보면 "조선시대 지방관청의 객사에 왕의 초상을 대신하여 봉안하던 목패(木牌)입니다. 지방에 출장한 관원이나 수령이 여기에 배례하였으며 만일 훼손하거나 모독하는 경우에는 왕에 대한 불경죄로 취급되어 본인은 물론 수령 및 그 고을도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1661년(현종 2) 충주목에서 전패를 파손시킨 일이 생겨 목이 현으로 강등되고 충홍도가 충공도로 개칭된 일이 있고, 1778년(정조 2) 성진과 길주에서 같은 사건이 생겨 성진첨사와 길주부사가 파면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후에는 처벌규정을 완화하여 본인만을 처벌하였다고 합니다."

▼ 위 안내판에도 적혀있는 것 처럼 수령의 경우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를 올리며 임금에게 충성서약을 합니다. 한달에 두번만 한 것은 아니고 고을을 떠났다가 돌아올 때에도 객사에 배례하는 것이 중요하였으며 부임시에 수령이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객사입니다.
▼ 전청의 마루는 우물마루모양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 아전 뒤에 궐퍠가 보입니다. 조선시대때 임금을 상징한 '闕'자를 새긴 위패모양의 나무 패로 각 고을의 객사에 두는 것은 국왕을 상징함니다.
▼ 객사안에 화려한 단청이 그려져 있네요.
▼ 객사의 초석의 경우 자연스러운 멋을 주고 있네요.
▼ 우익헌의 초석의 경우 상당히 넓은 막돌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 우익헌에 있는 방으로 이곳에는 문신들이 사용했습니다. 객사를 보면 조선에서 선비를 중요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방위각에서 동측이 서측보다 높다고 여겼는데 우익헌의 경우 보통 동측에 있습니다.
▼ 우익헌의 툇마루
▼ 우익헌에는 방보다 넓은 공간의 마루가 있는데 이런 공간을 만든 것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 익헌 뒤의 굴뚝의 모습
▼ 사신이나 여행객(일반 백성은 들어오기도 힘이들겠죠. 아무래도 공무수행하는 사람들만이 되겠죠)들의 여행피로를 풀어주는 따뜻한 아궁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 서익헌에서도 아궁이를 보았는데 원래 모양인지 한번씩 사용하는지는 몰라도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더군요.
▼ 서익헌의 천정의 모습으로 화려한 단청의 모습과 함께 대들보의 모습이 보입니다.
▼ 동익헌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공간인 마루
▼ 객사의 경우 참으로 특이한 형식의 건물입니다. 하나인것 같으면서 세개의 건물이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 가운데 있는 전청과 좌측의 익헌사이에는 이런식으로 연결이 되어져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3개이면서 하나인 건물이 바로 객사입니다. 물론 익헌과 전청의 경우 독자적인 건물은 아닙니다.
▼ 고창객사 초익공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창읍성의 경우 다음에 소개될 나주읍성 금성관에 비해 규모가 작은편에 속합니다.


덧글

  • 부산촌놈 2010/06/22 17:19 #

    역시 객사는 화려하고 웅장하군요.

    금성관 포스팅도 기대하겠습니다^^
  • 팬저 2010/06/22 18:01 #

    ㅎㅎ 감사합니다. 시간이 나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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