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_살수대첩이 있었던 곳에 자리잡은 안주읍성 읍성(邑城)



북한의 읍성시리즈 세번째로 평안도에 있는 안주읍성입니다. 북한에서 사용하는 행정구역을 보면 평안남도가 되겠으며 청천강을 낀 읍성입니다. 안주목의 경우 평양위에 있는데 평안북도와 접경인 구역입니다.

▼ 저번 북한의 읍성시리즈 2번째인 영변읍성과도 가까이 있으며 영변읍성만큼이나 철옹성을 자랑하는 읍성이 안주읍성입니다.
▼ 광여도에서 본 안주읍성으로 청천강을 끼고 읍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2중으로 된 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주읍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995년(고려성종 14)에 고려의 명장 서희가 축성한 것이며 조선초기에 외성을 축성하고 그 뒤에 1607년(선조 40)에 개축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도상에 보이는 신성(新城)의 경우 조선때(임진왜란이 끝난 후 개축하였음.. 임진왜란의 영향이 성곽의 개축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읍성 안에 군창이 있는데, 평양, 삼화, 용강, 강서, 삼등, 중화, 성천 등의 세조를 이곳에 모아 보관하였습니다. 읍성 안에는 상아, 이아, 삼아, 객사같은 관청 건물, 병영 건물인 병아, 향청과 향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변읍성의 경우도 성안에 향교가 자리잡고 있는데 비슷하네요. 삼남도의 경우 보통 읍성 바깥에 향교가 자리잡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 해동지도에서 본 안주읍성의 모습으로 그림상 우측에 있는 읍성이 신성(新城)입니다. 남문의 경우 옹성의 모습까지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북측의 경우 청천강을 해자로 삼아 천연적인 요새를 이루고 남쪽에는 남문의 옹성을 쌓고 동쪽에는 외성을 두름으로써 지형적인 단점을 극복하려 한것입니다. 청천강은 우리가 잘 아는 을지문덕장군의 살수대첩이 있었던 곳으로 청천의 옛이름이 살수입니다. 그림에 보이는 칠불도는 수나라 병사들이 강을 건너는 중을 보고 따라 건너다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섬이기도 한데 수나라 병사들을 꾀어서 승리하게 한 스님을 기려 칠불사라는 절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림상에 나오는 병영의 경우 평안도 병마절도사영이 있었던 곳임을 알려줍니다. 안주읍성의 경우 산을 끼면서 평지에 축성한 평산성의 구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지승지도에서 본 안주읍성의 모습으로 위 해동지도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여기서 잠깐 평안도에서 사용하는 안이 바로 이곳 안주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안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양에서 의주로 가는 의주대로 상의 요충지이기도 하다보니 안주를 점령하기 위한 전투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묘호란때인데 정묘호란 최초의 전투가 이곳 안주읍성에서 벌어졌습니다. 1627년 1월20일 심양을 떠난 후금군 3만여 명이 8일 만에 안주읍성에 도착하여 조선군 3000명과 전투가 벌어졌지만 병력의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안주읍성은 점령당하고 맙니다.
▼ 1872년 지방지에서 본 안주읍성으로 위 광여도,해동지도,지승지도와 달리 3개로 된 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영변읍성의 경우도 성곽을 하나씩 하나씩 보태어 3개의 성곽으로 이루어진 철옹성이었는데 안주읍성의 경우도 비슷하네요. 내성이 가장 오래된 석축의 성곽으로서 기록에 의하면 둘레가 3,043보(약 5,500m), 높이가 13척(약 4m)이라고 하는데 성벽의 높이는 작지만 그림상에 나오는 자연지형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실제 높이는 4미터보다 더 높았보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내성 성벽의 높이는 평지에서 7∼8m, 경사지에서  4∼5m라고 합니다. 오른쪽 위의 성곽은 신성(新城)이라고 불리며, 둘레 410보(약 700m)의 석축이다. 오른쪽의 성곽은 외성으로서 토축이며, 둘레는 약 1,008보(약 1,800m)라고 합니다.
▼ 안주읍성은 사방에 홍예문을 내고 문루를 세운 성문을 세우고 여러 방어시설을 설치했습니다. 조선 후기에 쓴 《안주읍지》에 그 기록이 있는데 내성에는 감시초소 17개, 성가퀴 1,014개, 대문 4개, 수구문 4개가 있고, 외성에는 감시초소 5개, 대문 4개, 성가퀴 421개, 수구문 1개가 있다고 하였는데 그림상을 보면 여장을 제외하고는 비슷합니다. 전망 좋은 봉우리에는 장대들이 서 있는데 내성의 서장대와 남장대, 신성의 동장대 등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북한이라 갈 수가 없네요. 아래 그림에도 동장대의 모습이 보입니다. 신성의 경우 자연적으로 조성된 산을 끼로 성곽을 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외성의 경우 토성이라고 하는데 그림상으로 봐서는 토성이 아니고 석성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안주읍성의 성문들은 돌축대를 쌓고 그 중심에 홍예문길을 냈으며 축대 위에는 문루를 세웠다고 합니다. 안주읍성의 성문들은 대부분 조선 말기까지 잘 남아 있었는데 일제가  강점한 후 성문루들을 모조리 부수고 성벽도 헐어버렸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림상에 보이는 저 정도의 읍성과 관아 건물이라면 엄청난 것인데 일제에 의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고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외성 동문의 홍예문길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림상 아래에 있는 성문입니다.
▼ 그림상을 보면 상당히 많은 못이 보이는데 곳곳에 큰 못을 파고 물을 저장하였었는데 이는 적의 화공공격시 화재를 제압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못은 칠성못인데 칠성못 가운데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듯 작은 흙섬을 7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림상 좌측 가장 아래부분에 있는 것입니다. 그림상에 보이는 성문의 경우 진안문인지(글씨가 작아서 안보입니다.)...  성문 누각이 2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양측에 적대가 보이는데 이는 옹성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 위에서 이야기한 칠성지가 보입니다. 칠성지 주위로 성문이 2개가 있는데 글씨가 작아서 잘모르겠네요. 다음에 알아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내성의 남측성곽을 보니 천연적인 바위위에 성벽을 쌓고 치성을 축성한 것이 보입니다. 내성을 공격하는 것은 외성을 공격하는 것보다 힘들어 보입니다.
▼ 내성안에는 병영과 함께 큰 그림으로 그려진 누각이 보이는데 백상루입니다. 백상루는 안주읍성 서북쪽에 서있는 장대인데 고려때 처음 세워진 백상루는 조선시기 1753년 읍성의 면모가 완성되면서 고쳐 지어졌다고 합니다. 관서8경의 하나로 "관서제일루"라며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며 내려왔습니다. 백상루란 여기서 백 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다 볼 수 있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 각종 관아 건물들이 빼곳이 들어차 있으며 백상루 옆 성문의 경우 2층 누각으로 되어져 있네요.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안주읍성의 성문의 경우 모두 홍예문이라고 합니다.
▼ 현재 북한에 있는 안주읍성의 경우 대부분 무너져 내려버려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백상루를 구글 위성지도에서 보았는데요. 청천강변에 놓여져 있는데 6.25 전쟁때 소실되어 원래의 위치에서 4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다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백상루 뒷편에 위에서 이야기한 칠성지가 있는데 이부분도 예전의 모습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위성사진으로 보았을때 안주읍성의 경우 강을 끼고 조금 높은 언덕을 이용하여 축성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백상루의 모습과 안주읍성 성곽의 모습으로 성벽의 경우 고구려때 축성한 성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백상루에 관한 백과사전을 보면 "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안주읍성 서북쪽에 있는 장대(將臺)로, 관서팔경의 하나이다. 청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다. 백상루라는 이름은 백 가지 절경을 볼 수 있는 누각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전한다.


고려 충숙왕 이전에 창건되어 읍성이 완성되던 1753년(영조 29)에 고치고 1952년에 멸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불탄 것을 1977년에 서쪽으로 약 400m 옮겨 복구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본채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곁채를 직각으로 붙여지어 평면은 T형의 누정이다. 몸체는 하나이지만 지붕은 사방으로 박공을 내어 마치 여러 건물을 잇대어 지은 듯한 느낌을 준다.


둥근 주춧돌에 높이 2m 되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누마루를 놓은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마루 밑기둥에 이어 마루 위에 흘림기둥을 세우고 건물의 중앙에는 기둥을 세우지 않음으로써 중심을 강조했다. 공포는 2익공으로 짜고 연꽃 봉오리 조각으로 장식했다. 보 머리는 용 모양으로 조각하고 기둥과 서까래 등에는 모로단청을 했다.


가구 구조는 본채가 2고주 7량가, 곁채는 무고주 5량가로, 지붕이 자연스럽게 직각으로 만난다. 지붕의 용마루는 본채를 조금 높게 하고 곁채를 조금 낮추어서 직각으로 만나게 하였다. 마루바닥도 곁채는 본채보다 낮게 깔았다. 전체 둘레에 계자각 난간을 설치하고 누마루로 오르내리는 계단은 본채의 중간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고구려의 석성 안주성은 611년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을 치른 곳이기도 하고 고려 때 외적의 침입시 전투를 지휘하는 중요한 장대였다. 진주 촉석루와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 누각이다."

▼ 위 사진보다 이전의 사진으로 1910년대의 백상루의 모습으로 언덕위에 있는데 저정도라면 적의 동태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현재의 백상루와 비교해보니 위 사진에 나오는 위치와 높이는 비슷하게 보입니다.
▼ 안주읍성의 체성으로 사진이 작아서 알아보기는 힘이들지만 내성의 체성으로 보입니다. 높이는 7미터정도 보이며 고구려축성방식임을 알 것 같습니다.
▼ 아래에 있는 안주읍성의 체성의 경우 동측에 있는 체성이라고 하는데 위 성벽과 달리 돌들이 정방향으로 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1607년에 축성한 신성의 체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위 체성의 하단부의 모습입니다. 성벽의 아랫부분은 장대석 기초와 그 위에 놓인 3~4단의 계단모양 굽도리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정보가 제한이 있다보니 알 수가 없네요.
저번에 알아본 영변읍성보다는 읍성을 방어하기가 힘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정도의 읍성이라면 방어상 상당히 유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지출처 : 백과사전, 서울대학교 규장각,
내용참고 : 백과사전, 서울대학교 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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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부산촌놈 2010/06/23 16:44 #

    정말 엄청난 규모로군요.

    역시 국방상 요지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성문이 상당히 많은데 성문이 많으면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얼핏 생각해보면 적의 공격력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 같아 좋아 보이긴 하는데 깊게 생각해보니 아군의 방어력도 분산되게 되네요;;

    그래도 다중성곽의 경우라면 확실히 문이 많기야 하겠군요.



  • 팬저 2010/06/23 21:02 #

    성문이 많다는 것은 방어상 아무래도 불리한데 저렇게 외성에 성문이 많은 것은 아무래도 읍성민의 통행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부산촌놈 2010/06/23 16:48 #

    그나저나 내성 남측 성곽의 세 치성은 그야말로 천혜의 방어 조건을 갖춘 곳이로군요.

    고구려인들이 먼저 축성한 것을 중축했다고 하셨죠?

    고구려인들이 성을 지을 땐 방어에 유리한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다더니 정말 그게 사실인 게 이제사 실감이 납니다.

  • 팬저 2010/06/23 21:01 #

    내성의 경우 고구려때 축성한 것입니다. 고구려의 경우 산에다 성곽을 축성하고 성벽을 높게 하였는데 안주읍성을 보면 그런 것이 보입니다.
  • 역사관심 2010/07/30 01:46 # 삭제

    고지도의 그림상으론 관청이 모두 '청기와'색이네요...멋질듯 진짜 저렇게 다시 복원하면...
    (국내에 청기와 쓴 복원건물은 전혀 없는듯...실제론 있었을텐데)
  • 팬저 2010/07/30 10:39 #

    청기와라.... 글쎄요.... 청기와는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에서 사용중이죠. 그래서 청기와 복원을 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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