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골왜성_04(흑염소가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지성(支城)_東曲輪) 왜성(倭城)



안골왜성 지성부분만 보고 하산을 해야했습니다. 풀들이 너무 많이 자란 것도 있고 웅천왜성탐방도 있고해서 안골왜성을 다시 찾을 것을 생각하고 내려왔습니다. 이 지성의 경우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측 곡륜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일본어로는 니시구루와 [にしくるわ(西曲輪)]라고 합니다.
▼ 내려오면서 본 부분으로 우측에 보이는 부분이 3지환으로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아래 안골왜성의 G부분으로 별로 안남아 있지만 군데 군데 돌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 부분을 유추할 수 있으며 나도 한때에는 안골왜성의 부분이야라는 항변처럼 들리더군요.
▼ 보이는 왼쪽부분의 부분이 2편에서 이야기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인 부분입니다. 서생포왜성이나 웅천왜성에서 본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와 차이가 나서 이부분이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부분이 아래로 쭉 이어져 원래 있었던 안골진성까지 연결이 됩니다. 다만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돌로 되어있는 것은 아니고 보이는 것과 같이 토성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아래 일러스트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안골왜성에서 파랑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성곽이 바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 즉 나성(羅城)입니다. 이는 육지에서 공격하는 조명연합군을 막기위한 방편으로 축성하였고 또 하나는 기존 조선군이 사용한 안골진성의 성곽을 이용하여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축성한 것이 안골왜성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특징입니다.

파랑색으로 표시한 것은 안골진성의 성곽추정도입니다. 이고 핑크색이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추정하는 안골진성의 추정도입니다.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하단 즉 바다부분은 정확한 흔적이 없어서인지 추정을 하지 않았던 것을 필자가 추정하는 것입니다. 안골진성의 성곽을 이용하여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쌓아 바다로 들어오는 조선수군의 공격을 막고자 한 것입니다. 이렇게 조성한 것은 안골포 전투가 임진왜란 당시 두번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보니 예방적 차원에서 더 더욱 이런 방법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 안골왜성을 내려오면서 본 신항만. 이제 신항만이 완전히 갖추어진다면 저기가 바다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것 같습니다.
▼ 다시 시간을 내어서 안골왜성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B지점이 아닌 A지점에서 올라가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 A지점으로 올라가면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이 계단으로 올라와야하는데 더 힘이 드는 것 같더군요.
▼ 원래 올라와서 좌측으로 가서 본환을 먼저 보고 나중에 B지점인 지성을 보았습니다만. 위에서 나온 A지점의 지성과 다른 점을 알기위해 B지점의 지성에 관하여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번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웅천왜성의 경우 저런 지성이 웅천왜성안에 없습니다. 주위에 자마왜성과 명동왜성이 지성의 역활을 합니다. 지성(支城)이라고 하면 본성의 보조적인 역활을 하는 성(城)을 이야기하는데 부산에 있는 자성대왜성과 같은 역활입니다. 본성을 모성이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골왜성의 경우 다른 곳의 왜성과 달리 한 곳에 본성과 지성이 함께 있습니다. 기장 죽성왜성의 경우도 안골왜성과 같이 본성과 지성이 함께 있더군요. 이렇게 지성과 본성이 함께 있으면 서로 유기적인 연락을 하고 위급상황시 협력또는 지원이 가능할 것입니다.
▼ 계단을 올라와서 좌측으로 가면 안골왜성 본성이 우측으로 가면 안골왜성 지성이 나오는데 올라가서 우측을 바라본 것으로 현재 사진으로는 지성부분을 파악하기가 힘이 듭니다.
▼ 조금 걸어가면 안골왜성의 지성부분이 보이는데 A지점의 지성과 다른 부분을 알게 되는데 첫째 높이가 A지점의 지성보다 조금 높다는 것이고 3지환과 지성부분의 폭이 너무 좁다는 것입니다. 지성인 이부분을 히가시구루와 [ひがしくるわ(東曲輪)]라 하네요.
▼ 많은 부분이 무너져 내려져 있고 성곽의 돌들이 무너져 내린 곳에는 흙들이 보입니다. 그래도 제법 남아있는 부분이 있는 곳에서는 왜성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왜성의 경우 편축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조선의 읍성과 달리 한쪽면에만 면석으로 채우는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조금 더 가까이 오자 군데 군데 무너져 내린 성곽의 돌들이 보입니다. 성돌 옆에 보이는 좁은 길목옆이 3지환의 성곽이 지나가는 곳으로 보시다시피 어른 기준으로 겨우 1명정도 지나갈 수 있는 곳입니다.
▼ 성곽의 돌들이 다 사라져 버려 이곳이 왜성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남아있는 부분을 기준으로 본다면 왜성의 성곽기울기가 비슷할 것 같습니다.
▼ 조금 지나가자 왜성의 흔적이 보입니다. 또 중간에 무덤이 보이는데 왜성을 방문하면 가장 많이 보는 것이 무덤인데 왜성의 경우 시도 기념물이다 보니 문화재로 묶혀만 있고 보수나 지표조사 등은 하지 않고 사유재산을 놓아두다 보니 이런 식의 무덤이 많이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기념물인데도 조사나 발굴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본인들이 와서 조사한 지표조사를 우리가 가져오는 형편입니다. 또 많은 문화재연구소가 있지만 지자체에서 실질적인 예산이 없고 입찰이 없다보니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입니다.  
▼ 조선의 성곽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돌출된 치성이 보입니다. 그런데 뒷편을 보면 한쪽의 성곽이 쭉이어져 있어서 치성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각루라는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횡시[요코야가카리(橫矢)]라고 불리는 일본의 치성이 있는데 이것을 이런 식으로 불러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네요.   
▼ 왜성의 특징을 잘나타내고 있으며 각이져 있는 곳에는 제법 큰 돌로 구성이 되어져 있고 높이는 3미터 정도 남아있었습니다.
▼ 측면에서 본 모습으로 전형적인 70도 정도의 경사를 보이고 있습니다. 안쪽의 경우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금 작은 돌로 마무리되어져 있습니다.
▼ 측면의 돌과 안쪽의 돌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차이를 한눈에 알 수 있고 전체적으로 잔돌끼움 방식의 성곽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요코야가카리(橫矢)라고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각루 형식으로 된 부분은 일단 다른 성곽보다 각이 진 부분에 돌출이 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아무래도 망루[야구라(櫓)]가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망루[야구라(櫓)]의 부분과 연결이 되어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으로 아래부분을 보면 성곽의 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조금 더 우측으로 가자 돌들이 군데 군데 이어져 있는데 이 부분이 육지방어를 위해 연결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부분으로 봤습니다. 육지측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는 가보지를 못해서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시간을 내어서 조사를 해보아서 다시 포스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3지환의 연결된 부분으로 일부 성곽의 돌들이 자리잡고 있더군요. 대부분 무너져 내려 알 수가 없습니다.
▼ 원래 있었던 성곽위에 흙이 덮여져서 저런 모양인지 처음 축성할때 저런 방식으로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만 아마 후자에 흙이 덮여져서 저런 식으로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 지성에서 육지방향으로 더 나오는 것으로 3지환으로 연결된 성곽인지 아니면 지성부분을 방어하기 위한 이시가키인지 잘모르겠지만 지성부분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추정했습니다.  
▼ 위의 사진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어느정도의 공간이 보이는데 이 부분이 출병을 위한 공간이거나 아니면 방어를 위한 1차 방어선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 아래측에 돌들이 보이는데 일직선상으로 연결이 되어져 있습니다. 이 돌들이 아래로 이어져 바닷가까지 내려가는데 이것이 바로 육지측 공격을 막기위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입니다.
▼ 안골왜성의 평면도로 기존의 안골진성의 평면도와 대비시켜 보았는데 안골진성의 경우 많은 부분이 사라져 버려서 서측 성곽과 남측성곽을 제외한 나머지는 추정하는 것입니다. 이점 이해하시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동측 지성의 경우 지도상에서 보면 L지점이 되겠고 L지점 앞에 있는 M지점의 경우 상당한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네요. L지점과 M지점사이에 있는 부분이 위 사진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 앞에도 일정한 크기의 돌들이 보이는데 일정한 높이로 올라오는 이시가키가 아닌가 생각을 하는데 너무 하단부만 있어서 정확한 용도는 잘 모르겠더군요.
▼ 히가시구루와 [ひがしくるわ(東曲輪)]앞부분으로 원래 있던 돌들이 무너져 내려버려 안측의 흙들이 많이 내려와 있습니다. 왜성의 경우 일본국내가 아니다보니 빨리 성곽을 쌓는 방법을 동원하기위해 협축방식이 아닌 편축방식으로 사용하여 자재인 돌을 절약하고 공기를 단축하기위해서 사용하다보니 앞에 있는 돌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저러한 현상이 벌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 위 사진에서 조금 더 동측으로 나온 지점으로 조그마한 성곽의 돌들이 보이는데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로 시작되는 모습입니다.
▼ 히가시구루와 [ひがしくるわ(東曲輪)]를 향해 다시 되돌아 갑니다. 여기에 있는 성곽의 경우는 그럭저럭 잘남아있습니다. 높이또한 2미터 정도되고 길이는 30여미터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 사람들이 통행이 많아서 무너져 내렸는지 아니면 무너져내린 틈을 사람들이 왕래를 하는지 몰라도 등산로와 같은 길이 생겨 이곳으로 다닐 수 있을 정도더군요.
▼ 왜성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성곽의 기울어진 모습. 왜성의 경우 석재의 가공정도에 따른 분류방법이 있는데 안골왜성의 경우는 우찌꼬미하기(打込はぎ)방식이라고 하네요. 우찍꼬미하기 방식의 경우 모서리를 가공하고 돌 사이 잡석을 끼워 쌓는 방식이라고 하고 많이들 사용했다고 합니다. 
▼ 무너져 내린 성곽위에 한가롭게 있는 흑염소의 모습들이 보입니다.
▼ 히가시구루와 [ひがしくるわ(東曲輪)] 성곽 상부를 올라오니 여러군데 위태롭게 성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지성의 혼마루[本丸 (ほんまる)]로 안골왜성의 경우 다른 왜성과 달리 지성부분이 한곳에 있다보니 본환과 함께 천수도 3개라고 하네요.
▼ 많은 부분의 돌들이 사라져 버렸지만 이곳에서 보니 왜성의 성곽의 기울기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 바닷가 쪽으로 된 부분인데 히가시구루와 [ひがしくるわ(東曲輪)]의 천수각이 있었던 곳입니다.
▼ 옆에서 사진을 찍어보니 생각보다 높이가 있고 성곽의 돌들도 잘 남아있었습니다.
▼ 우리들이 아는 일본에 있는 천수각 정도의 규모는 여기에서 나오지 않을 것 같고 3층 정도의 소천수각이 들어서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위 사진의 90도를 넘어서 본 소천수각의 하단부로 여기도 그럭저럭 잘 남아있더군요. 
▼ 소천수각의 경우 해안쪽으로 치우쳐져있는데 아무래도 이곳에서 보면 안골만에 출입하는 선박을 감시하고 육지를 감시하기 위해 좋은 위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 소천수각에서 안골왜성의 본성으로 가는 방향에서 본 것으로 여기에는 경사가 어느정도 되어 숨 가쁘게 올라와서 공격하려면 상당히 힘이들 것 같더군요.
▼ 이곳이 히가시구루와 [ひがしくるわ(東曲輪)]의 본환으로 적어도 여기에 100~200명 정도 수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 지성내에서 바라본 동측방향으로 거의 1단 정도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반대측을 보면 일부는 제대로 된 성곽이 있고 일부는 흙으로만 남아있기도 합니다. 
▼ 흑염소들이 안골왜성을 점령하여 지키고 있었습니다. 필자가 이쪽 방향으로 가면 저쪽으로 옮겨가고 저쪽 방향으로 가면 이쪽을 옮겨가면서 경계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흑염소가 있는 곳이 히가시구루와 [ひがしくるわ(東曲輪)]의 소천수각입니다.
▼ 성벽의 경우 사진과 같이 많이 무너져 내려서 원래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 안골왜성 지성에서 바라본 안골만의 모습으로 이곳 지성에서 보아도 안골만으로 출입하는 선박 모두를 감시할 수 있습니다.
안골왜성의 경우 지성이 두개가 아주 가까이있습니다. 지성에서 안골왜성 본성까지는 직선으로 200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남해선소왜성이나 기장 죽성왜성 등의 경우 지성이 있지만 안골왜성처럼 이렇게 가까이 있는 왜성은 드문 경우로 보입니다. 

 



덧글

  • 부산촌놈 2010/06/30 01:42 #

    본문에 나오는 곡륜과 나성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팬저 2010/06/30 01:57 #

    나성이란 만리장성처럼 성곽이 쭉이어져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노보리이시가키라는 말로 사용중인데 조선에 세운 왜성의 경우 이런 부분들이 많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들 무너져 내려버렸습니다. 지금 현재로 남아있는 것은 서생포왜성과 웅천왜성에 남아있는데 안골왜성에는 조금 남아있다고 봐야합니다. 곡륜은 성곽 내에 있는 일정 구획으로 나눈 구역입니다. 여기에 주둔지,택지 등을 나눕니다. 따라서 곡륜은 구역이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