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진성_01(동측성곽에서 남측성곽까지) 진성(鎭城)



가덕도의 경우 현재 부산시 강서구에 편입되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웅천현 소속이었습니다. 삼포왜란과 사량진왜변을 거치면서 조선조정에서는 웅천의 중요성과 함께 왜구를 막기위해 가덕도에 수군 진을 설치하는데 하나도 아닌 2개의 수군진을 설치합니다. 그중 하나가 가덕진성인데 1544년(중종39년)에 현재 천기동에 가덕진성을 세웁니다.
▼ 가덕진성의 경우 깊숙히 들어온 만과 앞에 있는 눌차도 덕분에 섬 전체가 자연제방속에 있는 느낌을 가짐으로 수군기지로서는 상당히 좋은 여건 속에 있습니다. 또 동측으로는 다대진과 서측으로는 안골진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남측으로는 청천진을 두고 있는 곳이며 조선시대 수군 최전방 기지입니다.
▼ 1872년 지방지를 보면 가덕진에 전선2척, 병선 2척, 사후선 4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만이 형성이 되어져 있는데 부족하여 선소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 보입니다. 남문을 통한 길이 있는데 천성진성까지 연결이 됩니다.
▼ 가덕진성의 경우 성문이 4개가 있으며 동문과 남문이 주출입문입니다. 객사는 남문옆에 동헌은 북문옆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에 누각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동문옆과 선소사이에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명이 어변정인데 선소앞에 있는 건물에 부착하는 명칭인 것 같습니다. 다른 곳의 진성에도 이렇게 붙여져 있더군요. 어변정앞에 있는 비석은 척화비입니다. 그러니까 1872년 지방지를 그릴때에는 선소앞에 있다가 이제 천가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현재의 가덕진성과 천가동의 모습으로 이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진성과 바다는 상당히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정도 거리라면 진성보다는 읍성과 같은 모습이라 그동안 바다를 매립했을 것으로 보고 바다매립을 추정하여 색상으로 표시하고 선소를 넣어보았습니다. 선소의 경우 어디까지나 추정임을 알려드립니다.
필자가 가덕진성 지표조사후 작성한 가덕진성의 성곽 평면도입니다. 4대문 중 3대문은 알겠으나 서문의 경우 잘 모르겠더군요. 나머지 체성의 경우 거의 대부분 1~3단 이상씩은 남아있어서 성곽 평면도를 그리는 것은 쉬웠습니다. 어떤 곳은 높이도 5미터 이상되던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치성으로 추정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부분에 관해서는 문화재연구원에서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더군요. 또한 해자의 경우 마찬가지로 일부 남아있고 일부분 골목으로 사용중이었는데 이부분도 정밀한 조사가 있었으면 합니다.

평면도를 보면 가덕진성의 경우 북측으로 길쭉한 평지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성곽임을 알 수 있습니다. 4대문이 있고 도로 또한 4대문을 중심으로 형성이 되어져 있습니다. 웅천읍성에서 본 성곽의 평면도와 비슷함을 알았습니다. 성문의 경우 주츨입문은 동문이고 남문이 부수적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더군요. 보통 남문이 주출입문인데 가덕진성의 경우 남측에 바다가 없고 동측에 바다가 있어서 그곳으로 가기위해서는 동측문을 이용해야 하기때문입니다. 

옹성의 경우 남문옹성은 조금 남아있으나 동문과 북문의 경우는 옹성은 없고 민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민가들의 담을 기준으로 보면 옹성이 연결되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문의 경우도 옹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흔적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 고지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덕문중학교 강당으로 사용중인 광덕관이 객사터로 추정이 되며 덕문중학교 교실 앞 운동장 일부분이 동헌터로 추정이 됩니다.  파랑색으로 칠해진 곳은 그래도 일부(1~7단) 남아있는 체성을 나타낸 것이고 하늘색은 흔적이 없는 곳의 체성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 천가동사무소의 모습으로 좌측에 천가초등학교가 있는데 초등학교서 부터 성곽을 찾기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거의 지표조사와 마찬가지로 성곽을 찾았습니다.
▼ 천가동에 있는 가덕도 안내판으로 신항의 모습과 거제도 가덕도 및 거가대교의 모습이 보이는데 신항위에 안골포의 모습이 보입니다.
▼ 천가초등학교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위 1872년 고지도에서 본 척화비입니다. 1871년 신미양요 때문으로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입니다. 척화비의 경우 읍성이나 진성 등 주요한 곳에 설치를 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선소에 원래 세워진 것이 이곳 천가초등학교까지 오게 되었네요. 
▼ 척화비 안내판
▼ 척화비 옆에는 가덕진성의 만호비 3개가 있었습니다.귀부들은 보이지 않고 그냥 두었던 것 같은데 척화비의 경우 1872년 지방지 기군으로 보았을때 선소 앞인데 천가초등학교로 온 것으로 봐서 만호비 또한 동문 옆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것 같습니다.  
▼ 천가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모습
▼ 병설유치원 맞은편에 드디어 가덕진성의 성곽을 만났습니다. 내측이라 그런지 성곽의 돌들은 작았는데 학교 담장으로 사용중이었습니다. 이 정도 크기라면 성곽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체성의 내측이 맞더군요.
▼ 그 바로 옆에 사택으로 보였는데 아무래도 가덕도가 섬이라는 특수성때문에 이런 사택이 필요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도로가 놓여진 섬 아닌 섬이다 보니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 교문 바로 뒤에 상당히 오래된 나무가 있었는데 적어도 300년이상 되어 보였는데 정확한 수령은 알지 못합니다.
▼ 사택을 뒤로 하고 쭉이어져 있는 성곽의 체성부분인데 이것으로 봐서 가덕진성의 경우 협축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나무가 너무 많이 우거져서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치성으로 봤습니다. 조금 연결이 되어져 튀어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것을 근거로 치성으로 보는 것입니다.
▼ 이제 천가초등학교 운동장쪽으로 나왔는데 여기 또한 낮지만 성곽이 연결이 되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보니까 높이는 대략 50센치 정도 되어보입니다.
▼ 천가초등학교의 모습으로 전형적인 초등학교의 모습인데 이순신장군의 동상은 있었지만 가덕진성에 관한 이야기는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천가초등학교의 경우 1931년도에 세워졌다고 하네요. 그동안 가본 읍성의 경우 보통 1910년 이전이어서 개교가 보통 100년이 되거나 넘었는데 천가초등학교의 경우 1931년에 세워지다보니 20여년 늦게 세웠졌습니다. 그때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가덕진성의 경우 더 잘 남아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본 성곽의 체성부분으로 군데 군데 조금은 무너져 내렸지만 그래도 잘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 후문 옆에 있는 체성부분으로 아무래도 후문을 막아놓아서 그런지 이곳으로 출입을 많이해서 그런지 조금은 사라지고 없네요.
▼ 후문 옆 체성으로 후문의 경우는 남측 성곽이 됩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또한 체성이 남아있게 된 것은 천가초등학교의 담으로 사용하면서 나무로 만든 방풍림 덕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 정도라면 누구나 무슨 성곽의 체성이냐? 그냥 담장 아니냐? 라고 이야기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들은 성곽 체성중 안에 체우는 잡석들과 같은 크기라 그런 것입니다.
▼ 천가초등학교 간이 소각장을 향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벌써 위 사진에 나오는 체성의 돌과 비교하니 크기 차이가 다릅니다.
▼ 소각장 부분의 경우 오래전부터 이용되다 보니 상당히 탄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 소각장에서 후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니 큰 규모의 돌들이 보입니다.
▼ 후문 옆부분으로 여기 성곽의 경우 후문을 낸다고 사라지고 없습니다.  
▼ 후문 옆의 모습으로 이제 이렇게 보니 성곽의 모습이 확연히 들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4단 정도 남아있는 것이 보입니다.
▼ 돌의 경우도 다듬지 않고 자연스러운 돌을 사용했으며 잔돌끼움 방식을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다시 후문으로 왔는데 풀이 많이 자라서 알 수 없지만 틈 사이로 보이는 돌이 작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소각장 옆에 있는 성곽의 체성부분으로 이부분은 남측성곽입니다.
▼ 조금 밖으로 걸어나와 보이는 덕문중학교 방향으로 걸어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길도 없고 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망설였습니다.
▼ 그러다가 아래 사진에 나오는 이길을 따라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문뜻보니 "어! 이상하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들이 가지런히 쭉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 그리고 위의 밭보다 조금 아래측에 있고 일정한 폭을 가지고 있으며 돌들이 있다. 그래서 든 것이 "혹! 해자가 아닐까?" 였습니다.
▼ 조금 위로 올라가니 해자가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습니다. 폭도 나오고 높이가 있고
▼ 또 해자를 이루는 돌들이 아래측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체성과의 거리도 20미터가 됩니다. 이정도면 충분한 해자까지와의 거리가 되고 흙 아래부분에 해자부분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지도에서 본 해자의 위치입니다. 천가초등학교의 담장인 체성과의 거리는 20미터로 해자까지의 거리도 비슷하고 폭도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 이제 겨우 남은 남문의 옹성입니다. 겨우 3단 정도 남아있는데 바깥부분은 상당히 큰 돌로 쌓고 안측은 잡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 그래도 옹성의 흔적은 느낄수 있을 정도로 남문을 향해 삥 둘려져 있습니다.
▼ 옹성이 이상하게 계단식으로 둘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문지 부근에서 동측성곽을 따라오면서 남문지까지 와 봤습니다. 2편에서는 남측성곽에서 서측성곽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덕문중학교의 경우 1947년도에 개교했다고 하는데 그럼 이전에 있었던 객사나 동헌의 경우 남아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덧글

  • 부산촌놈 2010/07/06 17:24 #

    척화비 보니까 많이 안타까운 생각이 드네요...

    더 빨리 개화를 시도했다면 진성은 그대로 남아 있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개방을 늦게 한 대가로 저렇게 척화비만 덩그라니 살아남게 된 걸까요?
  • 팬저 2010/07/06 17:42 #

    글쎄요. 척화비 이전인 18세기에 개방화를 가져가야 했었는데.... 19세기말에 벌써 무기들이 우리와 비교가 안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외국에서 조선에 개방 압력을 넣었고 그것을 거부하면서 척화비를 세운 것이죠. 쉽게 말해서 게임에서 GG치고 나와야 되는데 끝까지 SCV 하나 살려서 도망나니는 꼴이었다고 봐야겠죠.
  • 2019/05/21 16:4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5/21 16: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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