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동작구청장 찬양 ‘눈총’ 읍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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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비,공적비,유허비,선정비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 공적비의 경우 예전 수령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정치를 잘해서 주민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세워지던 공적비는 언제 부터인지 모르지만 정치를 잘하던 못하던 세워지는 관행이었고 돌로 만든 석비, 나무로 만든 목비, 쇠로 만든 쇠비는 감찰기관을 의식하고 너 높은 곳에 오르려는 욕심으로 주민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했고 이 선정비를 세우기 위한 모든 비용들은 백성들이 부담해야 했기에 민폐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음에도 수령이 직접하거나 향청이나 아전들이 앞장서서 반강제적으로 금품을 받아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목비나 석비의 경우 그래도 좀 나은편이지만 쇠로 만든 쇠비의 경우 금전적으로 더 많이 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 경상도에서 나오는 철 생산량의 경우 1년에 겨우 약 36.45톤이라고 할 정도인데 여기에 쇠로 만든 선정비로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발생되고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부산 기장읍성의 돌로 만든 선정비와 쇠로 만든 선정비의 모습

조선시대 제철능력에 관하여는 번동아제 사랑방 참고하세요.
선정비를 위한 모든 세 부담은 백성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선정비가 그리 반갑지 아니하였죠. 그래서 백성들은 들어 내놓고 말은 하지 못하니까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전북 고창군 무장읍성을 가보면 선정비가 있는데 선정비의 하단의 거북이 머리가 고개를 돌리고 웃고 있는 표정의 선정비들이 있습니다. 이는 선정비에 대한 불만을 석공이 해학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또 어사가 출두한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선정비의 글자를 진흙으로 채우기도 하였는데 지나가는 어사가 고을을 잘 다스리는 수령가 많다는 오해를 할까봐 진흙으로 채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의 경우 전남 나주읍성 객사에서 본 선정비로 무장읍성의 선정비와 달리 귀부의 머리가 고개를 많이 돌아가 있습니다. 물론 귀부의 머리가 정면을 향해 바로 보고 있는 것도 있지만 몇 몇개는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미술시간때 수업한 석고상의 모양처럼 고개가 돌아간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후세 사람들에게 이사람들은 정치를 잘했다고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더러워서 에이~  하는 마음으로 귀부 머리모양을 돌렸을까요?  
선정비라는 것은 백성들 스스로 공을 치하하고 뜻을 모아서 해야하거늘 수령의 사리 사욕의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되는 것처럼 공적에 관한 부분이 아무리 좋다고해도 지금의 방법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생사당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합천의 일해공원도 있으니 더 할 말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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