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읍성_02(동문지와 동측성곽) 읍성(邑城)



1914년 지적도를 기준으로 기장읍성의 성곽추정도를 그린 것으로 "기장읍성의 복원 · 정비방향에 관한 연구  논문 주우일 오인환 공저"에 나온 성곽추정도를 가져왔음을 알려 드립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보면 기장읍성에 관하여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성곽의 길이는 100m정도이며, 높이는 3m이다. 평지의 성벽은 바깥과 안쪽 모두 돌로 쌓았으며, 지형이 높은 바깥쪽 성벽은 돌로 쌓았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채웠다. 동·서·남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반원형으로 또 하나의 성벽(옹벽)을 둘렀으며, 동문터 근처에는 문의 양옆을 튀어나오게 만든 사각형의 대(臺)가 있다. 성 안에는 관장이 집무를 보던 동헌을 비롯하여 향사당, 객사들이 있고, 성 밖에는 망풍정, 망루대가 있었다.

고려 공민왕 5년(1356)에 성을 쌓았으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 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기장고을을 지킨 유서깊은 성이다." 하지만

기장문화원 홈페이지에는 "4월 15일 동래성이 함락되자 기장현감은 군졸을 모아 동래성 수복을 위해 준비중, 동래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장읍성을 버리고 지금의 일광면 조전리로 도망치다시피 후퇴해 버렸다."라고 적혀있는데 임진왜란 때 어디에서 전투가 벌여졌다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다만 "지금의 철마면에서 김일개(金一介), 김일덕(金一德), 김일성(金一誠), 오홍(吳鴻), 오춘수(吳春壽)등이 의병을 일으켜 기장현 수복을 위하여 결사적으로 항전하였다. 바다와 육지에서 많은 의병들이 항의토적을 외치며 싸웠던 것이다."이렇게 기장문화원에 적혀있습니다. 아무래도 의병의 이야기를 문화재청에서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관군들은 도망을 가고 의병들이 기장읍성 수복을 위해 싸웠다라고 적어 놓아야지 저렇게 적어 놓으면 오해하기 딱 좋겠는데요. 

기장읍성의 경우 평산성으로 굳이 표현하자면 종모양으로 된 읍성이며 고지도에는 3대문으로 그려져 있지만 지적원도 기준으로 보면 4대문인 것으로 보아 북문의 경우 암문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동문지를 중심을 잘 남아있고 남측성곽도 그럭저럭 남아있으며 서측의 경우는 겨우 흔적만 남아있었습니다.
▼ 기장초등학교에서 기장시장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오면 만나는 지하차도로 지하차도 위에 읍성의 체성을 올려 놓았습니다. 이렇게 복원을 해놓으니 교통의 흐름은 방해를 하지 않고 읍성의 성곽도 보여주는 1석2조의 꼴이 되었습니다.
▼  복원을 해놓은 곳을 보니 요즘의 방식으로 복원을 해놓아 조금은 아쉬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내측의 모습입니다.
▼  전체적으로 10단 이상 쌓아올렸는데 틈이 많지가 않다보니 조금은 이상하게 보이네요.
▼  바깥쪽의 체성부분입니다. 15단 이상의 돌로 체성을 하였는데 하부에 큰 돌을 넣고 상부로 올라가면서 작은 돌로 축성하는 조선초기 읍성의 방식으로 복원을 해놓았습니다.
▼  복원된 체성의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하단부에 성돌의 색상과 상부의 돌의 색상이 틀리는데 아무래도 하단의 경우는 예전에 있었던 성돌이고 상부는 최근에 복원하면서 쌓은 돌인 것으로 보입니다.
▼  축성된 체성위에 가정집이 한채보이는데 성곽의 체성위에 집이 들어서있습니다. 우측으로 더 들어가면 동문지가 나옵니다.
▼  위 사진의 우측으로 오면 기장 비석군이 나오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한자리에 모아 두었습니다.
▼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비석들이 있었습니다. 여러군데 가보아도 보통 10개정도의 선정비가 있는데 여기 기장에서는 30개에 가까운 비석들이 있었습니다.
▼  친절하게 비석의 음과 내용을 적어 놓아 처음 방문하거나 한문에 서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  그런데 비석들 중 상당부분이 거북이 머리 형상이 보이지 않더군요. 원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있었는데 분실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간혹 귀부가 있는 선정비도 보았지만 이런 귀부가 있는 비석들은 숫자가 작았습니다. 귀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세월의 풍파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만든 것인지 잘모르겠지만 거북이의 머리 부분이 갈라져 있어서 현실감을 더합니다.
▼  석비가 있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쇠비로 된 것이 있었는데 쇠비의 경우 기장읍성 비석군에 많이 있더군요. 비용이 많이 비쌀 것인데...
▼  선정비가 있는 비석군의 모습을 뒤에서 찍었는데 상당히 많이 있죠. 원래 기장현에 오는 수령들이 정치를 잘하였는지 아니면 오는 수령마다 해주는 것이 관습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비석들이 있었습니다.
▼  비석군의 축대의 경우 읍성의 체성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체성의 형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  이제 예전부터 있었던 기장읍성의 체성을 봅니다. 새롭게 복원한 체성과 달리 규모가 큰 돌들이 하단에 자리잡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축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돌의 경우도 각자 개성이 있는 것처럼 통일되지 않고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돌들이 아래부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요즘 복원하는 성곽의 돌과 비교하면 차이가 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기장읍성에 사용된 돌들은 전체적으로 큰 규모의 돌들이 하단과 상단에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비석군과 거리는 아주 가깝게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기장읍성 체성의 경우 상단부분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기장읍성에 사용된 돌들이 크다고 느껴지는 것이 하단부에서 상단부까지를 보면 5~7단 정도인데 2미터를 넘습니다.
▼  글자처럼 보여서 찍은 사진인데 정확하게 알 수가 없네요. 잔돌끼움 방식인데도 틈이 있는 곳에 다 채우는 것이 아니고 가장 취약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만 작은 돌로 채워 놓았습니다.
▼  이곳은 3단으로만 해도 체성이 다 채워지는 느낌을 줄 정도로 어느정도 규모의 돌이 아니면 축성하는데 배제를 한 느낌을 받습니다. 
▼  바로 옆의 경우 체성이 무너지고 나서 채운 느낌을 주고 조선시대에 축성한 것이 아니고 최근에 체성을 채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  그 바로 옆은 성곽의 체성보다는 담장으로 보일 정도로 작은 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만 하단부에 상당히 큰 돌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봐서는 보이는 사진의 경우 무너진 체성에 새롭게 축성한 담장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조금 더 걸어오자 조선시대때 축성한 것으로 보이는 돌들이 보였는데 상당부분이 비워있는데도 용하게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습니다.
▼  이 정도 틈이라면 적군들이 발을 딛고 올라 올 정도 되겠네요. 성돌 틈 사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틈이 조금 크네요.
▼  이제 동문지까지 다왔는데 하단부의 경우는 예전의 방식이지만 상단부의 경우 최근에 놓아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육축의 경우 상당한 크기의 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동문지에서 동측 성곽을 바라본 것으로 높이의 경우 2미터가 조금 넘네요. 거의 2단 정도는 예전의 방식이고 상부의 경우는 아닌 것 같아보입니다.
▼  옆에서 본 모습으로 육축의 모습과 동문으로 연결된 체성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부분은 민가의 담으로 사용중이지만 잘 남아있습니다.
▼  동측 성문이 있었던 곳으로 우측에도 육축의 모습이 보입니다.
▼  동문에서 앞을 본 것인데 옹성의 흔적을 알 수 있게 둥근터가 있더군요. 하지만 옹성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맞은편의 모습으로 이 사진으로 봐서는 옹성의 출입구는 이 방향인 것으로 보입니다.
▼  일부 돌출된 옹성의 흔적이 보이고 이후로는 옹성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없는 부분으로 출입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체성의 끝나는 부분과 옹성이 연결되는 부분으로 연결된 부분에 상당히 큰 육축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동문지 부분의 모습으로 상당히 큰 돌들이 민가의 담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  위 사진을 조금 옆에서 보았는데 상단부가 너무 돌출되어 있고 흩어져 있는 느낌을 받는데 처음 축성할때의 방식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최근에 축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엉성하게 보여서 말입니다.
▼ 위 사진 옆의 모습으로 조금은 연결이 되다가 상단부의 경우는 사라지고 하단부만 겨우 남아있습니다.
▼  위 사진의 맞은편의 체성으로 이 부분의 경우 잘 남아있습니다. 동문측 체성의 경우 10여미터가 되던데 생각보다 길게 체성을 쌓았더군요. 
▼  옹성터에서 동문지 방향을 바라본 것으로 사진을 위로 찍었습니다. 아무래도 가로등이 있는 높이에 누각이 있었던 높이가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  동문지를 바라본 것인데 문루를 단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옹성터의 경우 눈에 들어오는데 옹성터에서 현재 주도로와의 높이가 있습니다.
▼  동문지 옆의 체성으로 이곳의 경우는 너무 틈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사천읍성과 비슷한 축성방식 같아 보입니다 .
▼  동문지 옆 민가로 민가의 경우 폐허로 변해있던데 기장군에서 부지를 매입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 민가를 매입한다면 동문지 부근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더군요.




핑백

  • 팬저의 국방여행 : 부산 기장읍성 적대·옹성 처음 확인 2010-12-09 19:31:36 #

    ...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장읍성의 경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게 점령당하고 나서 정비를 하지 않았던 읍성인데 이번에 동문지 주변 발굴조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기장읍성 동문지 발제글 ... more

  • 팬저의 국방여행 : 전국의 읍성_01 경남전남편 2012-07-04 21:21:38 #

    ... p;언양읍성_01다양한 축성방법의 언양읍성_02북측체성_언양읍성_03복원된 북측체성_언양읍성_04부산시 기장읍성 - 최근 본격적인 복원이 결정된 기장읍성기장읍성_01 동문지와 동측체성기장읍성_02 남문지와 남측체성기장읍성_03 무너진 서측체성동래읍성 경상남도양산읍성밀양읍성김해읍성웅천읍성 창원읍성진해읍성칠원읍성영산읍성함안읍성의령 ... more

덧글

  • 부산촌놈 2010/07/08 17:32 #

    제 눈에도 확실히 엉성해 보이긴 하는 것이 최근에 쌓아 올린 바위들이 꽤 되나 봅니다?

    노력은 가상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고증에서 약간 멀어져 버린 셈이군요.
  • 팬저 2010/07/08 19:36 #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담장의 기능을 하기 위해 축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2010/07/08 19:2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팬저 2010/07/08 19:38 #

    연안읍성의 경우 저런 방식은 아니고요. 공적비 뒤에 있는 방식은 조선시대 축성한 것이 맞습니다. 동문지 옆에 있는 부분중 2~3단의 경우는 조선시대 방식이 맞을 것 같고요. 나머지는 근대에 무너진 성곽에 자신의 집 담으로 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 걷다보면 2010/12/08 09:42 # 삭제

    펜저님의 글을 보고 기장읍성을 둘러 볼때 자세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기장공덕비군에 다녀온글 트렉백 걸어 놓았습니다
    자주 들리겠습니다^^
  • 팬저 2010/12/08 10:33 #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저도 북문지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 sara 2011/06/10 18:53 # 삭제

    동문지 좌측은 언양에서 쌓았지요, 음각된 글자는 언양입니다. 이외에 남문지에서도 글자가 확인되는데 꽤 먼데서도 동원되었습니다.
    동문지는 발굴 결과 장초 예상했던 1간이 아니라 정면 3간의 문루가 있었던것으로 확인되는데, 지금은 건물로 시야가 차단되어있지만,
    당시에는 죽성리쪽이 바로 조망되는 탁월한 위치입니다.
    입구도 나팔상으로 벌어진 형태를 하고 있어 최종 개축시기에 논란이 좀 있을것 같습니다.
    최소한 3차례 성이 개축되었는데, 지금 남아있는 형태는 굉장히 조잡해서 조선 초기에 쌓은 것은 아닌것이 확실합니다.
    발굴 당시에는 왜성 축성법과도 비교되기도 했지요.
    적대는 성벽에 덧붙여서 축조되었는데, 이쪽 성벽은 기단부로부터 4미터정도되는 성벽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어 여장만 올리면 복원을 끝내도 될 정도였습니다.
    석축도 조선전기 방식으로 완벽해서 예술적으로 되어있더군요. 추후 복원시에는 기준이 될겁니다.
    옹성도 폭이 6~7미터로 상당히 넓은 편이죠, 완전한 반원형은 아니고 말각ㄷ자형의 느낌이 있습니다. 옹성부에서 문루로 들어가는 바닥은 판석이 정연하게 깔려있었는데 재포장이 한번 되었더군요
  • 팬저 2011/06/10 19:34 #

    옹성의 경우가 ㄷ자라면 상당히 보기가 힘든 구조인데 기장읍성에서 발굴이 되었네요. 이 기준만 봐서 기장읍성의 경우 오래전에 축성이 되었다고 봐야겠네요. 또 이를 기준으로 축성한 것을 볼 수 가 있네요. 좋은 정보이네요. 발굴하신 문화재연구원 근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자주오셔서 좋은 정보주시기 바랍니다.
  • SARA 2011/06/10 19:02 # 삭제

    그리고 옹성 개구부는 남쪽으로 열려있습니다.
  • 팬저 2011/06/10 19:35 #

    옹성의 개구부가 남측이라면 기장 선정비가 있는 방면이네요. 저도 처음 갔을때 개구부의 방향은 그럴 것 같았는데 그부분은 맞네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