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만 남은 고성왜성 왜성(倭城)



고성읍성 남문지 앞에 조금 남은 고성왜성입니다. 고성왜성의 경우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이곳에 과연 왜성이 있었냐?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고성읍성 남문지 근처에 조금 남아있는데 확실히 고성읍성과는 다릅니다.

고성왜성의 경우 정유재란(1597년)때 깃카와 히로이에가 축성을 담당하고 다치바나 무네시게 등이 방어를 했는데 주둔병력의 경우 7,000명이었다고 합니다.  
고성왜성의 경우 바다와 인접해야 하는데 현재 바다와 거리가 조금 됩니다. 보통 왜성의 경우 3면이 바다와 접하고 있는 것에 비해 고성왜성의 경우 바다와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왜성을 축성했을때 이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 하지 않았을 것인데 바다와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다는 것은 현재의 고성의 땅이 바다에서 매립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성읍성 남문지 주위로 고성왜성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필자가 가본 것은 남문지 주변입니다. 따라서 고성왜성의 경우 고성읍성의 성곽을 이용하면서 조금 높은 곳에 축성을 했다고 볼 수가 있는데 다만 고성왜성이 너무 낮은 곳에 있는데 거의 평지성에 가깝습니다. 왜성의 경우 높은곳에 설치를 하는데 왜 평지성에 가까운곳에 축성을 했을까요? 필자의 생각에는 고성 남산에 있는 산을 주목합니다. 이곳에 왜성의 천수각이 들어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산중에 현재 충혼탑이 있는 곳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고성왜성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이 내용은 하기호고성문화원향토사연구소장이 고성신문에 기재한 고성읍성과 고성왜성의 고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부산대학교 한일문화연구소(1961. 12) 간행의 『경남 왜성지』에 의하면 ‘고성왜성은 고성현읍의 남방에 斗出한 小高地에 축조한 성으로 한편은 韓国城의 囲壁에 接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고성왜성은 고성읍의 남쪽 수남동에 위치하며, 고성읍성의 남쪽 돌출부분에 倭城이 축조되어 있다 하였다. 조선성곽일람」(井上秀雄)에서는 ‘왜성지는 고성읍의 남쪽에 舌状으로 내민 高台에 위치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1922년 9월에 伴三千雄氏의 답사기록은 「성지는 시가의 군청 소재로부터 근거리에 있다. ‥

그것은 확실하게 일본식의 축성으로 중앙의 가장 높은 위체이 本丸이 있고, 그 서쪽에 본환보다 약간 낮게 보다 큰 二之丸을 확인하였고, 本丸의 동부로부터 남부에 꺽어 둘러서 帯部에 있으며, 그 서나 즉, 二之丸의 남부에 돌출한 것이 三之丸이다. … … 본 성은 고성 읍성의 남부에 접속하는 一孤丘로 삼면은 급경사지를 이루며, 그 삼면은 평탄한 水田에 접하며 북방은 좁고 길어서 고성읍성의 위벽(囲壁) 에 접하고 있어 대개 蝌蚪状(올챙이 모습)이라 해도 무방하다. 海水는 근처에까지 와서 성지에서 볼 수 있다.」하여 왜성이 축조되어 있음을 볼 수 있고, 지금도 고성과 읍성과 접하여 축조된 일본식 성벽을 확인할 수 있다."
▼ 위에서 이야기한 것을 보아도 고성왜성의 경우 고성읍성의 성벽과 접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의 경우 고성읍성 남측성곽과 접하고 있습니다. 고성왜성이 고성읍성과 접하면서 쭉이어졌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 고성읍성 남측성곽과 접하는 부분으로 하단부에 사용된 돌을 보면 조선의 연해읍성에 사용되는 돌의 크기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따라서 고성왜성의 경우 조선의 성곽의 돌을 가져와서 왜성으로 축성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 축성방식을 보면 큰 돌과 작은 돌이 혼합하여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왜성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성곽의 기울기를 알 수 있습니다.
▼ 연해읍성의 경우 하단에 큰돌을 넣고 위로 가면서 작아지는 것에 비해 여기에 있는 고성왜성의 경우 위에 큰 돌이 있기도 하고 아래부분에 큰돌이 있기도 합니다.
▼ 현재 대표적으로 남아있는 고성왜성의 부분으로 높이의 경우 5미터이상 되고 길이 또한 100미터 정도 입니다.
▼ 상단부분으로 현재 민가로 사용중인데 민가의 경우 폐허로 되어 있더군요.
▼ 고성왜성에 사용된 축성방식은 조선에 축성한 왜성의 방식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 민가에서 불을 태운 흔적도 보이고 있었는데 조그마한 돌들이 틈사이에 들어가있는데 400여년을 버티는 것이 신기합니다.
▼ 여기에 사용된 돌들은 규격화 되어있고 크기도 조금 큽니다.
▼ 민가의 담으로 사용되고 있는 고성왜성의 성곽 모습
▼ 이 부분의 경우 처음부터 이렇게 축성한 것인지 아니면 돌이 빠진 것인지는 몰라도 용캐도 버티고 있습니다.  
▼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분에서 본 고성왜성의 높이로 어떤 곳의 경우 6미터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 고성읍성 남문지는 전봇대가 있는 곳입니다. 남문지에서 고성왜성 체성이 있는 곳까지는 10미터정도 내려오면 됩니다.  
▼ 민가의 담을 골목에서 바라본 것으로 군데 군데 무너져 내린 것이 보이는데 흙이 노출됩니다. 고성왜성의 경우도 조선에 축성한 왜성과 같이 편축방식으로 축성한 것을 보여줍니다.
▼ 어떤 방식에 의해서 축성한 것이 아니라 크기도 위 아래 규칙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 무너져 내린 곳에는 흙이 보였는데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다른 왜성과 마찬가지로 무너지기 쉬울 것으로 보입니다.
▼ 위 사진에 있는 고성왜성의 성곽의 체성부분 바로 위 민가의 담으로 고성왜성이 연결이 되었다면 이부분도 연결이 되어 남측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 위 사진에 나오는 전체 고성왜성의 높이에 있는 민가로 현재 폐가로 사용중이던데 고성군에서 이부분을 정비하던지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더군요.
고성왜성의 경우 군데 군데 남아있는 왜성의 경우 전체 길이가 얼마되지 않으며 지표조사나 발굴조사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문화재연구원에서 고성 전체에 관한 문화재조사는 있었지만요. 아무튼 이 부분에 관한 지표조사가 이루어져 고성왜성의 실체를 알아 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또 고성을 방문하여 고성왜성을 조사하고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부산촌놈 2010/07/13 01:24 #

    아무래도 왜성은 기존 조선의 읍성을 훼손시킨 후 거기서 나온 석재를 이용해 쌓는 경우가 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진성의 경우나 왜성의 경우나 수군 전략적으로 유리한 곳에 설치했으니까 둘은 겹치는 부분도 가끔 있고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네요.
  • 팬저 2010/07/13 10:09 #

    고성왜성의 경우도 고성읍성의 성곽의 돌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고성왜성에 관한 자료가 너무 없어 평면도를 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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