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읍성_05(나주객사 금성관) 읍성(邑城)



나주객사 금성관의 아문이며 외삼문인 망화루(望華樓 번영을 기원하는 누마루)입니다. 이 망화루의 경우 2001년 1월에 총 사업비 4억2천200만원을 투입하여 착공하고 2002년 8월 12일 준공했다고 합니다.
▼ 망화루옆에는 나주 금성관의 안내판과 함께 나주읍성에 관한 안내판이 있어서 나주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1900년대의 망화루의 모습으로 소박한 멋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추녀 밑에 활주가 있는데 활주가 4개입니다. 또 난간의 올란대의 경우도 복원한 망화루의 경우 높이가 높습니다. 무엇보다 넓이가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 망화루의 출입문입니다. 망화루의 경우 보통 객사의 외삼문과 같이 3개의 문으로 구성이 되어져 있는데 좌우측문만 열어 놓았더군요.
▼ 복원된 망화루옆의 담장으로 높이가 낮아 보였습니다.
▼ 망화루 3문의 뒷모습인데 망화루의 경우 복원을 하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나 나주시의회에서 다루어졌습니다.  
▼ 망화루인 외삼문을 지나면 마주치는 것이 중삼문입니다. 보통 객사의 경우 외삼문을 지나면 마주치는 것이 내삼문인데 나주 객사 금성관의 경우 중삼문을 만납니다. 중삼문이 있는 경우 필자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만큼 나주 객사 금성관의 크기와 위용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 중삼문을 지나기 위해서는 사진에 보이는 박석이 깔린 곳을 지나가야 하는데 가운데 조금 높게 올라온 곳이 보입니다. 이곳이 바로 어도(御道)입니다. 즉 임금이 지나가는 길이고 좌우측은 신하들이 지나가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 어도를 지나갈 경우 어떻게 될까요? 임금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져 능지처참하게 당할 것인데 지금은 이런 부분이 사라져서 자신이 걷고 싶은 길로 가도 됩니다. 이왕이면 어도로 가보면 어떨까요? 흠!! 이봐라~ 길을 비켜라! 
▼ 망화루에서 좌측방향으로 바라본 모습으로 객사주위로 담장을 친 모습이 보입니다.
▼ 망화루의 뒷모습으로 누각에 올라가는 것은 막아놓아 가보지는 못했고 답사를 가는날 너무 비가 많이 와서 사진찍기가 곤란했습니다.  
▼ 중삼문의 원산의 모습으로 최근에 복원을 했어 그런지 인공적인 냄새가 많이 납니다.
▼ 중삼문을 지나면 금성관의 모습이 들어오는데 금성관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것이 고목입니다.
▼ 중삼문에서 내삼문을 바라본 모습으로 이곳에도 어도가 보입니다.
▼ 객사에 있었던 우물을 복원한 것입니다.
▼ 이제 내삼문의 터이고 아직 복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삼문까지 복원을 한다면 객사인 금성관의 전체 모습을 담기가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 내삼문터에서 중삼문과 외삼문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 금성관의 모습인데 가운데 주관과 좌우에 익헌이 있는데 익헌의 경우 우측에 있는 동익헌이 더 큽니다. 이유는 아무래도 문신들을 높이 모시겠다는 의미일 것으로 보이는데 우측 동익헌이 더 큰 것은 처음 봅니다. 보통 좌우 익헌의 크기가 같던데 나주객사 금성관의 경우 더 크더군요. 원래 더 큰 것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익헌의 경우 주관과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에 복원을 했어 그렇습니다. 그중에서 좌측에 있는 서익헌 부터 복원을 하고 우측에 있는 동익헌을 나중에 복원을 하였습니다. 동익헌은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이 서익헌은 당하관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금성관의 경우 1976년 완전히 해체한 후 복원을 하였습니다.
▼ 필자가 방문했을때에는 비가 너무 많이온 것도 있고 전체적인 모습을 담지 못했는데 나주시 홈페이지에 전체모습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이 정도의 객사의 규모라면 도성을 제외하고 객사규모 중에서는 가장 큰 것으로 보입니다.
▼ 금성관 좌측에 있는 서익헌의 모습이 보이지만 우측에 보이는 동익헌은 보이지 않습니다. 서익헌의 경우 2005년에 복원을 하였고 동익헌의 경우 2008년에 복원을 하였습니다.
▼ 나주시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으로 나주 객사 금성관의 경우 일제 강점기때 창호ㆍ마루등 내부를 개조하여 나주군청 청사로 사용되면서 유리창문을 달아 쓰기도 하였다고 했는데 사진상에 보면 유리문들이 보입니다.
▼ 금성관만 있는 모습을 보니 안스러워 보이네요. 지금과 같이 복원을 하니 그래도 보기가 좋네요.
▼ 이렇게 놓고 보면 객사의 위엄은 보이지 않고 어느 절에 있는 대웅전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 금성관으로 오르기전에 있는 월대의 모습입니다. 예전의 월대의 돌과 복원한 월대의 돌의 모습이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월대의 바닥으로 기와와 같은 방법으로 바닥을 마감처리 되어있던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 전라도관찰사 이행(1403.1.11~1404.5 재임)이 벽오헌의 동쪽에 벽오동 나무가 있어서 벽오헌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동기헌의 경우 17억8천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서 2008년 복원하였습니다. 

객사인 금성관의 내부모습과 동익헌 서익헌의 모습은 다음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부산촌놈 2010/07/22 20:16 #

    굉장하군요.

    사람과 같이 찍힌 사진을 보고서야 그 규모가 짐작이 가네요.

    그런데 객사가 비대칭이라 아무래도 불균형스러워 보이네요...
  • 팬저 2010/07/22 21:13 #

    저런 경우는 처음 봐서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모르겠던데... 하지만 금성관만의 특이한 현상이라고 봐야겠죠
  • 松下吹笙 2010/07/23 21:34 #

    월대 바닥에 깔린 블럭 같은 것은 '방전'이라고 합니다. 현대 건축에서 바닥에 까는 타일이나 블럭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격식있는 건축에는 바닥에 방전을 까는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궁궐건축에서는 자주 볼 수 있지요. 근정전의 바닥도 방전으로 깔려 있지염. 본래 고대 목조건축에서는 건물 바닥에 방전을 까는 경우가 보편적이었으나 후대에 좌식 문화가 보급되면서 마루나 온돌을 들이는 경우가 많아 졌지염. 장곡사 상대웅전의 경우는 아직 방전이 남아 있답니다. 고대 절터나 건물터에도 아름다운 방전이 많이 나온답니다
  • 팬저 2010/07/24 00:39 #

    언제나 제가 모르는 것을 알려 주어서 감사드립니다. 방전이라 격식있는 건물에 깐다면 지방의 경우 객사일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보이네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