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때 찍은 것으로 보이는 자성대왜성의 모습이 엽서에 실려있는 것을 사진으로 다시 찍은 것입니다. 천수각의 모습과 함께 부산진성안에 있는 민가들의 모습도 잘 보일 정도입니다. 지금과 달리 숲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높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천수각과 2지환 3지환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천수대의 경우 높이가 5미터 이상 되어져 보이고 2지환의 경우 3미터 이상되어 보입니다.
비슷한 위치인데 사진의 각도가 틀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천수각의 경우 왜성특유의 모습이 보이고 3지환의 경우 2009년 발견된 부산진성의 성곽과 같은 기울기입니다.
부산진성 성벽발견 뉴스기사
필자의 부산진성 왜성흔적 발견 포스팅
▼ 3지환의 경우 높이가 5미터 정도 되어보이네요. 이 사진으로 봐서 대략 1905년 전 후인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위치로 봐서는 부산진성 동문정도 되어 보입니다. 지금으로 하자면 복원한 영가대 좌측 옆(현재 도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산진성 이야기 할 때 이야기 하였지만 임진왜란(7년전쟁)이 끝나고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경우 자성대왜성의 성곽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성문의 경우 조선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부산진성의 성곽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서생포왜성도 이런 방식으로 사용했고 안골왜성의 경우 일부는 이런식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위 두장의 사진의 경우 일제강점기때 일본인이 찍은 사진이지만 부산진성과 자성대왜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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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사진의 경우 자성대왜성을 찍은 사진인데 부산진성안 관아의 건물과 민가들의 모습이 같이 보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 만공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없었던 만공대를 복원을 했을까요? 그러면서 장대의 기능을 했다고 하니 이는 역사왜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측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데 동문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길이며 조선후기 부산진성중 가장 왕래가 많았던 것이 서문입니다. 서문을 중심으로 장이 서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위의 사진을 확대를 하다보니 사진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가장 뒤에 누각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고 그 옆에 큰 건물의 경우 동헌으로 보입니다. 동헌 앞에 보이는 기와로 된 곳은 각종 관아 건물지 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있는데 동문누각입니다. 동문을 지나 조금 오면 기와로 된 곳들의 경우 각종 관아 건물지 였을 것입니다.
처음 부산진성에 관하여 글을 적기 시작할 때 자료가 없어서 조금 고민이 되었는데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찍은 사진들을 구한다면 부산진성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더군요. 다만 어디에서 찾느냐가 문제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통한다면 자성대왜성과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실체를 알 것 같습니다.
다만 엽서 아래부분에 명소라고 적혀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자성대왜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자성대왜성이 명소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고 부산진성이 명소이겠죠. 따라서 엽서에 적어놓은 명소의 경우 일본인들이 조선을 빼앗고 자신들의 입장에서 적어 놓은 것이며 이러한 부분들이 뒤에 자리잡아 왜성을 명소로 정하고 문화재로 정하게 되었고 해방후 일본인들이 정해놓은 문화재에 숟가락만 얻어 놓는 결과가 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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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지환의 경우 높이가 5미터 정도 되어보이네요. 이 사진으로 봐서 대략 1905년 전 후인 것 같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위치로 봐서는 부산진성 동문정도 되어 보입니다. 지금으로 하자면 복원한 영가대 좌측 옆(현재 도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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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사진의 경우 자성대왜성을 찍은 사진인데 부산진성안 관아의 건물과 민가들의 모습이 같이 보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 만공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없었던 만공대를 복원을 했을까요? 그러면서 장대의 기능을 했다고 하니 이는 역사왜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측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데 동문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길이며 조선후기 부산진성중 가장 왕래가 많았던 것이 서문입니다. 서문을 중심으로 장이 서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엽서 아래부분에 명소라고 적혀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자성대왜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자성대왜성이 명소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고 부산진성이 명소이겠죠. 따라서 엽서에 적어놓은 명소의 경우 일본인들이 조선을 빼앗고 자신들의 입장에서 적어 놓은 것이며 이러한 부분들이 뒤에 자리잡아 왜성을 명소로 정하고 문화재로 정하게 되었고 해방후 일본인들이 정해놓은 문화재에 숟가락만 얻어 놓는 결과가 되게됩니다.
덧글
첫번째 사진은 마치 미국 사막의 바위 언덕 같은 느낌이 나네요.
상당히 웅장해 보입니다;;
자성대 왜성을 실제로 본 적이 전무해서 그런데 엽서 안의 보존상태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