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절엔 그때 그랬지_02 창원향토자료전시관 내가사는 동네



그때 그 시절에 창원향토자료전시관은 주남저수지 입구에서 볼 수 있는데 이정표가 있어서 찾아가기가 편한 곳입니다. 일단 2층 건물인데 1층에는 식당을 하고 2층에 향토자료전시관이 있습니다.
▼ 창원향토자료전시관 내부의 모습으로 작지만 알차게 꾸며 놓았습니다.
▼ 이곳에 들어서면 우리들에게 익숙하지만 왠지 낯선 물건들이 가득차 있는데 주로 60~70년대 물건과 80년대의 물건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70년대 학생들의 동하계교복과 모자가 보입니다.
▼ 예전 교과서들이 가득차 있는데 이것들을 모으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렇게 전시를 해놓으니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 학년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당시에는 흔한 교과서였지만 지금은 구경도 하기 힘든 것이 이런 교과서류이죠. 물론 대량으로 만들다보니 여기 저기 굴러다니기는 하지만요. 요즘은 이런 교과서들이 귀해서 권당 일만원정도에 판매가 되고 있더군요.
▼ 앉은뱅이 책상과 책가방 그리고 교실책상과 걸상(예전에는 걸상이라고 사용했는데 지금은 의자라고 사용하죠) 60~70년대에 사용된 앉은뱅이 책상의 경우 그래도 좀 좋은형편이었다고 봐야하나요?
▼ 1956년 구입한 양철필통과 왕자파스의 크레파스. 그래도 크래파스의 칼라가 22색입니다.(이정도면 친구들에게 목에 힘을 주고 다닐만 했겠는데요)
▼ 수업료 620원 1960년대인데 언제인지는 안적혀있네요. 이 창원향토자료전시관의 경우 관장인 양해종씨가 개인이 모아놓은 자료들인데 개인자료이면서 그 시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추억박물관이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런 것들을 하나 하나 모아 놓은 양해종씨의 콜렉터기질에 감탄을 합니다.
▼ 창원 덕산역의 모습으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 풍년초라고 적어 놓은 담배갑인데 저런 것은 처음 보았는데 곰방대에 넣고 피는 것으로 보입니다.
▼ 각종 담배갑들이 있는데 88, 한산도,화랑,아리랑,파고다,솔,거북선,새마을,금잔디 등이 보이네요.
▼ 럭키치약의 경우는 그래도 80년대일 것으로 보이고 미원과 미풍의 조미료와 벌꿀비누의 모습이 보이는데 지금에 나오는 각종 조미료와 비누포장지와 비교하면 시절이 많이 흘러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단맛을 낼때 사용한 분말소스들입니다. 지금도 신화당의 경우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집집마다 70년대 TV위에 올려 놓은 못난이 3형제 인형(우리집에도 있었는데 어디 갔을까?)
▼ 60년대 부엌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물건들을 올려 놓았습니다.
▼ 알루미늄으로 만든 도시락과 버너의 모습이 보입니다.
▼ 문방구에서 많이 팔았던 자야,뽀빠이,짱구, 구슬
▼ 아직도 덜덜거미며 돌아갈 것 같은 선풍기
▼ 진해에서 출마하여 당선된 황낙주국회의원 선거공보인데 1971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네요. 지금의 화려한 칼라의 선거공보와 비교하니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움을 줍니다. 추억의 경우 그 촌스러움도 감싸안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네요.
▼ 보병 28사단의 외출증인데 이런 것들도 모아 놓았던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경상남도 도민증의 모습 사전을 찾아보니 1962년부터 주민등록증법이 개정되어서 시도민증을 사용하고 우리들에게 익숙한 주민증의 경우 1975년 부터라고 하네요.
▼ 미원 간판으로 아래부분에 "의심나면 다시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라는 표어가 적어놓았습니다. 그 밑에는 친절하게 전화번호도 적어 놓았네요. 저 간판만 아니라 수많은 장소에도 저런 표어가 많이 있었으니 반공을 표방한 박정희 정권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오래 되어 보이던 다리미의 경우도 50~60년대라고 하니..
▼ 1974년 공무원으로 처음 받았던 월급봉투까지 모아 놓았네요. 9급 공무원의 봉급은 27,401원이네요
▼ 각종 펜과 제도기의 모습이 보입니다. 상태는 어떤지 몰라도 국산제도기에 있는 오구(口 까마귀오, 입구)의 경우 먹물이 자꾸번지고 종이를 깔아먹어서 사용하기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일제나 독일산을 많이 사용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 2007년에 처음 시작한 주남저수지철새축제 주남기억전 기념스탬프(원래는 반대로 되어 있었는데 포토샵에서 반전시켜 놓은 것입니다.)
▼ 개인의 명찰 하나로 창원시의 마크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통합되기전에 사용한 창원시의 마크와 이전의 마크 그리고 더 이전의 마크를 보니 알 수가 있네요.
▼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펜촉이지만 당시에는 꼭 필요했죠. 팬촉으로 쓰다보면 종이에서 나오는 소리가 신기했었는데 그러다가 옆에 있던 잉크통을 쏟기라도 하면 아이고~ 장난이 아니었죠. 지금은 저런 펜촉의 경우 만화가가 사용하나 요즘 만화가도 컴퓨터로 그리니 잘 사용하지 않을 것 같네요. 
▼ 검정고무신과 70년대 나온 새마을 자료
▼ 이곳에는 전화통신 관련해서 모아 놓았는데 수동식전화기 부터 다이얼전화기
▼ 전화카드며 삐삐, 그리고 휴대폰까지 놓여져 있습니다.  
▼ 요즘은 라이터로 기념품을 많이 만드는데 예전에는 성냥통을 기념품으로 많이 나누어주었죠.
▼ "일본의 소니사에서 나온 워크맨이 있었다면 우리에겐 마이마이가 있다."라고 할 정도로 젊은이들한테 커다란 각광을 받았던 제품이었습니다. 지금의 MP3와 비교하면 크기도 크서 불편하지만 그래도 저 당시 저런 것이라도 가지고 다녀야 "아 너희집 좀 사네"라는 이야기를 했었죠.
▼ 버스회수권도 보이는데 중고생회수권의 경우 처음 180원에서 200원, 280원, 340원으로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창원군민의 날 행사, 창원시민의날, 전국체육대회, F-3그랑프리 등 각종 관련 스크랩들을 모아 둔 자료들이 있습니다.
▼ 지금은 없어진 마산시 제1회 시민의 날 팜플렛(1978년)과 제1회 지금은 없어진 창원군 제1회 군민의 날 팜플렛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이 자료를 모아 둔 양해광씨의 콜랙터기질을 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1969년 마산MBC(지금은 창원MBC) 라디오 방송자료들을 모아둔 것으로 카셋트 테입에 모아 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70~80년대에 사용된 카세트로 직선으로 된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지금에 나오는 카세트의 경우 라디오, MP3, CD, USB단자가 있는 것과 달리 카세트테입이랑 라디오만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 한쪽에는 예전의 LP판의 모습을 보여주고 LP판을 틀 수 있게 오디오시스템이 갖추처져 있습니다. 지금이야 오디오시스템이라고 하지 예전에는 전축이었는데....
▼ 대한뉴스 필름으로 16미리와 35미리 필름으로 지금은 DVD한장이면 다 담을 수 있는것에 비해 당시에는 저런 영화용 필름에 사용하여야 되었죠. 
▼ 박정희,김영삼,김대중,노태우,강삼재 등의 정치인들의 선거팜플렛 들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 부산시대의 경남도청과 창원으로 이전하는 경남도청의 모습을 볼 수 있게 신문으로 전시해 놓았습니다.
▼ 들어오는 입구에는 창원시의 행정구역 변천을 사진과 글로 설명해 놓았습니다.
▼ 1955년 마산시와 창원군지도
▼ 1955.9.1일 진해읍이 진해시로 분리
그 이후 내서면을 비롯한 진전,진동,진북,구산면은 마산시로 북면,동면,대산면은 창원시로 웅동면은 진해시로 편입을 합니다. 그러다가 2010년 7월을 통해 이제 천가면을 제외하고 모두 창원시로 통합이 되었죠.

주남저수지를 찾아갈때 시간이 나시면 창원향토자료전시관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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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부산촌놈 2010/08/01 23:20 #

    이야, 못난이 인형의 역사가 그렇게 긴 줄은 몰랐습니다.
  • 팬저 2010/08/02 10:08 #

    70년대 집집마다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것을 보니 세상 참 빨리 흘러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 부산촌놈 2010/08/01 23:25 #

    팬저 님 포스트를 보고 오늘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주워 주머니에 구겨 넣어놓은 지하철표를 다시 펴고 있는 제 모습을 목격했네요, ㅎㅎ.
  • 팬저 2010/08/02 10:08 #

    예... 지금은 흔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귀한 것이 되고 없으면 더욱 더 소중한 것이 되죠.
  • 역사관심 2010/08/02 03:01 # 삭제

    문득 생각난건데, 저 못난이 3형제(자매) 귀여운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만들어서, 시리즈만들면 꽤 히트칠수도 ㅎㅎ
  • 팬저 2010/08/02 10:09 #

    ㅋㅋ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 역사관심 2010/08/02 14:49 # 삭제

    산성관련 포스팅에 올려야 할 글이지만, 그냥 최신글에 해봅니다 ^^

    다름이 아니라 고모산성 뉴스인데요. 7월 22일자 뉴스인데
    http://media.paran.com/news/view.kth?dirnews=2280852&year=2010&pg=1&date=20100722&dir=1&theme=1625

    바로 작년인가 재작년에 굴착기로 신라시대때 만든 그대로 남아있던 성벽을 밀고, 거기에 시멘트칠하던것이 일반인 카메라에 잡혀서,
    그야말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시당국도) 중단했던 복원인데.

    오늘 문득 생각이 나서 검색해보니 저런 기사가 뜨네요. 제대로 고증해서 (그리고 남아있는 구간 그대로 보존하고) 만든 것이길 빌뿐입니다...
  • 팬저 2010/08/02 15:17 #

    그런 부분은 여러군데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땅 파보면 여러시대의 유물들이 출몰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복원의 중요한 키를 잡고 있습니다.

    신라시대때의 성곽위에 고려때 다시한번 축성하고 조선초기에 토성을 석성으로 바꾸고 조선후기 다시 한번 증축하는 것이 성곽의 현실입니다. 아니면 삼국시대때 백제군이 석성으로 축성하고 신라가 다시축성하고 이후 조선시대초기때 축성하는 성곽은 얼마던지 있습니다.

    발굴을 하다보면 이런 부분이 나오는데 이럴때 참으로 애매하죠. 이것을 신라로 볼 것인가? 백제의 석성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고려, 아니면 조선.... 이런 문제가 나올때에는 문화재연구원에서도 갑론을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라로 축성하려고 하니 백제의 시대를 무시하는 것 같고 고려를 하자니 사국시대를 무시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조선시대로 할 수도 없고.....

    이럴때 할 수 없이 복원을 지시한 자치단체와 협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치단체에서 사국시대나 고려를 원하면 사국시대와 고려로 복원을 하고 조선시대를 원하면 조선시대로 복원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성곽 전체가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기단석만 남아있는 것을 기준으로 복원을 하려고 하니 어쩔수가 없죠.

    그런데 고모산성처럼 체성을 부셔버리고 시멘트로 만드는 것은 엄청 문제가 있다고 봐야겠죠. 이는 문화재를 인식하는 공무원의 마인드 문제인데요. 무엇보다 공문원들이 알만하면 부서를 옮기는 문제가 있다보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죠.
  • 역사관심 2010/08/02 14:50 # 삭제

  • 팬저 2010/08/02 15:22 #

    있었던 문화재를 저런식으로 하는 것도 문제이고요. 근대 문화재의 경우는 생각보다 더 심각합니다.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많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어느 도시도 마찬가지 현상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창원시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자유상가의 경우 너무나 오래되고 낡아서 부셔버리는데 문제는 부셔버리기 전에 자료를 모으지 않는 것입니다.

    그나마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료를 모으기위해 사진과 도면을 구하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라고 봐야하나요?
    http://www.u-story.kr/208

    향토문화의 경우 중앙문화와 달리 많은 대접을 못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의 애정이 있어야 향토문화는 꽃피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10/08/02 23:31 # 삭제

    참 뭐랄까요...아직 유럽/일본등에 비해 '인식'이 너무 낮은듯한...
    이래서 어릴때부터 역사/문화에 대한 공부를 좀 시켜야 하는듯...(하루아침에 마인드가 세워지는게 아니죠)...
  • 팬저 2010/08/03 00:17 #

    아직 문화적 규모가 작고 문화대국이 아니라서 그런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성의 경우 일본인 아마추어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엄청나게 조사하고 가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것 조차 시도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인들이 조사해온 왜성을 다시 역수입하고 있습니다. 또 웅천도자기 도편들을 관광와서 무수히 가져갔습니다. 우리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 것에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을때 말이죠.
  • 역사관심 2010/08/03 02:39 # 삭제

    제가 개인적으로 조금 알레르기성으로 싫어하는 말이 바로 그말이죠.
    "먹고 살기 바빠서". 사실, 동남아등지도 먹고살만해서 (우리만큼) 문화재관리하는게 아니니까요.
    어릴때부터의 인식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중궈같은 곳도 중공시절 잘살아서, 당시에도 문화재들을 유출하지 않은게 아니니까요...

    돈돈돈 (그것도 아주 단기안적인 눈앞에 보이는 급급한) 하는 교육이 결국 장기적으로 나라를 망치는 느낌입니다. 아무리 경제대국이 되어도, 아마 이런 수준의 교육과 그에 따른 인식이라면, 문화재는 방치되고 유출될거라는데 한표입니다. -_-

    그렇게 돈 좋아하는 정부나 윗분들도 알아야할것이, 장기적으론 바로 이런 문화/역사쪽이 엄청난 돈이 된다는걸 왜 모르는지...(제대로 관리했을때 말이지만요, 단기적으로 자기임기내에 후다닥 하는 행정마인드말고- 그런 마인드를 없애는게 어릴때부터의 교육일테죠...참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팬저 2010/08/03 23:09 #

    그런 관심들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 이땅의 주인인 우리들이 관리하면 잘 될 것으로 보입니다.
  • 부산촌놈 2010/08/03 00:24 #

    역사관심//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내에서 일어나는 역사왜곡도 참 많습니다.

    제가 사는 부산만 해도 그렇지요.

    부산진지성(釜山鎭支城)의 장대라 소개되고 있는 진남대(鎭南臺)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고요, 다대포객사 건물로 알려져 있는 건물 또한 사실은 객사 건물이 아닌 다대진 첨사영 건물이라는 설이 나돌고 있습니다.(신빙성도 절대적이고요.)

    또 현재는 태풍으로 인해 붕괴되었지만 금정산성 제 1망루의 경우에는 복원했을 당시에 누각의 지붕이 합각지붕, 다시 말해서 팔작지붕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장군이 머무르며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대도 아니고 하급의 병졸들이 보초를 서는 망루의 지붕이 팔작지붕이라는 것은 넌센스죠.

    앞으로 헤쳐가야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 팬저 2010/08/03 02:03 #

    부산진지성이라고 부르는 것 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진성이 맞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부산진지성이란 모성인 부산왜성 그리고 자성인 자성대왜성을 이야기할때 나오는 지성 즉 모성을 보조하는 역활이라는 뜻으로 보이는데 그래봤쟈 일본군들이 부산진성을 차지하고 있었던 시기는 7년입니다. 하지만 조선군이 부산진성을 점령하던 시기는 무려 600년이 가깝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임진왜란(7년전쟁)때 있었다는 의미로 지성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해방이 되고 나서 부산진지성이라 불렀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디까지나 부산진지성의 경우 수군의 기지였기때문에 부산진성으로 불러야 마땅하고 임진왜란(7년전쟁)이 끝나고 나서 일본인 왜성에 우리에 맞게 누각을 세우고 성문을 사용했기때문에 부산진성이라 불러야 하는데 왜 부산진지성이라고 불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진남대의 경우 제가 얼마전에 올렸던 일제강점기 자성대왜성을 보면 보이지 않습니다. 다대포객사의 경우 사실 왜매하긴 합니다. 보통객사의 경우 익공과 주공을 합친 3개의 건물이면서 하나의 건물인데 다대포객사의 경우 1개로 된 객사이더군요. 그러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올만 합니다. 다만 거제의 장목진 객사의 경우도 주공만있더군요. 이부분에 관해서도 조금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부분들은 지역의 향토사학자와 학계에서 끊임없는 연구가 있어야 하며 일부 아마추어들도 관심을 가진다면 쉽게 풀릴 것으로 보입니다.
  • 역사관심 2010/08/03 02:42 # 삭제

    그렇군요...복원도 좋지만, 다 나와있는 자료를 가지고 고증을 안한다는건 직무유기에 가깝게 들리네요.
    복원에 상상을 요하는 부분도 고대문화재의 경우 분명있지만, 조선시대 성곽을 가지고, 상상놀음을 하는건 어이상실입니다.
  • 팬저 2010/08/03 12:55 #

    많이 남아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성곽의 경우 겨우 기단석만 남아있다면 측정연도를 가지고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죠. 측정연도의 경우 발견된 기와나 도편 등을 가지고 하는데 이때 성곽의 상상력을 동원해야하는 점이 문제이긴 하지만 어쩔 수없는 것이죠.
  • 부산촌놈 2010/08/03 09:45 #

    아, 그런가요? 네이버에서부터 벌써 부산진지성으로 검색되니까 그렇게 부르는 게 틀린 게 아닌 거라 생각했지 말입니다.

    다음부터 부산진성이라 부르도록 하지요.
  • 팬저 2010/08/03 12:57 #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부산자성대왜성의 경우 부산왜성의 자성이니까 부산지성이라고 불러야겠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계속해서 조선이 망하기전까지 300년을 부산진성으로 사용했으니까 부산진성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부산촌놈 2010/08/03 09:47 #

    팬저 님, 다대진성이 그려진 고지도에는 객사가 어떻게 묘사되어 있습니까?

    고지도에 그려진 모습도 꽤 유용할 듯 싶은데 말입니다.
  • 팬저 2010/08/03 12:59 #

    http://panzercho.egloos.com/9678957 분명히 익공과 주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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