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와 창원 그리고 광하문과 읍성 도성(都城)



현 통합창원시 중 이전 창원시의 경우 1974년 창원공단이 조성이 되면서 시작되었는데 그후 1976년 9월 1일 출장소가 설치되고 1977년 4월 18일 창원도시계획재정비가 고시가 되면서 본격적인 도시의 기능을 가지게 되었으며 경남도청이 부산에서 옮겨오면서 도시화가 빨리 진행되었는데 창원시 도시계획을 하면서 참고하고 기본모델로 선택한 것이 호주의 캔버라시입니다.

KBS 예능프로인 1박2일에서 호주의 수도를 묻는 문제가 출제가 되었는데 누군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호주의 수도는 시드니로 대답하는 것을 보았는데 호주의 수도는 캔버라입니다. 아직 창원 중앙동에 캔버라호텔이 있는것만 보아도 창원과 캔버라와의 관계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 또한 창원시의 모델이 캔버라시라고 알고 있었고 여태까지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구글의 인공위성프로그램인 구글어스를 이용해서 호주의 캔버라시를 찾아보니 창원시와 분명히 달랐습니다.  

여태까지 알고있었던 창원의 도시설계가 캔버라시가 아니라는 것에 관하여는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이며 도시계획전공자도 아닌 필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전문적인 식견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 둡니다. 

▼ 호주 캔버라시의 경우 호주의 수도인데 아래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창원시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운데 벌리그리핀호수가 보이고 Australian Capital Territory(ACT - 캔버라)가 보입니다.   
▼ 벌리그리핀 호수 밑에 있는 국회의사당인데 여기를 보면 현재 창원시의 창원광장과 같은 광장이 있는데 이곳에 국회의사당이 있고 창원광장보다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원형광장 좌측에 Australian Capital Territory(ACT - 캔버라)가 보이고 원형광장 우측에 박물관과 각종 건물들이 보이는데 원형광장과 원형광장 외각에는 육각형의 도로가 보이고 더 외각에는 육각형으로 된 외각도로가 보이고 그 옆으로 주택지들이 보이는데 육각형으로 된 도로 안에 각종 관공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 호주 국회의사당에서 ACT까지 가는 도로인데 도로의 경우 중앙분리대가 창원시에서 있는 중앙분리대보다 큰 것이 자리잡고 있으며 도로의 경우 창원시의 도로와 비슷하게 보이며 많은 나무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ACT 위 도로의 모습으로 중앙분리대의 경우 하나의 공원과 같이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좌측건물은 Novotel Canberra으로 위 위성지도와 마찬가지로 중앙분리대의 경우 도로보다 크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호주의 수도 캔버라를 모델로 삼고 도시계획을 한 창원시의 경우 어떤 모습일까요? 경남도청을 중심으로 창원시청까지 직선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각종 관공서들이 들어서있고
▼ 창원시청을 중심으로 원형광장이 있으며 창원시청 아래쪽에 상가들이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또 창원시청 좌측으로 아파트가 우측으로는 주택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 경남도청 앞의 도로를 보면 T자형의 큰 도로가 있고 T자형의 도로중 창원시청까지 이어진 도로가 주 도로입니다. 그리고 주도로 옆으로 창원시청까지 이어지는 4차선도로가 있는데 이는 병무청에서 동남공업단지관리공단까지 이어지는 도로와 도청에서 동남공업단지관리공단까지 이어지는 4차선도로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호주의 캔버라시와 비슷하면서 다르게 도시가 형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캔버라시의 경우 국회의사당과 ACT주변이 광장으로 되어있지만 방사형으로 된 도시구조이고 창원시의 경우 경남도청을 중심으로 T자형의 도로가 있으며 창원시청앞 광장으로 +자로 된 도로가 놓여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로나 많은 공원의 경우 켄버라시를 참고했지만 이는 참고사항이고 어디까지나 창원시 나름대로 도시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남도청에서 창원시청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을 받더군요.

▼ 서울시에 있는 광화문을 중심으로 이어진 도로입니다. 물론 작은 도로를 제외하고 큰도로를 기준입니다. 광화문의 경우 조선시대 가장 중심이던 곳이죠. 경복궁을 가기위해서는 꼭 지나가야하는 문이고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면서 경복궁을 중심으로 종묘와 사직단을 좌우측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광화문앞 도로에는 육조거리를 세웠고 경복궁 광화문 좌우에 의정부, 한성부, 병조, 형조 등 관아가 배치되었습니다. 따라서 광화문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조선의 가장 번화한 거리이며 중심거리입니다.    
▼ 한양의 경우 경복궁을 중심으로 도로를 형성했다면 지방의 경우 동헌을 중심으로 객사와 사직단을 세웠는데 사직단의 경우 읍성 외각에 세우고 종묘에 해당되는 객사를 세웠습니다. 종묘와 달리 객사의 경우 살아있는 임금을 위한 생사당의 역활을 하는 것이 다릅니다. 이 읍성이나 읍치를 세울때 성문의 갯수에 따라 도로가 달라졌는데 성문이 4개이면 +자형의 도로가 성문이 3개이면 T자형의 도로가 발달이 되는데 아래 그림지도에 나오는 나주읍성의 경우 +자형의 도로가 발달이 됩니다.
▼ T자형의 도로이던 +자형의 도로이던 동헌과 객사의 경우 정문인 남문(전부 남문이 중심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남문이 중심입니다. 일부 지형에 따라 서문이 중심일 수 있고 동문이 중심일 수 있습니다. 전북 고창읍성의 경우 북문이 중심입니다.) 을 따라 올라오면 중심부에 +자형 도로나 T자형 도로가 나오는데 위부분에 동헌과 객사를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물론 꼭 그런것은 아니지만요) 동헌을 들어가기전에 나오는 외삼문 바깥에 각종 관아들을 배치하고 +자 도로 T자 도로 아래측으로 각종 민가들이 자리잡았습니다. 남문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는 것도 도로 아래측이기 때문입니다.
▼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이되면서 경복궁앞 도로에는 각종 정부기관들이 들어섰는데 이는 조선시대 육조거리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 일제강점기때의 광화문 모습
▼ 2010년 8월 15일 전면공개될 광화문의 모습
▼ 그럼 다시 창원시로 되돌아가보자 경남도청앞 삼거리의 모습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경남도청앞 삼거리의 경우 창원시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중심도로인데 경상남도교육청,창원시교육청, 창원고용센터,한국산업안전공단 등을 비롯하여 각종 관공서들이 들어서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위 지도사진 아래부분으로 창원교육청, 창원세무서, 조달청경남지청, 한국전력공사 등이 있습니다.
▼ 더 아래에는 성산아트센터,창원KBS, 중부경찰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 창원시청의 경우 +자형의 도로를 중심으로 창원시청이 자리잡고 맞은편에 농협, 한국은행, 산림조합, 창원시보건소, 창원소방서가 들어 서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창원광장 아래편에는 이마트,롯데마트,롯데백화점이 있고(둥근 창원광장 부분이 호주의 수도 캔버라와 비슷하긴 합니다.)
▼ 창원광장 아래 편에는 신한은행,제일은행,부산은행 등 민간시설들이 들어서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남도청을 중심으로 T자형의 도로가 나고 경남도청에서 창원시청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광화문의 육조거리와 같이 각종 관공서가 들어서있습니다. 또 창원시청을 중심으로 아래편에는 민간업체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자형의 도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원시의 경우 호주의 캔버라의 도시를 모델로 삼았다고 하지만 직선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각종 공원을 참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인 참고는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서울을 모델로 삼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조선시대 전국각지에서 시행한 읍성의 도시기반시설을 참고로 했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다만 읍성에 들어선 각종 동헌,객사,관아 건물지의 경우 크기가 작은 것을 제외하면 시설이나 도로의 경우 같은 법칙이 적용되었다고 봅니다.    




덧글

  • 明智光秀 2010/08/12 16:54 #

    서울을 모델로 잡았다기 보다...
    저는 창원에 처음 와서 국제 표준인 Made in China대로 지었구나 했습니다. ^^

    북쪽으로 궁성(도청)을 두고 가운데 큰 길을 내서 좌우로 나누고 그에 직교하게 3개의 큰 길을 내고 (맨 밑의 창원대로가 가장 크고 진해/마산으로 다이렉트 연결~)...
    중앙 큰 길에는 시청과 둥그런 로터리를 만들고(로터리니까 둥글 뿐 길자체가 방사선 집중은 아니고... 예전엔 부산 서면로터리도 이런 둥근 구조였고)...

    저는 주작대로, 장안... 뭐 그런게 생각 났었습니다. ^^
    그저 메이드 인 차이나에 따른 동양의 기본? ^^
  • 팬저 2010/08/12 21:20 #

    평지읍성의 경우 장안성을 기본으로 만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보니 평지읍성의 경우 4대문이 많이 있죠. 조선의 건국과 함께 시작된 읍성 축성시 많은 부분이 장안성의 모델로 삼은 것은 사실이나 이건 어디까지 평지읍성의 경우이고 평산성이나 산성의 경우 이야기가 틀리죠. 문제는 평지읍성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죠. 도성중 한양의 경우 장안성부분을 참고했겠지만 나름대로 조선식으로 건축했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나서 창원시를 건설할 때 장안성보다는 서울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건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 부산촌놈 2010/08/12 22:20 #

    주제 밖의 이야기지만 본문에 사직단 관련해서 말씀하신 것 말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동래 사직단 터 바로 옆에 살았거든요.

    다른 지형보다 살짝 높은 구릉에 위치해 있는데 달랑 표석만 있지 말입니다.

    현재는 버려진 민간 종교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그 위치가 동헌과는 상당히 멉니다.

    아니, 아예 동래읍성 밖에 있지요.

    원래 이런 겁니까?

    링크 걸어드리겠습니다.

    http://map.naver.com/?dlevel=14&lat=35.1993037&lng=129.0668519&menu=location&query=67aA7IKwIOyCrOyngeuPmQ%3D%3D&stab=REGION_2%3B1%3BSITE_1%3B2%3BADDRESS%3B1&queryRank=1&mapMode=1&enc=b64

    사직대건성당 우측의 합작지붕의 건물이 그 터입니다.

    거기 가서 찍어놓은 사진도 있는데 참고하시고 싶으시다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팬저 2010/08/12 23:23 #

    사직단의 경우 보통 읍성 밖에 있습니다. 따라서 동래읍성 바깥에 있었던 것은 맞을 것 같고요. 지도로 봐서는 정확하게 잘모르겠고 저도 사직단은 본적이 없어요. 그리고 보니 부산의 명칭인 사직이라는 명칭이 사직단에서 나온 것이 맞을 것 같네요. 명륜동의 경우 향교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요.
  • 부산촌놈 2010/08/12 22:23 #

    그나저나 광화문 공개일도 머지 않았군요.

    개인적으로 월대를 전구간 복원하지 못한 것이 상당히 아쉽네요...

    도로만 관통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그 광화문 양옆에 초소 비슷하게 새워놓은 건물은 뭐라고 부르는진 모르겠는데 얼핏 보니까 없는 것 같더군요...

    부속 건물도 같이 복원한다더니 정작 광화문에 바짝 달라붙은 녀석들은 취급도 안 해주나 봅니다.
  • 팬저 2010/08/12 23:27 #

    글쎄요. 저도 보았지만 명칭은 모르겠고 치성과 같은 역활을 했던 것으로 보이더군요.
  • 부산촌놈 2010/08/13 11:15 #

    네, 사직동과 인근의 사직구장은 이 사직단에서 유래한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원래 읍성과 거리가 이렇게 먼가요?

    제일 가까운 서문이나 남문에서도 직선 거리로 1.5~2km는 되어보이는데 말입니다.
  • 팬저 2010/08/13 13:12 #

    사직단과의 거리는 조금 됩니다. 보통 10리이내에 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읍성에 높은분이 찾아오면 보통 읍성바깥에 나가서 마중을 나가고 갈때에도 배웅을 하는데 보통 그 거리가 5리정도나 10리정도에 마중을 가거나 배웅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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