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읍성 지적도를 인터넷에서 구하였는데 출처를 잊어버렸습니다. 저번에도 이야기 하였지만 읍성의 경우 1910년경에 제작한 지적도만 구하면 거의 80% 이상 읍성의 성곽을 유추할 수 있는데 김해읍성에 관한 지적도를 구하지 못해 김해읍성 북문 복원 포스팅할때 자세히 표현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지적원도를 구하여 김해읍성의 4대문과 각종 관아들을 유추 해볼 수 있을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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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김해읍성 북문 복원 포스팅 보기
김해읍성의 경우 평지읍성으로 4대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로 된 도로가 발달이 되어야 하는데 이부분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4각형이면서 5각형에 가까운 4각형으로 된 읍성임을 알 수 있으며 치성 또한 18개로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당시 가장활발하게 왕래한 남문을 중심으로 한 도로와 읍성이 무너지면서 새로 생긴 도로가 있는데 남문을 중심으로 한 도로보다 큰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재 김해시내 주요 간선도로입니다. 간선도로의 경우 직선으로 이어지다가 자연스러운 도로가 났는데 현재 김해시내 도로도 이러한 모습입니다. 당시 읍성 내부에는 남문을 중심으로 집들이 형성되어져 있고 동문을 중심으로 민가들이 없음을 알 수 있고 북문에 많은 관아와 민가들이 있음을 알 수 있고 4대문 앞에 마을이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지적원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동헌터와 객사터의 경우 위 지적도에 있는 큰 대지를 기준으로 임의로 작성하였는데 아닐 수도 있습니다. 틀리다면 다음에 수정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임의로 했다고 하지만 아래에 나올 김해부내지도를 참고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객사지의 경우 현재 원불교포교당으로 보이고 동헌터의 경우 농협이나 김해맨션으로 보입니다. 김해부내지도를 보면 옥이 읍성내부에 있는것이 아니고 외부에 있는데 이를 근거로 본다면 옥의 경우 향군회관이나 볼링센터근처로 보입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김해읍성 북문 평거식 가능성 포스팅보기

덧글
그나저나 2층 누각은 그 지방의 위엄과 격식을 높이는 의미에서 지어졌을 것 아닙니까?
보통 2층 누각은 어느 행정 단위에서부터 많이 사용되었는지 궁금하군요.
그래도 아무래도 큰 고을일수록 팬저 님께서 말씀하신 요소들이 커지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방 수령 쪼대로 짓는 경우는 없었던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