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읍성06_동점문 읍성(邑城)



1872년 지방지에서 본 나주읍성의 모습입니다. 나주읍성의 성문을 보면 남문과 동문의 경우 2층 누각이고 북문과 서문의 경우 1층 누각임을 알 수 있고 동,남,북문의 경우 홍예로 된 성문이고 서문의 경우 평거식 성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옹성의 경우 그려져 있는데 둥근옹성이 아니고 ㄱ자나 ㄴ자로 된 옹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치성의 경우 동북측에 많이 그려져 있고 남서측이나 서북측에는 1개 아니면 2개 정도만 보이고 남동측에는 치성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동북측에는 치성이 4개나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나주읍성 동문인 동점문의 모형으로 2층 누각과 함께 옹성이 있습니다. 동점문옆에 보이는 곳에 수문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동점문의 경우 2004년 착공하여 2006년 10월에 복원을 하였습니다.

▼  동점문 뒷 모습으로 누혈과 함께 성문의 경우 홍예로 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홍예문의 입구 모서리에 보이는 홍예기석(아래부분)과 홍예기석위 에 보이는 홍예석의 경우 많이 큼을 알 수 있습니다.
▼  무사석의 경우 크기도 비슷하면서 이빨이 딱 들여 맞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  바닥의 경우 자연석을 이용하여 놓았더군요.
▼  천정의 경우 청룡과 황룡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여의주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  홍예문 하단에 있는 성돌들이 재미있는 것 같은데요.  
▼  예전 부터 있었던 돌로 보이던데 문양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  문을 열고 나오면 옹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옹성의 모습이 마치 로보트와 같아 보이는데 필자만 느끼는 것일까요?
▼  성문의 경우 철엽을 달아 놓았습니다. 철엽의 경우 적의 화공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철판을 아주 얇게 만들어서 성문위에 덮어쓰는 방식인데 거북선도 이와 같은 방식이 아니었느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무사석과 옹성이 만나는 부분으로 색상이나 재질이 달라서 그런지 어색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  옹성안에서 동점문 누각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  석누조의 모습이 보이고 위로 문루여장이 보이는데 문루여장의 경우 벽돌로 되어져 있으며 근총안과 원총안의 모습이 보입니다.
▼  옹성의 출입구방향으로 3~4미터 정도의 넓이였으며 높이의 경우 3미터~4미터로 보입니다.
▼  옹성의 축성방식을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  바깥쪽은 큰 돌을 쌓고 안에는 작은 돌로 채워져 있습니다.
▼  복원한 체성과 동문에서 남문으로 연결되는 부분으로 이곳에 하천이 있습니다.
▼  바깥에서 본 동점문의 모습으로 2층 누각과 옹성의 모습이 잘나타나 있어 전체적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나주읍성 동문터 설명
▼  나주읍성 동문의 경우 최근에 복원했어 그런지 깨끗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예전에 대리석으로 채우는 방식보다는 조금은 자연스럽고 보기가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  동점문의 누각에는 1,2층 모두 총안이 있는데 이런 부분이 있으면 실질적인 느낌이 들고 전투를 하는데 있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  옹성의 여장의 경우 기본에 충실하게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여장과 타구 그리고 총안들이 너무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예전의 방식과 비교한다면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  동측체성이 끊어져 있으며 저 부분이 이어져 북문까지 가겠죠.
▼  예전의 방식과 다르게 배수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비용을 들여서 복원하는 것이어서 그런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측면에서 본 동점문과 누각의 모습으로 1층누각에는 협문이 2층 누각에는 총안의 모습이 보입니다.
▼  모습과 문루여장의 모습
▼  화재방지를 위한 소화전과 소화기의 모습
▼  동점문 안내판
▼  옹성위에 까지 올라와 보았습니다.
▼  평여장 위에 있는 옥개석
▼  여장과 여장사이에는 타구라 부르는데 이곳에서 활을 쏘기 위한 곳입니다.
▼  보이는데 이부분이 옹성안의 누혈로 배수될 것입니다.
▼  옹성안 회각로의 경우 성인남성 기준으로 5~6명정도 지나갈 정도로 폭이 조금 넓었습니다.
▼  동점문의 현판과 총안의 모습
▼  위에서 본 동점문 홍예의 모습으로 이곳 까지 적이 들어왔다면 아군의 입장에서 위급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옹성안까지 들여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  문루여장의 근총안의 경우 경사가 2~30도 되어보이며 누혈의 경우 보입니다.
▼  1층 누각에서 2층 누각으로 올라가려고 할때 사용되는 계단
▼  타구에 사용할 깃발을 꽃아두기 위해 사용중인 깃발봉
▼ 옹성위에서 바라본 동점문 누각의 모습으로 추녀의 모습이 보입니다.
▼ 옹성에서 바라본 성바깥의 모습인데 우측에 하천이 보이는데 이곳에 수구를 설치되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  누각과 옹성이 시작되는 부분의 돌들의 경우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옆으로 길게된 장으로 된 돌이 받치고 있습니다.
▼  여장과 누각의 평여장에서 옹성안으로 들어오는 곳에는 아주 작은 계단이 놓여져 있습니다.
▼ 여장의 체성에서 북문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성곽이 이어졌다면 바로 보이는 건물을 지나서 갔겠죠.
▼  회각로의 바닥의 모습
▼  안측 체성의 성돌의 모습으로 나주읍성의 경우 내외축 모두 돌로 쌓은 협축방식임을 알려줍니다.
▼ 동점문에서 서측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조금 지나가면 나주읍성 객사와 동헌터가 나옵니다. 이길을 따라 매주일요일과 매주 2,4주 토요일날 순라의식이 있다고 합니다. 동점문에서 중앙로 그리고 정수루까지 한다고 합니다. 



덧글

  • gene 2010/08/23 23:07 # 삭제

    과연! 남고문과 비교했을때 성곽의 퀄리티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군요.

    문화재 복원기술이 나날이 성장해 나가는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 팬저 2010/08/24 13:17 #

    예... 남고문과 많은 차이가 있다고 봐야겠죠. 아무래도 자연적인 미(美)를 강조하는 것이 추세인 것 같습니다.
  • 부산촌놈 2010/08/24 16:12 #

    협축 공법은 어떨 때 쓰이며 내탁 공법은 어떨 때 쓰이는 것입니까?

    아무래도 내탁 공법은 성돌이 덜 들어가니 시간과 비용이 절약된다고 들었는데 말이지요.
  • 팬저 2010/08/24 22:25 #

    글쎄요. 이 부분에 관하여는 잘 알지 못합니다. 협축공법의 경우 시간과 재정도 많이 들겠죠.

    제가 알고 있기로는 고려때에는 토성을 조선에서는 석성을 많이 쌓았는데 토성위에 석성을 쌓을 경우

    내탁방식을 쌓기 편할 것입니다. 조선시대 읍성 축성의 경우 거의 협축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토성이 자주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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