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읍성_03(남문을 중심으로) 읍성(邑城)



동문지에서 나와 기장초등학교 방향으로 고살을 걸어가면 예전에 사용한 우물이 있더군요.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서 조선시대때부터 있었던 우물인지 아니면 그 이후 생긴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기장초등학교 근처 골목에서 동문지를 바라본 모습으로 오렌지색 지붕이 있는 곳이 동문지입니다. 동문으로 가는 길의 경우 골목보다 조금 더 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기장초등학교 수령관인데 예전 동헌자리이기도 해서 그런지 수령관이라고 사용중이었고 얼마전에 있었던 수령관을 증축했더군요. 
▼ 기장초등학교 교실의 모습으로 저곳에 기장 객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 1911년 7월에 기장초등학교가 문을 열었다고 하니 2011년이면 100년이네요. 이렇게 일제강점기때 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객사 및 동헌의 기능은 상실됩니다.
▼ 기장초등학교에서 바라본 남문방향으로 보이는 저 길이 조선시대 기장에서 가장 번화한 길이지만 지금은 여는 골목과 같습니다.
▼ 기장읍성 평면도로 객사터가 기장초등학교고 아래 남문지로 이제 이동합니다.
▼ 남문지 근처의 남측체성으로 동측체성만 남아있다고 하는 글들은 잘못되었더군요.
▼ 가정집 담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완전한 성곽의 체성이었고 적어도 80미터 이상은 남아있었습니다.
▼ 내부의 체성인데 내부의 경우 상당히 작은 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조선초기 연안읍성에서 사용된 성곽의 돌과 같은 크기의 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주 작은 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 이는 임진왜란때 기장읍성이 함락되고 7년 전쟁이 끝나면서 기장현이 폐성이 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남측체성 내측에서 북측방향을 바라본 모습
▼ 남측체성의 경우 사진과 같이 큰돌과 작은돌이 같이 어울러져 있습니다.
▼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본격적인 기장읍성이 무너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치성과 같이 튀어 나온 것이 있었는데 치성은 아닐 것으로 봤습니다. 이유는 치성이라면 체성 바깥부분으로 축성되어야 하는데 이부분은 성내방향으로 축성되어져 있어서 입니다.
▼ 현재 남아있는 남측체성의 경우 1~2미터 정도 아주 작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남문지로 가까이 오니까 큰 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물론 조선초기 연안읍성에 사용된 표준적인 돌 보다는 작아보였지만 남측체성에 사용되고 남아있는 돌 중에서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 남문지에 있는 민가의 지번
▼ 가정집 담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남측체성으로 남아있는 성돌의 경우 대략 6~70센치이상 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 위 사진에서 조금 더 옆으로 가서 찍은 사진인데 잘남아있는 체성의 돌입니다.
▼ 위 민가의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체성의 부분입니다.
▼ 위 민가의 뒷담으로 이곳에 겨우 남측체성의 폭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남아있더군요.
▼ 현재 남아있는 남측체성을 바라본 모습으로 위 기장읍성안내판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 현재 남아있는 남측체성의 경우 녹색으로 표시하였습니다. 남문지를 보면 전체적으로 옹성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도로가 이어져있습니다.
▼ 남문지에서 바깥을 바라본 모습으로 우측에 보이는 민가가 옹성이 지나갔을 것으로 추측을 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전체적으로 둥글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위 사진의 반대편의 모습으로 민가의 기단부를 보면 기장읍성에 사용된 성돌로 보였는데 사용된 돌의 크기가 작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모서리가 돌아가는 부분에 있는 돌의 경우 크기도 크고 성돌이 모서리를 따라 돌아가는 형상입니다.
▼ 전체적으로 직선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는 성문의 체성부분으로 보였습니다.
▼ 위 사진위의 민가로 옹성이 지나가는 흔적을 알 수 있습니다.
▼ 민가의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옹성부분이 지나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남문지에서 기장초등학교를 바라본 모습으로 가장 활발한 곳이 남문지였고 바로 보이는 도로가 가장 번화된 길이었을 것입니다.
▼ 남문지에서 옹성을 지나 남문지를 바라본 모습입니다.
▼ 남문지에서 나와서 본 골목으로 예전에 해자로 사용되었습니다.
▼ 해자로 사용되었던 골목길



핑백

  • 팬저의 국방여행 : 전국의 읍성_01 경남전남편 2012-07-04 21:21:38 #

    ... 의 언양읍성_02북측체성_언양읍성_03복원된 북측체성_언양읍성_04부산시 기장읍성 - 최근 본격적인 복원이 결정된 기장읍성기장읍성_01 동문지와 동측체성기장읍성_02 남문지와 남측체성기장읍성_03 무너진 서측체성동래읍성 경상남도양산읍성밀양읍성김해읍성웅천읍성 창원읍성진해읍성칠원읍성영산읍성함안읍성의령읍성고성읍성거제읍성삼가읍성함양읍 ... more

덧글

  • 헤르모드 2010/08/24 20:07 #

    사진속의 풍경이 더워보이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 팬저 2010/08/24 22:18 #

    사진에 보이는 것 만큼 더웠지만 지금 처럼 덥지는 안했는데 지금이 더 더운 느낌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 부산촌놈 2010/08/24 22:12 #

    예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그 해자 말입니다.

    해자 역시 땅을 파야되고 호안석축을 쌓기 위해 읍성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태까지 본 읍성들 중에서 읍성의 주출입문 앞에만 해자를 조성해놓은 경우를 몇 번 본 것 같은데 이것이 조선 시대의 노동력과 재정 능력의 한계라고 보아도 될런지요?
  • 팬저 2010/08/24 22:21 #

    해자의 경우 읍성이던 군인들이 주둔하던 진성이던 간에 다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있었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골목으로 도로로 되면서 남아있는 부분이 얼마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조선시대 읍성을 축성할 시 농번기를 피하여 축성을 하였는데 그러다보면 몇년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당시에 축성하면서 공사책임자와 석공들의 이름을 기입할 정도로 실명제를 실시하였기 때문에

    능력의 한계는 아니라고 봐야 할 것 입니다.
  • 역사관심 2010/08/25 13:49 # 삭제

    오늘도 잘 배우고 갑니다.
    대단하신 열정~!
  • 팬저 2010/08/25 16:08 #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