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덕포보_02 진성(鎭城)



저번에 풍덕포보에 관한 위치를 설명을 했었는데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어서 풍호동 근처를 풍덕보가 마지막 까지 있었던 곳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풍덕포보 1편 보기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1945년 진해시 1:12,500 지도를 구하여 보고 풍덕포보의 위치를 바로 잡고자 합니다.

▼ 해동지도에 나온 풍덕포보로 지금의 해군사관학교 자리에 풍덕포보가 보입니다. 화공이 없는 위치를 표시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고 빨간색으로 표시한 곳이 풍덕포보가 마지막까지 있었던 곳입니다. 풍덕포보의 경우 혁파당하는 영조27년(1751년)까지 현재의 풍호동 자리에 있었고 광해군 2년(1610)에 문헌으로 등장합니다. 풍덕포보가 만들어질때에는 지금의 해군사관학교 자리에 들어섰다가 이후 지금의 풍호동 자리로 옮겨 간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 비변사인방안지도 중 웅천현지도로 이곳에도 풍덕보의 경우 현재의 해군사관학교 위치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해항안에 있는 소죽도와 대죽도의 모습이 보입니다.
▼ 1: 12,500지도로 진해시의 모습이 아주 잘나타 있습니다. 시기는 1945년으로 해방이 되던해라 일본인들이 거주한 중원로터리부근과 조선인들이 거주한 경화동과의 거리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고 현재 석동,이동,자은동은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지 않았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현재의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곳인데 위 해동지도의 풍덕포보의 지형과 비교하면 별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속천항이 있는 곳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연적인 해안선을 끼고 있으나 현재 진해군인 골프장주변으로 염전이 많이 조성되어져 있습니다. 그럼 저곳에 풍덕포보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지형상으로 봐서 염전이 있는 곳은 아닐것으로 보입니다.
▼ 염전이 많이 있는 곳으로 보니 해안선의 경우 염전을 만들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고 조그마한 동산이 보이는데 그곳이 독산리라고 적혀있습니다. 저곳이 나중에 군부대 부지로 편입이 되고 해병대 발생지가 되는 곳인데 1945년에는 그냥 조그마한 마을로 보입니다. 현재는 군 골프장입니다. 또 진해항에 섬이 하나 보이는데 소죽도입니다. 현재는 매립이 다되어 육지화가 되어버렸지만 아직 지명은 소죽도로 남아있습니다.  
▼ 염전이 있는 곳이 아닌 곳중에 포구가 있으며 포구의 경우도 인공적으로 조성하였던 흔적이 보이는 곳이 풍덕포보가 있었던 곳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곳이 풍호리라고 적혀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풍덕포라는 지명이 1751년 이후로 남아있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풍덕포가 풍호리로 변한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포구에 전선1척은 충분히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위 1945년 지도와 현재의 항공지도를 대비하여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오차가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저곳을 기준으로 보니까 진해비행장 헬기착륙장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150여년 있다가 사라진 풍덕포보의 자료가 많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겠지만 또 다른 자료가 있다면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부산촌놈 2010/08/31 23:10 #

    보라는 것이 강화도 쪽에 많던데 일종의 해안포대 같은 곳입니까?
  • 팬저 2010/09/01 11:52 #

    조선군의 병영중 영진보성(營鎭堡城)은 지방군사제도로 사용되었으며 영은 수군이나 육군의 좌수영,우수영 등을 나타낼때 사용하는 큰단위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다음이 진 그다음이 보이니까 가장 작은 것이라고 봐야겠죠. 강화도에 사용된 해안포대의 경우 돈대인데 돈대의 경우 지금으로 치자면 소대(?)규모 정도이지만 보의 경우 지금으로 치자면 중대규모이니 조금 더 크다고 봐야겠죠.

    웅천의 경우 조선중기까지 4개진 3개보 또는 6개진 1개 보로 운영이 되었는데요. 4개의 진의 경우 제포,안골,천성,가덕이고 3개의 보의 경우 청천,신문,풍덕이었는데 청천과 신문의 경우 보에서 진으로 승격되었더군요. 그래서 6개의 진과 1개의 보로 됩니다.

    거제의 경우 7개의 진으로 방어를 하지만 남해의 경우 평산포진, 미조진, 곡포보, 상주포보 2개진 2개포였는데 1751년(영조 27)에 보인 상주포보, 곡포보는 혁파당합니다. 그후 2개의 진으로 방어를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당시 진주목이었던 창선에 적량진이 있었습니다.(지금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남해군 창선면 적량) 따라서 남해군을 중심으로 방어를 한 수군의 경우를 보면 3개진 2개보를 유지하다가 1751년 혁파당하고 나서는 3개의 진으로 방어를 하게됩니다.
  • 역사관심 2010/09/03 16:29 # 삭제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우리의 역사유적에 대해 아주 의미있는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언제 책으로 묶어서 많은 곳에서 요긴하게 쓰이면 하는 바램도 조심스레 가져봅니다. ^^
  • 팬저 2010/09/03 18:57 #

    좋게 봐주어서 감사드립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