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등성_02(남문지를 중심으로) 읍성(邑城)



예전(2008년 11월)에 사등성지를 찾아갔다가 시간적 제한으로 사등성의 북쪽 성벽만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번에 사등성을 탐방하여 글을 올립니다. 사등성의 경우 조선초기 거제의 읍성으로서의 기능을 하였다가 현재의 고현에 있는 고현성으로 이전을 한다라고 전편에 이야기하였습니다.

사등성 1편 보기

▼ 이번에 직접 찾아가보니 고현성보다 더 잘 남아있고 원형이 많이 보존되어져 있더군요. 필자가 직접 찍은 사진도 있지만 이번에는 2009년 7월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나온 거제 사등성 정밀지표조사보고서를 만드면서 찍은 항공사진 등을 이용하여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항공관련 사진과 봄철에 보이는 사진들은 경상문화재연구원의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현재 사등성이 있는 위치는 거제도 중 사등면으로 위로는 가조도가 보이는 곳에 있으며 동측으로는 고현과 가까이에 있습니다.
▼ 1912년 일제 강점기때의 사등성 지적도입니다. 당시 지적도에 나온 사등성의 성곽 대부분들이 현재 잘 남아있습니다.
▼ 다음 지도에서 바라본 사등성의 평면도로 현재 3개문이 남아있는데 동문의 경우 예전에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남아있지 않는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위 조감도와 아래 다음 지도를 비교해보면 전체적으로 원형에 가까운 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항공촬영을 통해 바라본 사등성의 모습입니다. (항공사진의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해볼 수 있습니다.)
▼ 항공촬영을 통해 바라본 사등성의 모습입니다. 사진상 우측의 경우 방위상으론 북측입니다. (항공사진의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해볼 수 있습니다.) 
▼ 전체적으로 사등성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는 항공사진으로 서측부분의 경우 농지로 이용되고 동측의 경우 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항공사진의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해볼 수 있습니다.)
▼ 남문의  모습으로 남문의 경우 옹성부분이 많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 남문모습으로 보면 옹성부분이 반 정도 남아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항공사진의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해볼 수 있습니다.)
▼ 다음지도에서 본 북문의 모습입니다. 북문 옹성의 경우 최근에 복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북문과 옹성의 모습으로 북문의 경우 출입문인 성문이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 흔적만 알 수 있습니다. (항공사진의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해볼 수 있습니다.)
▼ 다음지도에서 본 서문의 모습으로 서문앞 옹성의 경우 길이 나있고 그곳에 농사를 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서문의 모습과 옹성의 모습입니다. 옹성 위로 비포장 도로가 있으며 옹성안에 벼를 심어 놓았습니다.(항공사진의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해볼 수 있습니다.) 
▼ 위 서문과 남문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항공사진의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해볼 수 있습니다.)
▼ 치성이 있는 곳에 소방도로가 나져 있어 차량들이 다닙니다. (항공사진의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해볼 수 있습니다.)
▼ 이부분은 서측 성곽에 있는 치성으로 추정되는 부분인데 도로가 놓여져 있습니다. (항공사진의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해볼 수 있습니다.)
▼ 아래 부분은 동문으로 추정되는 부분으로 성곽이 쭉이어져 오다가 갈색지붕이 있는 집 앞에서 끊어져 있고 갈색지붕이 있는 곳에는 옹성과 같이 성곽이 툭 튀어나와 있습니다. (항공사진의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해볼 수 있습니다.)
▼ 남측에서 북측으로 사등성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항공사진의 경우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해볼 수 있습니다.)
▼ 사등성의 남문지로 현재 높이는 2미터~2.5미터 정도 남아있습니다.
▼ 남문지 옹성의 모습으로 여기에 사용된 성곽의 돌의 경우 아주 큰 돌이었으며 옆으로 긴 장방향의 돌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장방향의 돌로 축성된 것은 필자도 처음 보았습니다. 보통 조선초기 연해읍성의 경우 장방향의 돌 보다는 일정한 크기의 정방향의 돌을 이용하여 축성한 것이 보통인데 말이죠....
▼ 이렇게 보변 장방향의 돌들이 전체적으로 축성된 돌임을 알 수 있습니다.
▼ 현재 남아있는 옹성부분인데 보시면 아주 큰돌이 아래부분에 자리잡은 경우도 있지만 장방향의 돌들로 아래부분에 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장방향의 돌들이 아래에 있고 위로 갈 수록 정방향의 돌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돌의 색상은 연한 회색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 옹성부분에 있었던 돌들을 가까이 가서 찍은 사진인데 확실히 장방향으로 된 돌이 주축임을 알 수 있으며 잔돌끼움방식으로 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전부 다 장방향의 돌로 축성된 것은 아니고 아래 사진과 같이 일부분 정방향의 돌이 있습니다. 다만 그 크기가 작아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남문옹성과 연결된 서측성곽으로 여기는 가정집의 담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내측이라 그런지 작은돌들로 채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 위 사진의 반대 방향에 있는 모습으로 동측성곽이 이어지는 부분이라 그런지 아래측에는 아주 큰 돌이 자리잡고 있으며 위로는 중간정도 크기의 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남문에서 북측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보이는 도로 정도가 예전에 사용된 주 도로였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번 편은 남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다음편에 성곽과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덧글

  • 에로거북이 2010/10/18 12:11 #

    잘 보고 갑니다.
    저 정도 성곽이면 고현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만호 정도는 주재하지 않았을까요?
  • 팬저 2010/10/19 09:45 #

    조선초기 당시 거제현의 읍치였으니 현감이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 에로거북이 2010/10/19 10:29 #

    제가 말씀드린 뜻은, 거제현령이 원래 저기 있다가 고현 으로 이동한 이후에는 누가 주재 했을까 하는 점 입니다. 사진상 꽤 그럴듯한 성이라서 궁금했습니다.

    직접 찾아보고 싶지만 고향떠난지 오래고 거리가 멀어서 쉽지 않네요. ^^;;
  • 팬저 2010/10/19 11:06 #

    보통 읍치가 이전을 하고 나면 그곳에 방치를 하더군요. 여러군데가 그렇습니다.(거제 구조라진성의 경우도 그렇고 합포진성도 그렇습니다) 원래 이전 목적이 식수(우물)가 부족하여 고현으로 가는 것이라 그 이후 사용하기가 조금은 불편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부산촌놈 2010/10/18 23:30 #

    그러면 저 성은 거제현이 이전한 이후로는 일제시대까지 죽 폐성으로 남아 있었나요?
  • 팬저 2010/10/19 09:48 #

    폐성으로 남아있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진성이라면 일제 강점기이전 까지 사용을 했겠지만 현성의 기능이다 보니 고현성으로 옮겨가면서 할일이 없으니 자연히 폐성이 되었겠죠.

    또 진성의 경우 남쪽이나 동쪽에 주둔하던 것에 비해 사등성의 경우 거제도 북서쪽에 위치하여 진성으로서의 기능이 부족한 것도 폐성이 되었겠죠.

    또 무엇보다 거제도에 이와 비슷한 성(城)이 많아서 사용하기 안 좋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 에로거북이 2010/10/19 10:29 #

    여기 답변 달아 놓으셧네요. ^^ 잘 읽었습니다.
  • 2011/03/01 21:2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팬저 2011/03/01 21:29 #

    제 블로그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만 명기해주신다면 별 문제가 없겠네요.

    팬저의국방여행(http://panzercho.egloos.com)

    이런식으로 해주시면 되겠네요.
  • 노승미 2011/03/02 23:40 #

    안녕하세요. 이미지 사용 수락 감사드립니다.
    현재 훼손과 편집없이 사용하고 출처 표기를 확실히 하여 적용 했습니다.
    저희 어플상에 '사등성'을 검색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으며
    추후 저희 서비스가 오픈되면 아직 가보지 못한 여행지나 즐길 곳의 정보를 많이 얻어가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딴따라 2012/08/24 23:41 #

    수고하십니다. 읍성에 대해 정말 대단한 열정을 가지셨네요. 팬저님의 블로그에서 평소에 몰랐던 것을 많이 배워갑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사등성의 동문의 경우, 조사단에서 마땅히 저자리를 동문으로 추정하는 특별한 근거가 있는지요? 지적도상으로는 오히려 치성과 같은 시설 위로 길을 내면서 성곽이 절개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마땅이 옹성같은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길의 너비나 다른 성문과의 위치관계상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만 치성을 절개했다면 길이 성벽과 교차하는 부분에서 높아졌다가 낮아질 가능성은 있을거 같은데 안가봐서 잘 모르겠네요..^^;
  • 팬저 2012/08/24 23:49 #

    말씀하신 부분의 경우 지적하신 부분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옹성의 시설도 보이지 않고 치성과 같아 보이는 것이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원래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하고 몇년이 지난뒤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했습니다. 오래되어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두곳 모두 동문지로 추정한다고 적어 놓았던 것 같습니다.
    옹성도 보이지 않은 곳이지만 성문을 추정하는 것은 바로 성안을 지나가는 골목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건물들은 사라져도 길은 잘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도시개발을 하면서 완전히 길을 내지 않는 이상 500년이고 1,000년이고 이어져 오니까요?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많이 연구하시고 알려주시면 저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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