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읍성_04(무너진 서측성곽을 따라서) 읍성(邑城)



기장읍성 네번째로 남문지에서 올라와서 수각교를 지나 서측성곽으로 발을 옮깁니다.
▼ 수각교가 있었다고 하는 지점인데 현재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하천을 복개하였습니다.
▼ 1872년 지방지를 보면 기장읍성 안으로 하천이 서측에서 동측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 수각교가 있었던 곳을 서측에서 동측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수각교가 있었던 부분은 조금 높게 부풀러 올라가 있습니다.
▼ 기장읍성 남측성곽 내측의 모습인지 알 수 없습니다.
▼ 남측성곽의 내부의 모습이 보입니다.
▼ 수각교에서 서측성곽이 있는 곳으로 조금 걸어가면 현재 하천의 모습이 보입니다.
▼ 서측성곽을 가기위해 골목을 따라 올라갑니다. 기장읍성지 내부에는 예전부터 사용한 돌담의 모습이 많이 보이더군요.
▼ 기장읍성 내부에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우물의 모습입니다. 우물의 경우 읍성의 크기와 주민들이 생활한 인원을 측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읍성내부의 모습을 찍을때 꼭 사진을 찍습니다.
▼ 군데 군데 보이는 돌담장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 파랑색으로 된 기와가 아니고 초가집이었다면 조선시대때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입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때문에 안되겠네요. ^^ )
▼ 서측 체성이 있었던 곳에 오래된 고목이 있었는데 적어도 300년 이상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 서측 체성의 내부의 모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서측체성이 지나가는 곳에 이어져 있었습니다.
▼ 서측 체성에 있는 기장읍성 안내판으로 기장읍성지 내에 3개 정도가 보였는데 더 이상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 서측체성 외부의 모습으로 하단부의 모습은 조선초기 연해읍성의 모습이 보이지만 상단의 경우는 근세에 올려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쭉이어져 있었는데 담장과 비슷한 크기의 돌들이 있었는데 필자도 헷갈리더군요. 여기가 서측체성인지 아닌지...
▼ 이곳은 서낭당과 비슷한 곳인데 축대와 같이 되어져 있었는데 위 사진과 같이 쭉이어져 있었습니다.
▼ 사진상에 나오는 모습으로 봐서는 서측체성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힘이 들어 보입니다.
▼ 위 사진의 바로 옆의 모습인데 이곳을 보면 성곽의 체성의 일부분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돌의 크기도 크지만 체성의 기울기가 조선초기 읍성의 모습과 조금 다릅니다. 후세에 다시 축성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근대에 들어와 축성을 했을까 모르겠네요. 
▼ 위 사진이 있는 곳에서 남측방향으로 바라 본 것으로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서측체성 옆으로는 소방도로가 개설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정도라면 현재 보이는 도로부분이 해자 부근일 것입니다.
▼ 위 사진에서 북측방향으로 올라가면 언덕이 보이는데 옆에 조금 올라온 부분이 보이는데 성곽의 체성부분 일 것입니다.
▼ 군데 군데 큰 돌들이 보이는데 좀 더 정확한 것은 아무래도 발굴조사를 해야겠죠.
▼ 위 사진에서 조금 동측방향으로 3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부분이 서측체성이라면 위 사진의 경우 치성일 확률이 많습니다.
▼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서측체성일 확률이 많습니다.
▼ 큰 나무도 보이는데 담장인지 아닌지 조금 헷갈립니다.
▼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체성일 확률은 없습니다.
▼ 이제 서문지가 있는 곳입니다. 보이는 사진을 따라 가면 동헌과 객사가 나올 것입니다.
▼ 민가가 둥글게 이어져 있는데 아무래도 옹성부분일 것 같습니다.
▼ 보이는 부분은 서측체성에서 북측체성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저 길을 따라 가지는 않아서 북측체성과 북문지는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 기장초등학교 옆 골목인데 저 골목을 따라가면 북문지가 나옵니다. 보이는 저 골목이 예전 조선시대 당시 삼문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위 사진에서 아래측을 내려본 모습입니다. 아무래도 이 길이 조선시대 가장 중심 도로였을 것입니다.
▼ 군데 군데 빈 터가 많이 있었는데 발굴조사는 했는지 모르겠더군요.
▼ 오래된 나무와 민가가 있었는데 예전 관청건물이 아닐까 생각해서 찍어 보았습니다.
▼ 아래로 내려 와서 찍은 사진입니다.

▼ 골목길을 따라오니 수각교가 있었던 곳 까지 내려왔습니다.  

기장읍성의 경우 발굴조사가 있었습니다. 그 관련 자료들이 입수되면 다시 한번 글을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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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부산촌놈 2010/12/02 19:09 #

    복개된 하천을 다시 뜯으면서 호안석이나 돌다리가 거의 멀쩡한 상태로 발굴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더군요.

    청계천 정비 공사 때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호안석은 완전히 밀어 버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팬저 님께서 답사하신 수각교터가 솟아 있다는 건 곧 수각교터가 아니라 수각교라는 다리가 거의 멀쩡한 상태로 하천과 함께 복개되었을 수도 있다는 거잖습니까?

    밑에서 바깥 공기도 못 쐬는 비참한 운명을 맞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다행이군요.

  • 팬저 2010/12/02 19:28 #

    그렇습니까 중요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
  • 걷다보면 2010/12/13 10:37 # 삭제

    문화재가 빨리 정상적으호 복원되었으면 좋세합니다^^
  • 팬저 2010/12/13 10:55 #

    기장읍성의 경우 복원을 하려고 하면 예산이 만만치 않아보이더군요.
    복원을 조금씩하고 있으니까 기다려 봐야겠네요.
  • sara 2011/06/10 18:35 # 삭제

    건물은 장관청입니다, 최근조사에서 정면6간 측면2간이 확인되었고요, 헌종원년 상량문이 확인되었습니다. 외양은 변개가 심하지만 내부가구구조는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습니다. 곧 해체복원됩니다. 일제시대에는 명정의숙(여성학교)로 사용되었고 3.1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회화나무는 교리고읍성에서 현기장읍성으로 이전할때 식재되었다고는 하는데, 나무나이로 봐서는 아닐것 같네요. 회화나무는 관아용으로 흔히 식수되는 나무입니다.
    기장읍성이 증축되면서 수각교 안쪽선의 성벽선이 바깥으로 확장되면서 하천이 성내로 들어온거라고 발굴단에서 추측하더군요
    수각교는 한차례 개축되었지만(공덕비군에 비석이 있습니다) 재차 유실된후에는 나무다리로 계속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진도 남아있지요,
    그헣지만 교각부는 남아있다고 합니다. 발굴조사후 복원해야겠지요
  • 팬저 2011/06/10 19:36 #

    그렇죠. 회화나무가 유달리 많이 심어진다고 느꼈는데 그 이유가 있었네요. 장관청의 경우 정면 6칸 측면 2칸이라면 일반적인 구조라고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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