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성대감 최윤덕 동상 조선시대



지난 2010년 11월 12일날 최윤덕 장상에 관한 제막식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후 시간을 내어서 가보았습니다.

최윤덕 장상의 경우 창원시의 역사인물 찾기 일환으로 추진되었습니다.
뉴스를 보면 8개월에 걸쳐 제작된 기마상 형태의 동상은 길이 7.8m×높이 6.5m의 브론즈로  6톤으로 국내 최대 규모이며, 좌대 높이 6m × 폭 4.3m의 화강석으로 벽면에는 취지문, 한반도 지도, 장상의 연보를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최윤덕 장상의 경우 축성대감이라고 하는데 이는 전국 곳곳에서 읍성과 산성을 쌓은 공적으로 '축성대감'이라는 별칭을 세종대왕에게 얻었다고 합니다. 하삼도에 집중적으로 많이 축성하였습니다.
축성대감 최윤덕의 경우는 2008년 4월 호국의 인물로 선정이 되었으며 대한민족무예예술인총연합회에서 "축성대감 최윤덕" 창작 武舞를 만들어서 공연하고 있습니다.  
축성대감 최윤덕의 경우 북방변경 개척의 선구자로도 이야기 할 수 있는데 세종때 4군 6진을 개척할때 김종서장군과 함께 하였는데 4군은 최윤덕 장군이 6진은 김종서 장군이 개척하였습니다.  

1428년 병조판서에 오른 최윤덕이 세종께 성을 쌓아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고 진언하자 세종이 최윤덕에게 축성대감이라는 별명을 내렸습니다. 축성대감인 최윤덕이 죽자 세종은 사흘동안 나랏일을 보지 않고 최윤덕장군의 죽음을 애도하였다고 합니다. 예관을 명하여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루게 했다고 하니 세종의 사랑이 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렬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합니다.  
서울 종묘에는 최윤덕 장상의 위패가, 전북 장수군과 전남 해남에는 사당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영정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최윤덕 장상은 율곡의 십만양병설에 앞서 왜국의 침략을 예견할만큼 뛰어난 장수였습니다. 세종에게 "일본이 지금은 저희들끼리 싸우고 있지만 정세가 통일되면 반드시 우리나라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부산 동래에 성을 쌓아 대비하소서"라고 했을 정도이니까요?

다만 여기서 동래에 성을 쌓아 대비하라고 했는데 최윤덕 장상이 축성한 연해읍성과 같이 축성했다면 똑같은 결과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왜성과 같은 방식은 아니어도 적어도 2중 3중으로 된 성을 축성했다면 전쟁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축성대감 최윤덕의 기록을 보면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 1394년(태조 3) 19세에 무과 회시(會試)에 합격했으며, 21세 때 경상도에 침입한 왜구를 섬멸하는 등 아버지를 따라 여러 차례 전투에서 공을 세워 1400년 훈련원 부사직(副司直)에 제수됐다.

1402년(태종 2) 낭장(郎將) 등을 거쳐 1403년 대호군(大護軍), 1406년 지태안군사(知泰安郡使)로 승진하는 등 부친상 중에도 3년 시묘를 끝내지 못하고 왕의 부름을 받을 정도로 변방방어에 있어 왕의 신임을 받았다.

1419년(세종 원년) 의정부 참찬(參贊)으로 삼군도절제사가 되어 출병 15일 만에 대마도를 정벌해 하삼도에 창궐하던 왜구를 격퇴했으며, 이후 공조판서, 평안도절제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국방에 온 힘을 기울였다.

1433년(세종 15년)에는 군사 1만5000명을 이끌고 압록강 유역에 침입한 여진족을 물리치고 여연, 자성, 무창, 우예에 4군을 설치했다. 그 공으로 우의정에 제수됐으며 1435년에는 좌의정에 올랐다. "

축성대감을 상징하는 여장의 모습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그래도 여장안에 총안의 모습도 보입니다.





덧글

  • 두근두근 2010/12/04 21:48 # 삭제

    최윤덕 기억나네요.. 동래읍성을 연안읍성처럼 만들었다면 흠... 동래읍성이 분지에 만들어지긴 했는데 물을 끌어올만한 곳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연안읍성 지형도가 있으면 좋을텐데, 이북에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 부산촌놈 2010/12/05 09:30 #

    읍성 서쪽에 온천천이라고 하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물을 끌어올 수 있었다면 끌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온천천의 지류 중 하나도 동래읍성 안에서 시작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기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전기랑 후기랑 비교했을 때 지류가 나가는 수문이 있던 부분이 약간 일치할 것 같은데요.
  • 팬저 2010/12/05 12:24 #

    연안읍성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어서 말씀드리기는 뭐합니다만 동래읍성의 경우 2중 3중으로 쌓지 않았다면 임진왜란 당시 많은 병력을 막기가 힘이 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부산촌놈 2010/12/05 09:30 #

    얼마나 많이 쌓았길래 축성대감이라는 별칭이...
  • 팬저 2010/12/05 12:24 #

    하삼도(충청,전라,경상도)의 많은 읍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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