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왜성_11(나성(羅城)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2편) 왜성(倭城)



웅천왜성에 오래만에 가보았네요. 웅천왜성을 가려고 간 것이 아니고 용원에 볼일이 있어서 가다가 잠시 들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는 없었고 일단 와성마을과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만 보고 왔습니다. 이번편에는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아래 지도에 나올 C지점입니다.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중 가장 바닷가와 접하고 있는 부분이고 육지쪽(웅천읍성 방향)에서 왔을때 가장 먼저 만나는 지점입니다.
▼ 이번에 웅천왜성 진입로를 가보니 아래 사진과 같이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져 있더군요. 웅천왜성을 처음 왔을때 사진에 보이는 웅천왜성 이정표 방향으로 가고 싶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먼저 성곽과 같은 것이 있어서죠. 당시에 산불감시하시는 분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웅천왜성이 아니고 위에 있다(천수각)"고 하셨는데 이번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 예전에 본 성곽인데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바로 웅천왜성과 서생포왜성, 안골왜성에서만 볼 수 있는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입니다. 다만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겨울철과 봄철이고 여름과 가을은 보기가 힘이 듭니다. 나무와 풀때문에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볼 수가 없습니다.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끝나는 부분으로 사진에 보이는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 35~40미터정도 됩니다.
▼ 진입로가 없다보니 숲속으로 길을 개척하면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군데 군데 돌덩이들이 보이는데 웅천왜성 노보리이시가키에 사용된 돌로 보였습니다.
▼ 가장 아래 부분의 노보리이시가키로 왜성 특유의 축성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남아있는 돌의 경우 3~5단 정도 되었습니다.  
▼ 위로 올라가서 찍은 사진인데 모서리 부분의 경우 90도 정도 꺽여져 있습니다.
▼ 위 사진에서 1미터 떨어진 곳으로 조금 뒤편인데 사진에 보시면 작지만 돌들이 뭉쳐져 있고 조금 높게 축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35~40미터 직선으로 이어진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산 정상에 있는 천수각을 향해 가다보니 이곳은 무엇인지 모르고 올라갑니다. 서생포왜성의 경우 이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 주변을 정비하여져 있다보니 구경도 하고 하는 것에 비해 웅천왜성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 진입하기도 힘이들고 주변 안내판도 없다보니 더욱 더 모르고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곳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을 지나가면 위에 또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있다는 것이죠.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 이곳 C지점에서 천수각이 있는 정상부까지 쭉 이어져 있습니다. 다만 나무사이에 있다보니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창원시에서 이런 부분을 알아보기 편하게 숲을 정비하는 것은 힘이 들까요?
▼ 노보리이시가키에서 웅천읍성 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남문지구 공사가 진행중이라 전체가 평지에 가까운데 우측의 경우 임진왜란 당시에는 바닷가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면으로만 조선군이나 명군이 올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 있으면 진출입하는 모든 사람을 감시할 수 있습니다.
▼ 이제 위로 올라가보려고 합니다. 성곽에 사용된 돌들이 직선으로 이어져 있는데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높이의 차이 덕분에 겨우 구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다른 각도에서 보니 확실히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구글위성지도에서 본 웅천왜성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입니다. 높낮이를 보여주려고 3D로 해 놓았습니다.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있는 곳만 높게 되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부분의 경우 일본군들이 인공적으로 축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원래 있었던 것은 C지점의 좌측과 같은 방식이었을 것 같은데 C지점만 돌출되고 평탄하게 되어져 있는 것으로 봐서 일본군들이 적은 병력이지만 상주하면서 웅천읍성 방향(사진상 우측)을 감시하기 위하여 평탄작업과 흙으로 높이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빨강색으로 된 선이 보이는데 이부분은 경사가 심하고 일직선상으로 된 돌로 축성하였을 것입니다. 나중에 나오겠지만 저곳에 군데 군데 돌들이 연결되어져 있었습니다.  
▼ 사진을 보면 이곳에 왜군들이 10여명 주둔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있었습니다.
▼ 평탄한 곳에서 본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모습으로 폭의 경우 2미터 정도 되어 보였는데 협축으로 되어져 있었습니다.
▼ 가장 위 웅천왜성 지도중 D지점에 있는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로 위 사진에 있는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돌들과 차이를 못느낄 정도로 축성하는 방식이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너무나 많은 나무들이 있어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알 수가 없습니다. 창원시에서 간벌작업을 하면서 조금 정리해주면 좋겠는데...
▼ 평지보다 조금 높게 만들어 놓은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입니다. 아무래도 우리의 읍성에서 보는 여장과 같은 개념이지 않을까 싶네요.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 바깥의 경우 경사가 가파르게 이어져 있는데 군데 군데 작은 돌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는 특이하게 정상부분 쪽으로 둥글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위성지도에도 나옵니다. 후세에 이렇게 축성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미루어 짐작하건데 왜성의 천수각과 떨어져 있다보니 독립부대로서의 역활을 하기위해 이런 식으로 방어개념이 도입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나무와 비교해서 높이가 짐작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 협축으로 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 서생포왜성에서는 높이가 높은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인 것에 비해 웅천왜성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 높이는 낮지만 용도에 맞추는 방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생포왜성에서는 이런 소부대가 운용하는 곳이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서생포왜성의 경우 동문과 남문사이에 데지로(출성 出城)라고 하는 것을 운용했는데 데지로(출성 出城)의 경우 상당히 큰 편이어서 적어도 요즘으로 이야기하면 중대규모가 주둔할 수 있는 곳이고 높이 또한 10미터가 넘었는 것에 비해 웅천왜성의 경우 겨우 10여명 주둔할 수 있는 곳인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에서 웅천읍성방향을 바라본 모습인데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있는 평탄한 곳에 무덤이 있었습니다. 사진에 보면 가장 높은 산이 불모산으로 봉수대가 있었던 곳이고 아파트가 있는 곳이 웅천읍성이 있는 곳이고 우측에 보이는 산 바로 뒤에 보이는 산이 자마왜성이 있었습니다. 자마왜성의 경우 산 정상부에 있는데 이곳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에서 보면 잘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에서 우측방향으로 현재 매립공사가 한창 진행중인데 이곳의 경우 바닷가였을 것이기 때문에 진출입하는 선박의 감시도 용이했을 것이고 웅포해전 당시 이순신함대가 이곳까지 왔을지는 모르겠지만 왜선의 선박이 정박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선박했을 장소의 경우 아직 자세히 알 수가 없네요.
▼ 시선을 더 우측으로 돌렸는데 위성사진에도 나오지만 다랭이밭과 같이 되어져 있는 부분이 있는데 사진에도 보이네요.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에서 아래 부분의 경사를 알아보려고 찍은 사진입니다. 여기 있는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 좌우측보다 높게 되어져 있다보니 좌측이던 우측이던 적군이 올라오려고 하면 힘이 들고 피해를 각오하고 올라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이제 도로가 있는 아래부분으로 내려옵니다. 아래 부분의 경우 위 주둔지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와 달리 아주 작은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 이런식으로 돌들이 연결이 되어져 있지만 상단부는 사라지고 없어서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만 정확한 것은 발굴조사가 말을 해주겠죠.
▼ 아래로 내려오니 상당히 가파른 곳이 나오더군요. 이제 거의 도로부분인데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끝나는 부분입니다.
▼ 내려와서 위로 쳐다본 모습으로 경사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정도의 경사가 되어야 방어자의 입장에서 방어하기 편했을 것이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짐작합니다.
▼ 도로가 있는 곳에 내려와도 조금 큰 돌이 연결되어져 있었습니다.
▼ 도로 부분으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마지막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
▼ 이렇게 V자 모양으로 되어져 있었습니다.
▼ 지형적인 구조인지는 몰라도 V자형식으로 된 부분이 적을 막기 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부분까지가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입니다.
▼ 위사진이 있는 곳에서 5~7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본 부분으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부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정한 방향과 높이를 이루며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부분은 도로와 인접한 곳이라 남아있었다고 해도 자연적으로 없어질 가망성이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 맞은편에 바다를 매립하고 있는 남문지구 현장인데 축대의 경우 왜성과 같은 기울기 방식으로 조성하고 있더군요.
웅천왜성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 필자도 아직 다 가보지 못했습니다. F.G.H 부분인데 언제 시간을 내어서 방문한다면 다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편에는 와성마을이야기를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