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영이 통영에 생긴 이유는? 원문때문이다. 영성(營城)



1872년 지방지에서 본 통제영도입니다. 경남 통영은 조선시대 수군 본영(현재의 해군본부)인 통제영(統制營)이 있었던 도시입니다. 통영(統營)이란 명칭도 통제영에서 비롯돼었다는 것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통제영이 통영에만 있었느냐라고 물었을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선조 26년(1593년)에 이순신을 통제사로 하여 경상·전라·충청 3도의 수군을 모두 관장하게 하였는데 한산도에 설치합니다. 임란 직후에는 전라좌수영(현 여수), 경상우수영(현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로 옮기기도 하였습니다. 그후 선조 35년(1602년)에 고성의 춘원포로 옮겼다가 선조 36년(1603년)에 옛 통영의 지명인 두룡포로 옮긴 후 통영이라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통제영은 고종32년(1895)에 폐지될 때까지 조선 수군의 최고 통치 관청으로서 기능하였습니다.

▼ 통제영의 경우 왜군을 막기위한 수군의 본부인데 한산도의 경우 섬이라는 특수성때문에 상륙하는 육군을 제외하면 수군만 막으면 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춘원포의 경우 틀려집니다. 그러다 보니 춘원포에 통제영을 설치한 것은 1년 정도 됩니다.
▼ 춘원포의 경우 아직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나 안정공단이 있는 곳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춘원포의 경우 고성땅에서 넘어오는 육군의 공격루트만 두군데이고 통영에서 넘어오는 육군의 루트가 있습니다. 또한 수군이 공격할 수 있는 루트도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방어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통제영이 왜군을 막기위한 것이라면 통어영의 경우 한양으로 들어오려는 수군을 막기위한 것인데 통어영이 설치된 곳은 한강입구인 교동도입니다. 교동도에 경기수영을 설치하고 황해수영과 경기수영을 관할하는 통어영을 설치했습니다. 통제영이 설치된 후 30년이 지난 인조11년(1633년)에 교동도에 설치하였는데 한강의 길목이고 섬이라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 현재 세병관에 세워져 있는 (頭龍浦記事碑)두룡포기사비 에는 당시 이경준 통제사가 본영을 여기 통영으로 옮기게 된 내력과 함께 소상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는데 내용을 보면 " 고성의 춘원포는 배를 숨기는데는 편리하나 군사들이 사변에 대처하기는 불편하다. 그러나 두룡포는 서쪽으로 판데목을 의거하고 동쪽으로 견내량을 끌고 있으며 남쪽으로 넓은 바다와 통하고 북쪽으로 육지와 연 이어져 있어 깊어도 구석지지 않고 얕아도 드러나지 않으며 진실로 수륙의 형세가 관망의 요충지이다. " 라고 새로운 통제영의 지리적 전략적 입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원문인데 원문(轅門)의 경우 통영을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하는 곳이고 원문(轅門)을 지나면 항아리 형태의 지형이 나오는데 그곳이 통영입니다. 또 원문의 경우 고개로 되어 있어 원문만 막으면 육지에서 통영으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원문의 군사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에는 상당히 넓게 되어있지만 고속도로의 부분들은 매립을 한 것입니다.
▼ 원문고개는 이곳에 통제영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원문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원문은 군영으로 드는 문을 이르는 것으로 옛 기록에 在郡北十里 肅宗八年壬戌 統制使元相築之 有門樓二層 今則廢之“라 한 기록으로 보아 숙종 8년(1682)에 제161대 통제사 원상이 축조한 것으로 2층의 문루가 있었다고 하는데 문루의 이름은 공진루(拱辰褸)라 했습니다.

예전 신문에 나온 원문의 이야기를 보면 "조선시대 수군통제사가 통영에 부임하러 올 때 '울고 넘어 왔다가 울고 나갔다'는 이야기는 지역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통제사가 통영의 입구인 원문을 넘어 오면서 '이 작고 궁핍한 동네에서 어떻게 임기를 마칠까'하는 걱정이 앞서 울면서 입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수년간의 임기를 끝내고 통영을 떠날 때는 '모든 것이 풍부하고 인정도 넘치는 살기 좋은 동네인데 떠나기 싫다'며 원문 앞에서 아쉬워서 울었다는 이야기다."라고 나와 있는데 그만큼 통영을 육지에서 접할때 가장 먼저 만나고 나중에 보는 것이 이 원문(轅門)입니다.
▼ 이러한 원문(轅門)때문에 육지의 공격을 막기 편하고 바다로 진출하기 편하기 때문에 통영의 천혜의 수군기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원문을 막으면 통영은 섬아닌 섬이 되고 원문을 열면 육지를 통하는 반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원문의 중요성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원문(轅門)을 고려하여 통영으로 통제영을 옮길 가망성이 많았다고 봐야 합니다. 아래 사진의 경우 문경세제의 관문인 주흘문입니다.
▼ 옆에서 보면 장성과 같이 되어져 있습니다. 여기 문경세제를 막으면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갈 수가 없죠. 원문(轅門)에 있었던 체성의 경우도 문경세제의 체성과 비슷한 방식이 아닐까 싶어서 사진을 가져 온것으로 실제로 이런 방식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고 발굴조사를 해보아야 정확한 것은 알 수 있겠죠.
▼ 예전 같으면 아래 그림과 같이 산을 끼고 산성을 축성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축성하는 시간도 문제가 되고 많은 인력을 동원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 문경세제의 주흘문의 모습을 바다를 접목시킨 것으로 예전의 모습이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것인데 누각의 경우 2층 누각이었다고 하는데 사진에는 1층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 2층 누각의 경우 진주성의 공북문으로 원문의 누각의 경우 진주성 공북문과 비슷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원문에 1차 방어선을 펼치고 다시 통제영성에 영성을 쌓아버리니까 2중으로 된 방어선을 펼칠 수 있습니다. 이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이 일본의 축성방식을 보고 배운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통제영이 들어선 방식은 왜성을 축성하는 방식과 거의 같습니다. 육지에서 들어오는 적을 막고 3면이 바다로 조성하는 방식이죠.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마산왜성 발제글  

왜성중 무엇보다 웅천왜성의 방어적인 부분이 적용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 1678년(숙종 4년) 제57대 통제사 윤천뢰는 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통영성을 축조 합니다.여황산 기슭의 세병관을 중심으로 일대 통제영 부속 관아와 현재 북신고개 서문고개 동문고개를 연결하는 높이 4미터 길이 6696미터의 성을 축조하여 주민들을 성내에 거주합니다. 물론 성외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있죠. 당시 통제영성의 구조는 4대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동문을 춘생문(春生門) 서문을 금수문(金肅門) 남문을 청남문(淸南門) 북문을 의두문(依斗門)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유재란이 끝난 후 서생포왜성의 경우 서생포진성으로 자성대왜성의 경우 부산진성으로 안골포왜성은 안골포진성으로 울산왜성의 경우 진성으로 사용한 것으로 봐서 왜성의 방어에 대해서 조선군에서 연구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후 통제영성이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봐서 왜성의 장점을 이용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미지출처 고지도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오솔길님 http://blog.daum.net/bae6607

통제영하면 현 통영시내안에 있는 세병관에 관해서는 이야기해도 원문에 관한 이야기는 없고 무엇보다 통영의 탄생배경에 관해서 이야기가 없어서 필자가 생각하는 통영의 탄생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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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essageOnly 2011/01/08 18:17 #

    합성사진이 주는 대입법은 정말 효과적이네요.
  • 팬저 2011/01/08 19:04 #

    감사드립니다. ^^ ㅎㅎ
  • 부산촌놈 2011/01/08 20:40 #

    조선군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했군요.
  • 팬저 2011/01/08 22:37 #

    한번 피바람이 불고나서 피를 통해 배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에로거북이 2011/05/18 13:41 #

    잘 읽었습니다.

    통영사람들은 아직도 저 고개를 원문고개 라고 부릅니다. 그 뜻을 몰랐는데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근데 신도시가 (원문 바깥으로) 개발 되면서 이제 통영의 '원문'이란 개념은 점차 사라지게 될 듯 싶네요.
  • 팬저 2011/05/18 13:52 #

    원문고개에 원문을 복원한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실제로 진행될지는 모르지만요. 통영이라면 반드시 이 원문만은 복원을 하였으면 하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대마왕 2012/11/07 10:37 #

    조금이나마 도움되었으면 해서 올립니다.

    [함안총쇄록]에 실린 원문 묘사입니다.

    ※己丑年(1889, 고종 27) 5월

    24일 乙巳 : (선략) 원문루(轅門樓)의 상층 편액은 ‘삼도대원수원문(三道大元帥轅門)’, 하층은 ‘삼도대도독원문(三道大都督轅門)’이라 되어 있다. 이에 가마에서 내려 문루에 올라 잠시 쉬었다. 누각은 공진루(拱辰樓)라 한다. 마부와 말 등이 주린 배를 채우라 명하였다. 난간에 기대어 사방을 바라보니 루의 양쪽 옆으로 성첩이 바다에 이르러 멈추었으니, 항아리의 목을 막아 세운 형세라 하겠다. 수많은 장정들이 관문을 열고자 할지라도, 진실로 바다를 넘을 용기가 있으리오. (후략)

    十四日乙巳 : … 轅門樓之上層扁 以三道大元帥轅門 下層曰 三道大都督轅門 乃下轎子登門樓上暫憩 樓曰拱辰樓 夫馬等幷令療飢 憑欄四眺 樓之兩傍城堞至海而止 可謂建甁之地 萬夫莫開之關也 苟非超海之勇烏 …
  • 팬저 2012/11/07 13:51 #

    이내용을 보니 통제영의 원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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