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영이 통영에 생긴 이유는? 천혜의 자연때문이다. 영성(營城)



통제영이 통영에 생긴이유 두번째입니다. 첫번째는 원문이라는 자연적인 특성 그리고 이를 이용한 방어때문이었다고 했는데 두번째는 바다로 진출때문입니다. 통제영의 경우 경상우수영과 함께 있었는데 가덕도를 시작으로 남해도까지가 경상우수영의 관할 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앞에 있는 청성진(GP라는 개념이 맞다고 봐야겠죠), 가덕진, 안골포진, 제포진, 영등포진, 장목진, 율포진,  조라진, 옥포진, 지세포진, 가배량진은 일본수군을 막는 제 1선 수군기지입니다. 아래 지도에 하늘색으로 둥글게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제 2수군 기지를 보면 구산진, 남촌진, 사량진, 소비포진이 될 것이며 당포진, 삼천진, 풍덕포보의 경우는 1선기지나 2선기지가 되겠죠. 수군기지를 유심히 보면 섬인지역에 가덕도, 거제도, 산양도, 사량도, 남해도, 창선도의 경우 수군기지가 있는데 이런 섬의 경우 증원이 안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제 1선 부대라고 할 수 있는 안골포진에는 병력의 교육을 시키는 소모진과 유사시 병력을 동원하고 관리하는 소모진이 있는데 청천진과 신문진입니다. 그다음에 내륙에 있으면서 2선기지로 활동하는 곳인데 풍덕포보와 구산진, 남촌진,소비포진이 그렇습니다. 

왜선이 가덕과 거제사이로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청성진과 영등포진을 통과해야하고 통과하고 나면 제포진, 풍덕포보가 나오고 이를 통과하여 견내량 방향을 진출해도 장목진과 구산진 그리고 남촌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왜군이 거제 남단으로 진출하려고 했을 경우 가배량진과 남촌진이 통제영보다 먼저 만나게 됩니다. 또 산양을 지나 가도 당포진과 사량진을 만나게 되는 위치에 통제영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그림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통영의 경우 해양으로 진출을 하기 위한 해로의 경우 통제영에서 서측으로는 소비포와 사량진으로 진출이 가능하고 동측으로는 거제현을 지나 거제로 진출이 가능하고 북측으로는 견내량을 지나 창원과 웅천을 지나갈 수 있는데 많은 전선들이 견내량을 지나는 해로로 갔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 남측으로는 통제영에서 나와 삼척진을 지나 거제로 진출할 수 있으나 내해가 아닌 외해(外海)이라 상당히 힘은 들었겠지만 진출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육지로는 1편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원문을 지나 고성>진주로 진출하거나 고성 >진해현으로 진출이 가능합니다. 또한 거제도의 경우도 통영을 지나서 갈 수가 있었겠죠.

통제영이 전라좌수영이 있는 여수가 아닌 통영을 택한 이유는 자연적인 요소와 함께 왜군을 빨리 처치하려는 목적도 작용된 것도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통영에 설치됨으로 경상좌수영과 경상우수영을 통해 왜군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더 중요했기 때문인데 이는 전라좌수영이 위치가 좋지못해서가 아니라 적이 나타날 경우 통제하고 대처하는데 여수보다 통영이 위치적으로 왜군과 가까이 있기때문에 대처가 쉬울 것이라는 것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통영만이 주는 천혜의 자연때문입니다. 1872년 지방지에서 본 통영지도입니다. 통영성과 포구 그리고 산양도에 있는 수군기지인 당포진, 삼척진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사량도인 사량진의 모습이 보입니다. 통영과 산양사이에 다리가 연결이 되어져 있는데 나무로 된 다리이며 밀물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삼척진의 경우 지금의 사천시 삼천포와 동일지명인데 삼천포지역에서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삼척진의 지명이 산양도에 사용되고 예전에 남아있었던 지명인 삼천포도 사용중인데 현재는 사천의 삼천포만 사용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삼척진의 경우 통제영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통제영을 보호하는 성격의 수군기지처럼 보입니다.
통제영 포구인 선소를 보면 전선이 보이는데 전선 사이에 거북선도 보입니다. 이 지도가 제작되던때인 1872년까지는 거북선이 통제영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통영포구로 접근하려고 하면 남망산과 함께 있는 항남동지형이 출입을 통제하는 책문과 같은 것들이 들어서 있는데 목책처럼 보입니다.

통영포구의 경우 포구안은 항아리처럼 조성되어져 있어 많은 전선들이 정박할 수 있으며 지형때문에 태풍이나 자연적인 재해를 대비할 수 있는 천혜의 포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적도를 바탕으로 그린 통제영성의 성곽도입니다. 남문 아래 포구의 경우 많은 부분이 매립이 되었겠지만 위 1872년 지방지에서 본 통제영지도와 별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남망산과 항남동이 방파제 역활을 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 통영시의 모습을 북측에서 남측을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아래 좌측산이 남망산이고 마주보이는 곳이 산양인데 우측 끝에 보이는 다리가 있는데 해저터널과 충무교인데 해저터널 부근이 위에 나오는 목교가 지나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사진에도 나오는 것처럼 남망산입구를 통과하고 나면 포구안은 항아리 모양처럼 둥글게 형성되어져 있어 많은 전선들이 정박하기 좋은 지형적 구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통영이 통제영이 들어선 배경을 알아보았는데요. 어디까지 필자의 주관적임을 알려드립니다. 통영이 된 이유를 다시 살펴보면 첫째 원문이 주는 자연적인 방어때문입니다. 둘째 수군의 제 2전선으로 통제가 편한 위치 때문으로 바다로의 진출입니다. 셋째 통영만의 천혜의 자연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핑백

  • 팬저의 국방여행 : 제주도 해군기지_02_01(진해 해군기지) 2011-09-06 12:02:55 #

    ... 됩니다. 통영의 경우 임진왜란 이후 통제영을 설치하게 되는데 이는 천혜의 자연때문입니다. 통제영이 통영에 생긴 이유는 원문때문이다. 통제영이 통영에 생긴 이유는 천혜의 자연 때문이다. 통영뿐 아니라 이순신장군이 있었던 전라좌수영인 여수와 이억기장군이 지휘한 전라우수영의 경우를 보면 외해(外海)가 아니고 내해(內海)인 ... more

덧글

  • 부산촌놈 2011/01/10 21:15 #

    두번째 줄과 첫번째 사진에 천성진이 청성진이라고 오타가 났네요.


    통영은 말하자면 적은 안 들여보내주고 아군은 어디로나 보낼 수 있는 요지로군요.
  • 팬저 2011/01/11 08:14 #

    그렇다고 봐야하는데 여수에 있었던 전라좌수영도 마찬가지 였고 가배량에 있었던 경상우수영도 마찬가지 였지만 아무래도 통영이 주는 천혜의 자연조건 보다는 못했다고 봐야겠죠.
  • 역사관심 2011/01/11 07:23 #

    글내용과 관계없는 의문이 들어 여쭤봅니다.
    조선시대 지도들을 보면, 꽤 많은 (이 포스팅포함) 지도의 관아나 집들이 '청기와'색으로 표현되어있는데, 실제로 청기와건물이 꽤 되었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 팬저 2011/01/11 08:13 #

    글쎄요. 아직 거기까지 공부를 하지 못해서 잘모르겠습니다. 시원한 답변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 역사관심 2011/01/12 06:01 #

    괜찮습니다. 어려운 질문임을 알고 드려봤습니다 ^^
    청기와에 대해선 저도 스스로 좀 알아보고자 합니다.
  • 바람 2011/02/14 13:30 # 삭제

    통영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밀양 '뒷기미'란 곳의 '내부'마을에 있던 내부창에 군량을 모았다가 (사실인것 같음)
    한산도 제승당 뒷편 '창동'마을로 옮겨서 군량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팬저 2011/02/14 14:25 #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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