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읍성02_다양한 축성방식을 보여주는 서측체성 읍성(邑城)



아래 지도를 보시면 사각형으로 된 읍성이 보이는데 언양읍성입니다. 이런 사각형으로 된 읍성의 경우 평지성에 많이 축성을 하였는데(방형평성(方形坪城)이라고 하는데 평지에 네모난 형태로 쌓여진 성(城)) 중국의 장안성의 형태를 참고하여 축성한 것으로 규모에 따라 틀려도 여러군데 있는데 국내 유일의 평지성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웅천읍성의 경우도 평지성으로 되었으며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읍성입니다. 다만 언양읍성보다 규모가 작고 조금은 장방향의 읍성이죠. 또 남원읍성, 경주읍성의 경우도 평지에 사각형으로 된 방형평성(方形坪城) 읍성입니다. 

산성과 달리 읍성의 경우 평지에 많이 축성을 합니다. 이는 행정적인 요소가 있는 읍성의 성격 또는 임무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백성들이 있는 곳에 읍성을 세워 백성을 보호하고 읍치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한 것이죠. 평지성보다 많은 읍성의 축성방식이 평산성인데 때에 따라서는 평지성과 같은 곳도 있습니다. 따라서 뉴스나 기사를 보면 국내유일의 평지성인 언양읍성이라는 말은 잘못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평지성의 경우 남아있지 않지만 적어도 30여개 정도 될 것이고 사각형으로 된 평지읍성의 경우 10개 미만일 것으로 보입니다.(조선시대 기준으로 남북한에 있는 읍성을 이야기합니다. 또 필자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루뭉실하게 10개 미만이라고 했습니다.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지도에도 나오지만 위 북측체성의 경우 현재 남아있는 체성과 복원한 체성이 있는데 복원한 체성의 경우 협축식으로 되어져 있는데 2010년 울산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한 것을 보면 협축식 방식이 아닌 내탁식방식임을 알아내었습니다. 따라서 그동안 복원한 체성의 경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11년 부터 언양읍성의 복원이 본격화 될 것으로 보입니다. 언양읍성의 경우 현재 4만989㎡가 문화재 지정 및 보호구역으로 돼 있으나 성곽부분에 해당하는 4만7천962㎡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해달라고 건의했는데 2011년 2월중에 문화재청에서 추가지정여부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울주군은 언양읍성 성곽 내부의 5만9천969㎡와 인근 언양초등학교 부지 2만1천700㎡를 단계적으로 추가 지정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번 편에는 서측체성을 탐방할 것인데 서문지에서 서북각루 부분까지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 서문지에서 나와서 만나는 길인데 예전에는 저런식으로 반듯하게 길이 조성되지 않았겠죠. 최근에 조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  서문지 옆 체성의 일부분인데 겨우 하단부 1~2단정도만 남아있습니다.
▼  서문지 옹성이 있던 곳에는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다만 문화재로 지정이 되면 재산권의 침해가 이루어지다보니 주민들의 경우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따라서 울주군에서 이런 부분을 빨리 매입하는 방법이 최고인데.... 비용이라는 부분이 있다보니(빨리 매입이 안되다보니...) 주민과 마찰은 계속 발생하는 것입니다. 
▼  옹성의 흔적은 확실히 있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옹성인지 아닌지 모를 수 있을 정도로 텃밭의 사용으로 많이 교란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  서문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서문지인데 길이 S자로 되어져 있으며 길을 유심히 보시면 우측면에 서측체성부분이 끝나는 부분이 보입니다. 성문이 있었던 곳은 3미터 정도로 보입니다. 이것으로 봐서 성문의 경우 홍예방식이나 평거식으로 된 것으로 보입니다.  
▼  서문지 부분에 상당히 큰 돌들이 육축으로 남아있을 것으로 봤는데 그렇지 않고 아주 작은 돌들이 성곽의 형태만 알려줍니다.
▼ 직선으로 된 도로가 좌측으로 이어지고 아래에 보이는 체성의 흔적을 기준으로 서측체성의 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서문 옹성의 앞부분으로 앞부분에 남아있는 돌의 경우 작은 돌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주민이 텃밭을 가꾸면서 경계석개념으로 사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옹성 외부인데 하단부에 겨우 남아있는 면석이 보입니다.
▼  언양읍성의 복원 조감도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언양초등학교를 옮겨가야하는데 2011년에 언양초등학교를 문화재지역으로 지정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조감도의 출처는 오솔길님
▼  옹성과 서측체성이 만나는 부분으로 장방향의 돌이 가로가 아닌 세로형식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  위 사진의 옆인데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이 주민들이 다니는 통로로 사용중이라 체성 일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어찌보면 다행인줄 모르겠습니다. 서문지로 다녔다면 더 많이 무너져 내렸을 것을,,)
▼  마을 주민들이 통로로 사용하고 있는 길 옆에 있는 서측체성으로 여기는 그래도 큰 돌이 하단부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초기 연해읍성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  주민들의 통로 옆에는 사진과 같이 물이 흘러가는 배수로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흘러나와 동문지를 지나갑니다.
▼  하단부의 돌의 경우 네모반듯한 돌을 사용한 것으로 봐서 석공들이 정성을 들여서 가공했던 것으로 보이고 돌의 크기는 60~80센치정도로 되어 보입니다.
▼  위 사진의 서측체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치성이 보입니다.
▼  축성방식을 보면 잔돌끼움 방식이지만 틈이 없는 형식과 가까운 방식입니다.
▼  확대를 해 본 모습인데 이 부분을 보면 일정한 크기의 정방향 돌들이 축성되어져 있고 어떤 곳은 장방향의 돌들이 축성되어져 있는데 삼국시대 방식과 같이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  서문지에서 여기까지 거의 10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이지만 축성방식은 몇번에 걸쳐 바뀌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왜냐 하면 제가 고고학 전공이 아니기때문에.... ㅠㅠ 또 무엇보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정확한 것은 알 수 있겠죠.) 미루어 보아 임진왜란 이전에 축성을 하여 사용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다시 한번 축성(보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  여기에는 현재 담장을 쌓는 방식으로 되어져 있는데 해방되기 전후로 주민들이 담장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지금은 언양읍성안에 마을이 없는데 예전에는 많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민들이 있다보니 담장으로 체성이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  서측에 있는 치성인데 1편에서 본 치성과 여기 치성 이렇게 두개의 치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솔길님이 찍은 치성의 모습인데 2009년 9월의 모습인데 위의 사진과 비교하면 너무나 많이 자란 풀이 보인다. 이래서 성곽답사는 겨울과 봄에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  치성에 사용된 돌을 보면 장방향의 돌이 가장 하단에 자리잡고 그 위에 둥근 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위에서 본 서측체성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치성에 있는 돌을 보면 한쪽은 세로로 되어져 있고 세로로 된 돌 옆에는 가로 방향으로 돌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언양읍성 체성의 특징인 것으로 보이더군요. 이런 방식이 계속해서 나오더군요.  
▼  세로로 된 돌과 가로로된 돌을 비교하면 세로로 된 돌 1개와 가로로 된 돌 3개입니다.
▼  치성 하단부에 겨우 1~2단 정도 남아있지만 이런 부분이 남아있어 치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것도 없었다면 발굴조사를 해야 겨우 알 수 있을 것인데 이렇게라도 남아있어 준 것에 감사할 뿐이죠.
▼  여기 서측체성을 보면 축성방식이 재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방향의 돌들이 가로와 세로로 세워져 있으며 크기 또한 크고 작고 크고 이런식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  위 사진의 바로 옆으로 여기에는 둥근돌이 하단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여느 읍성에서 본 것과 같이 잔돌끼움 방식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언양읍성터 안에 남아있는 마을이 보입니다.
▼  조금 큰 돌이 자리잡고 있네요. 얼마되지 않는 거리인데 조선초기 연해읍성 축성방식과 중기이후 축성방식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임진왜란 전 후로 언양읍성 일부 체성이 무너져 내려 보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또 여기를 오니 정방향의 돌이 자리잡고 있네요. 위의 사진과 또 다른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장방향의 돌들이 보여준 축성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  하단부를 제외하고는 체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  여기도 마찬가지인데 체성 바깥은 미나리꽝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  겨우 알아볼 수 있는 하단부의 체성이 남아있습니다.
▼  여기도 세로형 장방향돌과 가로형 장방향돌들이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  바로 옆에는 둥근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봐서 언양읍성의 경우 조선초기때의 방식과 중기때의 방식이 같은 공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언양읍성의 경우 삼국시대에 토성으로 축조되어 조선 전기까지 내려오다가 연산군 때 석성으로 개축되면서 확장하였다."라고 적혀있는데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1500년(연산군 6)에 석축으로 개축하였다"라고 적혀있는데 개축에 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더군요.  
위키백과를 찾아보면 "《경상도속찬지리지》에 따르면, 언양읍성은 고려 공민왕 2년(1390년)에 토성으로서 최초로 축조되었다. 조선 성종 12년(1481년)에 쓰여진《동국여지승람》에도 여전히 언양읍성이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규모는 둘레가 1489척, 높이가 8척, 우물 2개이다. 석성(石城)으로 개축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증보문헌비고》에 있는데, 연산군 5년(1500)에 현감 이담룡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이 때에 성의 규모가 둘레 3064척, 높이 13척, 우물 3개로 커졌다. 그러나 당시의 성은 임진왜란에 의하여 무너지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광해군 9년(1617)에 고쳐 쌓은 것이라 전해진다. "라고 적혀있는데 한번에 걸친 성곽의 보축이 있었음을 알려주는데 서측체성에도 남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 부분의 체성이 연산군 5년(1500)에 축성한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  아무래도 조선초기 방식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크기가 큰 돌이 하단부에 있고 위로 가면서 작아지는 돌의 크기인데 하단부만 남아있지만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조선초기 축성방식입니다.
▼  위에서도 이야기 하였지만 언양읍성에서 자주보는 방식인데 세로로 된 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경남 고성읍성에서 보기는 보았지만 고성읍성의 경우 남아있는 체성이 너무 작아서 한부분만 본 것에 비해 언양읍성의 경우는 이런 방식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 위 사진의 바로 옆인데 여기는 조선초 방식이 아닌 중기 방식입니다. 하단부에 큰 돌보다 장방향의 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같이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10여미터인데 조선초기와 중기 축성방식이 같이 있습니다. 이를 미루어봐아 임진왜란때 중간 중간에 체성이 무너져 내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 2009년 9월에 답사한 오솔길님이 찍은 사진으로 위 사진과 비교하면 차이는 없지만 여름이 끝나는 시점이라 풀들이 많이 보입니다.
▼  서측체성이 끝나고 각루가 시작되는 부분인데 여기는 조선초기 축성방식입니다.

언양읍성 서측체성의 경우 남아있는 부분의 경우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하단부 겨우 1~3단 정도 남아있지만 조선초기와 중기의 축성방식을 보여줌으로 조선시대 연해읍성의 축성방식을 알 수 있는 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에서 언양읍성을 찾아보면 "언양읍성은 전국의 중요 읍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14∼15세기의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나타나는 축성법 변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라고 적혀있는데 이 부분의 자료를 많은 분들이 인용을 하는데 그 부분들이 위에서 본 체성의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많은 분들이 백과사전이나 문화재청에서 있는 자료를 가져와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식으로 확인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산진지성의 경우처럼 잘못된 자료를 가져가서 사용하는 경우가 없었으면 합니다.


울주군에서 본격적인 읍성복원을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예산을 확보하여 주민들의 토지를 매입하는 것에 먼저하여 주민과 마찰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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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1/02/07 12:4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팬저 2011/02/07 15:16 #

    해자는 조금 더 바깥에 있습니다. 보내주신 내용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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