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에서 북과 종의 역활(?)은? 읍성(邑城)



지금이야 어디를 가나 시계를 볼 수 있습니다. 휴대폰을 비롯하여 손목시계, 승용차, 버스, 공공건물, 학교, 시계탑 등 수많은 곳에 시계가 있어서 시간을 알 수 있지만 불과 2~30년 전 해만해도 시계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더물어 시간을 물어보고 대답하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일반인들이 시간을 알 수있는 시기는 얼마되지 않은 편에 속합니다.

그럼 그 옛날에는 과연 어떻게 시간을 알았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12진법인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시가 있었고 그것을 알았기때문에 예전에도 시계를 구경하기는 힘들어도 시간은 알 수 있었습니다. 도성안에 있는 해시계나 물시계로 알아낸 시간을 알려주었는데 도성과 달리 지방에 있는 읍성의 경우 어떻게 시간을 알고 알려주었을까요?

지방에 있는 읍성에서도 시간을 알리는 기능이 있었는데 보통 종을 사용하여 시간을 알렸습니다. 종을 사용하는 것은 북보다 더 멀리 소리를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의 경우 각 읍치마다 있었던 것은 아니고 때에 따라서는 나팔,북,징으로 시간을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나주읍성에 있는 정수루의 모습으로 정수루에 북이 달려져 있습니다. 이 북은 시간을 알리는 역활, 성문의 개폐를 알림, 화재발생시나 적의 침입이 있을 경우 알리는 경보기능을 함께 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나주읍성에 있는 정수루와 같은 곳은 각 읍성에서도 있었는데 현재 낙안읍성 낙민루에도 북이 매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북이나 종은 높은 곳에 매달아야 멀리 소리를 전달하기 때문에 누각이 있는 곳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종이 매달려 있는 누각을 종루 종이 있는 각을 종각이라고 불리었습니다.

북과 징은 밤에만 울렸습니다. 이는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려는 공공서비스의 성격보다는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는 읍성문을 닫고 여는 역활도 함께 하였습니다. 종의 경우 읍성에만 설치한 것은 아니고 군인들이 상주하는 영,진,보에도 설치를 하였는데 산성,진성등에도 설치가 되었습니다. 
▼ 김해시 동상동 시장통 방향을 보면 종로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종로와 같은 명칭입니다. 이곳에 종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있는 종로길 옆에는 객사지와 동헌지가 있기때문에 위치적으로는 정확할 것 같습니다. 
▼ 종로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고 동헌지 바로 옆에서  본 종의 모습으로 종로를 상징하는 상징탑처럼 되어져 있습니다.
▼ 조그마한 종이 매달려 있는데요. 예전에는 어떤 크기였는지 모르지만 조선시대 당시에는 야금술의 퇴보와 함께 구리가 없어서 종을 만들기가 힘이들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절에서 사용되고 있는 종도 가져와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 종이 6개가 있는데 김해 종로길에 사용되고 있는 종의 경우 한국의 종이 아니고 서양에서 들어온 종모양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제블로그를 자주 방문하시는 송하취생(松下吹笙)님께서는 서양종이 아니고 중국종이라고 하네요. ^^
마산에도 이런식의 종이 있는데 바로 불종입니다. 불종의 경우 일제시대때 화재 대비를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19세기 들어서면서 서양에서 들어오는 자명종때문에 시각을 알려주는 종의 역활은 약해졌습니다. 또 무엇보다 일제에 의한 읍성철거 정책도 한몫하면서 종루나 종각의 역활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이 많이 있는 곳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화재발생시 사용하는 경보기능으로 변경이 되는 것이 종의 역활입니다. 마산의 불종거리에 사용되고 있는 종의 경우는 한국적인 종의 모양입니다.
 
불종거리의 경우 마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해 경화동에도 불종거리가 있고 경북 포항 중앙동에도 불종거리가 있습니다. 정확한 문헌은 없으나 마산에 있는 불종의 경우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그 무엇이 있어서 생겨났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불종의 경우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에 사용하지 아무도 없는 곳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누각이나 종각처럼 생긴 곳에 종을 설치했다가 사라지면서 그곳에 불종을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박희윤씨의 "개항이전 마산시 도시형성 및 변화과정에 관한 고찰"의 논문에 합포진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동서로 발달된 도로와 동문이 있는 곳에 종을 매달아 놓을 수 있다는 가설이 성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동문이 있었던 곳의 경우 고려당제과 근처라고 하니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합포진성 이야기 보기1
합포진성 이야기 보기2
합포진성 이야기 보기3
합포진성 이야기 보기4
 



덧글

  • 역사관심 2011/03/10 14:47 #

    역사밸리에 인기글에 읍성이란 단어가 눈에 띄길래, 혹시? 하고 봤더니 역시 팬저님. ^^
  • 팬저 2011/03/10 16:38 #

    요즘 성곽 관련해서 글을 안 적은지가 조금 되네요. ^^
  • 松下吹笙 2011/03/10 20:32 #

    김해 종로길 종은 서양식 종 보다는중국종 느낌도 나네요. 상단에 연화문 돌려져 있고, 하단에는 간략한 보상화문도 있네요. 어디 골동품상에서 중국동종을 구해다가 걸어 놓은 듯하네요. http://postfiles6.naver.net/data17/2006/5/1/69/P1010014-spuk67.jpg?type=w2
  • 팬저 2011/03/10 21:08 #

    그렇습니까?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수정할께요.
  • 막수동인 2011/10/21 19:12 # 삭제

    없어진 구 진주소방서 망루에도 불종이 있었습니다. 종의 크기는 작아도 사찰의 종과 형상이 비슷한데 양각된 글씨를 읽어보니 일본의 모 신사에서 주조했는데 조선신민이 이 종이 울리면 일왕이 계신 동쪽을 향해 절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6.25 전란을 거치면서 온통 총알이 관통한 쓸모없는 종인데 아마 일제시대 진주의 한 신사에 걸렸다가 해방되면서 소방대 불종으로 그 기능이 바뀐 모양입니다.
  • 팬저 2011/10/22 18:46 #

    아~ 그렇습니까? 역시 종이나 북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있는지 몰랐는데 그 진주소방서에 불종이 있었군요. 위치적으로 봐서도 그곳이 있을만 하네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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