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읍성 객사 후원지에 관하여 문화재청에서 나온 내용을 살펴보면
김해객사 후원지는 김해시 동상동 구 김해읍성 내의 포교당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포교당 경내에는 駕洛古都宮墟碑와 분성대 및 연자루의 주춧돌로 추정되는 석물과 함허교의 교명주로 추정되는 석재 2기, 함허교의 판석으로 추정되는 석판 6기, 석불상 2기가 남아있다.
분성대와 함허정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이 터는 가락국 후기의 왕궁터 혹은 수로왕비의 중궁터로도 전해지며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인 파사석탑을 보관한 호계사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연자루와 함허정이 세워진 역사성을 가진 장소로 전해진다.
1928년 김해김씨 후손 김문배가 이 터에 대를 수축하여 분성대라 하고 비를 세우면서 가락고도궁허비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함허정은 1497년 김해부사 최윤신이 초창한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친 연지 가운데의 정자였으나 1800년대 이전에 읍성 밖 북쪽으로 이건되었다고 한다.
함허정은 연자루의 북쪽 파사탑의 남쪽에 네모난 못을 파고 호계의 물을 끌어들여 돌아나가게 하고 그 가운데에 仮島를 쌓아 높은 집을 지었는데 집 위에 띠를 덮어 정자를 만들었고 물을 가로질러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또한 못에 물고기를 넣고 연을 심었으며 작은 배를 띄워 기생과 풍물을 싣고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과 연자루와 함허정의 배치 관계는 1820년 경에 제작된 金海府內地圖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본 지역은 시굴조사를 통해 현재의 석축과 평행하는 호안석축시설이 확인되었으며 석축내부에서 분청사기와 명문기와 등이 출토되어 이 지역이 고지도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15~6세기의 건축물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遺址임을 확인하였고, 이러한 내용은 문헌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볼 때 현재 남아있는 이 터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김해객사의 후원지이며 옛 관아의 후원양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김해 객사 후원지는 어디였을까요? 고지도인 김해부내지도에 나타난 김해읍성중 객사를 살펴보면 다른 곳의 객사와 달리 길게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객사의 외삼문을 지나서 올라오면 건물이 보이고 다음이 객사입니다. 객사의 경우 좌우익헌의 모습도 보입니다. 객사뒤에 누각이 보이는데 연자루입니다. 연자루 뒤에 보이는 건물이 함허정이라고 불리었는데 객사 가장 위에 있습니다.
김해읍성 지적도의 모습에 보이는 객사의 모습으로 객사 후원지의 경우 가장 북측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해읍성의 객사지의 경우 상당히 큰 것을 알 수 있는데 나주읍성의 객사보다는 작아보입니다. 다만 다른 곳과 달리 객사뒤편에 후원지를 둔 것이 특징입니다.
▼ 후원지에 보이는 함허정에 관한 문화재청에 있는 글을 보면 " 함허정은 연자루의 북쪽 파사탑의 남쪽에 네모난 못을 파고 호계의 물을 끌어들여 돌아나가게 하고 그 가운데에 仮島를 쌓아 높은 집을 지었는데 집 위에 띠를 덮어 정자를 만들었고 물을 가로질러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또한 못에 물고기를 넣고 연을 심었으며 작은 배를 띄워 기생과 풍물을 싣고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적혀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함허정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 창원읍성내에 있었던 사미루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사미정의 경우도 연당에 물을 채우고 가운데 누각을 지었는데 같은 방식으로 보입니다. 다만 사미정의 경우는 객사 후원지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객사에서 남측으로 내려온 것에 있었습니다.
▼ 함안군에 칠원면에 있는 무기연당의 모습과 크기를 제외하면 비슷합니다.
좀 더 함허정과 가까운 모습은 충남 면천군에 있습니다. 충남 면천읍성중 군자정의 모습으로 함허정의 모습과 거의 흡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군자정 또한 복원을 하였는데 사각형으로 된 못을 만들고 가운데 정자가 있으며 물을 가로질러 다리를가 있는 것으로 봐서 김해읍성 객사지에 있었던 함허정과 거의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곳에서 배를 뛰울정도가 되지 않아 보입니다.
창원읍성 사미당 이야기보기
▼ 아래 이미지출처 면천중학교 총동창회 카페
http://cafe.daum.net/Cafe1000 ▼ 이제 동상동 시장 끝에 있는 연화사를 찾아갑니다. 연화사가 있는 곳이 예전 김해읍성 객사 후원지가 있었던 곳입니다.
▼ 연화사의 입구의 모습인데 읍성에서 사용하고 있는 돌과 같이 이루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객사 담으로 되어있었겠죠.
▼ 연화사를 들어가서 보니 돌의 경우 읍성에서 사용한 돌은 아니고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 돌탑이 있어서 연화사가 절임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 함허정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지만 사각형으로 된 못 위에 연화사 대웅전을 만들었습니다.
▼ 함허정과 같이 못으로 만들어 놓으니 당시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대웅전의 모습을 비교하여 예전의 함허정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조선초기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에는 금주관(金州館)이라는 시가 전하는 것으로 봐서 금주관이 객사의 당호일 확률이 많다. 금주(金州)의 경우 김해의 옛 지명으로 보통 객사에 사용되는 당호는 예전 지명을 객사로 사용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진해현 객사의 당호는 우산관인데 우산의 경우 진해현 이전이 우산현이기 때문에 사용했습니다. 고창읍성에 있는 객사인 모양지관의 경우도 예전의 지명인 모양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 우측에 보이는 담장의 경우 예전 조선시대때에도 사용한 담장으로 보이며 이러한 부분은 김해부내지도와 지적도에도 나옵니다.
▼ 연자루의 주춧돌과 북문 공진문에 사용된 것(?)들
▼ 김해읍성 객사 후원지 발굴하면서 나왔던 도자기 도편들
▼ 김해읍성 북문인 공진문에 사용한 것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 연자루의 주춧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석주의 모습. 연자루의 석주는 높이 122cm 상단둘레 216cm 하단둘레 227cm인 팔각기둥이라고 합니다. 연자루의 경우 함허정에서 남측으로 내려온 것에 있었던 누각으로 연자루에 사용된 석주 하나만 현재 남아있습니다.
▼ 석물과 함허교의 교명주로 추정되는 석재 2기로 교명주입니다. 좌측으로 부터 봉납, 함허교로 적혀있습니다. 함허교의 경우 함허정으로 가는 다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연화사 정문으로 사용되어져야 하나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협문입니다.
▼ 아마 연자루로 가기 위한 협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며 김해부내지도 기준으로 본다면 앞에 보이는 시장이 연자루가 있었던 곳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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