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방어시설인 목책(木柵) 읍성(邑城)



원래는 김해읍성 남문지를 찾아가려고 하다가 잘못간 곳이 김해 봉황대유적지입니다. 이 봉황대 유적지에서 주거단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어시설중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방어시설이 목책을 보았습니다. 물론 예전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복원한 것입니다.
목책에 관련된 네이버 백과사전을 보면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만든 성(城)을 가리키기도 한다. 급히 방어시설을 만들거나 임시로 성을 만들 경우, 또한 대량의 노동력을 구할 수 없는 도서(島嶼)지방에서 사용하였다. 한국의 성곽은 토성(土城) ·석성(石城)이 흔히 알려져 있으나, 목책으로 울타리를 만드는 경우도 많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만들어져왔다. 경기도 행주산성(幸州山城)에는 석성을 쌓기 전에 목책이 있었는데 이것은 임시로 쌓은 것이다. 조선시대 《단종실록》(4권)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거제도(巨濟島) 등 도서 요충지에 목책을 세워 방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목책의 경우 현재 몽촌토성에 재현해놓았는데 높이도 낮고 엉성하더군요. 아무래도 어느 담장과 비슷하게 보였는데 김해 봉황대 유적지에는 그래도 방어용 목책의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일단은 아랫부분에 토성과 같이 조금 높게 축성되어져 있는데 이를 토루라 부릅니다. 토루 위에 목책을 올려 놓았는데 높이가 적어도 3미터 이상되어 보이는데 이정도되면 방어용으로 사용하기가 쉬울 것 같아 보이더군요.
▼ 목책이 영어로 fence입니다. 여기에 de만 부치면 defence가 됩니다. 그만큼 방어용을 상징하는 것이 목책이고 동서양을 떠나 인류 역사상 오래된 방어시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몽촌토성뿐 아니라 여러군데에서 목책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장보고가 활동한 청해진(완도)에서도 목책의 흔적이 나와 1500여년전에도 사용했음을 증명하였고 진해 제포에서도 일본 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목책의 흔적이 나왔는데 이때에는 1300~1600년에도 사용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울산 반구동에서 통일신라시대때 항만시설로 사용한 목책이 발굴되었습니다. 조선시대때에는 울산 유포일대에 왜군의 변란을 막고자 목책을 설치하고 그곳에 선군을 두어 교대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목책의 경우 사국시대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해안 연안에 있었던 여러곳에서 목책이 설치한 주익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토성과 석성의 발달로 인해 목책의 활용이 감소가 되었지만 비상시나 석성을 축성하기 힘든 곳에 만들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목책의 경우 현재도 남아서 어느집의 담장으로 사용하거나 경찰서나 군부대 앞에서 차량의 출입을 통제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이동용 A자형 바리게이트가 일종의 목책의 변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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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unkbear 2011/03/14 08:03 #

    생각보다 크고 강해보이네요. 물론 대규모 정규군을 막을 수준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소규모의 왜구같은 집단에 대한 방어는 충분했을 것 같습니다.
  • 팬저 2011/03/14 10:02 #

    간단하게 만들어 놓았고요. 정상적인 부분이라면 옆으로 많이 가겠죠. 높이는 정상적인지 모르겠네요.
  • gg 2011/03/14 09:02 # 삭제

    일본의 경우 전국시대 말기까지는 목책이 성벽을 이루는 주요 재료였습니다만.... 목책 자체는 핵심방어수단이 아니라,
    堀, 해자가 가장 핵심적인 방어요소로 평가되었고 이는 석성이 쌓여진 시점에도 마찬가지로, 오사카성 공략당시 해자메우기가 유명하죠.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것 같은데 말이죠. 내부가 계곡이 되고 능선을 두르는 포곡식 산성위주라서 그런가?
  • 팬저 2011/03/14 10:11 #

    우리나라에서도 해자와 같은 식으로 조성하는 것이 회랑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 있었던 해자가 일본에서 축성한 성(城)의 해자보다 작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방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목책과 회랑 그리고 토성으로 방어를 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산성의 경우 사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가야)때에는 퇴뫼식방식을 사용하다가 포곡식 산성으로 발전하였는데 조선시대때에는 퇴뫼식 산성방식보다는 포곡식산성 방식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 팬저 2011/03/14 10:12 #

    백제문화 단지에 보면 목책, 회랑, 토성으로 이루어진 주거단지가 보입니다. http://blog.naver.com/jipijigi11?Redirect=Log&logNo=30092738017 너무 잘 만들어 놓은 것이 이상하네요.^^
  • 루드라 2011/03/14 15:02 #

    저희 동네에 다녀가셨군요. 저희 집 뒤쪽으로 창문 열면 바로 보이는 곳입니다. 봉황대 구경하셨다면 바로 아래의 회현동 패총도 보셨겠군요. 직접 보면 실망할 정도로 볼 거 없지만요.^^;

    지난 번 올리셨던 김해읍성 지도에서 동문지라고 표기된 곳이 제가 어릴때 살던 곳이고 지금 사는게 이 동네입니다. 자주 들리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기회가 없어 인사 드리지 못했는데 저희 동네가 나온 김에 인사드립니다. ^^;
  • 팬저 2011/03/14 20:58 #

    회현동 패총 구경했습니다. 나온 것 패총을 기준으로 본다면 볼 것이 없겠지만 회현동이 바다였음을 증명해주는 아주 좋은 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김해읍성의 경우 바다와 가까이 있었다고 유추 해볼 수 있으며 지금 있는 곳은 매립했음을 증명합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03/14 17:44 #

    울산 반구동에서 확인되었다는 통일신라시대 항만시설이 나온 유적명을 좀 자세하게 알 수 있을까요? ^^
  • 팬저 2011/03/14 19:08 #

  • Warfare Archaeology 2011/03/15 15:22 #

    울산발전연구원에서 조사를 한 거군요. 아~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07년에 기사가 나온 것을 보니 이미 보고서가 나왔을 것 같네요.

    좋은 정보 다시 한번 감사 ^^
  • 팬저 2011/03/15 18:50 #

    울산발전연구원을 찾아가보면 자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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