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읍성_바다물은 어디까지 들어왔을까? 읍성(邑城)



김해 회현동패총은 봉황동 유적지내에 있는데 자료를 살펴보면 "회현동 패총은 낙동강 하류의 평야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높이 7m, 동서길이 130m, 남북너비 약 30m의 낮은 구릉 위에 형성된 조개더미입니다. 190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돼었는데 1920년에 1차 발굴되었고, 당시의 행정구역에 따라 회현리 조개더미로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1992년에 회현리 조개더미가 있는 봉황대 주변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1920년 1차 발굴에서는 중국 전한과 후한 사이에 사용되던 화폐인 왕망의 화천이 발견되었습니다. 또 탄화미를 비롯해 토기, 뼈·뿔도구, 석기, 가락바퀴(방추차), 동물뼈 등이 나왔다고 합니다. 토기는 적갈색이나 회청색을 띠며 사슴뿔이나 뼈를 가공해 만든 칼자루가 많이 출토되었으며 조가비는 34종이 확인됐고 갑각류도 4종이 있습니다. 생산도구는 철제도끼, 손칼 등이 있고 돌로 만든 도끼, 반달칼, 숫돌도 나왔습니다.

1934년의 조사에서는 지석묘, 석관묘, 옹관묘 등이 발견돼 조개더미가 형성되기 전의 고인돌 및 석관묘 유구와 그 이후 삼국시대 이전 조개더미가 중첩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왕망의 화천과 김해식 옹관은 이 지역이 삼국시대 이전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교역의 중요한 길목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2~1993년에 실시된 봉황대 일원에 대한 조사에서는 조개더미와 주거지, 폐기장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동쪽 비탈면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확인된 조개더미는 기원 후 3~6세기에 걸쳐 형성됐고 군집을 이루는 주거지도 3~6세기대의 장기간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자료를 본다면 이 회현동 패총의 경우 사국시대 이전부터 살기 시작했으며 이 곳이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교역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영식의 <이야기로 떠나는 가야 역사 기행>라는 책에서는 "회현동 패총에서 나온 중국 화폐 화천(貨泉)과 봉황대·관동리 유적의 항구 시설이 증거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또 "가야 산성으로 확인되는 최초 사례가 될" 김해 주촌면 양동산성 아래 양동고분군에서 주촌(酒村)면은 원래는 배 주(舟)자를 썼고 고려시대까지 항구로 크게 번성하던 곳이다."라고 하는 것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해시청옆에는 부원동패총이 있다고 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양동산성 아래까지 항구였다면 배가 다녔을 것이고 배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폭과 깊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또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축성한 왜성이 신답왜성인데 현재 신답왜성의 경우 서김해IC와 인접하고 고속도로옆인데 어디를 봐도 바다와 연결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실 임진왜란때 축성한 왜성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바다나 강과 인접한 곳에 축성하는 것에 비해 신답왜성의 경우 현재 기준으로는 바다와 낙동강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바다와 강이 멀리 떨어진 곳에 일본인들이 왜성을 축성한 것은 왜일까요? 신답왜성까지 낙동강의 지류가 연결이 되어져 있었고 왜군들은 이 강을 통해 물자를 나르고 입출입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회현동패총이 있는 곳에 김해시에서 항구시설을 복원해 놓았습니다. 회현동이나 부원동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것을 증명하는 것이 패총입니다. 김해읍성의 경우 두개의 패총사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김해읍성 어디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회현동패총이 있는 곳까지 들어 올 것으로 보입니다.(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해동지도에 나타난 김해읍성의 모습으로 김해읍성 외곽에 또 하나의 성(城)이 있는데 토성으로 김해고읍성이라고 불리는데 얼마전에 발굴조사가 있었습니다. 지도상을 보면 낙동강의 지류 정도가 김해읍성 남문앞까지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여지도에서 본 김해읍성으로 위 해동지도와 별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죽도(죽도왜성이 있는 현 부산시 강서구 죽림동)에서 올라와 신답왜성이 있는 곳까지 강이 연결되어져 있으며 남문까지는 작지만 지류가 형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청구도에서 본 김해,동래,웅천의 모습으로 김해부가 있는 낙동강의 경우 현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낙동강이 하류가 현재보다 아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읍치가 있는 곳 까지 강이 연결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동여도에서 본 김해부의 모습으로 이 지도 또한 낙동강의 모습은 현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김해읍성 가까이까지 바다가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지도에서 본 김해부로 낙동강의 폭은 아주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김해부 읍치까지 강이 연결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회현동패총과 신답왜성의 왜성축성 배경 그리고 고지도를 기준으로 보았을때 조선시대 초기까지 적어도 현재 김해시청 아래 부분까지는 바닷가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본다면 김해읍성 남문에서 나온다면 바다는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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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루드라 2011/03/18 13:50 #

    대충 예상했던 거랑 비슷한데 전 왼쪽으로 좀 더 물이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군요. 그나저나 주촌이 舟村이라는 건 방금 알았습니다. -_-;
  • 팬저 2011/03/18 18:00 #

    물이 들어오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예상한 것으로 루드라님이 생각한 것이 맞을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런 부분에 관하여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정확하게 알게될 것으로 보입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03/18 19:27 #

    최근에 우리나라 전국토를 대상으로 하는 고지형 분석 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향후 수년 이내에 팬저님이 원하시는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 팬저 2011/03/18 21:55 #

    저런 부분들이 일반인이 알 수 있다면 여러가지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
  • 부산촌놈 2011/03/19 00:45 #

    김해라는 지명 들으면서 "왜 그럴까?" 하고 의문을 많이 가졌었는데 저런 것과 많이 관련이 있는 건가요 그럼?
  • 팬저 2011/03/19 01:09 #

    글쎄요. 그 부분에 관해서는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 허정도 2011/03/19 09:00 # 삭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분석과 추정이 훌륭합니다.
  • 팬저 2011/03/19 15:35 #

    좋게 봐주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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