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녹도진성에 원문(轅門)이 있다니 진성(鎭城)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과 함께 도운 참모장수중 녹도만호 정운이 있습니다. 정운의 경우 선봉장으로 가장 먼저 적진에 뛰어든 인물인데 부산포해전을 위해 부산포로 가다가 몰운대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부산에서는 충신 정운공 순의비에 해마다 정운장군이 전사한 음력 9월 1일에 향사를 지냅니다. 

해군에서는 정운장군의 조국에 대한 충성을 높히 기려 장보급잠수함에 정운함이라는 함명을 사용중에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 대한민국 해군 블로그 블루페이퍼)

정운장군이 있었던 녹도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현재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녹동마을에 있습니다. 녹도진성에 관한 자료를 보면 1490년(성종 21) 10월 에 녹도진성이 축조되었다고 합니다. 종4품 무관직인 만호(萬戶)가 배치된 만호성(城)이었던 녹도진성은 둘레 2,020척(612m), 동서 길이 810척(245m), 남북 너비 404척(122m)이고, 샘이 2개 있다.’라고 되어 있다고 세종실록지리지에 적혀있습니다. 이에 따라 녹도진성은 1490년 10월 둘레 2,020척, 높이 13척(3.9m) 규모로 축성되었다고 합니다.

▼ 아래 1872년 지방지에서 본 녹도진성으로 성문은 4개인데 남문을 제외한 동,서,북문의 경우 개거식으로 되어져 있고 남문만 홍예식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녹도진성안에는 객사, 동헌과 함께 각종 관아의 모습이 보입니다. 남문앞 선소에는 전선, 병선의 모습이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옆으로 둥근 원형에 가까운 진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녹도진성의 흔적은 남아있지를 않다고 합니다.  

▼ 1872년 지방지 중 흥양현의 모습입니다. 흥양현의 경우 현재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조선시대때 4개의 수군진이 설치가 되었는데 수군진을 살펴보면 발포진, 녹도진, 사도진, 여도진입니다. 흥양현에서 녹도진성이 있는 곳으로 길을 가다보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혹시 찾으셨나요? 바로 원문(轅門)입니다. 원문의 경우 통제영의 원문과 전라우수영의 원문은 확인하였지만 만호진이 있는 곳에도 설치가 되었던 것을 고지도에서 보았습니다. 轅門의 경우 병영의 출입문이라고도 하기때문에 수군들의 수영, 육군들이 병영, 감찰사가 있는 감영 등의 출입문을 轅門이라고 부르며 이런 부분들은 고문서에서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

▼ 광여도에서 본 흥양현의 모습으로 흥양읍성과 녹도진이 있는 가운데에 원문이라고 적혀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여지도에서 본 흥양현의 모습으로 위 광여도와 별차이가 없습니다.
▼ 지승지도에서 본 흥양현의 모습으로 흥양읍성에서 녹도진성이 있는 길에 원문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해동지도에서 본 흥양현의 모습으로 원문이 있는 곳의 경우 아주 작게 표시되어져 있는데 저부분이 없다면 거의 섬과 마찬가지로 보일 정도입니다.
녹도진성에서 흥양현이 있는 곳 중 원문이 있었던 곳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필자의 능력부족인지는 몰라도 고흥에 있는 원문에 관련된 자료는 찾기가 힘이들더군요. 천천히 찾아봐야겠죠. ^^

▼ 그래서 필자는 현재의 지도인 다음지도에서 원문이 있었던 곳을 추정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추정이라 보니 틀릴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현재 고흥군의 경우 간척사업을 많이해서 조선시대의 흥양현과 비교한다면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 동부보다 고흥 서부가 간척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 그중 현재 고흥군 풍양면 고옥리 일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좌우측이 거의 매립했다는 것을 느꼈고 매립으로 인해 섬이 육지로 변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측의 경우 고흥방조제로 되어져 있어서 간척지로 만들었음을 알 수있습니다.

섬이 육지가 되어 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지도에 나오는 섬과 비교하면 비슷하게 맞아들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원문이 있었던 곳을 추정하는 곳이 바로 고흥군 풍양면 고옥리 부근입니다. 확실하지 않아서 A,B로 나누어서 원문을 추정합니다. 전략적인 방어를 한다면 A지점이 좋을 것 같고(적은 인원으로 방어를 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B지점의 경우는 조그마한 야산이 있어서 적의 공략을 좀 더 쉽게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바다로 추정되는 곳은 하늘색으로 채워졌는데 정확한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네요. 


글을 적고 난 후(2년이 지난후) 이글루스가 네이트에 있다가 이글루스로 다시 옮겨가면서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있어야할 그림과 지도들이 모두 사라지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에 컴퓨터에 있었던 자료를 옮기면서 위 내용중 일부 추가된 자료가 있어서 본의 아니게 원문성을 수정합니다. 

A와 B는 군사적으로 충분히 방어를 해야하는 곳이라 표시를 하였고 그곳을 추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전남 고흥군 풍양면 홈페이지에 있는 마을의 유래를 살펴보니 필자가 추정한 A와 B가 아니라 고옥리에 있는 축두라는 곳이 맞았음을 알았으며 원문성이 왜 있었던 이유도 나오더군요.

일단 고옥리 마을 유래를 보면 "남서쪽에 도양읍.도덕면과 접하고 1946년 설립된 풍양초등학교 고옥분교가 있으며조선조 흥양현 고읍면의 사창이 있던 곳으로 조세 곡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선창가에 있었다고 한다."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사창이 고옥리에 있었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축두마을을 살펴보니 "축두는 지리적으로 옛부터 해상방비의 요충지로 관방이 설치되어 입출항하는 각종선박을 감시 하였던 곳으로 흥양현 당시(지금은 한동) 해상으로는 아주 가까운 관문이었다. 일제때는 지도상에 축두를 몽중이라고 표시 되었으며 몽중산 아래 부락을 이루고 있다. 몽중산의 지형이 풍수지리상 소의 모습과 같고 마을은 소의 머리에 해당되므로 축두라고 하였다. 1937년에 축조한 축두저수지가 있다."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즉 선박을 감시하기 위해 관문을 세웠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필자가 볼때에는 선박의 감시보다 가까운 고옥마을에 있는 사창을 지키기 위한 것과 함꼐 녹도진의 1차 방어선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일단 이 내용을 기준으로 본다면 축두마을에 관문성인 원문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 그래서 C지점으로 표시하였고 C지점 옆으로 모두 바닷물이 들어 오는 것으로 표시하였습니다. 근거는 네이버에 있는 지적도서비를 살펴보니 현재 축두저수지 옆 모두 답으로 나와 있습니다. 지적도를 살펴보면 모두 네모 반듯하게 지번이 형성되어저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축두마을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죠. 그래서 이것은 바다를 매립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원문이 녹도진을 가기전에 설치된 것이 사실이고 이는 수군의 수영과 같은 비중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략적으로 중요성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지형적인 이유 때문에 원문을 설치했을 수 있겠죠. 흥양현에 있었던 다른 수군진의 경우 지형적으로 원문이 들어설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이유 때문에 원문이 들어서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 원문으로 인해 녹도진의 경우 육지로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는 구조이며 육지로 공격이 경우 섬과 같은 방어를 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원문을 닫으면 섬이 되고 원문을 열면 육지를 통하는 반도가 되는 구조가 원문입니다. 그만큼 원문성의 중요성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다 보니 원문이 들어선 이유일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A의 경우 체성이 많이 들어서지 않아도 되겠지만 B의 경우는 체성이 많이 들어서야 될 것 같습니다. 대략 A의 길이를 보면 360여 미터이며 B의 경우 720미터정도 됩니다. 이정도라면 A,B모두 원문의 방어상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이고 통제영의 원문, 전라우수영의 원문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전라우수영의 경우 대략 400여미터로 추정이 되며 통제영의 원문의 경우 600여미터 정도 추정 됩니다. C지점의 경우 대략 300미터 정도 됩니다.

고흥군에 사시는 분들이 이부분을 정리해준다면 더욱 더 정확하겠죠. 그리고 고흥군에 있는 향토학자들이 정리해서 올려주면 더욱 더 좋겠네요.

해남 전라우수영 원문(轅門)
통영 통제영의 원문(轅門)

바다를 끼고 축성한 원문의 경우 과연 어떤 식이었을까요? 녹도진의 경우 전라우수영이나 통제영과 비교하는 것은 힘이들겠지만 그래도 방식은 비슷했을 것이고 원문의 누각만 1층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관련된 자료가 없어서 1872년 통제영성의 원문을 올려봅니다. 통제영의 원문의 경우 2층 누각입니다. 바다까지 축성된 원문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정도 되면 깊은 바다라 바다로 침입은 생각을 못하겠죠.다만 고지도를 보면 녹도진 앞에 있는 원문의 경우 통제용, 전라우수영과 달리 장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원문만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화공이 빼놓고 그렸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없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네요. 아무래도 흥양현읍지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고지도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도 이미미출처 : 다음지도


짙은 청색으로 된 글은 이글루스 본사의 실수인지 서버로 이전하면서 잘 못된 것인지 몰라도 원래 있어야할 이미지가 사라져버려 이후 사진을 첨부하면서 일부 잘못된 내용을 보충 설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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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저의 국방여행 : 통제영의 관문인 원문은 어디에 있었을까? 2014-01-14 15:25:27 #

    ... 평안도에 대부분 집중이 되었던 것에 비해 원문은 하삼도에 배치가 되었습니다. 통제영뿐 아니라 전라우수영과 녹도진성 앞에도 있었습니다. 전라우수영의 원문녹도진성의 원문 이런 원문과 비슷한것이 목장성입니다. 기르는 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나무로 만든 것이 목장성인데 전국적으로 산재하여 있었습니다.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