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성에도 원문(轅門)이 있었을까요? 영성(營城)



경상우수영과 함께 사용한 통제영의 경우 원문(轅門)이 있었고 전라우수영의 경우도 원문(轅門)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고흥 녹도진성에도 원문(轅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군을 막는 최전선인 경상좌수영성에도 원문(轅門)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어찌보면 당연하게 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고지도를 보아도  원문(轅門)에 관한 이야기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1872년 지방지에서 본 경상좌수영성의 모습으로 경상좌수영성이 아주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도 원문(轅門)에 관한 부분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경상좌수영성 4대문과 함께 선소의 모습은 보여도 원문(轅門)에 관한 부분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해동지도에서 본 동래부의 모습으로 우측에 보이는 경상좌수영성의 모습이 보이고 그 옆에 동래고읍성이 보입니다. 그리고 경상좌수영성에서 나와 동래고읍성을 지나 북측으로 오는 길을 따라올라오면 동래읍성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지도에서 본 동래부지도인데 동래읍성에서 경상좌수영성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짤라낸 것으로 동래읍성과 경상좌수영성의 거리에 관해서 알 수 있습니다.
1895년경의 경상좌수영의 경상좌수사와 함께 한 관리들의 모습입니다.
경상좌수영성의 모형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고지도에서 보이지 않는 원문(轅門)의 경우 과연 없는 것이었을까요? 필자도 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산시에서 나온 경상좌수영성에 관한 글을 보고 원문(轅門)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좌수영에는 영의 주장(主將)으로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줄여서 경상좌수사)가 있었다. 경상좌수사는 정3품 무관직이었다. 좌수사의 부관으로는 정4품 무관의 우후(虞侯)가 있었다. 그 이외 대솔군관(帶率軍官) 6명, 화사(畵師) 1명, 사자(寫字) 1명, 영리(營吏) 30명, 진무(鎭撫) 37명, 통인(通引) 25명, 관노비(官奴婢) 10명, 사령(使令) 26명, 군솔(軍率) 23명이 있어 좌수사의 공사 생활에 사역(使役)되었다. 1652년 감만포에서 남촌의 옛터로 좌수영이 옮겨올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좌수영성은 석축(石築)으로 둘레 1,193보(步 :9,190여척) 높이 13척, 성첩(城堞) 375타(?)·옹성(壅城) 3곳, 치성(雉城) 6∼7곳을 갖추고, 동서남북으로 각각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영일문(迎日門)·서문호소문(虎嘯門)·남문주작문(朱雀門)·북문공진문(供辰門)이라 했다. 각 문마다 2층으로 된 문루(門樓)가 있었다. 특히 남문 밖 양쪽으로는 돌로 조각한 박견(拍犬 :조선개)이 놓여 있었다. 성문은 일정한 시간에 폐문루(閉門樓)인 관해루(觀海樓)에 달아둔 북을 울리는 것을 신호로 열고 닫았다.지금은 남구 수영동에 성지 얼마가 남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고 아취형으로 된 남문은 원래는 남구 광안동 286-1번지에 있었으나 한때는 수영초등학교로 옮겨져 교문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남구의 수영공원 입구에 박견(拍犬)과 함께 옮겨져 지방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좌수영성 안에는 수사(水使)가 집무하는 수사영인 상영(上營)과 우후가 집무하는 중영(中營)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었다. 중요 시설물로는 객사(客舍)인 영파당(寧波堂)과 동헌(東軒)인 관운당(管雲堂)·우후의 집무처인 세검헌(洗劍軒)·비장청(裨將廳)인 백화당(百和堂)·원문(轅門)인 수항루(受降樓)·주사대변소(舟師待變所)인 척분정(滌?亭)·주사장대(舟師將臺)인 연무정(練武亭)과 군기고·화약고·호고(戶庫)·보군고(補軍庫)·영수고(營需庫)·공고(工庫)·관청고(官廳庫)·지창(紙倉)·수성청(守城廳) 등 많은 관아와 창고가 있었다. 성 밖에는 군사들에게 사격훈련을 시키는 어구정(禦寇亭)과 매년 10월 1일 수사가 직접 무사들에게 무예를 시험하는 장대(將臺)가 있었다. 이 장대에서 무예시험이 합격되면 좌수사 명의로 된 합격증을 받아 선달(先達)이 되었다."

여기를 보면 분명히 원문(轅門)인 수항루(受降樓)가 있었음을 적어 놓았습니다. 아무래도 동래읍지에 기록된 것을 보고 다시 적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분명히 원문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원문(轅門)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경상좌수영 원문(轅門)에 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추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통제영과 전라우수영, 녹도진성에 사용하는 원문(轅門)의 경우 진입로가 좁은 곳에 원문(轅門)을 설치하였는데 경상좌수영도 같은 방법으로 하지 않았을까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상좌수영의 경우 그렇게 진입로가 좁은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원문(轅門)의 경우 어떤식이었을까요? 저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원문(轅門)의 경우 관문성의 역활과 같은 것이니 평안도나 작원관에서 사용하는 관문성과 같은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하는 이야기이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이고 정확한 것은 문헌조사와 발굴조사인데 이부분 모두 필자는 취약합니다. 아무래도 문화재연구원 같은 곳에서 해야겠죠)

아래 사진은 평안도의 삭주읍성의 1872년 고지도로 삭주읍성과 함께 관문역활을 하는 관문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따라서 경상좌수영의 경우 통제영,전라우수영과 같은 바닷길을 막는 원문이 아닌 삭주읍성과 같이 산을 이용하여 막는 원문이 아니었을까 추정합니다. 
그럼 과연 경상좌수영성의 원문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아래 해동지도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상좌수영성에서 동래읍성을 가기 위해서는 동래고읍성을 지나서 산을 넘어가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산에 원문(轅門)을 설치해도 되지 않을까요? 동래읍성에서 경상좌수영으로 가는 길의 경우 다른 곳보다 진하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왕래가 많았고 큰 길임을 나타냅니다.
현재의 다음지도를 보니까 어느정도 원문(轅門)이 들어설 곳이 보이더군요. 망미동에 있는 고개에 원문(轅門)이 들어설 가망성이 많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경상좌수영성과 가깝고 나즈막하지만 고개가 있는 곳이 군사적으로 필요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굴강을 감시하기에도 좋은 위치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온천천과 달리 연산도서관 부근에 온천천이 있었고 그곳에 굴강이 있었다고 합니다. 굴강의 경우 전선을 수리하는 곳으로 현재 국내에 몇개 남아있지 않습니다. 저 톳고개에 원문(轅門)이 있고 그곳에 누각인 수항루(受降樓)가 있다면 남측으로는 경상좌수영성과 선소를 감시할 수 있고 북측으로는 동래에서 넘어오는 사람이나 병사들을 감시하고 또 굴강에서 이루어지는 전선의 수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할 것으로 보이는 곳입니다. 물론 톳고개중 어디에 원문(轅門)에 있어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배산에서 백산까지 성벽을 두르다고 하면 500여미터 정도로 체성으로 축성할 수 있어 적은 노동으로 방어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경상좌수영성 원문(轅門)에 관한 조사는 어디에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필자의 추정임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부산시에 나오는 자료를 봐서는 분명힌 경상좌수영성에도 원문(轅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소며 크기 등의 경우 아직 어디인지 모르는데 이 부분의 경우 부산의 향토학 연구회에서 연구하거나 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정확하게 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덧글

  • 부산촌놈 2011/05/24 23:23 #

    톳고개라면 흔히 연산토곡으로 더 자주 쓰이는 고개 이름이네요.

    역시 흔적이 남아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항공사진에 표시한 것만으로는 실감이 잘 안 가네요.
  • 팬저 2011/05/25 08:16 #

    그렇겠죠. 아마 오래전에 무너졌고 조선시대 후기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지도에도 표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요. 다만 장소의 경우는 정확하게 어디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추정한 곳이니까요!
  • 부산촌놈 2011/05/24 23:42 #

    아니, 그런데 연산도서관은 완전 뭍에 있는 곳인데 그 부근에 굴강이라는 시설이 있었단 말인즉슨, 그곳에 최소한 하천이라도 흘러야 된다는 것일 텐데요.

    아마 그 하천은 온천천으로 흘러들어갔을 거구요.

    방금 확인해보니 연산도서관 쪽으로 이어질 듯한 하천의 복개 흔적을 찾긴 했습니다만...
  • 팬저 2011/05/25 08:15 #

    발굴조사인지 지표조사인지 모르지만 문화재연구원의 자료에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
  • 고인돌 2011/07/01 12:03 # 삭제

    맨날 팬저님의 글을 애독 하면서도 댓글은 처음으로 써봅니다. 저도 문화유산(유적지 포함)이 좋아서 나름 뛰어 다닌지 대략 20여년은 되는것 같은데 인터넷을 통해 이런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팬저님의 자료가 많응 도움과 참고가 되고 있읍니다. 열정에도 감탄하고 있고요. 저는 집이 부산 기장인데 기장왜성이나 기장읍성을 탐방할때 미리 통보 주시면 한번 만나보는 기회를 갖고 싶읍니다. 맛있는 장어 구이나 횟집을 초대합니다 (T. 010- 4409- 1350), 직장인인 관계로 토,일요일이면 좋겠읍니다. 팬저님의 열정에 박수를 보냄니다 . 7월 1일 기장에서.
  • 팬저 2011/07/01 12:46 #

    이렇게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기장읍성의 경우 한번 갔다가 왔는데 북문지를 탐방하지 않아서 한번 가보아야 합니다. 또 기장 죽성리왜성도 갔다왔지만 본성만 갔다와서 지성쪽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기장방면으로 갈 경우 전화한번 드리겠습니다. 많은 칭찬과 격려 감사드립니다. ^^
  • 대마왕 2012/11/07 10:32 #

    예전에 자료 보다가 얼핏 보았는데
    경상좌수영의 원문은 형식화 되어서
    성내에 있었다는 말을 본 것 같습니다.

    확실치는 않네요 ㅠㅠ
  • 팬저 2012/11/07 13:53 #

    자료에는 없지만 혹시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글을 올려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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