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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에서 622억원을 들여서 광주읍성의 체성과 4대문을 복원한다고 하네요. 그 이전에 동문인 서원문을 먼저 복원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광주시 관계자는 도심재생과 관광활성화 방안으로 복원을 한다고 합니다. (전국에 있는 구도심의 경우 광주를 비롯한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 현상인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광주읍성의 경우 어떤 모양이었을까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광주읍성은 돌로 쌓았고, 8253척(2.5㎞)이고 성문은 네 곳 우물은 100곳이다’란 내용이 나옵니다. 성문인 4대문은 1908년부터 8년에 걸쳐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광여도에서 본 광주목 광주읍성입니다. 4대문이 있으며 광주읍성의 경우 정사각형에 가까운 읍성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북문의 경우는 평거식이고 나머지는 홍예식으로 된 성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남문에서 올라와 서문가까이에 객사가 있으며 동헌의 경우는 북문가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고지도와 비슷하게 서문을 중심으로 객사가 있습니다. 고지도에서는 북문 가까이에 동헌이 있었는데 남문 가까이에 동헌이 형성되어져 있습니다.동헌의 경우 예전 전남도청자리 였고 5.18 민중항쟁 현장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지도를 보면 서측 끝자락에 나즈막한 동산이 나오는데 그곳에 사직단이 있습니다. 사직단의 지명이 남아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은데 광주에도 남아있는 것 같네요. 참고로 부산야구장이 있는 사직야구장의 사직이 바로 사직단이 있었던 곳이라서 사용한 것입니다.(사실은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요)
광주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우체국의 경우 아래 지도를 보면 왜 중심이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읍성의 경우 4대문이 있으면 +자 도로가 발달이 되는데 광주읍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자 도로가 만나는 한가운데가 바로 현 광주우체국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주우체국이 있는 자리가 번화가가 되는 것은 당연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4대문에서 출발하여 만나는 지점에 광주우체국이 보입니다.
북문위에 있었던 공북루의 경우 1916년 일제에 의해 철거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고지도에 나오는 서문밖에 있었던 시장의 경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광주가 호남의 경제중심지로 성장하는데 큰 역활을 했다고 합니다.
광주읍성의 체성의 경우 도로와 접목되고 있는 부분이 많아서 복원을하려고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힘이 들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 전남도청뒤편 정도에 복원을 한다면 잘 될 것 같습니다만 다른 곳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이미지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낙안읍성과 달리 도심속에 있는 곳의 경우 읍성,진성,병영성 등을 복원한다고 해도 하드웨어만 성터이고 안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경우 21세기 방식이기 때문에 복원을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관광객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필자도 처음에는 복원이라는 카드에 환영을 하였습니다만 복원을 하는 부분이 영 고증에 맞지 않는 부분도 많고 단체장의 치적에 가까운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서 일부복원 일부 흔적 표시로 진행되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덧글
체성의 흔적만 표시하면서 주변지역을 정비하고 공원지대로 살린다면 나름 의미가 있을듯 합니다.
링크가 잘못되었네요
여기와서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제가 광주에 살고, 도시사 공부를 하고 있어서 잘은 모르지만,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래도 제가 사는 도시니깐...)
1.1872년 지방지도의 광주는 상세하게 잘 그려진 반면 일부 틀린 부분이 있어서 신뢰성에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양림리가 광주천 안쪽에 있는데, 실제로는 바깥쪽에 있습니다. 즉 직접 지도를 그린 사람이 와서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설명을 듣고 그린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이것은 아마 당시 고지도가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구요.
그리고 팬저님이 적으신 대로 서문 지역에 마을이 형성되고, 그 바깥쪽인 광주천변에 장시가 형성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북문에도 큰 마을이 있었던 것을 지적원도(1913)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오각형에 가깝지만 광주읍성이 평지성이면서 정사각형에 가까우며 성문이 4개인 방식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광주도 그렇지만 비슷한 도시 중 상주, 남원이 신라의 9주 5소경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격자형의 시가지 패턴이 읍성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광주의 경우 구 시가지가 계획 개발된 도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광주읍성을 기점으로 북동쪽으로 격자형태의 가로망을 목격되거든요. 상주와 남원도 유사한 형태가 있다고 원광대 이경찬 교수의 논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궁금한 것은 읍성 내 성곽이나 동헌, 객사 등의 위치를 잡은 것은 다른 서적을 참고했다고 해도, 도로까지 위치를 잡았는지 궁금하네요. 저도 해 보면서 느낀 거지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광주의 경우 제가 사는 곳이 아니라 정확하게 답변드리기에 힘이들지만 우리나라 읍성의 경우 보통 사각형, 오각형, 마름모,원형 안에 다 들어갑니다. 물론 조금 조금씩 지형에 따라 변화는 있습니다.
보통 신도시가 들어서고 도시계획이 들어서면 다 사라지고 없어지는데 그래도 살아남는 것이 있는 것이 골목길이라 이 골목길을 역추적하면 예전의 도시가 나오더군요. ^^
저는 CAD에서 작업을 합니다. 먼저 지적원도에서 원하는 곳의 선을 딴 다음에, 그걸 현행 KLIS 도면에다 그대로 옮깁니다. 이게 가능한게, 재미있게도 일제 초기에 만들어진 지적원도와 현행 지적도가 좌표 시스템이 같습니다. 물론 광주읍성이 위치한 광주면의 경우는 특별측량으로 지적원도가 제작된 지역이라서 이 방식이 통용이 안되고, 좌표를 일부 수정해 주면 거의 맞더군요.
이런 방식도 있지만, 지적원도에도 사라진 읍성, 해자, 골목길을 복원하려면 팬저님 말씀대로 역추적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 알았구요.
다른 공부가 바뻐서 읍성을 돌아보는 작업은 사실 광주, 순천, 해남, 여수만 해 보았습니다.
캐드로 일일이 선 따고 하나씩 작업하기가 보통 일이 아니고 제 그래픽 실력이 좋지 않아서 남들 보기에도 좋지도 않고 ~~
그냥 저혼자 간직하고 생각나면 조금씩 수정하고 있습니다 ^^
언젠거 공개할 날이 있을꺼라고 생각만 하면서요 ㅎㅎㅎ
암튼 이렇게 멋있는 일을 하시는 분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네요 ^^
제가 하는 것은 오차범위가 3~5미터 민간 GPS기준이고 시전윤님이 하시는 것은 군용 GPS기준으로 오차범위가 1미터 이내이겠네요. ^^
팬저님께서 작성하신 것과 별 차이는 없었던거 같은데...
대신 해님의 경우는 저도 KLIS도면이 없는 관계로 현재 지적현황과 정확하게 일치하여 확인하진 못했습니다.
해남읍성의 원형에 대해서는 일단 집에가서 제가 확인해보고 과거 자료만이라도 한번 보내드릴테니 시간나실 때 확인해보세요.
그리고 저도 네이버지적도 서비스를 활용해서 한번 확인해봐야겠네요...
지적원도는 일제강점기에 전국적으로 1913년부터 1918년 사이에 조제되었다는 사실은 아실테구요.
현재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에서 원본을 보유하고 있구요.
KLIS(토지정보시스템)는 2000년대 이후 전국의 지적도와 임야도를 디지털화해서 공공기관의 지적행정에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관련 용역이나 업무를 보시는 분은 이 자료를 가지고 계실 겁니다.
이 두가지가 말씀드린대로 비슷한 좌표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오버래핑하면 과거와 현황을 동시에 알 수 있습니다.
이 자료를 사용하면 좋긴한데... 일일이 지적작업을 해서 올려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것이 문제이구요.
주로 문화재연구원에서 나온 지적도를 참고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도움을 주고 받고 싶습니다.
팬저님 이멜 주소를 알 수 없어서 제 멜 주소 남깁니다. ccc3cam@daum.net
이렇게 얼굴도 모르는데 찾아와주시고 좋은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인연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