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귀베어 갔다고 하는 기장죽성리왜성 왜성(倭城)



죽성왜성을 갔다온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올리지 않았더군요. ㅠㅠ 아무튼 두서없이 죽성왜성의 글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죽성왜성의 경우 부산시 기장군에 있어서 기장왜성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솥뚜겅과 닮았다고 해서 증산왜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기장의 지명을 따서 기장성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기장군 죽성리에 있다고 해서 죽성왜성 또는 기장 죽성리 왜성이라고 부릅니다. 증산왜성이라고 부르는 솥뚜겅의 경우 왜성의 상당부분이 그렇게 부르고 있더군요. 부산왜성, 양산 물금왜성, 울산왜성 등이 증산왜성으로 부르고 있으니 지명을 사용하는 것이 더 혼란이 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죽성왜성의 경우 기장읍성과 직선거리로 2.7km이고 둘러서 온다면 3.7km가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있었던 두모포진성에서 기장왜성의 본환까지는 270미터 기장왜성 지성까지는 100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죽성왜성에 사용한 돌의 경우 상당부분 두모포진성의 돌을 가져왔다고 봐야 합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장수 구로다가 조선·명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방어하고 남해안에 장기간 머물기 위해 쌓은 성이 죽성왜성입니다. 돌로 쌓았으며 둘레는 약 960m, 성벽높이는 약 4m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이 높이보다 더 높게 축성했을 것으로 보입디다. 죽성왜성의 경우 북으로는 임랑포왜성이 자리잡고 있고 남으로는 동래읍성과 동래왜성이 있는 곳인데 동래읍성과는 거리가 많이 됩니다. 하지만 기장왜성이 있는 위치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입장에서는 후방이 됩니다. 

일단 죽성왜성의 위치를 보면 조선군이 주둔한 두모포진성과 아주가까이 있으며 조선군이 사용한 선소에 왜군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화살표의 경우 기장읍성에서 오는 길로 육지에서 조명연합군이 공격한다면 화살표 방향으로 올 수 있습니다. 다만 죽성왜성의 경우 육지로부터의 공력보다는 바다로 부터의 공격에 방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죽성왜성의 경우 본환과 지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보통의 왜성이 축성한 방식과 같습니다. 다만 조그마한 야산을 끼고 본성이 있고 그 옆 작은 야산에 지성이 있는 구조인데 바로 두모포진성이 있는 곳입니다. 죽성왜성이 자리잡은 야산의 경우 높이는 100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죽성리왜성이 있는 곳은 해발 64미터라 보시면 됩니다.

구글위성에 등고선으로 나타낸 지도가 있어서 가져 와봤습니다. 여기를 보면 죽성왜성의 위치가 방어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번이 남산봉수대로 조선군이 사용하던곳인데 그 보다는 아래에 위치하고 있지만 남측으로는 대변에서 올라오는 선박을 알 수 있는 위치이고 북측으로는 임랑포에서 내려오는 선박을 알 수 있는 위치입니다. 죽성왜성의 지성의 경우 4번인데 3번인 본성보다는 아래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아래에는 6번인데 선소자리입니다. 즉 선박의 입출입을 하던곳인데 왜군의 경우는 죽성초등학교 자리에서 선박을 정박시켰다고 하더군요.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죽성왜성의 본성과 지성을 나타낸 지도로 실 오차 30센치에서 1미터 정도 될 것으로 보입니다. 죽성왜성 본성과 지성과는 거리차이는 대략 직선거리로 200미터로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본성의 경우 죽성에서 본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로 보이던데 이부분에 관한 자료가 없더군요. 아무튼 죽성왜성을 보면 전형적인 왜성의 구조를 알 수 있게 고구치 [虎口] [こぐち], 산노마루(三の丸), 니노마루[にのまる[二の丸, 二之丸(이지환)]], 혼마루[本丸 (ほんまる)], 천수각[덴슈카쿠(天守閣)] 으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죽성왜성의 성벽을 보면 몇차례 걸쳐서 축성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더군요. 죽성리왜성의 면적은 11,000평이 넘는다고 하네요. (지도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죽성리왜성 주차장에 도착하면 보이는 표시판을 따라 올라가면 죽성리왜성은 찾기가 쉽습니다. 기장읍에서 넘어오는데도 이정표가 있어서 찾아오기가 쉽습니다.
▼ 사람들이 많이들 찾아오셔서 그런지 화장실도 예쁘게 꾸며 놓았습니다. 대나무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 같죠.
▼ 산위에 죽성리왜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 계단이 보이는데 이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면 죽성리왜성입니다.
▼ 가기전에 뒤 돌아본 죽성리의 모습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선박들이 저기 포구로 들어왔을 것입니다.
▼ 부산시 기념물 죽성리왜성을 알려줍니다. 왜성의 경우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조사하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기념물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런 것을 해방이 되고 나서 우리는 따라했고요. 
▼ 나무로 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되는데 계단 끝에 흰색으로 칠해진 부분은 야간에 계단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상 좌측편에 죽성리왜성의 체성이 지나간다고 하더군요. 크기는 작지만 현재 형태가 남아있다고 하던데 필자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 체성이 지나가는 것은 왜군들이 만든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로 추정이 되는 곳입니다.

이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 그동안 울산 서생포왜성, 웅천왜성, 안골포왜성에서만 보았던 것이라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죽성왜성에 있었다고 하면 임진왜란당시 왜군이 축성한 왜성의 경우 상당부분이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축성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부산의 죽도왜성의 경우도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워낙 많이 무너져 내려서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지만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있었을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습니다.  
▼ 죽성리왜성의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면 만나는 것이 있는데 고구치 [虎口] [こぐち]로 오해하기 쉬운 곳입니다. 작은 고구치 [虎口] [こぐち]일 수도 있습니다만 성문의 경우는 이곳이 아닙니다. 성문의 경우 지성이 있는 곳에 있는데 필자가 가보지 못했네요.
▼ 옆에 있는 곳으로 이곳에 흙담을 쌓고 공격해오는 적을 막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 축성방식은 다른 왜성과 같은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조선군이 쌓았던 임진왜란 당시의 축성방식을 보면 아래에 큰 돌을 쌓고 위로 올라가면서 작은 돌로 축성하는 것에 비해 왜군이 쌓은 왜성의 경우 큰돌과 작은돌이 서로 섞여져 있고 위로 올라가도 큰돌이 보이는 것이 조선군이 쌓은 축성방식과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군의 경우 양측 모두 돌로 쌓는 축성방식인 협축인 것에 비해 왜군의 경우 한측면만 돌로 쌓은 편축방식을 사용하는 것도 다른 방식이라고 볼 수 있죠. 다만 이러한 왜군의 방식을 사용하다 보니 세월이 오래되어져 현재 남아있는 왜성을 보면 군데 군데 이가 빠지는 것과 같은 식으로 되어져 있고 돌은 사라지고 토성만 남아있는 것도 보입니다.
▼ 세월의 무게를 알 수 있는 사진으로 군데 군데 돌이 나 뒹굴고 있습니다.
▼ 반대편에 있는 곳인데 많이 무너져 내렸져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왜성의 축성방식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습니다.
▼ 평편한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왜군들이 주둔한 니노마루[にのまる[二の丸, 二之丸(이지환)]]입니다.
▼ 2지환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으로 여기서도 바다 전체를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 2지환에서 본환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2지환에서 본환측을 바라본 것입니다.
▼ 본환측의 체성의 경우 아주 잘 남아있고 기장죽성리왜성의 사진을 보면 보통 이곳이 많이 나옵니다. 이렇게 돌출된 곳이 있는데 이곳이 요코야가카리(橫矢 횡시)라 불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곳이 중요한 부분이다 보니 높게 축성하였습니다.
▼ 위태롭게 있는 것 같지만 적어도 400년이상 버티고 있습니다. 축성한 돌들이 일정한 크기로 보입니다.
▼ 사진상 보았을때 두번에 걸쳐서 축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가져봅니다. 처음 축성하고 나주에 다시한번 보강하는 형식으로 축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돌의 색상도 틀리고 또 돌출된 체성 때문입니다.
▼ 중간돌과 큰돌 사이에 아주 작은돌들이 지탱해주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꼭 이가 맞는 것처럼 되어져 있네요. 이 죽성리왜성을 쌓기 위해 조선인들이 얼마나 노동을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 길게 형성된 체성의 경우 본환을 막기 위해서 있는데 왜성의 특징을 한눈에 알 수 있게끔 되어져 있습니다. 높이의 경우 4미터 이상되어져 보이던데 정확한 높이는 모르겠네요.
▼ 6~70도에 가까운 축성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방문했을때가 6월이라 풀이 많이 자라져 있습니다.
▼ 우측편을 보시면 2지환 아래로 돌로 축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로 내려 가는 길이 없어서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 2지환에서 바라본 포구의 모습과 죽성초등학교인데 왜군의 경우 죽성초등학교 근처체 자신들의 배를 정박했다고 하더군요.
▼ 2지환에서 본환으로 갑니다. 본환으로 올라오는 길에 ㄴ자 형식으로 된 체성이 나옵니다. 
▼ 지금은 많이 무너져 내려져 있지만 그래도 형태를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 군데 군데 흩어져 있는 돌
▼ 요코야가카리(橫矢 횡시)로 보이는 부분으로 위에서 본 사진에서 90도로 돌아와서 본 것입니다.  그림지도에서 B지점입니다.
▼ 이곳의 경우 본환으로 들어가는곳에 20여미터 체성이 남아있습니다.
▼ 기장죽성리왜성의 안내판으로 이곳에 두모포진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두모포영성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진성과 영성의 차이가 무었일까요? 營城이라면 경상좌병영성, 경상우병영성, 전라병영성, 경상우수영성, 경상좌수영성, 전라우수영성, 전라좌수영성 등에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요?
▼ 본환을 들어가기전의 모습인데 사진에 보이는 체성의 경우 본환이라 그런지 협축방식으로 축성되어져 있고 출입문의 경우 왜성의 방식인 마스가타 (ますがた 升形 )가 보입니다. 파란색 상의를 입고 계시는 분이 서있는 곳이 천수각터입니다.
▼ 이곳을 따라서 쭉 올라가면 나오는 것이 천수각인데 체성의 경우 보시는 바와 같이 얼마 남아있지 않습니다.
▼ B지점과 대각선 방향에 있는 곳인데 위 사진을 옆에서 보고 찍은 곳입니다. 이곳의 경우 특이하게 축성한 느낌을 줍니다.
▼ 얼마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잘남아져 있습니다. 이부분의 경우 왜 협축방식으로 축성했을까요?
▼ B지점으로 작지만 각이 진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 영판 왜성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 본환으로 오는 B지점의 경우도 협축방식으로 축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측의 경우 조선군이 잡석으로 채우는 방식과 달리 흙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 본환으로 들어와서 B지점의 뒤로 온 것으로 이곳의 경우는 아주 작은돌들이 자리잡고 있네요.
▼ 돌에는 이렇게 꽃이 핀것 처럼 되어져 있는데 이런 것을 풍화라고 하나요?
▼ B지점으로 아주 남아있는 부분이 얼마되지 않습니다. 이곳에 올라가서 보면 바다가 다보이겠죠. 조금 계단의 흔적도 보입니다.
죽성왜성의 경우 조선인을 동원하여 축성하였고 조선인들의 코와 귀를베어서 일본 본국으로 가져 갔던 곳이라고 하던데 죽성왜성 뿐아니라 왜군들이 주둔한 곳은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안골왜성, 서생포왜성, 웅천왜성 등 다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되면 죽성리왜성 2편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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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ens-Olaf 2011/05/28 09:43 # 삭제

  • 팬저 2011/05/28 09:56 #

    저도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갔다오시고 글을 올렸네요. 감사드립니다. ^^ 저도 이 지성을 가보았지만 체성을 찾지 못해서 다음에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나성(羅城) 즉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알아내는 것이 다음 답사의 목적입니다. 아무래도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있는 것 같은데 잘 알 수가 없네요. 지금은 계절이 답사하기 힘이드니까?(여름이 가까우면 힘이들어요. 덥기도 덥지만 체성을 볼 수가 없어서요) 겨울에 한번 가보아야겠습니다. Jens-Olaf님은 임랑포왜성까지 같다오셨는데 대단하십니다. 저도 한번 가보려고합니다. ^^
  • 팬저 2011/05/28 10:06 #

    Jens-Olaf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보통 서생포왜성이나 웅천왜성정도 가는 것이 대부분인데 잘 찾지 않는 명동왜성, 임랑포왜성, 눌차왜성, 양산왜성, 자마왜성을 찾아간다는 것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드네요. ^^ 이제 거제도에 있는 왜성만 남아있나요? 아무튼 그 열정 그대로 쭉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따라 가겠습니다.
  • Jens-Olaf 2011/05/28 10:18 # 삭제

    좋은 왜성 지도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팬저 2011/05/28 10:31 #

    아닙니다. ^^ 저도 좋아서 하는 일인데... ^^
  • sara 2011/06/10 18:16 # 삭제

    목재계단 좌측이 登り石垣입니다. 계단 정상부에서 바깥쪽으로 내려보면 석축이 보입니다.
  • 팬저 2011/06/10 19:31 #

    예,,,, 저도 아직 그 부분을 못본 것이 아쉽네요. ^^ 다음에 가면 꼭 봐야겠습니다.
  • sara 2011/06/10 19:06 # 삭제

    그리고 기장읍성쪽에 발굴조사결과와 관련하여 참고하실만한 글 몇자 댓글로 올려놓았습니다. 도움되시기를 바랍니다
  • 팬저 2011/06/10 19:31 #

    좋은 정보있으면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 gheem 2012/05/28 20:44 # 삭제

    귀를 베어갔다는건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코를 베어갔다면 너무 잔인하고 야만스러워 귀를 베어갔다고 완곡하게 일본이 주장하는 역사왜곡이죠. 교토에서도 비총이라고 불렀다네요. 우리말에 눈감으면 코베어간다는 말도 여기서 유래됬다는게 개인적인 믿음입니다.
  • 팬저 2012/05/28 20:57 #

    처음에는 귀를 베아갔다고 합니다. 귀가 두개라 보니까 양이 많아져서 나중에는 코를 배어서 가지고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왜성의 경우 처음에는 귀를 베어가는 곳 나중에는 코를 베어가는 곳이라 양쪽 모두 틀린 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 2013/05/27 12:5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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