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색시마냥 세상에 들어난 창원읍성 치성 읍성(邑城)



▼ 창원읍성 북측체성의 발굴소식을 듣고 가보았습니다. 현장의 경우 아래에 나올 지도 이미지에서 빨강색으로 그려진 소방도로 예정지로 공북루 옆 치성이 있는 곳입니다. 아래 이미지 출처 : 우리문화재연구원을 가지고 필자 재구성
▼ 치성이 있는 곳을 처음 갔을때가 2007년 4월이었는데 그때 당시로는 이곳이 치성이 지나가는 곳인지도 몰라서 기록을 하지 않았고 이후 위 지도를 알게 된 후 찾아 간 시기가 2008년 5월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치성이 지나가는 곳에 민가가 자리잡고 있었고 쓰레기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 치성이 있는 곳에서 동측방향을 바라본 것으로 녹색건물이 있는 곳이 창원읍성 북측체성이 지나가는 곳으로 저 건물의 경우도 건물을 신축하여 버렸습니다.
▼ 2011년 6월에 바라본 모습으로 위 사진 2008년 5월과 비교해보니 조금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위 사진에서 나오는 녹색건물지에서 치성이 있는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하얀색 건물과 파랑색물통이 있는 민가입니다.
▼ 아래 이미지는 2008년 동서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한 곳으로 위 사진보다 3개월 정도 지난 후에 방문하였는데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보이는 민가의 경우 현재는 없습니다. 민가가 바로 치성이 있는 곳입니다.
▼ 당시 필자가 방문했을때에는 이런 식으로 덮어 놓아서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습니다.
▼ 다만 아래에 체성이 지나가는 흔적은 발견이 되었습니다.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 치성이 있는 곳입니다.
▼ 별 다른 내용이 없다가 2010년 12월 방문을 해보니 치성이 있던 민가는 없고 도로 개설을 위해 준비중이었습니다.
▼ 당시 쓰레기 더미로 있다보니 여기가 치성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될 정도 였습니다.
▼ 여기는 치성이 발견된 곳에서 20여미터 떨어진 곳으로 북측 체성이 지나가는 곳으로 2007년 4월의 모습입니다. 이때 당시에는 체성이 지나가는 흔적을 정확히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래에 일직선상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체성의 외부모습입니다. 민가의 경우 체성의 회각로에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 아래로 내려와서 찍은 사진으로 상단에 성곽에 사용되는 돌들이 보입니다.
▼ 그후 2008년 5월의 모습으로 위 체성이 지나가는 곳은 가림벽으로 둘러싸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측의 민가가 치성이 있는 곳으로 여기에서 가림벽으로 가려진 곳까지 일직선상으로 체성이 지나갑니다.
▼ 이부분의 경우 처음에는 체성의 부분으로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발굴조사를 한 것을 보니 체성의 내측은 아니더군요.
▼ 현 2011년 6월의 모습으로 아직도 가림벽으로 되어진 부분이 보입니다만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발굴조사중 끝부분에서 보이는 가건물까지 직선으로 체성이 이어지고 가림벽이 외부 체성입니다.
▼ 가림벽 사이에 조금 체성이 보이는데 저 부분이 북측체성이 지나가는 곳입니다.
▼ 2008년 5월의 모습으로 이 당시에도 소방도로개설을 위해 도로가 놓여져 있습니다.
▼ 2011년 6월의 경우 옹벽공사가 진행되었으며 현재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 이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원읍성 북측체성의 내측부분으로 내측의 경우도 돌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창원읍성에 사용된 체성의 경우 협축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창원읍성 내측 체성의 경우 외측체성과 달리 돌의 크기가 작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략 2~30센치 정도입니다.
▼ 다른 방향에서 찍은 것으로 여기를 보아도 돌의 크기가 작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멍이 난 것 같은 곳은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 체성 안의 경우 작은 돌(잡석)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이번 발굴조사에서 알게되었네요.
▼ 위 사진에서 나오는 가림벽이 있는 민가의 뒤측의 모습입니다.
▼ 텃밭을 하기 위해 돌로 담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부분이 체성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 체성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돌들이 군데 군데 일직선상으로 되어져 있었는데 이부분에 관한 발굴조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위 지점에서 몸을 동측방향으로 돌리면 보이는 부분이 아래 사진에 나오는 부분으로 창원읍성 체성부분이 확연히 들어납니다.
▼ 드디어 들어난 창원읍성의 북측체성 외측의 모습으로 동측체성에서 발견된 것과 같이 하단에 큰돌을 채우고 상단으로 가면서 작아지는 조선초기 연해읍성이 축성방법과 같이 축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돌과 돌사이에 작은 돌을 채우는 방식인 잔돌끼움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번에 발굴조사에서 그동안 나왔던 창원읍성의 활석과 달리 일정한 크기의 활석으로 지대석으로 사용된 것이 남아있다는 것이 다릅니다. 면석보다 조금 바깥쪽으로 튀어 나온 것이 지대석입니다. 또 활석의 경우 정방향으로 일정한 크기로 되어져 있으며 지대석보다 바깥으로 2개정도 나와져 있는데 이부분을 본 것은 필자는 처음입니다.
▼ 잔돌끼움의 경우도 상당히 재미있네요. 지대석위에 작은 돌을 깔고 그 위에 기단석을 까는 방식으로 된 것도 처음 보는 것 같네요.
▼ 이 부분은 아직 발굴이 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사유지라 그런 것 같습니다. 이부분이 쭉 이어져 치성까지 연결되겠죠.
▼ 이제 치성이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이 치성의 경우 창원읍성 최초로 발굴된 치성으로 보입니다. 치성의 경우 조선시대 초기 연해읍성의 치성과 별차이가 없습니다. 언양읍성에서 본 치성과 비슷합니다.
▼ 치성이 각이 진 부분인데 요즘 복원하는 읍성의 경우 이런 부분들이 너무 딱 들여 맞는 것에 비해 예전에 축성한 읍성의 경우 이런 부분들은 조금 여유가 있어보이는 것이 특징인 것 같습니다. 치성 또한 지대석과 활석으로 되어져 있으며 북측방향의 경우 지대석은 보이는데 활석이 보이지 않네요.
▼ 치성 위에 있는 민가가 헐리고 나니 이제 좀 창원읍성의 느낌이 나네요. 이렇게 우리 앞에 치성이 들어선 것이 언제 일까요? 조선총독부에 의해 읍성이 해체되는 그 시기라면 100년만에 들어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 자세히 보시면 치성의 기울기가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을 줍니다. 동측이 낮게 축성된 것이 보이고 상부로 올라가면서 작은돌로 채워서 수평을 맞추었습니다.
▼ 치성의 경우 사진에 보이는 부분까지가 끝입니다. 그런데 동측편에 보이는 잡석과 흙이 있는 것은 민가를 지으면서 양옆에 보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치성위에 민가가 조성되어져 사용되고 있는 것은 언양읍성에서도 보았는데 창원읍성에서도 마찬가지네요. 어디 언양읍성이나 창원읍성만 그렇겠습니까? 우리나라에 있는 여러 읍성들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 동측이 낮는 지형적인 구조때문에 축성한 치성의 경우 배홀림 형식처럼 볼록하게 튀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축성할때 문제가 있었을 것인데 그래도 용캐 500년 이상을 버틴 것 같습니다. 치성이 끝나는 부분에 한 1미터 정도 축성된 돌이 보이지 않다가 다시 돌로 구성된 부분이 보이는데 이 부분의 경우 왜 이럴까요?
▼ 지대석과 기단석 그리고 활석의 모습이 어우러져 치성을 이루고 있는데 큰돌과 둥근돌이 조화가 멋져보입니다.
▼ 치성의 모습과 창원의 모습이 마치 시대를 뛰어 넘는 느낌을 줍니다.
▼ 치성 앞에서 본 해자입니다. 해자의 경우도 정확하게 발굴된 것은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치성과 해자와의 거리를 알 수 있게 찍은 사진인데 치성에서 4~5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다만 좌측에 도로 개설을 위해 옹벽공사가 진행된 것이 보입니다. 도로가 개설이 된다면 옹벽으로 치성앞을 막거나 치성을 철거할지가 걱정입니다.현명한 방법으로 도로 개설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해자 발굴이 끝나는 지점에 도로 개설을 위해 만든 옹벽이 보입니다. 옹벽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지하를 발굴했을 것인데 그때 해자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아니겠죠. 위 아래에 나올 사진과 같이 분명하게 나왔을 것인데 이부분에 관해서 공사관계자가 덮어버리고 옹벽공사를 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도로 개설을 위해 공사가 진행될때 문화재심의는 했을까요? 이 부분도 의심이 가는군요. 또 공사현장에 공무원이 나와있었다면 계속해서 공사가 진행되었을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장입니다.
▼ 이번에 발굴된 해자와 치성 그리고 체성의 경우 1912년도에 제작한 지적원도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동측의  체성과 그동안 몇차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나왔던 것과 일치합니다. 따라서 전반적인 지표조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아래에 나오는 핑크색의 민가의 경우도 최근에 지었는데 저 부분에 체성이 지나갔어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입니다. 또 보는 방향을 따라 해자가 쭉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제 다시 처음의 위치로 왔습니다. 체성이 아직 발굴하지 않은 부분에서 체성이 연결되었을 지점을 바라 보았습니다.
▼ 예전에도 이곳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체성이 내측부분이 끝나는 지점으로 보이는 부분입니다.
▼ 여기 또한 체성 위에 다시 축성한 것으로 조선시대가 아닌 근대화시기인 1970~80년였을 것입니다.
▼ 치성이 있는 지점에서 천주산을 바라본 것입니다.
▼ 옹벽이 계속해서 이어져 있고 그 옆으로 보이는 돌이 지나가는 부분이 바로 해자가 지나가는 부분입니다. 창원시에서 2004년 빌라 신축시 나온 체성부분을 보고 두번 다시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이제는 대 놓고 이런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의 경우 한번 두번도 아닙니다. 아래에 링크 걸어 놓겠습니다. 이부분 보시면 계속해서 실수를 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창원초등학교 담장이 있는 부분으로 이부분도 체성이 지나가는 부분인데 전혀 발굴은 하지 않고 있네요.
▼ 필자가 찾아갔을때 한참 도로 개설을 위해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 다시 처음에 있었던 부분을 왔는데 체성이 지나가는 곳은 아닌데 이런 부분이 있더군요.
▼ 반대 방향에서 바라본 곳으로 창원초등학교의 모습이 보입니다. 창원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지대가 조금 높고 필자가 서있는 곳도 높은데 낮은 곳은 수구문에서 들어오는 물때문에 지대가 낮은 것 같습니다.
▼ 체성과 다른 부분인데 일직선상으로 되어져 있는 것이 있었는데 어떤 부분일까요?
▼ 돌이 일정한 크기로 되어져 있었습니다.
▼ 돌이 보이는데 불에 탄 부분도 보이고 아궁이로 보이는 부분인데 여기에 예전에 건물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체성이 지나가는 곳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정확하지 않습니다.
▼ 불에 탄 부분이 보이시죠.
창원시에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네요. 언론에 보도가 나오고 하면 그때서 이제야 잘하겠다고 하고 나머지는 덮어버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네요. 필자가 몇번에 걸쳐서 지적한 부분중 그나마 이번 발굴조사입니다. 이것에 관하여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요? 옹벽공사가 있기전에 발굴조사를 했다면 해자부분을 정확히 알 수가 있었을 것이고 또 북측체성이 사라지는 부분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죠.

2010년 12월 현장의 모습으로 이때에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창원시에서 창원읍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포스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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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1/06/11 15:53 #

    창원시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방법이 없을까요. 안타깝습니다.
  • 팬저 2011/06/11 17:43 #

    문화재구역으로 지정이 되지 않아서 힘들다고 합니다. 사유지의 경우는 거의 다 힘이든다고합니다. 사유지의 경우는 그렇다 치고 도로의 경우는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 부산촌놈 2011/06/11 18:54 #

    성벽이 지대석 위에 지어져 있는 경우가 발굴된 치성의 사례 말고도 있는지요?
  • 팬저 2011/06/11 22:27 #

    많이 있고 거의 대부분이 지대석위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
  • 부산촌놈 2011/06/11 22:41 #

    음... 그러면 노출만 안 되어 있다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지대석이랑 기단석을 착각하고 있는 건가요?
  • 팬저 2011/06/11 23:26 #

    기단석이 그냥 일반적인 하부를 지탱하는 돌입니다. 그리고 지대석의 경우도 비슷하기는 한데 성문의 돌을 받치는 경우입니다.
    여기에 그림이 있는데 참고하세요.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hyh45&logNo=20119690653
  • 팬저 2011/06/12 15:20 #

    아무래도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 같기도 한데 다시 확인해보고 댓글 남길께요.
  • 마즈 2011/06/12 04:34 #

    음;;;마산같은경우는;;;일부읍성을;;;관광지로 소개하는 책자가 일부잇죠 ㅇㅇ;;관세청에 .....창원읍성은;;;오늘 처음 알앗군여;;;;
  • 팬저 2011/06/12 15:21 #

    창원에 형식적으로 잘 남아있는 읍성은 웅천읍성이 최고 이며 발굴조사를 통해 흔적을 알 수 있는 것은 창원읍성과 진해읍성(진해현 읍성으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면사무소근처)이 있습니다.
  • 에로거북이 2011/06/13 12:44 #

    잘 보았습니다.
    역사와 문화재에 관심 없는 사람들 에겐 그냥 성가신 돌덩어리 로 보일 뿐이겠지요.
  • 팬저 2011/06/13 14:47 #

    그럴수도 있겠죠. 일부는 이해가 가지만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네요.
  • 에로거북이 2011/06/13 12:44 #

    구한말에 우리나라를 여행한 비숍 여사 인가 책에 보면 "마을마다 보이는 무너진 성곽들은 수백년 전 이 나라가 누렸던 영화의 자취를 느끼게 한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오랫동안 뭍혔다가 드러난 저 성곽 자락들도 혹시 실제로는 구한말에도 이미 저 모양이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합니다.
  • 팬저 2011/06/13 14:47 #

    맞을 것입니다. 대한제국의 쓰라린 마지막을 보고 있었고 경험한것이 저 읍성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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